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태안화력 故 김충현 노동자 사망 이후 출범한 '발전산업 고용·안전 협의체'는 법원 판결과 고용노동부 근로감독 결과를 바탕으로 한전KPS 직접고용이라는 사회적 합의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합의 이후 공정성 시비는 '위험의 외주화' 해결을 가리며 논의를 왜곡하고 있습니다. 이를 △발전산업 노동 현실 △언론 프레임의 문제점 △법·제도적 쟁점의 관점에서 짚어, 현재 논쟁을 '공정 논란'이 아닌 '생명·안전과 구조 문제'로 재구성하고자 세 편의 글을 기고합니다. - 공공운수노조
태안화력발전소는 한국 사회에서 하나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긍정적인 쪽은 아니다. 2018년 12월, 청년 노동자 김용균 씨가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건은 '고(故) 김용균 사망사고 진상규명과 재발 방지를 위한 석탄화력발전소 특별노동안전조사위원회(김용균 특조위)'를 통해 '위험의 외주화'가 불러온 구조적 문제로 규정됐다. 원청은 하청노동자의 안전을 외면했고, 그로 인해 사고가 발생했다는 결론이다.
그러나 2025년 6월, 또 한 명의 하청노동자 김충현 씨가 태안화력발전소에서 목숨을 잃었다. 6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하청노동자의 현실은 달라지지 않았다. 한국 사회가 김용균 씨의 사망에 제대로 응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고 김충현 사망사고 재발 방지를 위한 발전산업 고용안전 협의체(이하 김충현 협의체)'가 꾸려졌다. '위험의 외주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와 민간이 함께 사회적 합의기구를 출범시킨 것이다. 국무총리 훈령으로 만들어진 만큼 기구의 무게도 실렸다. 다시는 참담한 비극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의지였다. 그리고 지난 2월, 김충현 협의체는 오랜 논의 끝에 '한전KPS 직접고용 합의문'이 발표됐다. 발전설비 경상정비 하도급 계약에 따른 노동자 593명을 한전KPS가 직접 고용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이날 합의문에 대해 대다수 언론은 이렇게 평가했다. "위험의 외주화, 끊는다."
'위험의 외주화' 담론이 어쩌다 '반노동'이 됐을까
그러나 이 상황에서도 일부 언론은 다른 데에 주목했다. <한국경제>는 일부 노조의 반발을 부각시키며 '공기업 자율경영 훼손' 등의 주장에 집중했다. <한국경제>는 '제2의 '인국공' 되나…한전KPS 직고용에 정규직 노조 '폭발'' 기사에서 "정부가 발전 설비 공기업인 한전KPS의 하청업체 노동자 600여 명을 직접 고용하는 방안을 내놓으면서 노노·노정 갈등이 확산하고 있다"며 "'인천국제공항공사(인국공) 사태'가 재현될 것이라는 우려가 있다"고 보도했다. 곧이어 '"취준생·정규직 역차별"…한전KPS 하청 직고용 두고 '논란'' 기사에서는 '공정' '역차별' 프레임을 그대로 옮겨왔다.
'제2의 인국공 사태'라니. 인국공 사태는 2020년 문재인 정부 시절 비정규직 보안요원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불거진 사건으로, 한국 사회의 청년 일자리를 둘러싼 불공정 담론을 촉발한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당시 한국 사회는 어땠나. 박근혜 정부의 국정농단으로 '이게 나라냐?'라는 문제의식이 촉발된 뒤였다. '노동' 분야에서는 비정규직 차별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요구가 분출했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고용형태가 다변화하면서 기존 법·제도에서 벗어난 노동자들이 늘어나던 때이기도 했다. 노동 관련 법·제도의 변화가 필요한 시기였던 셈이다. 그러나 인국공 사건은 엉뚱하게 '공정성' 논란으로 비화됐다. 그 결과, 한국 사회에서 '노동' 이슈는 안타깝게도 뒷전으로 밀려나게 된다. 그 책임에서 언론 역시 자유롭지 않다.
언론 환경은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대다수 언론매체는 파업을 정당성 여부와 무관하게 '불법'으로 규정한다. 노동자들이 집회·시위를 하면 곧바로 '시민불편' 프레임이 따라붙는다. 법률로 보장된 노동자들의 권리행사라 하더라도 다르지 않다. 이런 환경에서 언론이 한전KPS 사건에 인국공 사태를 끌어온 것은 누가 보더라도 의도성이 짙다.
언론의 '제2의 인국공'이라는 수식은 여러 의미에서 문제다. 법적인 측면에서도 마찬가지다. 법원은 이미 하청노동자들의 손을 들어준 바 있다. 지난해 8월, 서울중앙법원은 한전KPS를 상대로 하청노동자들이 제기한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 1심에서 "원고들은 피고와 형식적으로 도급계약을 맺었지만, 실제로는 피고의 지휘·명령에 따라 업무에 종사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파견법이 정한 파견근로에 해당하며 피고가 직접고용 의무를 진다"고 판결했다. 김충현 협의체의 합의문은 법원의 결정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 않다. 그래서 더욱 궁금해진다. 한전KPS 합의문이 잘못이라면, 불법을 유지하라는 말인가.
'노노갈등' 프레임으로 합의안 후퇴한다면
각 주체의 입장 차이가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를 구조적 문제 대신 '노동자 간 갈등'으로 단순화하는 것은 언론의 책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언론은 신이 난 듯 '노노갈등' 프레임을 작동시키고 있다. 이 같은 프레임은 한국 사회의 구조적 불평등 문제를 가린다는 점에서 오래전부터 문제로 지적돼 왔다. 원청과 하청 그리고 재하청, 정규직과 비정규직이라는 불합리한 노동 구조가 노동자의 안전과 생명을 위협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부 보도에서는 이를 '노동자들끼리의 갈등'으로만 축소하려 한다. 바로 그 언론의 생리가 고스란히 드러난 것이 '노노갈등' 프레임이다.
특정 언론사의 문제만도 아니다. <뉴데일리>는 '노란봉투법 시행 앞두고 공공기관 '몸살'…인건비 폭탄에 勞勞 갈등까지' 기사를 통해 국민건강보험공단 고객센터 노동자까지 거론해가며 "원청업체를 상대로 하는 임금 인상 요구도 증가할 것이고, 인건비 부담은 고스란히 기업에 전가된다"고 보도했다. 이어 '익명'의 전문가 코멘트로 "공공기관의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정책은 직무·채용·임금 체계에 대한 명확한 기준을 사전에 제시하고, 이해당사자 간 충분한 사회적 합의를 거쳐야 한다"고 보도했다. 이미 수많은 노동자가 희생됐고, 김용균 특조위와 김충현 협의체를 통해 사회적 논의가 진행됐음에도, 여전히 사회적 합의가 부족하다고 이야기하는 건, 지나치게 한가한 소리가 아닌가.
<전기신문>은 '정부의 안일한 대응이 노노갈등 불씨 키웠다' 기사에서 '노노갈등'을 강조하며 이재명 정부에 책임을 돌렸다. 그러나 이는 정부의 역할을 지나치게 축소해 보는 시각이다. 사회 갈등을 방치하는 것이 정부의 역할일 수는 없다.
이 같은 언론의 노노갈등 보도는 사실 새로울 게 없다. 한국 언론이 노동 문제를 갈등 중심으로 소비해 온 관행 그대로의 모습이기도 하다. 경제지는 특히 잘 알고 있다. 어디에 서야 이득이 되는지를. '노노갈등' 기사가 쏟아지는 이유다. 그러나 새롭지 않다고 해서 문제가 없다는 뜻은 아니다. 언론은 사회적 갈등을 해소하는 데 그 역할이 있다. 한국 사회 '위험의 외주화'로 인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죽음이 반복되고 있다. 그 현실 앞에서 언론이 해야 할 일은 '노노갈등'이라는 자극적 프레임을 씌워 문제의 본질을 가리는 게 아니다. 노동자들의 안전을 지키는 합의가 어떻게 '반노동' 행위가 될 수 있단 말인가.
한국의 노동 구조는 하청과 재하청으로 얽히며 수많은 노동자의 생명을 위협해 왔다. 이를 바꾸기 위해 '한전KPS 직접고용'이라는 사회적 합의가 마련된 것이다. 언론은 이 맥락을 결코 지워서는 안 된다. 더욱 분명히 알아야 할 점은, 만약 노노갈등 프레임에 밀려 사회적 합의가 후퇴한다면 그로 인해 발생하는 노동자의 죽음에 언론 역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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