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윤석열·전두환 내걸고 '공화당'으로 간판을 바꾼다고?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윤석열·전두환 내걸고 '공화당'으로 간판을 바꾼다고?

[박세열 칼럼] 공화국의 적 윤석열과 전두환 품고 '공화당'이 될 수 있나?

국민의힘에 입당한 윤석열은 밀튼 프리드먼을 말했다. "정부는 없어도 된다"는 밀튼 프리드먼 식의 극단적 경제적 자유주의는 레이건과 대처의 시대에 전성기를 맞았으나 1990년대 경제 위기와 함께 '워싱턴컨센서스'가 무너지며 구닥다리가 된 아이디어다. 1980년대 프리드먼식 경제적 자유주의자들은 현실 정치를 장악하기 위해 '지지 세력'이 필요하자 반공과 종교에 심취한 '전통적 보수주의자'들을 동원했다. 신자유주의와 문화적 보수주의의 연대였다. 그 이념의 부스러기를 주워다가 2020년대에 적용하려 한 게 윤석열이다. 40년 전 대학생 때 읽었다는 밀튼 프리드먼의 낡은 책을 빈곤한 철학의 경전으로 삼은 윤석열은 심지어 밀튼 프리드먼조차도 배반했다. 윤석열은 경제적 자유주의의 개념이 뭔지도 몰랐고, 그저 '반공주의'에 기반한 전통적 우파가 외치는 '자유', '멸공' 따위의 함성에 도취된 시대착오적 지도자였다.

이런 조악한 철학의 지도자가 국민의힘을 접수할 수 있었던 건, 한국의 정당이 얼마나 취약한 이념과 철학적 토대 위에 서 있는지 잘 보여준다. 이승만 독재와 군사 독재 시절 '자유'와 '민주'와 '공화', '정의' 등의 기만적 당명을 차용해 '말'을 오염시켰던 보수정당은 '문민 정부'를 표방한 민간 출신 첫 대통령인 김영삼 때 와서 '이념적 당명'의 탈을 처음 벗어던진다. 신한국당, 한나라당, 새누리당, 자유한국당, 미래통합당으로 이어지다 국민의힘으로 당명을 바꾸는 동안 (자유한국당을 제외하곤) 전통적 정치 구호를 벗어난 작명을 선보여 왔다. 자유한국당이라는 이름이 왜 나왔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구시대적 '박근혜 리더십'으로 탄핵을 맞이한 정당이 '자유'라는 단어를 택할 이유가 있었을까? 이승만의 향취가 배인 마지막 '반공주의'의 몸부림처럼 읽혔다.

국민의힘 안에서 유력한 새 당명으로 '공화당'이 검토되고 있다고 한다. '공화'라는 말은 폭력적 쿠데타와 군사 독재로 정권을 유지한 박정희가 사용하면서 완전히 오염된 말이 됐다. 원래 공화주의는 라틴어 res publica(공공의 것)에서 유래한 말인데, 로마 시대에는 이성에 기반해 권력을 다수가 향유하는 것을 의미했다. 19세기 프랑스 혁명 이후 나폴레옹 시대에는 당시 유럽의 지배적 체제인 '왕정'에 반대되는 의미로 사용됐다. 유럽을 휩쓴 거센 의회주의 열풍이 왕을 내몰면서 일부 깨어있는 귀족과 부르주아들이 왕정의 대치어로 공화주의를 내건 것이다. 그리고 나서 공화주의는 좌파들이 가져가게 된다. 20세기 초 스페인 내전에선 좌파들이 '공화주의자'라는 말을 점유했다.

공화당은 전 세계에서 정당 이름으로 많이 사용되는 말이다. 대표적으로 미국의 공화당이 있고, 프랑스의 공화당이 있다.(전통의 프랑스 공화당은 중도 정당인 마크롱의 르네상스와 극우 정당 르펜의 국민연합에 끼어 고사 직전이긴 하다.) 이들 공화당은 각 국가의 사정이나, 역사에 따라 의미가 꽤 달라지는데, 프랑스의 공화당은 '드골주의'와 여전히 끈끈히 연결돼 있다. 강력한 대통령제와 프랑스 민족주의, 그리고 국민 주권주의 등을 뿌리로 한다. 박정희는 미국 공화당에서 이름을 차용했지만, 오히려 드골주의식 공화주의와 박정희식 '공화당'이 가장 의미가 닿아 있는 것처럼 보인다.

미국의 공화당도 원래 혁신을 상징하는 진보 정당에서 출발했다. 세계 최초로 '왕정'과 '봉건주의'가 없던 땅에서 근대적 공화국을 일궈냈다는 자부심이 당명에 스며 있다. 링컨의 공화당은 노예제 폐지를 주장하며 도시 산업가와 역사적 진보주의를 강력하게 옹호했던 정당이다. 공화당이 지금의 보수정당으로 바뀐 데에는, 자본주의 혁명이 일어나고 경제적 환경이 변화했던 역사적 배경이 있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산업 자본가를 강력하게 옹호했던 공화당은 정부의 시장 개입을 '악'으로 보고 '작은 정부'를 옹호하기 시작했고, 노예제를 찬성하던 민주당은 급변하는 자본주의 산업화 시대에 몰락한 농민 등 경제적 약자를 위한 제도 마련을 주장하며 '큰 정부'를 옹호하기 시작했다. 20세기부터 '공화당=보수' 공식이 굳어지게 된다.

2차대전의 폐허를 딛고 영광의 프랑스 제5공화국을 연 공화당이 정치적 이념 결사체에 가까운 정당이라면, 역사가 깊은 미국의 공화당은 영국의 보수당처럼 경제 구조 변화에 따라 자연스럽게 보수정당으로 탈바꿈한 정당이다.

한국의 공화당은 어떨까? 민주공화당의 약칭 공화당은 '박정희' 그 자체다. 보수 정치인 유승민이 '공화주의'의 의미를 재정립하자고 주장했을 때, 박정희의 향수에 취해 있던 새누리당은 콧방귀도 뀌지 않았다. 오히려 공화주의를 주장한 유승민을 배척하고 내쫓았다. 그런 정당의 후신 국민의힘이 새누리당에 이어 '두 번째 탄핵 대통령'을 배출해 놓고 지금 반성도 없이 다시 '공화당'을 언급하고 있는 건, 진정으로 공화주의를 고민하고 있는 걸로는 도무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오히려 영남을 기반으로 한 박정희 공화당의 향수에 기대려는 듯한 느낌이 더 강하게 든다. 철학은 없고 껍데기만 남은 회귀주의적 작명일 뿐이다.

특히 지금 장동혁 지도부가 휘둘리고 있는 '윤어게인'은 공화주의에 정면으로 반한다. 권력의 공적 통제와 사회적 포용주의를 의미하는 '공화'라는 이름 밑에 독재자를 꿈꾸며 국회를 없애고 군대를 동원해 자국의 반대파를 제거하려 한 인물이 공존한다는 게 대체 말이 되는 일인가. 더군다나 공화당 이름을 내걸고 자국민을 학살한 전두환의 사진을 당사에 걸어놓자고 주장하는 인물이 정당의 '스피커'로 설치게 둔다는 게 말이 되는 일인가. 공화주의에 대한 깊은 성찰도 없으면서 이름을 공화당으로 한다는 건 기만이고, 언어를 오염시키는 일이다.

세계는 급변하고 있는 중이다. '모두가 잘 살 수 있다'는 번영과 호황의 시대는 지나갔고 '역사의 종말'이 선언된 1990년대~2000년대의 신자유주의적 가치는 이미 철지난 이념이 됐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과 유럽은 이제 극단적 자유주의에서 배타적 '보호주의'로 회귀하고 있으며, 중국과 러시아는 그 틈바구니에서 권위주의적 굴기를 꿈꾸고 있다. 국민의힘의 경쟁 정당인 민주당과 민주당이 배출한 이재명 대통령은 전통적 '진보주의'에서 벗어나 변화하는 세계에 적응하기 위해 고통스러운 비전을 짜내려 노력하는 시늉이라도 보여준다. 그런데 국민의힘은 '윤어게인의 힘'에 쩔쩔매다 과거 회귀적 이념 투쟁을 여전히 벌이고 있는 중이다. 정당은 유권자에게 '비전'을 보여야 한다. 어떤 당명을 최종 채택하게 될 지는 모르지만, 만약 공화당을 당명으로 하려거든 공화의 의미를 새기고 고민하는 척이라도 해 주길 바란다. 그 첫번째 행동은 내란범 윤석열과 철저한 절연이어야 할 것이다.

▲윤석열과 전두환 ⓒ연합뉴스

박세열

정치부 정당 출입, 청와대 출입, 기획취재팀, 협동조합팀 등을 거쳤습니다. 현재 '젊은 프레시안'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쿠바와 남미에 관심이 많고 <너는 쿠바에 갔다>를 출간하기도 했습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