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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관계 '바늘구멍'을 찾아 호주로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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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관계 '바늘구멍'을 찾아 호주로 갑니다

[정욱식 칼럼] 남북 모두 출전하는 아시안컵 여자 축구대회 응원갑니다

오늘날 남북관계는 '바늘구멍'조차 찾기 힘들 정도로 꽉 막혀 있습니다. 이재명 대통령도 여러 차례 이 표현을 사용하며 답답함을 토로했습니다. 얼마 전 열린 조선노동당 제9차 당대회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조선(북한)의 남북관계 '절연' 의지는 여전히 확고해 보입니다.

이러한 현실에 대한 진단과 처방은 다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가까운 이웃이 가장 적대적인 관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까운 것만은 분명합니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나라를 다른 곳으로 옮길 수도 없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민간이 나서서 할 수 있는 일은 없을까?'

제가 한겨레평화연구소장으로 몸담고 있는 한겨레통일문화재단과 대표를 맡고 있는 평화네트워크는 작년 하반기부터 이 질문을 품고 여러 방안을 모색해왔습니다. 그러던 중 올해 3월 호주에서 열리는 아시안컵 여자 축구대회에 한국과 조선이 모두 참가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한국 사람들이 공식 국호를 사용해 조선 여자축구팀을 응원해보면 어떨까?'

이러한 생각에서 한겨레통일문화재단은 참가자를 모집했습니다. 호주 현지시간으로 3월 8일 저녁 8시에는 한국 대 호주 경기가, 다음날 저녁 8시에는 조선 대 중국 경기가 열릴 예정입니다. 10여 명으로 구성될 한국 응원단은 한국팀은 물론 조선팀도 열띠게 응원할 계획입니다.

대회가 열리는 호주는 남북관계와 관련해 의미 있는 장면이 연출된 곳이기도 합니다. 1989년에는 호주 동포들이 시드니에서 열린 남북 아이스하키 경기에서 공동 응원단을 조직해 열띤 응원을 펼쳤습니다. 이는 분단 이후 최초로 남북을 함께 응원한 사례로 알려져 있습니다.

또한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는 분단 이후 처음으로 한국과 조선 선수단이 '코리아'라는 이름 아래 한반도 단일기를 들고 공동 입장했습니다. 당시 호주 동포 사회도 이를 적극적으로 지원하며 역사적인 장면을 함께 만들어냈습니다.

이번에도 예외는 아닙니다. 호주의 여러 단체와 인사들이 힘과 지혜를 모아 '조국여자축구 호주동포응원단'을 조직했습니다. 이들은 이번 대회가 얼어붙은 남북관계를 조금이나마 녹이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물론 과거에 비해 오늘날의 상황은 녹록지 않습니다. 예전에는 남북관계가 좋을 때는 물론이고 그렇지 않을 때에도 '민족'과 '통일'이라는 대의 앞에서 차이를 내려놓고 한 목소리를 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조선이 '적대적 두 국가' 노선을 고수하고 있기에 과거의 방식으로는 다가가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남북 간의 화해와 평화를 포기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저희 응원단은 현지에서 '조선'이라는 명칭을 사용해 응원하려 합니다. 이를 통해 서로가 국가로서 존중하면서도 적대감을 조금이나마 내려놓을 수 있는 '바늘구멍'을 찾아보고자 합니다.

조선 선수단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는 알 수 없습니다. 혹시 조선 당국이 이 소식을 접한다면 우리의 선의를 이해해주기를 바랍니다. 또한 우리 국민 가운데 이러한 시도에 거부감을 느끼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 점에 대해서도 미리 양해와 이해를 구합니다. 아울러 한국 기자들이 기자회견장에서 조선 선수단에게 공식 국호를 사용해 질문해보는 것도 하나의 의미 있는 시도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남북관계의 큰 문이 당장 열리기는 어려울지 모릅니다. 그러나 바늘구멍만 한 틈이라도 찾을 수 있다면, 그 작은 틈이 언젠가는 문을 여는 시작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잘 다녀오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대한민국(ROK)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DPRK)은 나라와 나라의 관계이자 화해·평화·협력·통합을 지향하는 관계'라는 의미를 담은 엠블럼입니다. 'OREA'는 그리스어 'ωραία(오레아)'에서 온 표현으로 '멋지다', '좋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정욱식

정욱식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군사·안보 전공으로 북한학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1999년 대학 졸업과 함께 '평화군축을 통해 한반도 주민들의 인간다운 삶을 만들어보자'는 취지로 평화네트워크를 만들었습니다. 노무현 정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통일·외교·안보 분과 자문위원을 역임했으며 저서로는 <말과 칼>, <MD본색>, <핵의 세계사> 등이 있습니다. 2021년 현재 한겨레 평화연구소 소장을 겸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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