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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지방선거 결과 보니…2030년 집권당은 국민의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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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지방선거 결과 보니…2030년 집권당은 국민의힘?

[장석준 칼럼] '양당제 철칙' 증명된 선거…'방법론적 비관주의'에서 출발하자

지방선거가 끝났다. 아니, 끝나지 않았다. 투표용지가 없어 유권자가 투표를 하지 못하는 사태를 만든 초유의 '부실선거' 탓에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재선거'를 요구하는 집회가 계속되고 있다. 선거 결과보다도 오히려 이 참사가 사람들의 마음을 더 무겁게 만든다.

그럼에도 지방선거 결과를 놓고 한 마디 보탠다면, '제6공화국의 철의 법칙의 재확인'이라 하고 싶다. '제6공화국의 철칙'이란 무엇인가? 제6공화국 중반(대략 2000년대)에 확고히 자리잡은 양당 중심 정치 지형에서 권력의 추가 끊임없이 진자운동을 하는 법칙이다.

이 철칙은 양대 정당 중 한 쪽이 돌이킬 수 없는 실패나 잘못을 저질렀을 때 그 위력을 발휘한다. 엄청난 실패나 잘못으로 인해 마땅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야 할 상황에서도 양당은 이 철칙 덕분에 기사회생해 오히려 차기 집권당이 된다.

이 점에서 이번 지방선거는 2018년 지방선거의 재판이었다. 12.3 이후 많은 이들에게 국민의힘이 단죄와 청산의 대상이듯이, 박근혜 대통령 탄핵 이후 자유한국당 역시 사멸해야 할 정당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자유한국당은 살아났다. 지방선거를 거치며 위상과 지분을 되찾았다. 물론 광역단체장 선거 결과는 이번에 국민의힘이 거둔 성적보다 훨씬 더 '참패'에 가까웠지만, 기초단체장과 각급 지방의회 선거에서 대한민국을 지탱하는 양대 정치세력의 하나임을 다시 한 번 공인받았다.

무엇보다도, 양대 정당이 어떻게든 양강의 지위를 유지하게끔 해주는 선거제도 덕분이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단체장 선거에는 결선투표제가 없다. 광역의원은 국회의원과 마찬가지로 대부분 단순다수대표제(소선거구제)로 선출되며, 기초의원은 중선거구제로 뽑는다지만 양당 후보가 사이좋게 동반 당선되는 2인 선거구가 대부분이다.

2018년에도 이런 선거제도를 손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지만 자유한국당은 물론이고 더불어민주당까지 이런 염원을 묵살했다. 영원한 동반자, 자유한국당을 기어코 살려줘야 한다는 결의마저 느껴질 정도였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내란까지 겪은 상황에서 이번만큼은 좀 더 나은 선거제도에 따라 지방선거를 치르자는 요구가 비등했지만, 양당은 기존 게임 규칙에 따른 낯익은 경쟁에서 벗어날 생각이 없었다.

그리고 그 결과, 한때 '내란동조당'이라 지목되며 더 이상 존립해선 안 된다는 지탄까지 받던 정당이 보란 듯이 되살아났다. 친위쿠데타를 저지르는 대통령을 배출하고 비호하며 '어게인'을 외치는 정도의 잘못으로는 제6공화국의 철칙에서 예외가 될 수 없음이 증명됐다.

이것은 얼마나 끔찍한 '증명'인가! 제6공화국의 철칙이 이렇게 의연히 관철되고 있다면, 다음 대통령선거에서는 국민의힘이 집권당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가 된다. 2018년 지방선거에서 반격의 기반을 다지고 4년 뒤에 윤석열을 영입해 대선에서 승리했던 것처럼, 이번 지방선거 결과를 발판 삼아 다시 집권을 노려볼 수 있게 됐다는 이야기다.

제6공화국의 철칙이 살아 있는 한, 우리는 2030년에 현 정부의 연장선에 있는 정권보다는 국민의힘과 그 주변 세력이 주도하는 정권과 만나게 될 가능성이 높다.

▲6.3 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규탄하며 재선거를 요구하는 '잠실 개표소 봉쇄 시위'가 계속되고 있던 지난 8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 출입구 앞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제6공화국의 철칙이 작동하는 한, 2030년에 마주할 정권은

그런데 지금 국민의힘이 어떤 정당인가? 제6공화국 역사에서 양대 정당 중 상대적 우측에 포진한 정당으로는 가장 '극우화'된 정당이다. 어쩌면 3당 합당 이전의 민주정의당보다도 더 '극우'에 치우친 정당이다. 노태우 정부 시기의 민주정의당은 '북방외교'도 할 줄 알았고 '토지공개념'도 시도할 줄 알았다. 그러나 지금의 국민의힘은 '혐중'을 선동하고 부동산 과세 강화를 '공산주의'와 동일시한다.

게다가 12. 3 친위쿠데타를 정당화하는 '윤 어게인' 세력이 당의 골간을 장악하고 있다. 제6공화국의 승자독식 선거제도 덕분에 지대 수익을 누리는 정당임에도 '부정선거'론을 선동한다. 8년 전 자유한국당도 이른바 '아스팔트 우파'의 대변자로 나서면서 이전 새누리당 시절보다 퇴행하기는 했지만, 지금 국민의힘이 보이는 모습 정도는 아니었다.

윤석열은 친위쿠데타에는 실패했지만, 보수·우파에 반민주주의(즉 파시즘)의 세균을 퍼뜨리는 데에는 확실히 성공했다. 국민의힘이 현재의 당 울타리 안에서 자력으로 이 질병을 극복할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이런 지형에서 제6공화국의 철칙이 관철된다는 것은 4년 뒤에 바로 이 '극우화'된 정치 세력이 집권할 운명이라는 의미가 된다.

이 대목에서 코웃음을 치는 이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어떻게 '내란동조세력'이 선거로 다수의 지지를 받아 다시 집권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러나 생각해보자. 만약 2018년 어느 시점에 '자유한국당 세력이 4년 뒤에 집권할 것'이라 말했다면, 대부분 반응이 어땠을까? 지금보다 더 격하게 반문했을 것이다. '무슨 그런 일이 있을라고?' 그런데 '그런 일'이 결국 일어났다. '내란 시도'로까지 이어진 '그런 일'이.

물론 일이 이렇게 되고 만 데는 문재인 정부의 나태와 무능, 위선과 도착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런데 지금 정부는 같은 더불어민주당 정권이기는 하지만, 대통령이 이재명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펼치는 정책들에 관해서는 여러 평가가 있을 수 있고, 나는 지지자도 아니다. 그러나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년 동안 확실히 증명한 바는 있다고 본다. 문재인 전 대통령과는 전혀 다른 부류의 정치가라는 점이 그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제6공화국의 첫 세 대통령(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이후 처음으로 이 헌정 체제가 요구하는 '대통령'의 자질에 부합하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그나마 다행이다.

그러나 대통령의 개인적 역량이나 의지에 희망을 걸고 제6공화국의 철칙이 반전되길 기대하기에는 상황이 녹록치 않다. 아니, 위태롭다. 현 정부가 마주한 시대적 과제들의 무게가 너무나 무겁기 때문이다. 풀어야 할 문제들이 하나같이 다 수십 년간 누적된 모순이거나, 한 세기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위기다.

가령 서울 한강변 아파트를 정점으로 한 부동산 가격 인플레이션은 1990년대-2000년대에 전국적으로 현재의 주거 구조가 정착된 이후에 한 번도 정부 정책에 의해 극복되거나 조정된 적이 없다. 이 문제를 둘러싼 계급-계층, 세대, 지역의 복잡한 이해관계 충돌을 돌파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는 이번 서울시장 선거를 통해 다시 한 번 확인되었다. 그럼에도 이 난제를 놓고 과거 정부와는 확연히 다른 성과를 내야만 하는 형편이다. 그렇지 않으면 '정해진' 운명을 뒤집을 수 없다.

더 암담한 것은 전 지구적 정세다. 2기 트럼프 정부는 미국 안팎에서 극우 포퓰리즘과 파시즘의 경계선, 권위주의와 독재의 경계선을 아찔하게 넘나들고 있다. 올해 중간선거에서 반트럼프 진영이 판을 뒤집을 것이라 하지만, 쉽지 않아 보인다. 민주당 주류의 한계가 해결되지 않은 채 고스란히 남아 있고, 트럼프 정부 아래 뭉친 극우연합의 토대나 전략도 만만치않기 때문이다.

만약 중간선거에서 반트럼프 진영이 탄핵 가능 의석을 확보하지 못하면, 미국뿐만 아니라 한국에도 더욱 짙은 먹구름이 낄 것이다. 아직은 '윤 어게인' 무리와 '교류'하는 정도에 머물고 있는 마가(MAGA) 세력이지만, 올해 헝가리 총선에서 그랬던 것처럼 언제라도 직접 개입을 시도할 가능성이 열려 있다. 이재명 정부가 후반부에 들어서고 차기 대선이 다가올 시점에 이 변수가 한국 사회를 대혼란에 빠뜨릴 위험을 결코 가볍게 봐선 안 된다.

첩첩산중이다. 이런 판에 지방선거에서 '윤 어게인'이 이끄는 국민의힘이 좀비처럼 다시 일어났고, 선거관리위원회의 부실선거로 새로운 정치적 뇌관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국 사회를 더욱 잘게 쪼개는, 세대와 세대를 가르는 깊은 강까지 생각하면…. 비관적인 미래 전망을 떨쳐버리려 해도 떨치기 힘들다.

▲2025년 1월 18일 윤석열 전 대통령의 내란 우두머리 혐의 영장실질심사가 열렸던 서울서부지방법원 앞에서 윤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집회를 열고 경찰과 대치하고 있다. 이들은 결국 이튿날 새벽 법원을 침탈해 1.19 서부지법 폭동 사태를 일으켰다. ⓒ연합뉴스

'최악의 미래'를 상수로 놓고 끊임없이 '반전'의 계기를 찾자

그러나 달리 생각해보면, 이 '비관'이야말로 우리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극우세력이 좌지우지하는 국민의힘 혹은 그 계열 정당의 차기 대선 승리'를 상수로 놓아야 한다. 이 정권이 전 지구적인 극우화와 미-중 대결의 격화 속에서 윤석열이 꿈만 꿨던 황당한 선택을 실제로 추진하는 미래를 각오해야 한다. 서울 20-30대가 더불어민주당 진영에게 등을 돌린 여론 지형이 2년 뒤 총선과 4년 뒤 대선에서는 전국적으로 40대 초반까지 '정권교체'를 적극 지지하는 판세로 이어질 것이라고 담담히 전제해야 한다.

벌써부터 낙담하자는 것이 아니다. 철저히 비관함으로써 현실을 직시하자는 것이다. 그리하여 전에 없던 과감한 선택으로 나아가자는 것이다. '최악의 미래'를 상수로 놓음으로써 그 '최악의 미래'까지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필사적으로 '반전'의 계기를 찾고 살려내려는 노력으로 채우자는 것이다. 이를테면 '방법론적 비관주의'다.

낙관주의자는 다급하지 않다. 낙관주의자에게 시간은 희소하지 않다. 시간의 경과란 단지 승리가 점점 더 가까워진다는 신호일 뿐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낙관주의가 촛불항쟁 이후 문재인 정부를 지배했다. 그래서 그들은 때를 놓쳤고, 그럼에도 절박하지 않았다. 과거에 한때 귀동냥으로 들어본 적 있을 마르크스주의 역사법칙까지는 몰라도 제6공화국의 철칙만 믿더라도 시간은 다시 그들 편으로 돌아올 게 뻔해 보였다. 그들이 낳은 괴물 윤석열이 친위 쿠데타의 일격으로 무너뜨리려 했던 것은 어쩌면 이런 낙관주의자들의 신앙이었을지 모른다.

반면 비관주의자는 다급하다. 비관주의자에게 시간은 끝이 정해져 있는, 한정된 기회다. 시간이 지날수록 예정된 패배가 다가올 뿐이며, 그래서 비관주의자는 남은 매 순간을 반전의 계기로 만들려고 시도한다. 일상의 지속이란 있을 수 없으며, 오직 어제보다 더 과감하고 낯선 시도에 나서는 오늘이 있을 뿐이다. 비관주의자들이 신뢰하는 것은 익숙한 자신감이 아니라 낯선 당혹감이다.

마지막 날을 받아놓은 비관주의자는 이렇게밖에 살 수 없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매일을 충만하게 채워온 비관주의자에게 마지막 날은 애초에 정해진 그런 운명의 날이 아닐 수도 있다. 세상에 '자기실현적 예언'이 있다면 그 반대 방향으로 펼쳐지는 '예언'도 있을 수 있는 법이다.

나는 12.3을 겪은 것도 모자라 지금 다시 미지의 어둠과 마주한 동료 시민들에게 이러한 '방법론적 비관주의'를 권한다. 낙관이 아니라 비관이야말로 우리의 등불이다. 이 등불로 앞길을 비춰볼 때, 느닷없이 돌출한 사건도, 공허한 말들 속에 닳고 닳아 이제는 껍데기만 남은 구호도, 한 번도 실현되리라 기대한 적 없던 거창한 선택지도 전과는 달리 보이게 된다.

가령 지금 계속되는 서울시장 '재선거' 요구 시위를 보자. 문제의 핵심은 민주정의 근본 토대인 선거를 관료체계가 관성적이고 편협한 방식으로 '관리'해온 제6공화국의 '거꾸로 된' 질서다. 적절한 시점에 개혁되지 못한 채 수십년간 지속된 민주정과 관료제 사이의 이 잘못된 위계(관료제가 민주정의 위에 있는)가 결국 분노를 폭발시켰다.

그러나 분노는 불길하게도 문제의 핵심을 향하기보다는 극우파가 지펴놓은 선동 담론 주위를 맴돈다. 마치 '최악의 미래'에 맞춰진 스톱워치가 이미 작동을 시작한 것만 같다.

그렇다. 스톱워치의 숫자들이 숨가쁘게 바뀌기 시작했다. '방법론적 비관주의'는 무엇보다 이 사실을 승인하라고 몰아붙인다. 이를 승인하고 나면, 지난 40여 년의 선거 경험에 바탕을 둔 모든 대응은 아무 의미도 없게 된다.

현실은 벌써 이 모든 기억을 추월했다. 이제는 민주정 위에 군림했던 관료 체계, 즉 선관위 자체를 도마 위에 올려놓지 않고는 저 앞에 달려가는 현실을 좇아갈 수 없다. 심지어는 선관위에 대한 현 헌법의 규정에도 의문을 던질 수 있어야 한다. 개헌까지 의제로 꺼낼 각오를 해야 한다. 이렇게 제6공화국의 기본 골격에 손을 대려는 논의만이 그 쳇바퀴 안에서 작동하는 선동 담론과 대결할 수 있다.

요컨대 '방법론적 비관주의'는 제6공화국의 게임 규칙 안에서 맴도는 정치를 통해 제6공화국의 철칙이 예정해놓은 운명으로 넋놓고 걸어가는 어리석음을 끊으려는 극약 처방이다. 지금 우리가 가진 민주주의의 모든 것을 때맞춰 갱신할 각오가 된 정치만이 민주주의의 '예정된 패배'를 막을 수 있다.

▲2024년 12월 3일. 계엄군이 국회 본청 진입을 시도하고 있다. ⓒ프레시안

장석준 전환사회연구소 기획의원은 오랫동안 진보 정당 운동의 정책 및 교육 활동에 참여해왔으며, 자본주의 위기에 맞선 진보적 사회과학을 재구성하고자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에서 연구 및 출간 사업을 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레프트 사이드 스토리 : 세계의 좌파는 세상을 어떻게 바꾸고 있나>, <사회주의>, <장석준의 적록 서재>, <신자유주의의 탄생 : 왜 우리는 신자유주의를 막을 수 없었나>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국가 대 시장 : 지구 경제의 출현>, <안토니오 그람시 : 옥중수고 이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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