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4월, '씨앗'이 영업을 시작한다. 씨앗은 북촌 한옥 마을로 불리는 종로구 가회동에서 전통 수공예품을 판매한다. 공예가 스물다섯 명의 작품이 씨앗을 통해 손님을 만난다. 수공예품을 들여다보는 손님의 손길이 전시장을 관람하듯 세심하다. 씨앗을 운영하는 김유하 씨는 강제 집행이 예고된 지금 작품이 훼손될지도 모른다는 염려를 내비치며 가게를 둘러본다.
얼마 전부터 작가들에게 작품을 철수하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메일을 보내고 있다. 나쁜 건물주와의 싸움을 지지한다며 작품을 그대로 두어도 된다는 작가 세 사람의 마음이 고맙다고 한다.
2010년 2월, '장남주우리옷'이 같은 건물에서 영업을 시작한다. 장남주우리옷은 혜화동 대학로에서 7년을 장사하다 권리금 포함 시설비 2억5000만 원을 포기한 채 쫓겨난 경험이 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실정법이 세입자를 지켜주지 못하는 건 마찬가지다. 장남주우리옷을 운영하는 김영리 씨는 "당시 가회동이 대학로에 비해 월세가 세 배나 저렴해 빚까지 지며 권리금을 마련했다"고 회고한다. 생활을 유지하며 빚을 갚기가 어렵다고 몇 번이고 되뇐다.
2010년 8월, 건물주가 바뀐다. 두 번째 건물주는 월세를 30% 인상한다. 당시 해당 건물 매매를 중개한 부동산은 "건물주가 재건축을 하겠다고 하면 권리금도 못 받고 쫓겨나니 임대료 인상을 받아들이라"고 말했다. 김유하 씨는 "아버지의 퇴직금으로 부모님이 시작한 가게니까 잘 해보자는 마음"으로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2012년 5월, 또 건물주가 바뀐다. 세 번째 건물주는 월세를 35% 인상한다. 장사 4년째 월세가 두 배나 올랐다. 2015년 1월, 건물주는 임대료 인상도 모자라 대기업 프랜차이즈를 들이겠다며 가게를 비울 것을 명령한다. 씨앗과 장남주우리옷은 처음 입주할 당시의 권리금 시세인 7000만 원을 각각 지급할 것을 퇴거 조건으로 내건다.
건물주는 양도 양수도 권리금도 허락하지 않는다. 명도 소송 도중 건물주는 매입 당시 대출을 받은 삼청새마을금고에 건물을 팔아넘긴다. 삼청새마을금고는 급매로 시세보다 저렴하게 건물을 얻은 셈이다. 나아가 전 건물주와 재판은 재판대로 진행하며, 현 건물주에게 월세를 내라고 요구한다. 두 가게는 월세를 받고 싶으면 정식으로 계약서를 쓰자고 응대한다.
ⓒ정현석
2016년 2월, 소송을 그대로 승계한 삼청새마을금고가 승소한다. 판사는 한 달 차이로 세입자가 개정된 상가법을 적용받지 못했을 뿐더러 처지가 곤궁하니 권리금을 지급하고 합의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조정안을 제시했지만 삼청새마을금고는 이를 거절한다. 2016년 6월, 씨앗과 장남주우리옷은 삼청새마을금고로부터 강제 집행 계고장을 받는다. 6월 9일까지 건물을 비우지 않을 시에는 강제 집행하겠다는 내용이다. 곳곳에서 내쫓기는 가게가 늘어나면서 강제 집행은 수차례 폭력성과 비인권적인 행태로 지적된 바 있다.
김영리 씨는 "반드시 하나쯤은 뚫고 나온다"는 웹툰 <송곳>의 대사를 인용하며 "누구 하나 못된 건물주를 혼내줄 때가 됐다고 생각한다"며 동네 분위기를 전했다. 연예인 리쌍과 임대차 분쟁을 겪고 있는 신사동 '우장창창'을 응원하기 위해 40여 개 이웃 가게가 현수막을 내건 것처럼 젠트리피케이션이라고 불리는 축출 현상이 다만 하나의 문제가 아님을 여타 상인들도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6월 10일, 씨앗과 장남주우리옷은 삼청새마을금고 가회지점 앞에서 투쟁을 선포한다. 간판 아래 "가회 새마음금고 회관 매입 기념 보험 행사"라 적힌 현수막이 눈에 띈다. 씨앗과 장남주우리옷이 일인 시위를 하던 자리에는 팝콘 기계를 가져다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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