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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식탁은 이주노동자들의 피땀으로 완성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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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식탁은 이주노동자들의 피땀으로 완성됐다

[인권의 바람] 이주노동자를 배제하고 혐오하는 것은 누구인가?

혈당 관리에 가장 좋은 채소가 깻잎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나는 최근 집밥을 먹을 때마다 깻잎을 많이 먹고 있다. 깻잎은 한 뭉텅이에 1000원도 하지 않아서 부담 없이 장바구니에 넣는 품목이다. 향긋한 깻잎에 밥 한 숟갈을 올려 싸먹다가 문득 어째서 깻잎은 이렇게 저렴할 수 있는지 궁금했다.

그러다 몇 해 전 읽은 우춘희의 저서 '깻잎투쟁기'가 떠올랐다. 이 신선한 깻잎은 그야말로 이주노동자들의 '피, 땀 그리고 눈물'의 수확물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이렇게 쉽게 싼 가격으로 그들의 노동력을 '먹어도' 되는 걸까. 그런데 그것이 비단 깻잎뿐이겠는가.

십여 년 전 즈음 서울 강남 지역 아파트 단지에 있는 상가 내의 학원에서 일했었다. 어느 날 퇴근하며 쓰레기처리장을 지나가다 쓰레기 처리 중인 노동자들을 봤다. 언뜻 모두 이주노동자들인 듯했다. 강남에서 만든 온갖 쓰레기를 수거하고 분리하고 처리하는 일을 하는 그들이 노동법에 어긋나지 않는 대우를 받고 있는지 걱정됐다.

이후에도 쓰레기 수거장에서 내가 버린 쓰레기를 처리하는 이주노동자들을 마주쳤으나, '나도 4대 보험 가입이 어려운 사업장에서 일하는데, 내 코가 석자니 오지랖 펴지 말자'며 더 관심을 두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야 깨닫는 바는, 당시 정주민 노동자로서 내가 처한 현실이 석자의 코라면 이주노동자들이 처한 노동자로서의 부조리한 현실은 길이를 다 잴 수 없는 수준이라는 것이다.

▲전남 나주의 한 벽돌 생산 공장에서 스리랑카 국적의 이주노동자를 화물에 결박하고 지게차로 들어 올리는 인권유린 사건이 발생했다. 광주전남이주노동자네트워크가 확보한 이달 초 촬영된 영상에는 이곳 노동자가 이주노동자 A씨를 비닐로 벽돌에 묶어 지게차로 옮기는 모습과 이 모습을 보고 웃으며 휴대전화로 촬영하는 다른 노동자의 모습 등이 담겨 있다. ⓒ연합뉴스

정주민 노동자와 이주민 노동자 모두 같은 물질성을 가진 '인간'

한국의 노동법은 나쁜 의미로 매우 교묘하다. 근로기준법을 근거로 노동자로서 누려야 할 권리, 받아야 할 보호는 대부분 정규직, 5인 이상의 사업장에 일하는 노동자들에게만 국한된다. 5인 미만 사업장, 플랫폼 노동자, 특수고용노동자, 비정규직 등은 근로기준법에서 제시하는 최소한의 권리와 보호의 사각지대에 놓이거나 배제된다.

이주노동자는 더 열악한 노동조건 속에 있다. 이주노동자로서 한국에서 일하기 위해선 고용허가제라는 제도를 통과해야 한다. 만만치 않은 이 과정을 통과해 한국에 입국 후 취업에 성공해도 사업장 변경의 자유 없이 일해야 한다. 고용주가 아무리 악덕이어도 이주노동자들은 자유롭게 사업장을 변경할 수가 없다는 뜻이다. 이러한 악법 때문에 많은 이주노동자들이 지금도 반인권적이고 반노동권적인 현장에서 일하고 있다.

얼마 전 베트남 국적 20대 하청노동자가 공장 첫 출근날 40도 폭염 속에서 온열질환으로 사망했다. 사망자가 일하던 현장의 경우 한국인 노동자는 단체협약을 통해 혹서기에는 단축근무를 할 수 있었지만 이주노동자들은 해당 조치에서 제외됐다. 이주노동자들은 폭염에도 땡볕이 작렬하는 오후 시간을 포함해 일해야 했다.

사망한 베트남 국적 20대 하청 노동자의 경우 미등록 신분이었다고는 하나, 미등록 신분이면 갑자기 40도의 기온을 버틸 수 있게 되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 노동자들은 그 누구라도 모두 똑같은 물질성을 가진 존재이며 생계를 위해 일한다. 정주민 노동자들이 혹서기나 혹한기에 보호조치를 받는다면 이주민 노동자도 동일한 보호를 받아야 한다. 문명국가가 실행해야 할 최소한의 인권과 노동권이 보장된 행정이다.

한국사회는 이주민 노동자들의 노동에 기대어 돌아가고 있다

정확한 집계가 어려울 정도로 많은 이주노동자들이 한국의 다양한 현장에서 일하고 있다. 이들은 특히 한국인들이 기피하는 노동현장에 더 많이 일하고 있다. 제조업, 농축산어업, 건설업, 서비스업 그리고 돌봄노동까지 사실상 이주노동자들 없이 더 이상 한국사회는 제대로 돌아갈 수 없다.

그럼에도 이주노동자들은 정주민 노동자들에 비해 안전한 보호장치 없이 취약한 위치에 놓여 있다. 위에서 언급한 어려운 과정을 통해 국내 취업을 하더라도 합법적인 신분을 유지하기가 워낙 까다롭고 어려워 미등록 이주노동자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한국사회에서 시민이자 노동자로 일하고, 생활하고 소비세를 내며 함께 살아가는 이들을 '불법'으로 만들며 배제하는 이들은 누구인가. 바로 제도이며 정치권이다. 행정적 편의를 위한 구별은 배제로 이어지고 배제는 다시 차별로 이어져 반드시 혐오로 양산된다. 정치권, 제도권이 이번에는 '민생쿠폰'으로 다시 이주노동자들을 배제하며 차별하고 있다.

▲7월 23일 전국이주인권단체 주최로 열린 '민생회복 소비쿠폰, 이주민 차별 말고 평등하게 지급하라! 국가인권위 차별 진정 기자회견'에서 인도적 체류자(난민) 써니 씨가 "인권이 비자별로 달라질 수 있나요?"라며 차별에 대해 발언하고 있디. ⓒ이주노동자평등연대

이주노동자에게도 차별 없이 민생쿠폰을 지급하라!

윤석열 파면을 외치던 지난 겨울의 광장에서 가장 많이 나오던 구호 중 하나가 '주권자의 이름으로 명한다, 윤석열을 파면하라!' 였다. 나 역시도 광장에 나가는 날이면 매번 그 구호를 외쳤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이 구호로 배제되는 경험을 당했다고 호소하는 이들이 있다고 한다. 바로 이주민들이다. 다양한 분야에서 일하며 한국사회의 동료시민으로 함께 살아가는 이들임에도 투표권이 없다는 이유로 '평등'이 중요했던 광장에서조차 배제됐던 것이다. 게다가 윤석열 파면 시국부터 지금까지도 극우세력 중심으로 특히 중국인에 대한 혐오가 원색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 이주민들에 대한 혐오가 한국 사회에 만연하다고 느낀다.

민생경제 회복을 위한 조치로 소비활성화와 소상공인 및 자영업자 매출확대를 위해 전 국민에게 지급된다는 '민생쿠폰'에도 이주민, 이주노동자들은 제외된다. 이런 제도권의 배제가 바로 이주민들을 소외시키고 혐오를 부추긴다. 한국이라는 사회 공동체 안에서 다양한 역할을 하며 살아가는 이웃인 이주민들에게도 민생쿠폰은 당연히 주어져야 한다.

세상에 '불법'인 사람은 없다

글로벌 시대라는 말도 이제 너무 새삼스럽게 느껴지는 2025년이다. 이제 '국민'이라는 협소한 개념을 넘어 '시민'과 '민중'으로서 한 공동체의 일원으로 서로를 부르며 차별과 혐오 없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함께해야 한다. 지난 광장이 외쳤던 '주권자의 이름'에 이주민들이 배제되지 않게 정치권과 제도권이 나서야 한다. 그것이 평등을 부르짖었던 광장의 진정한 '민중의 명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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