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허가제 하의 이주노동자는 기계 부품처럼 다뤄진다. 처음에 사업주가 이주노동자를 3년 써본다. 마음에 들면 1년 10개월 더 쓴다. 마음에 안 들면 다른 이주노동자를 받는다. '더 일하고 싶다'거나 '다른 곳에서 일하게 해달라'고 할 권리가 이주노동자에게는 없다. 가족과 함께 한국에서 삶을 꾸릴 권리도 주어지지 않는다.
이런 제도의 바탕에 깔린 정책 원칙을 '단기 순환, 정주 금지'라 부른다. '손님 노동자'라는 표현도 쓰지만 사업주의 압도적 우위가 관철되는 일터에서 일하는 노동자에게 '손님'이란 말은 썩 어울리지 않는다. 결국 고용허가제의 민낯은 한국인이 기피하는 일터에 노동력을 제공할 젊은 '노예 노동자'를 데려오겠다는 것에 가깝다.
그러니 괴롭힘 사건, 산재사망 등 이주노동자와 관련한 비극적 소식이 하루가 멀다 하고 들려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오죽하면 이제 한국의 노동시장은 대기업·공공기관 정규직과 나머지 한국인 노동자, 그리고 이주노동자라는 삼중구조로 개편되고 있다는 탄식까지 나온다.
그나마 최근 고용노동부가 이주노동자 지게차 학대 사건을 계기로 고용허가제 중 사업장 변경 금지 완화를 검토 중이라는 소식이 들려왔다. 이것으로 충분할까. 이주노동자를 기계부품이 아닌 인간으로 대하기 위해 만들어야 할 제도의 최소선은 무엇일까. 이주노동자노동조합의 노동허가제 주장과 조혁진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의 새 정부 이주정책에 대한 제언을 중심으로 살펴봤다.

'사업주는 왕, 이주노동자는 노예'인 한국, 더는 안 돼
이주노조가 주장하는 노동허가제의 첫 줄에는 노동부도 검토 중인 사업장 이동 자유 보장이 적혀있다. 이에 더해 이주노조는 사업장 이동 시 산업 간, 지역 간 이동도 가능하게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주노동자의 지역 간 이동 금지하는 규정은 윤석열 정부 시절인 2023년 9월 신설됐다.
현재는 사업주의 동의나 사업체 폐업 등이 없으면 성폭력, 임금체불 등 피해를 입은 이주노동자에 한해, 스스로 증거를 모으고 피해를 입증해야 사업장 이동이 가능하다. 그러다 보니 견디다 못한 이주노동자가 사업장 이동 동의를 얻기 위해 사업주에게 따로 돈을 갖다 주는 일도 있다.
사업장 이동이 가능해졌다고 해도 이주노동자의 발목을 잡는 문제가 있다. 90일로 제한된 구직기간이다. 직장에서 퇴사한 이주노동자가 90일 안에 새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면 강제출국된다. 이주노동자 지게차 학대 사건이 알려진 뒤로도 이 문제가 사람들의 관심사에 올랐다.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노동허가제에는 사업장 이동 시 구직기간 폐지 제안이 담겨있다.
노동허가제는 후술할 다른 정책을 통한 해결을 주장하지만, 고용허가제로 입국해 3년 일한 뒤 1년 10개월 더 고용할지를 결정할 권한이 사업주에게 있다는 점도 현행 제도의 문제다. 생명줄이나 다름없는 '고용'을 쥐고 있는 사업주를 상대로 이주노동자가 권리를 주장하기는 어렵다. 이때문에 현행 제도의 틀을 유지한다면, 이주노동자에게 고용연장 신청권만이라도 줘야 한다는 주장도 꾸준히 나온다.
이주노동자 가족결합권 보장도 노동허가제의 주요 주장 중 하나다. 현재 이주노동자에게는 한국에 가족을 초청해 같이 살 권리가 없다. 가족을 보려면 본국에 다녀와야 하는데, 이마저도 사업주가 휴가를 주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또 가족결합권 보장은 취약한 상황에 놓인 이주노동자의 처지를 강화하는 데도 기여할 수 있다.
이 밖에도 노동허가제에는 이주노동자의 권리와 관련 △사업주 악용 가능성이 높은 사업장 이탈 신고 제도와 퇴직금 출국 후 수령 제도 폐지 △이주노동자 차별 방지 제도 강화 등 정책 의견이 담겨있다.
'단기 순환, 정주 금지' 원칙 폐기하고 '정주 유도' 강화해야
조 연구위원은 지난 6월 한국노총이 주최한 새 정부의 이주노동정책 방향 모색 토론회에서 발제자로 나서 "한국사회는 지속가능성 확보를 위해 외국인 유치가 필수적인 사회가 됐다"며 "생산가능인구 수의 감소라는 근원적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적극적인 이주노동자 유치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국사회의 급격한 저출생 고령화는 이제 상식이다. 이주 제도에서 '단기순환, 정주금지' 원칙을 폐기하고 '정주유도' 원칙을 강화하는 것은 이주노동자의 인권만이 아니라 한국사회의 생존을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 됐다.
이와 관련한 노동허가제의 제안은 현재 4년 10개월인 고용허가제의 1회 고용기간을 5년으로 늘리고 영주권 취득 기회를 부여하자는 것이다. 국적법상 5년 이상 거주한 외국인은 영주권을 신청할 수 있지만, 고용허가제로 입국한 이주노동자에게는 이 길이 막혀 있다. 애초 1회 고용기간을 4년 10개월로 제한한 것도 이주노동자에게 영주권을 주지 않기 위해서였다.
외국인 유치와 관련한 또 하나의 쟁점은 미등록 이주노동자 문제다. 현재 미등록 체류자는 약 38만 명으로 추정된다. 이들이 한국에 머문다는 것은 사업주들이 그들의 노동을 필요로 한다는 뜻도 된다. 실제 외국인출입국관리소의 미등록 이주노동자 단속에 사업주들이 '어떻게 사업을 하란 말이냐'며 항의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미등록 이주노동자는 각종 사회제도에서 배제된 채 '권리 없는 유령'으로 우리 사회를 떠돌고 있다.
이 때문에 노동허가제에는 미등록 이주노동자 합법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 담겨있다. 조 연구위원도 "미등록 체류자에 대한 강제단속과 추방 일변도 정책에서 벗어나 미등록 체류자를 어떻게 양성화할 것인지에 대한 정책 대안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나아가 조 연구위원은 외국인 유치 일반과 관련 △이주노동자가 아이를 낳고 가족과 거주하며 지역에 정착할 수 있도록 사회보장·사회서비스 정책 마련 △체류 외국인 고용서비스 제공 등을 위한 공공기관 설립 등 이주 유인책 강화를 주장한다. 한국사회에 만연한 외국인에 대한 차별적 시각을 개선하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과제다.

'선택받는 나라', '윈-윈의 이주정책' 만들 수 있을까
'정주 유도' 강화 이주정책은 저출생 고령화가 심각한 한국이 반드시 풀어야 하는 숙제다. 지난해에 한국은 이미 65세 이상 인구가 20%를 넘긴 초고령사회가 됐다. 2067년 한국의 총인구가 3929만 명으로 감소(통계청)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사회경제적 지속가능성을 위한 다른 대안이 잘 보이지 않는다.
주변 상황은 녹록치 않다. 경제 성장에 따른 저출생 고령화가 일반화된 상황에서 싱가포르, 대만 등 주변국도 외국인 유치 경쟁에 열을 올리고 있다. 반면 인력 송출국으로 분류되는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의 출생률은 낮아지는 추세다. 이웃나라 일본이 괜히 '선택받는 나라'를 외국인 정책의 구호로 삼은 것이 아니다.
이주정책을 전환하는 과정에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이주노동자도 인간이라는 사실이다. 자신들의 인권, 처지, 문화를 존중하지 않는 나라에 살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다. 인권 강화와 정주 유도를 축으로 하는 고용허가제 변화를 통해 '윈-윈(win-win)'의 이주정책을 만들지 못한다면 모두에게 불행한 미래만이 이어질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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