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신용불량자·노숙인·이주민에게 물었다 “현금 없는 사회, 문제 없나요?”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신용불량자·노숙인·이주민에게 물었다 “현금 없는 사회, 문제 없나요?”

['현금 없는 사회' 당연한가] 공공교통네트워크 기획기고 ⑥ 현금으론 고속도로 통행도 못해… 이대로면 '디지털 결제' 취약 시민의 일상 없어져

'현금 없는 사회'는 얼마나 당연한가. 한국은 각종 상거래에서 현금 없는 결제가 일반화되더니, 급기야 공공 교통수단에서마저도 현금 결제가 차단되고 있다. '현금 없는 버스' 정책이다. 공공서비스의 보편적인 접근을 막는 문제임에도, 자연스러운 과정으로만 치부된다. 공공교통네트워크는 이에 '삶의 다양성을 지킬 수 있는 선택이 보장되는 사회가 더욱 자유로운 사회'라고 한다. 공공교통네트워트가 보내온 여섯 편의 기고로 '현금 없는 한국'의 문제를 돌아본다. 편집자

'현금없는 사회'에 대한 문제제기를 담고 있는 글이 공개될 때마다 반복적으로 나오는 질문이 있다. 이를테면, 편의점에서 교통카드를 구매해서 사용하면 되지, 왜 굳이 현금을 쓰려고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그렇다. 사실 나만 해도 모바일 결제나 신용카드, 키오스크 사용이 크게 불편하지 않았다. 그러나 내가 불편하지 않다고 해서 고민을 끝낼 문제인가? 일상에서 현금이 중요하고 필수인 이들은 여전히 우리 사회에 존재한다.

돈 있는데 '톨비' 못 냈다, 현금이라서

귀농을 준비하면서 서울과 지방을 왔다갔다 하며 생활하고 있다. 한 번은 지방을 내려가는 길에 동전주IC(나들목)에서 통행료를 계산하려는데 카드를 챙기지 못한 것을 알았다. 현금으로 계산하려 했는데 현금을 수납하는 창구나 기계가 없었다. 무인 정산기는 카드수납만 가능하며, 카드 외에 다른 방법으로 요금을 내고 싶으면 납부안내문을 눌러 출력해서 차후에 내야 했다. 그래서 납부안내문을 출력하고 통과해서 동전주IC를 빠져나왔다. 현금결제 '1차 실패'다.

그리고 다시 서울로 올라오는 길에 남풍세IC에서 지난번에 내지 못한 통행료를 현금으로 납부하려 하니 남풍세IC는 민자고속도로이므로 한국도로공사에서 통행료 수납을 할 수가 없다고 했다. 현금결제 '2차 실패'였다. 그래서 계좌이체 확인증을 받았다. 서울 근처 소하IC에서 이제껏 납부하지 못한 통행료를 현금으로 내려고 다시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아직 전산상 미납요금으로 조회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갖고 있던 1차 실패 때의 납부안내문과 2차 실패 때의 계좌이체 확인증을 주면서 수납원에게 주면서 이를 지금 현금으로 내겠다고 했으나, 여전히 전산에 미납 요금으로 조회가 되지 않아 낼 수 없다고 했다. 미납 정보는 며칠 더 지나야 조회를 할 수 있다고 했다. 이렇게 총 3차례 현금 결제 시도가 실패했다.

나는 현금이 있었지만, 고속도로 통행료를 내지 못했다. 이후 납부안내문을 차에 두고 내린 후 깜빡하고 계좌이체를 하지 못해, 통행료 미납으로 인한 가산세가 포함된 고지서를 전달받았고 그제야 납부를 마쳤다.

그로부터 한참 후 지방으로 내려가는 중에 동전주IC에서 통행료 납부를 위해서 카드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앞차가 한참 시간이 흘러도 출발하지 못했다. 자세히 보니 이주민으로 보이는 분이 무인 정산기 앞에서 쩔쩔매고 있었다. 가까이 가보니 그는 만 원짜리 지폐를 납부안내문이 나오는 쪽으로 넣으려고 시도 중이었다.

그러자 무인 정산기의 작은 화면이 켜지면서 도로공사 직원으로 보이는 남자분이 뭐 때문에 그러시냐고 물었다. '외국인이 카드가 없어 결제하지 못하는 것 같다'고 답했더니, 직원은 '톨케이트 빠져나와 오른쪽 건물로 들어와서 내면 된다'고 안내했다. 나는 이주민에게 손가락으로 건물을 가리키며 “저 건물에 가서 납부면 된다”며 지폐 만 원짜리를 가리키면서 알려줬고, 그와 나는 이후 각자 제 갈 길을 갔다.

이 일화를 친구들에게 얘기했더니 '칠칠치 못하게 카드를 안 챙기니 그렇다'거나 '(2019년) 도로공사의 비정규직 대량 해고 때 예상한 일이었다', '무인 정산기에 영어 번역이 안 돼 있느냐? 의외다', '왜 하이패스는 안 달고 다니냐', '민자고속도로가 그래서 문제다' 등의 다양한 반응을 들었다. 그러나 대한민국 법정화폐인 현금으로 공공요금을 결제하기가 이리도 어려운 건 비상식적이란 얘기는 아무도 하지 않았다. 그만큼 우리가 현금으로 결제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를 살고 있다는 방증일 것이다.

그런데 과연 다른 이들도 똑같이 생각할까? 사람들의 생각을 알아보고 싶어 직접 설문지를 만들어 조사해 봤다. 설문은 한국어 포함 11개국 언어로 만들어서 대면과 비대면(구글 링크)으로 받았는데, 내국인 39명과 이주민 40명 등 총 79명이 참여했다. 내국인 설문조사는 신용불량자와 노숙인의 예·적금을 돕고 있는 '다람쥐회' 활동가가 도움을 줬다. 이주민 대상으로는 안산국제거리에 직접 가서 설문조사를 시도해 봤지만, 언어가 잘 통하지 않는 데다 경계를 하는 이주민이 많아 좀체 쉽지 않았다. 이에 이주노동자노동조합과 경기이주평등연대의 활동가, 용산 나눔의집 신부에게 도움을 청했다. 설문지는 개인정보를 유추할 가능성이 있는 요소는 최대한 제외하고 작성했고 중복선택이 가능하도록 설계해 6가지 문항으로 구성했다.

▲설문조사 중 내국인의 '교통편 이용 시 결제수단' 항목 답변 그래프. ⓒ박진선
▲설문조사 중 이주민의 '교통편 이용 시 결제수단' 항목 답변 그래프. ⓒ박진선

응답자 과반 현금 사용 40%가 불편함 호소

그 결과 '평소에 주로 어떤 교통수단을 이용하느냐'라는 질문엔 버스가 46%, 지하철은 37%, 자동차는 15% 등으로 나타났다. 대중교통수단의 비율이 총 83%였다. 예상대로 대부분의 사람이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있었다.

'교통편을 이용할 때 주로 무엇으로 결제하느냐'는 질문엔 내국인과 외국인 모두 상당수가 금융권 카드나 선불카드로 이용했다. 다만, 현금을 이용하는 경우는 내국인 2명에 비해 외국인은 7명으로 차이가 있었다. 이주민 응답자 대부분이 수도권에 거주하고 있어 현금을 사용하면 환승 할인을 받지 못하는 불리함이 있기에 현금 사용자가 많지 않을 줄 알았는데, 40명 중의 7명(17.5%)으로 예상보다 많은 이들이 현금을 사용하고 있었다.

'교통 이용 및 물건 구매 시 현금으로 결제하는 비율은 얼마나 되느냐'는 질문에는 '20% 이상 현금 결제를 한다'고 응답한 사람은 전체 79명 중 42명(약 53%)으로 과반이 넘었다. 꽤 많은 이들이 여전히 현금을 사용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50% 이상' 이라고 답한 응답자는 이주민 중에선 1명인 데 반해, 내국인은 4명으로 더 많았다. 4명 모두 65세 이상 나이에 해당하는 응답자다.

이 문항에선 현금을 사용하는 사람이 한국은행에서 조사한 비율(12.2%)보다 높다는 걸 알 수 있었는데, 아마도 직접 조사에선 금융권 거래가 어려운 응답자의 비율이 더 높았기 때문으로 추측됐다. 현금 사용 비율이 높다면 분명 일상생활의 불편감도 더 높을 것으로 예상됐다. 4번 질문에서 이를 확인해 봤다.

▲설문조사 중 내국인 '교통 혹은 물건 구매 시 현금 결제 비율' 항목 답변 그래프. ⓒ박진선
▲설문조사 중 이주민 '교통 혹은 물건 구매 시 현금 결제 비율' 항목 답변 그래프. ⓒ박진선

'상점이나 교통수단 이용 시 현금 결제에 불편함을 느낀 적이 있느냐'는 질문엔 '거의 없다'가 52%로 과반을 차지했다. '10회 미만'은 23%, '대부분 불편'은 16%로 불편감을 호소하는 비율이 40%에 가까웠다. 이로써 내·외국인 모두 현금 결제에 불편함을 거의 느낀 적이 없었다는 비율 못지않게 불편함을 느낀 사람들의 비율도 상당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설문조사 중 '교통이나 상점 이용 시 현금 결제에 불편함을 겪은 경험 여부' 항목 답변 그래프. ⓒ박진선

현금으로 결제할 때 불편함을 느낀 적이 있다면, 어떤 경우였는지에 대해서도 물어 봤다. 대중교통 이용이 28%, 공공시설 이용이 7%, 대부분 불편하다는 의견이 13%로, 이를 합하면 총 40%를 차지했다. 이와 비교해 의미 있는 부분은 상점의 키오스크 이용 불편이 13%로 나온 점이다. 일반 음식점 등 민간 영역에선 내가 구매 여부를 선택할 수 있어서 결제를 할 지 말 지를 결정할 수 있지만, 공공 영역은 내가 선택할 수 없는 상황이 대부분이므로 현금 사용에서 불편한 경험이 더 많다고 응답한 것으로 해석됐다.

거듭 말하지만, 현금은 '한국은행이 발행한 법화로서 모든 거래에 무제한 통용된다'고 '한국은행법' 48조에 정해뒀다. 즉 모든 거래에 통용되는 화폐를 한국은행이 발행하고 그걸 시민들이 사용하기로 국가 차원에서 약속했다. 그런 화폐를 공공 재화·서비스 구매에 쓸 수 없는 지금의 한국 사회를 정말 나 혼자만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걸까? 카드와 모바일 결제처럼 현금도 일상에서 당연하게 사용돼야 할 지불수단이다.

▲현금 결제 시 불편함을 겪은 적이 있다면 어떤 경우인지를 설문한 결과 그래프. ⓒ박진선

현금 배제 강행 그만, 다른 질문이 필요하다

설문 조사 도중, 흑석동에 살고 있는 한 중국 이주민이 설문지를 보고 카드 사용을 얼마나 하는지에 대한 설문조사냐고 내게 물었다. 버스에서 현금을 내려다가 안 된다고 해서 내린 적이 있는데, 그런 건 물어보지 않느냐고도 물었다. 그는 집에 있는 카드를 두고 다시 구매하기가 꺼려져서 다시 집에 돌아가 카드를 가지고 나왔고, 그날 출근에 조금 늦어 상사로부터 한 소리를 들었다고 전했다.

이어 중국인 중 일부가 미등록 이주민이라 할지라도 범죄자만 있는 게 아니며, 한국 사람들이 싫어하고 힘들어서 하지 않는 일을 중국 이주민들이 많이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본인도 간병 일을 하고 있는데 성실하게 일하며 똑같은 사회 구성원으로 살아가고 있다며, 중국 이주민 중에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도 있겠으나 그건 한국인도 마찬가지 아니냐고도 했다. 그러면서 범죄자는 소수이고 성실히 생활하는 사람들이 대다수이니, 이주민들을 잠재적 범죄자나 이 사회를 갉아먹는 좀벌레처럼 생각하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말을 끝맺었다.

현금없는 사회를 얘기하다가 뜬금없이 웬 중국인 얘기이냐 할 수 있겠지만, 어떤 사람들, 특히 이주민은 자신들이 살고 있는 사회 정책에 대해 불만조차 드러낼 수 없다는 걸 알게 됐다. 버스, 주차장 등 공공 서비스에서 시작된 '현금 배제' 정책이 우리 생활과 밀접한 병원이나 가게에까지 확대돼 '현금 없는 병원'이나 '현금 없는 가게'가 우후죽순 들어선다면, 어떤 사정으로 금융권 카드를 사용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모든 일상에서 배제되진 않을지 두려움이 앞선다.

설문에 응답을 해준 모든 분에게 감사의 인사를 남긴다. धन्यवाद, សុំអរគុណ, 比心!, ขอบคุณ , Thank you, Cảm ơn , Salamat , ကျေးဇူးတင်ပါသည်။ , Terima kasih ধন্যবাদ.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