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사가 진실을 가릴 때, 비극은 소비되는 콘텐츠가 된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명작 <라이언 일병 구하기>는 전쟁 영화의 고전인 동시에, 미국식 애국주의가 작동하는 가장 정교한 메커니즘을 보여주는 텍스트다.
단 한 명의 병사를 구하기 위해 투입된 여덟 명의 희생. 그 '숭고한 사명'은 전쟁의 참혹함조차 국가 정체성을 공고히 하는 도구로 승화시킨다. 하지만 스크린 속의 감동이 현실 국제정치의 군사 행동을 정당화하는 '복제된 프레임'으로 작동하기 시작할 때, 우리는 그 서사가 드리운 짙은 그림자를 직시해야 한다.
1. '드라마'가 삼켜버린 '사건'의 본질
최근 미군 F-15 격추 사건과 그 뒤를 이은 긴박한 '구출 작전' 보도는 현실이 얼마나 충실하게 할리우드적 서사를 연출하는지 보여준다. 군사적 긴장 속에서 사선을 넘나드는 구조팀, 절박한 교신 끝에 이뤄진 극적인 생환. 이 서사는 대중의 감정을 즉각적으로 휘어잡는다. 우리는 국가라는 거대한 울타리가 개인의 생명을 끝까지 책임진다는 안도감과 애국적 고양감에 젖어든다.
그러나 이 강렬한 감동의 드라마는 치명적인 마비 증상을 동반한다. 서사가 감정을 지배하는 순간, 인과관계에 대한 이성적 질문은 설 자리를 잃는다. '구출'이라는 완결된 결과에 매몰되어, 정작 그 전투기가 왜 타국의 영공을 침범했는지, 그 작전이 국제법적으로 어떤 명분을 가졌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은 안개 속으로 사라진다.
2. 맥락의 거세, 그리고 가해의 은폐
모든 서사는 선택적이다. 미국식 영웅 서사가 '자국민의 생명 존엄'과 '전우애'를 전면에 내세울 때, 그 이면에서 의도적으로 삭제되는 것은 '전쟁의 원인'과 '타자의 생명'이다.
주권 침해라는 명백한 불법성은 뒷전으로 밀려나고, 이 군사적 도발이 혹시 특정 권력의 정치적 위기 타개를 위한 전략적 선택은 아니었는지에 대한 의심은 차단된다. 결국 '구출 서사'는 가해와 피해의 구도를 교묘히 역전시킨다. 주권을 침해한 군사 행위자는 어느덧 위기에 빠진 '가련한 구조 대상'이 되고, 주권을 방어하려던 상대국은 영웅의 생명을 위협하는 '비정한 악당'으로 박제된다. 원인이 거세된 서사 속에서 침략은 비판의 대상이 아니라, 흥미진진하게 소비되는 한 편의 콘텐츠로 변질된다.
3. 저널리즘, 전범의 선전도구?
더욱 뼈아픈 대목은 이 서사를 무비판적으로 중계하는 우리 언론의 태도다. 저널리즘의 본령은 사건의 맥락(Context)을 짚고 권력의 의도를 비판적으로 분석하는 데 있다. 그러나 많은 보도가 미군 장교의 구출 과정에 담긴 긴박함을 중계하는 데 급급했다.
비판적 거리두기가 거세된 보도는 사실상 특정 국가의 군사 프레임을 수용하는 선전 도구와 다름없다. 국제정치적 파장과 법적 정당성을 따지기보다 '드라마틱한 서사'의 전달자가 되기를 자처하는 순간, 언론은 대중으로 하여금 전쟁의 본질을 외면하게 만드는 공범이 된다.
4. 인간 존엄을 지키는 최소한의 윤리
국제질서의 근간은 주권 존중과 법적 책임에 있다. 타국 영공에 대한 무단 침범은 그 어떤 감동적인 구출 시나리오로도 가릴 수 없는 무도한 행위다. 전쟁은 결코 아름다운 이야기가 될 수 없으며, 결코 낭만적으로 그려져서도 안 된다.
우리는 '라이언 일병 구하기'식 서사가 현실에서 변주될 때마다 집요하게 물어야 한다. "그는 왜 그곳에 가야만 했는가?" 서사가 화려하고 감동적일수록 그 광채 아래 지워진 진실들을 추적하는 것. 그것이 전쟁의 광기에 휘둘리지 않고 평화의 길을 찾는 저널리즘의 최소한의 윤리이자, 깨어 있는 시민의 의무다.
진실은 구출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끝까지 질문함으로써 구해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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