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람이 그렇겠지만 한국인은 유달리 집안 내력, 가문의 정신을 자랑으로 여긴다.
요즘 지역 언론에 회자되는 인사 가운데 유희태 완주군수가 집안 내력을 여러 곳에서 자랑하는 모습을 보곤 한다. 유 군수는 특별히 일문구의사를 내세우고 있다. 완주 비봉면 출신인 유 군수는 비봉면 불당골의 고흥 유씨 집안에서 9명의 의사를 배출했다고 자랑한다.
필자는 가문 자랑을 부럽게 받아들이고, 그 집안의 정신을 본받으려는 자세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상당 기간 유 군수를 대단한 인물로 생각했다. 그러나 완주·전주 통합 논의 과정에서 그가 보여준 공직자로서 처신은 '일문구의사(一門九義士)'의 정신을 제대로 실천하는지 회의를 갖게 한다.
일문구의사는 1910년부터 1930년대까지 비봉면 불당골 일대에서 항일 독립운동을 벌인 고흥 유씨 집안 아홉 분의 의사를 일컫는다. 유씨 집안은 중창조 유습 장군이 세종 때 대마도를 정벌하고 조선의 평화 기반을 구축했듯이 구한말 조국 독립이라는 대의를 위해 목숨을 걸었다. 이들은 독립자금 조달, 항일 결사 조직, 만주 독립군 연결, 3·1운동 참여 등 실질적이고 치열한 항일 투쟁을 전개했다.
그 과정에서 고문과 투옥, 생계 파탄 등의 고초를 겪어야 했다. 일문구의사가 자랑스러운 것은 외세를 척결하기 위해 공동체 전체가 함께 움직였다는 점이다. 개인이 아닌 가족과 마을이 하나가 되어 불의에 맞서 싸웠다. 단순한 혈연의 결속이 아니라, 정의와 민족을 향한 윤리적 연대였다. 바로 이 정신이 완주의 가장 위대한 유산 가운데 하나이다.
일문구의사 정신을 지금 시대에 맞게 정의를 내린다면, 그것은 민주적 정의를 바탕으로 한 조국의 독립과 시대변혁의 정신이다.
먼저 일문구의사 정신은 내 자신의 사익보다 공동선을 우선으로 하며 공동체 정의를 추구하는 것이다. 둘째 불의와 억압에 맞선 양심으로서 도덕적 용기를 발휘한다. 셋째 한 마을, 한 집안이 함께 행동하는 민주적 자발적 연대 정신이다. 넷째 목숨을 걸고 다음 세대의 자유민주주의를 지키는 미래세대에 대한 책임을 다하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 유희태 군수가 보여주고 있는 통합 반대 행보는 이런 정신과 근본적으로 배치되는 것 같아 안타깝다는 비판이 잇따르고 있다. 국민이 주권자로서 정부를 세우고 이끌어 가는 국민주권정부, 주민이 주권자로서 지역공동체를 이끌어 가는 주민주권지방정부와는 상당히 거리가 있다. 즉 군수가 정면에 나서서 법에 없는 주민투표 절차를 중단할 것을 지방시대위원회와 행정안전부에 여러 차례 건의하고 있다. 군수는 선거 때와 다르게 통합에 대한 찬성 입장을 번복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그동안 통합 찬성 주민에 대한 보조금 중단, 군청 산하 사무실 퇴거 강제, 사업장 입건 조사 등의 논란이 되고 있는 행위도 이어지고 있다. 관변단체, 이장단, 부녀회 등을 통해 반대 분위기를 조성한다는 제보도 잇따르고 있다,
유희태 군수의 반통합적 행태는 이재명 대통령의 선거공약에도 배치된다. 이재명 대통령은 5극 3특 추진으로 국토균형발전을 이루겠다고 공약했다. 구체적으로 지역소멸을 방지하기 위한 지역 주도 행정체제 개편을 추진하며, 행정체제 개편을 위한 범정부적 통합 TF를 구성하고 로드맵을 마련하기로 했다.
특히 주민의사를 반영한 지자체 통합방안도 마련하기로 했다. 민주적 공론에도 대통령 공약에도 어긋나는 일 등은 유희태 군정의 공정성에 대한 우려가 제기된다.
오늘날 유희태 군수가 일문구의사로부터 계승해야 할 가치는 무엇인가? 우선 1935년 일제가 강제로 분리한 전주와 완주를 통합하는 자주 독립정신이다. ‘불당골 정신’을 정치적 도구가 아닌 행정의 가치로 구현하는 역사계승 정신이 중요하다.
다음으로 완주-전주 시민의 공동 번영 구상을 수용하는 공동체 정의의 실현 정신이다. 특히 찬반 양측의 자유로운 공론의 장을 보장하는 민주 의식이다. 또한 통합은 다름이 아니라 우리 내부의 미래를 설계라는 연대정신이다.

유희태 군수는 자화자찬에 그치지 않고 진실로 일문구의사 정신으로 돌아가 ‘불당골 정신’의 실천자가 돼야 한다. 불당골의 일문구의사들은 자유와 정의를 위해 모든 것을 걸었다. 유희태 군수 역시 지역사회의 봉사자로서, 민주적 공론과 공동체 미래를 위한 실천적 자세를 보여야 한다.
이를 위해 완주·전주 통합문제에 대한 주민공청회를 즉시 개최해야 한다. 통합운동을 추진하는 주민단체들도 군청 회관 등에서 자유롭고 평화롭게 통합의 진실을 알리는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또한 주민자치회, 마을공동체, 지식인, 언론 등을 통한 민주적 의견 수렴 체계를 복원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불당골 독립운동유산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사업 추진도 요구된다.
일문구의사는 완주군이 지닌 가장 빛나는 자산이자 한국 독립운동사에서 공동체 연대의 상징적 사례이다. 그 이름을 말로만 형식으로만 외칠 것이 아니라, 그 진실한 정신으로 행정을 수행하는 것이 진정한 계승이다.
유희태 군수에게 요구되는 것은 ‘불당골 정신’의 진정한 복원이며, 통합이든 반대든 그것은 군민이 결정해야 할 미래이다. 군수는 그 숙의를 보장하고 조율하는 관리자이자 봉사자이어야 할 것이다. 유희태 군수는 ‘불당골 정신’의 실천자로 평가받을 것인지, 그 정신을 형식에만 머물게 할 것인지 중대한 판단의 순간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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