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완으로 이주한 지 2년 넘었다. 낯선 나라에서 하루하루 살아간다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다. 중국어를 못해서 더 그렇겠지만, 말이 통해도 여전히 어려운 점이 있었을 것이다. 오늘은 이방인으로 살아야 하는 나라로서 대만이 가진 장점과 단점들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사실 오래전부터 한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다. 아내와 가끔 하는 농담이 있다. '나는 한국 사람이 아니야. 어쩌다가 한국에 태어난 것뿐이지.' 김치를 먹지 않고, 술을 마시지 않고, 한국 드라마도 잘 모르는 나를 놀릴 때마다 이런 농담을 하곤 한다. 김치를 안 먹으면서 술도 마시지 않는 사람은 대한민국에서 성(性)소수자나 공산주의자보다도 더 적을 거라고 자조(自嘲)하기도 한다.
여하튼 처음 만났을 때부터 아내는 내가 한국 사람이라고는 절대 생각하지 못했다고 한다. 한국 사람들은 대체로 비슷한 느낌인데, 그런 느낌이 없었단다. 중국어를 못하고 영어로 말을 걸길래 당연히 일본 사람일 거라고 생각했고, 한동안 나를 일본 사람처럼 생겼다고 놀렸다. 그러더니 요즘은 한국인과 중국인 혼혈처럼 생겼다고 한다. 대체 어떻게 생겨야 한중(韓中) 혼혈처럼 보이는 건지는 도저히 모르겠으나, 어쨌든 한국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는 건 여전한 모양이다.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건 내가 전형적인 한국인이 아니라는 거다. 가끔 국뽕에 취하거나, 마음속으로 '빨리빨리'를 외칠 때는 '나도 어쩔 수 없는 한국인이구나' 생각할 때도 있다. 그래도 대체로 한국 사회에서 나는 이방인이라는 느낌으로 겉돌며 살았다.
안정적인 직장을 추구하거나, 부동산, 주식 투자로 돈을 벌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서울, 그중에서도 강남에 살고 싶다는 생각도 없었다. 반대로 30년을 살아온 서울을 떠나 산속에 들어가 살았고, 전국을 떠돌다 결국 제주 중산간 마을에 터를 잡았다. 돈벌이가 되지 않는 글쓰기에 몰두했고, 동네에 작은 도서관을 차리기도 했다. 평범한 어르신들의 삶을 자서전으로 기록하는 사회적기업을 운영하느라 엄청 고생하기도 했다. 그렇게 살아온 결과도 전형적인 한국인과 거리가 멀었다, 또래들이 아이들 다 키우고 안정적인 은퇴 후 생활을 고민하는 나이에, 나는 새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았다.
그렇게 한국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떠다니는 동안 다른 나라에 가볼 기회가 몇 번 있었다. 다 똑같아 보여도 막상 한 사람 한 사람이 고유한 존재이듯, 사람 사는 곳도 다 똑같은 듯 많이 달랐다. 여행지로서 가장 매력적이었던 곳은 단연 몽골과 쿠바였다. 순박한 사람들과 강렬한 자연으로부터 강한 끌림을 느꼈다. 다만, 그곳에 터를 잡고 산다는 건 엄두가 나지 않았다. 아마도 내게 익숙한 대도시 삶과 반대의 매력을 느꼈던 것 같다.
다른 나라들도 나라마다 고유한 매력도 있었지만, 여기라면 한국을 떠나 살아보고 싶다고 할만한 곳은 없었다. 일본과 미국에는 몇 달을 머물러 봤는데 마찬가지였다. 일본에서 교수로 지내던 형은 '죽을 때까지 절대 이 사회의 구성원이 될 수 없는 곳'이라고 말했다. 결국 동일본대지진 때 한국으로 돌아왔다. 스무 개 가까운 다른 나라를 방문할 때마다 '내가 여기 산다면 어떨까?' 고민해봤다. 정답은 찾지 못했지만, 막연히 한국이 아닌 곳에 살아 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정해진 직장 없이 좋게 말해 프리랜서, 사실 가난한 반백수로 살았기에 해볼 수 있는 생각이었다. 어쩌면 제주도에 정착한 것도 바다 건너 한국 속의 해외 지역이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러다가 정작 처음 외국인등록을 하고 거주증을 받아 살게 된 곳이 아내의 나라 대만이다. 서울을 떠나서 무주로 광양으로 제주도로 남쪽으로 이사 가면서 '이러다가 바다 건너 남쪽 나라로 이민 가는 거 아니야?'라고 했던 농담이 거짓말처럼 현실이 됐다. 대만에 뼈를 묻을 생각은 없지만, 지금 사는 이곳에서 아이를 잘 키우고 새로운 삶을 개척하는 게 현재의 가장 큰 목표다.
흔히 말하는 재외교포와는 조금 다른 처지다. 글 쓰는 일로 생계를 전부 해결하지 못하고 있지만 어쨌든 나는 프리랜서 작가다. 대부분의 수입은 바다 건너 한국에서 온다. 이곳에서 직장을 구하진 않는다. 그렇다고 자산소득으로 노후를 즐기는 은퇴 이민도 아니다. 일반적이라고 할 순 없지만 어쨌든 이민 와서 살고 있는 재외동포다. 이민 생활을 하면서 느끼는 타이완의 장점을 정리해보자면 크게 유사성, 근접성 그리고 개방성이다.
대만은 한국 사회와 가장 비슷한 나라 중에 하나다. 외모로 구분이 되지 않는다는 것부터가 큰 장점이다. 문화적으로도 유사하다. 같은 민족인 북한이나 혈연적으로 가장 가까운 일본보다도 차이가 적다. 당연히 디테일에서는 차이가 있지만, '미국화된 한자문화권'이고 '아시아적 전통이 남아있는 자유국가'라는 큰 틀에서 비슷한 점이 많다. 가족 간의 유대를 중시하는 공동체 문화를 중심으로 서구적, 개방적 문화가 확산되고 있는 사회 변화도 비슷하다. 같은 한자를 사용하며, 야구, 바둑 등 취미생활도 비슷하고, 서유기, 삼국지, 고사성어 등 의외로 연결되는 문화가 많다.
경제 수준이나 생활 수준도 비슷하다. 비슷한 삶의 질에 물가는 조금 저렴하다. 급여는 한국에 비해 낮은 편이지만 대신 경쟁은 좀 덜하고, 시간적인 여유는 풍족한 편이다. 교육열은 꽤 높지만, 한국에 비할 바가 아니다. 내 기준에선 적절하다, 영어와 중국어를 배울 수 있는 교육환경도 훌륭하다. 전반적으로 주변 사람 눈치를 보는 일이 덜해서 사회적 스트레스가 한국보다 덜하다. 식생활도 큰 틀에서는 공통점이 많고, 한식, 일식을 포함해서 세계 각국 음식이 다양하게 들어와 있다. 하다못해 교통카드를 쓰고, 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내는 사소한 사회 시스템도 크게 차이가 없다. 규칙을 잘 지키는 사람들의 신뢰에 기반한 치안 시스템도 큰 차이가 없다.
근접성은 말 그대로 지리적으로 가깝다는 점이다. 두 시간 남짓이면 모국에 방문할 수 있다. 열 시간 넘게 비행기를 타야 하는 신대륙의 이민 국가와는 비교할 수 없는 장점이다. 시차는 한국보다 한 시간 늦다. 미국이나 캐나다처럼, 여기는 한창 일할 시간인데 한국은 한밤중인 경우는 없다. 한국은 한겨울인데, 반 팔을 입고 해수욕하는 호주, 뉴질랜드와도 다르다. 나처럼 대만에서 일하면서 이따금 한국에 볼일을 보러 가야 하는 사람에게 가깝다는 건 큰 장점이다. 가족의 대소사나 갑작스러운 볼일이 생겨도 한국 방문에 부담이 적다.
대만이 가진 개방성은 비단 한국인뿐 아니라 외국인으로서 대만에 살 때 경험할 수 있는 가장 큰 장점이다. 대만 사회의 개방성은 이민 국가의 특징에서 기인한다. 보통 민족국가와 이민 국가는 그 구성원을 정의하는 방식에서 차이가 있다. 민족국가의 경우 혈통, 언어, 문화를 공유하는 '민족'이 우리 사람인 반면, 이민 국가에서는 일정한 법적 절차를 거치면 구성원이 된다. 대만의 경우는 겉으로 보기에 단일한 민족국가로 보이지만, 역사, 문화적으로 이민 국가의 특성 역시 가지고 있다. 비슷한 시기에 역사에 등장해 오랜 시간에 걸쳐 다양한 이주가 이뤄졌다는 점에서는 미국이나 호주와 별 차이가 없다.
어차피 대부분 중국에서 건너온 사람들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렇게 치면 미국도 대부분 유럽에서 건너온 사람들이다. 청나라 때 살길을 찾아 이주한 푸젠성(福建省) 출신 사람의 후손과 국민당의 일원으로 1940년대 대만해협을 건넌 저장성(浙江省) 출신 중국인은 전혀 다르다. 대륙이 공산화된 후 대만 국적을 택한 산둥성(山東省) 출신 화교(華僑), 홍콩 반환을 앞두고 대만으로 탈출한 광둥성(廣東省) 출신 홍콩인, 직장 때문에 대만으로 이주한 싱가포르나 인도네시아 출신 화인(華人)들도 서로 이질적인 사람들이다. 마치 범선을 타고 대서양을 건너 미국을 개척한 영국 청교도들과 대기근을 피해서 바다를 건넌 아일랜드인, 아메리칸드림을 꿈꾸고 신대륙으로 온 이탈리아인, 세계대전을 피해 미국으로 온 유대인들이 모두 다른 사람들인 것처럼 말이다.
이런 이민 국가로서의 특징 덕분에 다름에 대해 배타적이지 않다. 이런 점에서 대만과 비교할 수 있는 나라는 화교들이 세운 나라인 싱가포르 정도뿐이다. 중국어를 못해도 짧은 영어로 일상생활이 가능하다는 장점도 공통적이다. 물론 민족국가로서의 성격도 있기 때문에, 대만 국적을 취득하는 건 쉽지 않다. 그래도 적대적인 관계인 중국 국적인이 아니라면 한국 국적보다는 얻기 수월하다. 특히 대만 국적자와 결혼한 나 같은 사람에게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다만 대만에서 아예 뿌리내리고 살 생각이 아니라면 굳이 국적까지는 필요 없다는 생각이다. 내가 대만 이민에서 느끼는 만족도는 국적과 전혀 상관이 없다.
당연히 단점도 있다. 중국과의 양안관계(兩岸關係)에서 오는 안보 불안은 아무래도 늘 마음에 걸린다. 타이베이 기준으로 심각한 피해가 없다고 하지만, 자주 찾아오는 지진과 태풍도 낯설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기후와 음식의 차이도 매일매일 일상이 되니 결코 쉽지 않다. 뚜렷한 사계절과 맵고 짠 한국 음식에 나름 잘 적응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 문득문득 느끼는 향수(鄕愁)는 고국을 떠난 사람이라면 어느 곳에 살든 마찬가지일 테니 단점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기억을 더듬어 보니 내가 처음 제주도에 정착했던 2000년대 중반에 이런 생각을 했었다. 어차피 인터넷으로 사람들과 연락하고 일할 수 있는데 굳이 비싸고 정신없는 서울에 살 필요가 있을까? 볼 일이 생기면 비행기 타고 한 시간이면 다녀올 수 있는데 꼭 서울 근교 수도권에 살아야 할까? 아마 내가 과감하게 국경을 건너 대만살이를 시작할 수 있었던 건 이런 엉뚱한 생각이 확장된 결과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제주도로 가고 몇 년 뒤에 '제주이민' 열풍이 불기도 했었다. '디지털노마드'이든 '문화유목민'이든 나처럼 한국 사회에 잘 적응하지 못한 한국인들에게 대만 이민은 한번 생각해 봄직한 대안일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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