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장에서 일하다 폐암에 걸린 하청 노동자와 뇌종양으로 숨진 또 다른 하청 노동자의 유족이 근로복지공단에 산재 인정을 촉구했다.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올림은 10일 서울 영등포 근로복지공단 서울남부지사 앞에서 산재 신청 기자회견을 열고 이런 요구를 전했다. 회견에는 폐암 투병 중인 박종성 씨와 뇌종양으로 사망한 고(故) 이대성 씨 배우자가 직접 참석했다.
반올림에 따르면, 박 씨는 1986년부터 폐암을 진단받은 2022년까지 삼성전자 사내하청 노동자로 일하며 브라운관 유리 제조, 반도체 폐기물 정리 등 업무를 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비소, 인듐 등 폐암 유발물질에 노출됐다.
박 씨는 "가장으로서 책임을 다하고자 열심히 일한 죄밖에 없다"며 "온갖 독성 화학물질 범벅인 폐수 처리장에서 탈수기라는 기계를 사용해 주로 분진가루와 온갖 냄새가 나는 슬러지(sludge)를 취급했다"고 밝혔다.
이어 "폐암과 맞서 4년째 투병 중이다. 전이성 뇌종양, 다발성 뼈전이 등 후유증을 달고 산다. 지금도 허리와 관절이 몹시 아프다"며 "통증은 참는다 해도 급여가 안 되는 항암제 때문에 경제적 고통을 겪고 있다. 저는 어떻게든 살아야겠다. 제발 살려주시길 바란다"고 호소했다.
이 씨는 2010년부터 뇌종양을 진단받은 2024년까지 삼성전자 사내하청 노동자로 일하며 CCSS(화학물질 중앙공급 시스템) 시설의 화학물질 충전과 설비 유지보수 업무를 했다. 해당 시설은 불산, 황산, 질산 등 독성 화학물질이 쓰이는 곳이다.
이 씨의 배우자 김모 씨는 남편의 일터는 "아이들에게는 자랑스러운 아버지를, 시부모님께는 하나뿐인 아들을, 제게는 평생의 반쪽을 앗아갔다"며 "하루하루 버티며 산다. 그 마지막 길조차 산재 인정을 위해 싸워야 하는 현실이 너무도 참담하다"고 말했다.
이어 "제가 이 자리에 선 것은 저희 가족의 아픔만을 전하기 위함이 아니다"라며 "산재 인정은 남겨진 가족에게 최소한의 존엄을 지켜주는 길이며 더 나아가 모든 노동자가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사회로 가는 출발점이라고 믿는다"고 밝혔다.
반올림과 참가자들은 회견문에서 "남편을 하늘로 보내고 아직 눈물이 마르지 않은 아내가 다시는 남편과 같은 피해자가 없기를 바라는 마음에 용기를 냈고, 또 다른 암 환자는 병마와 싸우는 고통 속에서도 하청 노동자의 열악한 작업환경을 알리고 산재 인정을 호소하기 위해 이 자리에 섰다"고 했다.
이어 "이재명 정부와 원청 대기업 삼성은 최첨단 반도체 산업의 확장과 경제적 효과만 홍보할 것이 아니라 하청구조 속에서 유해·위험 업무에 내몰린 반도체 노동자의 현실을 직시하고 전면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