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 출범 6개월 후인 2008년 8월 27일, 신대식 당시 대우조선해양 감사실장은 퇴근 무렵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이 전화 한 통이 산업은행에서 30년 가까이 근속한 뒤 산업은행이 대주주인 대우조선해양에 입사해 순탄한 삶을 살아온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고 신 실장은 말한다.
신 씨는 전화를 건 사람이 산업은행 입사 동기이자 당시 산업은행 부총재였던 김종배 씨였다고 주장한다. 신 씨는 김 씨가 "잘 들어라. 청와대에서 연락이 왔다. (대우조선해양에) 자리가 필요하다고 한다. 외부에서 온 사람들이 나가줘야 한다. (산업은행 출신인) 네가 나가줘야 하겠다"는 취지로 말했다고 전했다.
그 후 신 씨는 해고된다. 그렇다면 김 씨는 신 씨의 인생을 바꿨다는 이 전화를 했다는 것을 인정할까? 김 씨는 이에 관해 증언하지 않았다. '신대식 해고 사건'의 핵심 증인으로 꼽히는 김 씨는 공판 과정에서 "법정에 증인으로 출석해 정당한 이유 없이 증언을 거부"(1심 판결문의 일부)한다.
신 씨에게 찾아온 고난은 해고만이 아니었다. 신 씨는 해고 문제와 관련해 여러 건의 소송에 휘말린다. 최근 신 씨는 해고 과정에서 청와대의 외압이 있었다는 의혹과 관련한 형사 소송(명예 훼손 혐의)에서 이겼다. 1심(2012년 10월)과 2심(2012년 12월)에서 거듭 무죄 판결을 받고, 검찰이 상고를 포기하면서 신 씨의 무죄가 확정됐다.
<프레시안>은 '청와대 외압 의혹 형사 소송'에서 이긴 신 씨를 14일 만나 소회를 들었다.
"청와대 거론하는 한 통의 전화에 인생이 바뀌었다"
"솔직히 나가라고 하면 나간다는 마음이 있었어요. 정권 초반이고, 정치를 하는 사람들이 공기업 관련 인사를 좌지우지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고…. 그런데 왜 하루아침에 임원인 전무 감사실장을 대기 발령을 내고 인사팀 사원으로 만들었느냐 이겁니다. 왜 사람을 짓밟으면서 나가라고 하느냐(는 것이에요). 그것, 참았어요. 그런데 나를 파렴치범으로 만들더군요. 회사 카드를 주말에 이용했다거나, 서울-거제를 오갈 때 교통 시간 맞추려고 미리 자리를 비우는 것을 근무 태만으로 규정해 사실상 징계 해고를 했습니다."
| ▲ 신대식 전 대우조선해양 감사실장. ⓒ프레시안 |
정권 초반이었다. 이명박 대통령 주변 사람들이나, 선거 때 도움을 줬던 인물들이 공기업 '낙하산'으로 무더기 투입되던 시기였다. 친이명박계 인사들이 "나는 OOO문화회관 고문으로 있다. 연봉은 높은데, 눈에 띄지 않아 그런 자리가 있는 줄도 모를 것"이라는 말을 자랑처럼 한다는 이야기가 정치권에서 돌던 때였다.
그 후과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2013년 1월 1일 현재,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 시스템 '알리오' 등에 따르면 30개 정부 부처, 위원회 및 청 산하 240개 공공기관에 재직 중인 감사 250명 중 청와대 등 정치권 출신 및 정부 공무원 출신이 118명으로 전체의 47.2%에 달한다. 이에 더해 각종 사외이사 자리에, 보이지 않는 '낙하산 인사'들이 산재해 있다는 지적이 많다.
정권 초기, 대우조선해양도 이런 분위기에서 예외가 아니었다. 남상태 당시 대우조선해양 사장은 정치권 배경이 든든한 인물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었다. 김윤옥 여사와 개인적 친분이 있었고, 이명박 정부 초대 국정원2차장을 지낸 김회선(현재 새누리당 국회의원)이 그의 매제였다.
신 씨는 문제의 전화를 전후로 시작된 '해고 작업'이 일사천리로 진행됐다고 말한다. 신 씨는 그해 9월 3일 감사실 폐지를 일방적으로 통보받았다. 회사는 신 씨를 인사1팀으로 대기 발령했다. 사실상 "나가라"는 것이었다. 신 씨가 감사실 폐지의 부당함을 주장했지만 소용없었다.
같은 해 10월 1일 대우조선해양에 세 명의 고문이 들어왔다. 정하걸 전 재경포항향우회 사무총장, 오동섭 전 이재오 특임장관 특보, 함영태 전 한나라당 부대변인이었다. 누가 봐도 정치권 '코드 인사'라는 지적이 나왔다. 10월 20일 회사는 징계위원회를 열고 신 씨를 '징계 해고'하기로 결정했다. 이틀 뒤 신 씨는 해고 통보를 받았다.
신 씨는 "어떻게 하루아침에 대기 발령을 내서 사람의 목을 치느냐. 밥줄을 끊는 것 아니냐. 망신 주기 아니냐"고 강하게 반발했다. 신 씨는 자신이 "회사로서는 눈엣가시였을 수도 있다"고 말한다. 대우조선해양과 협력업체 사이의 거래와 관련해 꼼꼼하게 지적하는 등 감사실장으로서 깐깐하게 일한 것을 못마땅하게 여긴 이들이 있었을 것이라는 말이다.
예상치 못했던 해고, 그리고 소송
그해 11월 26일 신 씨는 '부당 해고를 당했다'며 퇴직금 지급 소송을 냈다. 대기업에 맞서 4년 넘게 진행하고 있는 지루한 소송전은 그렇게 시작됐다.
현실은 냉혹했다. 신 씨는 해고 상태에서 2008년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2009년을 쓸쓸히 맞아야 했다. 대우조선해양은 그 사이 회사 매각 건, CEO 선임 건으로 바쁘게 돌아갔다. 예상했던 일이 발생했다. 2009년 3월, 노무현 정부에서 임명됐던 남상태 사장이 이명박 정부에서 연임하는 데 성공했다. 이를 두고 뒷말이 무성했다.
신 씨는 처음에는 청와대 인사 외압 문제를 건드리지 않았다. "청와대 하면, 나도 무섭죠." 신 씨는 "징계 해고가 부당하며, 정당한 퇴직금을 받아야 한다"는 데 집중했다. 그렇지만 불안함을 떨칠 수는 없었다. 1년여간 소송을 진행한 신 씨는 9월 7일 정치권 인사들을 영입하고자 해고한 것이라는 준비 서면을 법정에 제출했고, 판결이 나기 직전인 2009년 12월 14일 재판부에 청와대 인사 외압 사실을 알리기로 하고 탄원서를 제출했다. "있는 사실은 있는 그대로 말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12월 29일 1심 판결이 났다. 결과는 패소였다.
"1심에서 지고 정말 어려웠습니다. 주변 사람들이 나를 비리가 있는 사람으로 취급했습니다. 은행 사람이 민간 회사에 가서 회까닥한 것 아니냐고 생각하더군요. 비리가 있어서 무단 결근을 하고 카드를 마구 쓴 사람이 된 것이죠. 나중에 나에 대한 비리 의혹이 다 조작으로 드러났지만, 그것을 증명하기가 힘들었습니다. 저는 한 명의 개인입니다. 저쪽은 정권 실세들이 그 주변에 있는 '거물'이고 '대기업'입니다. 회사가 모든 자료를 다 갖고 있는데, 어떻게 밝힐 수가 있겠습니까."
신 씨는 그 후 마음을 바꿨다. "청와대에서 외압이 있으면 어떻고 없으면 어떠냐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청와대 운운하면서 전화가 왔고 내가 분명히 들었는데, 외압이 없다고 하면 어떻게 하겠느냐. 뻔히 다 아는 사실인데, 남상태 사장이 '그런 것은 없다'고 했다. 진실을 밝혀야 한다는 마음을 먹었다." 이후 신 씨는 소송을 치밀하게 준비했다. 소송 진행 과정에서 기자와 만났을 때, 신 씨는 "30년 넘게 숫자만 다뤄온 나를 회사가 얕보면 안 될 것"이라고 하기도 했다.
청와대 인사 외압 의혹, 들은 것 말했을 뿐인데 돌아온 건 '소송 폭탄'
2010년 1월 14일, 신 씨는 항소했다. 그런데 엉뚱하게 정치권에서 예상치 못한 일이 터졌다. 대우조선해양 협력업체 비리와 관련해 이명박 대통령의 친구이자 최측근인 천신일 세중나모 회장이 검찰 수사를 받게 된 것이다. 그러면서 대우조선해양 비리 의혹은 점차 확산됐다. 그 와중에 이 대통령의 최측근인 이재오 의원이 특임장관으로 지명됐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대우조선해양 '낙하산 3인방'은 이 의원과 가까운 사이였다. 특히 오동섭 대우조선해양 당시 고문은 이 의원의 최측근으로 꼽혔다. '이재오 측근 낙하산' 의혹이 불거졌다. 그해 8월 23일 열린 이재오 특임장관 인사청문회에서 신 씨는 청와대 인사 외압 의혹 및 3명의 고문 임명 과정에 대해 가감 없이 증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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