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내란범 윤석열 일당의 1심 재판이 윤석열에 대한 '무기징역' 선고와 함께 끝났다. 재판 과정에서 논란이 끊이지 않았기에 과연 친위쿠데타 세력을 제대로 단죄할지 많은 우려가 있었지만, 어쨌든 내란 진압 기조에서 벗어나지는 않는 판결이 나왔다. 벌써 1년이 훌쩍 넘은 내란 진압 과정이 참으로 어렵게, 하지만 후퇴는 없이 또 한 단계를 완료한 셈이다.
그러나 1심 판결문에는 정색하고 따져봐야 할 대목이 많았다. 여러 지적들이 있지만, 특히 중요하다 생각되는 것은 12. 3 비상계엄이 '국헌문란 목적의 폭동'인 이유를 '국회에 대한 군 투입'으로 아주 좁게 해석했다는 점이다. 뒤집어 말하면, 군 동원을 통한 국회 활동 방해 말고 비상계엄 발동 자체는 대통령이 헌법상의 고유 권한을 행사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대한민국 헌법 제77조 1항은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할 수 있는 상황을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라 못받는다. 너무 두루뭉술한 문구라 친위쿠데타 시도의 빌미가 되기는 했지만, 상식인이라면 누구도 2024년 12월 3일 밤 대한민국이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였다고 답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당시 상황이 헌법상 계엄 요건에 해당했다는 윤석열의 억지 자체가 헌법 위배라는 헌법재판소 판결문 취지가 1심 재판부의 '국헌문란 폭동' 판결 사유 중 하나로 반드시 포함됐어야 했다.
이런 내용을 빼고 12. 3 비상계엄이 '내란'인 이유를 아주 좁게 해석한 1심 재판부 판결에는 '대통령'을 둘러싼 특정한, 그리고 아주 강력한 관념이 깔려 있다. 1심 재판부의 의식 구조에서 대한민국 대통령은 다수 국민의 상식과는 완전히 딴 판인 정신세계에 따라 평온한 일상을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라 판단할 자유를 누리는 자다. 더구나 단순히 정신병원 보호실 안에서 이런 공상을 즐기는 게 아니라, 국회를 타격하지만 않는다면 이 공상에 따라 군대를 거리에 풀 수도 있는 자다. 악명 높은 파시스트 법학자 카를 슈미트의 표현을 빌리면, 대한민국 대통령의 '결단'에 허용된 재량의 폭이 이 정도다.
그나마 윤석열은 정신병원 보호실은 아니라도 구치소에 격리돼 있지만, 지금, 12월 3일 밤에 윤석열이 품었던 것과 같은 망상에 따라 매일 세계인을 괴롭히는 '결단'을 반복하는 대통령도 있다. 바로, 미합중국 제47대 대통령 도널트 트럼프다.
윤석열만큼이나 '비상(emergency)'을 사랑하는 트럼프는 그간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에 따라 세계 모든 나라에 '관세' 협박을 자행해왔다. 20일, 미국 연방대법원은 드디어 여기에 '위법' 판결을 내렸다. 그러나 미국 법전에는 대통령이 의회 승인을 구하지 않고 혹은 그런 승인을 기다리기 전에 관세를 마음대로 인상할 수 있게 허용하는 '비상' 법률들이 결코 부족하지 않다. 트럼프 정부는 국제비상경제권한법을 써먹을 수 없게 되자 곧바로 무역법을 들고 나와 이른바 '세계 관세' 15%를 선포했다.
게다가 잇단 폭정과 '엡스타인 파일'로 궁지에 몰린 트럼프 정부는 이란 공격 카드도 만지작거리고 있다. 미합중국 대통령은 자국이 타국으로부터 공격이나 선전포고를 받지 않아도 이렇게 다른 수많은 이유로 타국을 침공하는 '결단'을 내릴 수 있다.
이쯤 되면, 우리는 단순히 '광인'의 명단에 윤석열에 더해 트럼프의 이름을 써넣는 수준을 넘어 미국이 원산지인 '대통령'이라는 제도 자체를 다시 짚어봐야 한다. 12. 3 내란에 대한 1심 재판부 판결이 보여주듯이, 그리고 현재 트럼프 정부의 행태가 보여주듯이, 대통령은 '정상 상태'인 시기에 의회, 법원과 함께 국가를 운영할 책임을 질 뿐만 아니라 '비상 상태' 혹은 '예외 상태'에 군을 동원해 국가 전체를 병영으로 만들 권한이 있다. 그리고 지금이 과연 '정상 상태'인지, '예외 상태'인지 판단할 권한 또한 전적으로 대통령 개인에게 있다.
한국처럼 국회가 나서서, 미국처럼 법원이 사후적으로 이를 제어할 수 있겠지만, 일단 단행된 조치(비상계엄령 등)가 과연 제도적 안전장치를 통해 중지될 수 있을지는 실은 상당 부분 '역사적 운'에 달려 있다. 2024년 12월 3일 이후 한국인들은 이 '운'의 시험을 마치 기적처럼 통과했고, 미국인들은 이제 자신들의 '운'이 어떠한지 가슴 졸이며 확인해야 할 판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민주정'의 '정상'적인 한 유형이라 배워온 대통령제, 이것은 얼마나 '예외' 투성이인 위험천만한 제도인가!
도메니코 로수르도가 던진 물음, '민주주의인가, 보나파르트주의인가'
나는 지금 2018년에 작고한 이탈리아 좌파 정치철학자 도메니코 로수르도의 <민주주의인가, 보나파르트주의인가>(이탈리아어판: 1993, 영어판: 2024)의 번역 작업을 마무리하고 있다. 이 책은 이 지면에서도 몇 차례 소개한 적이 있다("6공화국 한국 정치, 민주주의인가 보나파르트주의인가", <프레시안> 2021, 12. 22; "내란 이후 1년, 여전히 제기되지 못하고 있는 중대한 질문들", <프레시안> 2025. 12. 9).
12. 3 비상계엄 얼마 전에 <민주주의인가, 보나파르트주의인가>의 영어판이 처음 나왔을 때부터 나는 이 책을 우리말로 꼭 소개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한국의 대통령제를 돌아보는 데 더없이 좋은 참고자료가 되겠다 싶어서였다.
그러던 와중에 갑자기 친위쿠데타가 벌어졌다. 사태가 조금은 진정되고 난 뒤에 든 생각 중 하나는 <민주주의인가, 보나파트르주의인가>가 이미 번역돼 나와 있었다면 내란의 정체를 둘러싼 토론에 얼마나 큰 도움이 됐을까, 하는 것이었다. 그때부터 영어판 중역(重譯)이라는 아쉬운 방법을 통해서나마 이 책을 소개하려고 나름대로 노력했다. 계약을 맺어야 할 이탈리아어판 출판사와 연락이 쉽지 않아 일정이 늘어지기는 했지만, 어쨌든 지금은 번역이 끝나간다.
<민주주의가, 보나파르트주의인가>에서 로수르도가 펼치는 풍부한 논의를 이 지면에 맞춰 짧게 요약하기는 불가능하다. 하지만 그래도 대통령제에 관한 이 책의 중요한 지적 가운데 일부를 간략하나마 미리 소개하고 싶다.
우선 이 책의 가장 기본적인 목표는, 우리가 민주주의의 핵심 원리로 당연시하는 '1인 1표'의 보통-평등선거 원리가 역사 속에서 숱한 반발을 이겨내며 참으로 어렵게 실현돼왔다는 점, 그리고 사실은 지금도 제대로 실현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밝히는 것이다. 놀랍게도, 우리가 '민주주의의 사도'로 잘못 알고 있는 19세기의 위대한 자유주의자들(A. 토크빌, J. S. 밀 등)이 그런 반발을 이론적으로 대표했고, 이에 따라 유럽에서는 보통선거제 대신 재산세 납세자(즉, 부르주아 남성)만 선거권을 갖는 제도가 오랫동안 유지됐다. 오로지, '1인 1표'가 실현될 경우에 다수의 힘으로 부르주아계급을 압도할 것처럼 보인 노동계급, 하층 대중의 정치세력화를 막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1848년 2월 혁명으로 들어선 프랑스 제2공화국이 유럽에서 최초로 남성보통선거제도를 실행하고부터는 보통-평등선거 원리의 확산을 막는 전통적 방파제(재산세 납세 유권자제도 등)에만 의지하기 어렵게 됐다. 이때 뜻밖에도 제2공화국이 남성보통선거제와 함께 도입한 미국식 대통령제가 '구원투수'로 등장했다.
국민투표형 선출을 통해 의회 내 어떤 개별 의원보다 더 커다란 정당성을 확보하며 초대 대통령이 된, '대'보나파르트의 조카, '소'보나파르트(이후의 나폴레옹 3세)는 1851년에 12. 3 내란의 원형인 친위쿠데타를 일으켜 의회를 해산하고 대통령 임기를 무려 10년으로 늘렸다. 다시 1년 뒤에는 공화정에서 황제정으로 전환하자는 국민투표를 통해 기어코 삼촌처럼 황제가 됐다.
남성보통선거제도를 실현한 민주주의 혁명이 성공한 지 불과 4년만에 민주공화국이 잇단 국민투표(와 국민투표형 대통령선거)와 친위쿠데타를 거쳐 제국으로 전락한 것이었다. 당대의 가장 날카로운 논평가였던 카를 마르크스는 이러한 '보나파르트주의' 현상을 '민주공화국의 자살'이라 규정하며 비판적으로 분석했다.
반대로 토크빌을 비롯한 많은 자유주의자들은 이 반-자유주의 정치 체제에서 오히려 안도감을 느꼈다. 국내에서는 철권을 휘두르고 해외에서는 제국주의 전쟁을 일삼는 나폴레옹 3세의 황제정은 '1인 1표' 원리 때문에 하층 계급이 치고 올라오지 않을까 하는 불안과 공포를 일거에 해결해줬다. 형식적인 투표는 없어지지 않았지만, 의회를 늘 압도하는 막강한 행정부를 장악한 단 한 사람의 최고 집권자가 사실상 모든 결정권을 손에 쥐고 있었기 때문이다.
보통-평등선거를 일정하게 실시하더라도 기존 계급 질서를 유지할 길이 드디어 발견된 것이었다. 그것은 대의기구가 아니라 행정부에 실권을 집중시키고, 다시 한 명의 지도자가 그 행정부를 쥐고 흔들게 하는 것이었다.
<민주주의인가, 보나파르트주의인가>의 독특한 점은 이런 보나파르트주의 체제를 19세기 프랑스로만 한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보나파르트주의를 '1인 1표' 원리와 계급 지배의 현실이 충돌하는 모든 자본주의 사회로 '일반화'한다. 그 원조는 단연, 대통령제의 원산지 미합중국이다. 프랑스 제2공화국이 미국식 대통령제라는 '귤'을 유럽 대륙으로 가져와 보나파르트주의라는 '탱자'로 만들어버린 게 아니었다. 미국의 원판 대통령제 자체가 탱자 씨앗이었다.
로수르도는 이를 밝히기 위해, 미국 헌법을 제정한 1787년 필라델피아 제헌회의 당시에 13개 주의 상황이 얼마나 1848년 프랑스와 비슷했는지 보여준다. 물론 아직 농업사회였던 북아메리카 13개 주의 목가적 풍경과, 수 차례의 유혈 정치혁명과 산업혁명을 겪으며 현대적 계급투쟁이 이미 자리잡은 파리의 풍경 사이에는 무시할 수 없는 차이가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필라델피아에 모인 각 주의 명사들 역시 1848년 프랑스 부르주아지와 크게 다를 바 없는 고민에 휩싸여 있었다.
13개 주의 독립 직후에 벌어진 가장 충격적인 사건은 빚에 쪼들리던 영세 농민들의 납세 거부-부채 상환 거부 반란(셰이즈 반란)이었다. 총을 들고 봉기한 농민들은 바로 몇 년 전 영국군에 맞서 싸웠던 대륙군의 용맹한 노병들이었다. 비록 보통선거는 아니어도 동시대의 영국, 프랑스와 달리 많은 주에서 소농에게까지 선거권이 확대돼 있던 상황에서 이런 '무장' 하층 계급의 존재는 헌법안 작성자들의 가장 심각한 고민거리로 떠올랐다.
이 대목에서 영민한 '건국의 아버지들'이 주목한 것이 고대 로마공화국의 독재관제도였다. 로마공화국은 내전이나 외침이 발생할 때마다, 그러니까 '전시·사변 또는 그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에 한 명의 독재관을 지명해 6개월 동안 한시적으로 전권을 부여했다. 저 유명한 <페더럴리스트 페이퍼스>의 저자들을 비롯한 '건국의 아버지들'은 의회에서 선출한 총리가 아니라, 간접선거라는 안전장치를 단 국민투표형 선출 절차를 거친 현대의 독재관이 국정 최고 책임자가 되도록 설계했다. 이 전례 없는 직위에 붙은 이름이 '대통령'이었다.
미합중국 대통령은 이런 등장 배경에 어울리게 처음부터 내란(제2, 제3의 셰이즈 반란뿐만 아니라 흑인 노예의 잠재적 반란 가능성)과 외침(영국, 프랑스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선주민들)에 기민하게 대처하는 데 필요한 권한과 책임을 부여받았다. 과하다 싶을 정도로 '예외 상태'의 출현을 강하게 가정하고는, 그런 상황이 도래했을 경우에 의회를 신경쓰지 않은 채 독재관답게 행동하도록 대통령에게 비상대권의 여지를 부여했다.
이후 1812년 영미전쟁부터 최근의 베네수엘라 대통령 납치극까지 두 세기의 역사를 거치며 분명해진 것은 이런 비상대권을 행사할 '예외 상태'인지 아닌지 원천적으로 판단하는 주체는 미합중국 대통령 한 사람이라는 점이다. 트럼프 이전에 헌정이 아직 원활히 작동할 때에도 의회는 실은 대통령에 의해 군사행동이 이미 시작된 뒤에 이를 '인준'했을 뿐이다. 원로원이 임명하던 고대 로마의 '독재관'과 달리, 이런 미국 대통령에 어울리는 번역어는 '독재자' 쪽에 더 가깝다.
다만, 초대 대통령부터 친위쿠데타를 일으켰던 프랑스와 다르게 미국에서는 임기가 최대 8년을 넘지 않는(프랭클린 D. 루즈벨트는 예외) 독재관 사이의 평화적 권력 승계가 계속됐고 '예외 상태'에 따른 통치가 무기한 연장되는 일 없이 '정상 상태'와 '예외 상태'를 자연스럽게 넘나드는 통치가 유지됐다. 로수르도는 이를 '연성 보나파르트주의(soft Bonapartism)'라 부르며, 유럽에서 명멸했던 보나파르트주의 정권들과 달리 미국의 연성 보나파르트주의는 하나의 정치 체제로 자리잡을 수 있었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연성 보나파르트주의 체제라 하더라도 이는 어디까지나 보나파르트주의의 한 형태다. 즉, 보통-평등선거에 바탕을 두지만 언제라도 민주주의와는 정반대되는 체제로 전환될 위험천만한 가능성을 제도적 실체로서 품고 있는 체제다. 2024년 12월 3일 낮의 일상에서 돌연 그날 밤의 환란으로 돌진한 대한민국 제6공화국과, 트럼프 정부가 이란을 침공하고 중간선거 결과를 무시할 위험성과 마주한 2026년의 미국에게 이보다 더 어울리는 규정이 있겠는가. '연성 보나파르트주의 체제' 말이다.
내란 재판 이후 '대한민국 민주정'에 대한 더 근본적인 검토가 필요하다
이렇게 커다란 위험성을 품고 있더라도 어쨌든 연성 보나파르트주의 체제는 그 고향에서 두 세기 넘게 안정적으로 지속됐다. 그런데 왜 하필 제47대 대통령 아래에서 이 오래 묵혀 두었던 인화 물질이 폭발하고 있는가? 더 나아가, 왜 우리는 그 이유를 트럼프의 인격적 파탄이 아니라 '연성 보나파르트주의 체제'에서 찾아야 하는가?
아마도 입증될 가능성이 가장 높은 가설은, 지금 지구자본주의가 직면한 초유의 위기 상황이 보나파르트주의가 품은 반-민주주의의 불씨를 어느 때보다 더 강하게 자극하고 있다는 것이 아닐까 한다. 이미 전례가 있다. 이번 위기 전에 인류가 겪은 가장 커다란 위기였던 1929년 대공황 이후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에서는 독일형 파시즘인 나치 체제가 출현한 바 있다.
많은 이들이 바이마르 공화국을 의회정부제(의원내각제)로만 기억하지만, 대공황 발발 뒤의 말기 바이마르 공화국은 실은 파울 폰 힌덴부르크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보나파르트주의 체제였다. 그로부터 한 세기가 지난 오늘날에도 비슷한 보나파르트주의 체제들(연성이든 아니든)이 더 큰 위기를 맞아 또 다시 반-민주주의로 돌변할 태세를 갖추고 있다.
윤석열 일당 1심 판결 이후 내란 진압을 위한 토론이 더욱 깊어져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대통령에게 과도하게 의존하다가, 아니 직선 대통령밖에는 의지할 데가 없다가 그 대통령에 의해 반-민주주의로 전락할 위험에 직면했던 우리의 이 정치 체제를 이제 피고석에 세워야 한다.
또한 연성 보나파르트주의가 아닌 진짜 민주주의가 갖춰야 할 요소들, 그러나 지금 우리에게는 없거나 너무 약한 요소들, 즉 일하는 국회와 다양한 정당, 노동조합과 시민 참여 통로에 대한 토론을, 늦었더라도, 시작해야 한다. 한때 이야기되던 개헌의 가능성마저 안개에 휩싸인 형편이지만, 그래도 파시즘이라면 불씨조차 용납할 수 없는 이들은 할 일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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