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스포츠 비즈니스 매체 <스포티코(Sportico)>가 발표한 전 세계 프로스포츠 구단 기업 가치 순위에서 20위 권 안에 유럽 축구 구단은 단 하나도 없었다. 20위 권에는 미국 프로스포츠 구단만 존재했다. 유럽 축구 구단 가운데 가장 높은 기업가치를 인정받은 팀은 22위를 기록한 레알 마드리드(스페인)였다.
흥미롭게도 레알 마드리드보다 연 매출 규모가 작은 미국 프로스포츠 구단들조차 기업가치는 더 높았다. 레알 마드리드보다 기업가치가 높은 미국 프로스포츠 구단 가운데 매출 규모가 레알 마드리드 보다 큰 구단은 NFL(미국프로풋볼)의 댈러스 카우보이스 밖에 없었다.
자본시장과 노동시장이 유연하지 않고 혁신적인 첨단 기술 기업이 없는 '가난해진 유럽'의 상황이 영향을 미쳤을까? 만약 그게 아니라면 세계 최대의 글로벌 스포츠로 불리는 축구의 중심지 유럽의 구단 가치가 낮은 이유는 무엇일까?
매출액 대비 선수 연봉 지출이 큰 유럽 축구 클럽
유럽 프로 축구 구단의 기업가치가 낮은 결정적 이유는 미국 프로스포츠와 같은 샐러리캡(연봉총액상한제)이 없다는 점이다.
NFL과 NBA(미국프로농구)는 팀 간 전력 균형을 이루기 위해 샐러리캡 제도를 시행 중이다. 여전히 빅 마켓 클럽과 스몰 마켓 클럽의 격차는 존재하지만 양자 간의 전력 차이를 최대한 줄이기 위해서다. MLB(미국프로야구)도 선수 연봉으로 일정 수준 이상의 돈을 쓰는 부자 구단에 사치세를 부과해 가난한 구단에 나눠준다. 역시 비슷한 이유다.
하지만 유럽 프로축구 리그는 그렇지 않다. UEFA(유럽축구연맹)가 만든 재정적 페어플레이 룰(FFP)에 따라 각 구단이 벌어들인 매출 한도 내에서 자유롭게 선수 연봉 등을 지출할 수 있게 했다. 최근에는 구단 영업 수익의 70% 이하로 선수단 급여 및 관련 비용을 유지하는 '스쿼드 비용'도 만들어졌다. 하지만 유럽 축구 샐러리캡은 고정 금액으로 선수 연봉을 제한하는 미국식 샐러리캡과는 달리 수입이 많은 빅 클럽에 절대적으로 유리한 제도다.
투자자의 관점에서는 미국 프로스포츠 구단이 훨씬 효율적인 투자처다. 대략 미국 프로스포츠 구단은 매출액에 대비해 50% 정도를 선수 연봉으로 쓴다. 반면 유럽 프로축구 5대리그(잉글랜드, 독일, 스페인, 이탈리아, 프랑스) 클럽들은 적어도 매출액 대비 60% 이상의 비용을 선수 연봉으로 지출한다.
이 가운데 상대적으로 매출액이 적은 프랑스나 이탈리아 클럽 가운데에는 매출액의 80% 이상을 선수 연봉으로 지출하는 경우가 꽤 많다. 유럽 프로축구 리그 중에 가장 매출액이 큰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도 매출액의 65% 정도를 선수 연봉으로 쓴다.
레알 마드리드의 기업 가치가 22위에 머무른 것도 여기에 있다. 레알 마드리드와 비슷한 규모의 매출을 기록한 미국 프로스포츠 구단은 선수 연봉 지출액이 적어서 더 큰 영업이익을 기록하기 때문이다.
구단 가치 상승을 저해하는 유럽 축구 승강제
유럽 축구가 채택한 승강제도 유럽 축구 구단의 기업 가치를 떨어트리는 이유다. 저조한 성적 때문에 2부리그로 추락한 유럽 프로축구 팀은 평균적으로 25% 정도의 매출 감소를 경험한다. 강등을 피하기 위해 대다수 팀은 과도한 선수 연봉 지출을 하는 경우가 많다.
프랜차이즈 시스템을 기반으로 한 미국 프로스포츠 리그는 정해진 숫자의 팀이 항상 최고 수준의 리그에서 시즌을 치른다. 메이저리그 팀은 성적이 좋지 않더라도 마이너리그로 강등되지 않는다.
이는 승강제를 채택하고 있는 유럽 축구와 가장 크게 대비되는 부분이다. 미국 프로스포츠는 팀 성적에 따른 매출액의 변동성이 적은 반면 유럽 축구는 상대적으로 그 변동성이 큰 것도 여기에서부터 비롯된다.
한 마디로 미국 프로스포츠는 구단에 안정적인 비즈니스를 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고 있지만 유럽 프로축구에서 각 구단은 상대적으로 불안정한 비즈니스 환경 속에서 경영을 해야 한다.
물론 유럽의 빅 클럽들은 웬만하면 2부리그로 떨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이들은 UEFA 챔피언스리그에 '올인'해야 한다. 챔피언스리그 우승팀은 상금과 중계권료 등을 포함해 2500억 원가량의 돈을 챙길 수 있기 때문이다.
잉글랜드, 독일, 스페인, 이탈리아 클럽이 챔피언스리그에 참가하기 위해서는 자국 리그에서 4위 이상의 성적을 기록해야 한다. 이 때문에 빅 클럽들은 챔피언스리그 진출을 위해 선수 연봉과 이적료에 아낌없이 투자한다.
이는 역설적으로 유럽 축구 빅 클럽들의 기업가치를 떨어트리는 요소다. 선수 연봉에 막대한 투자를 했지만 챔피언스리그 진출에 실패하게 되면 구단 매출액이 곤두박질치기 때문이다.
지난 10년 동안 유럽 프로축구 클럽을 매입하려는 미국과 중동 투자자들의 숫자는 매우 많이 늘었다. EPL 20개 구단 가운데 절반가량을 미국 기업이 소유하고 있는 것만 봐도 잘 알 수 있다.
글로벌 자본이 유럽 프로축구 클럽 인수에 관심을 갖는 건 기본적으로 값이 싸기 때문이다. 실제로 유럽 빅 클럽의 구단 인수 금액은 미국 프로스포츠 빅 클럽에 비해 낮은 편이다.
전 세계 기업 가치 1위 구단인 댈러스 카우보이스를 인수할 돈이면 레알 마드리드, 바르셀로나, 파리 생제르맹, 리버풀을 모두 살 수 있다. 유럽 축구 클럽의 기업 가치 평가액이 낮기 때문이다.
'낭만 드라마' 유럽 축구 승강제의 기원
승강제는 유럽 축구의 아름다운 전통이다. 성적에 따라 승격과 강등을 반복하며 공정한 기회를 부여하는 승강제는 심지어 축구 민주주의의 상징적 제도로 통용됐다. 무엇보다 승강제는 하위 리그로 떨어지는 팀의 눈물과 상위 리그로 올라가게 된 팀의 환희가 교차하는 '낭만 드라마'다. 미국 프로 스포츠에서 볼 수 없는 경험이다.
실제로 3부리그에서 출발해 1부리그 정상에 오른 유럽 축구 클럽들의 스토리는 늘 화제의 중심이었다. 2015~2016 시즌 EPL에서 우승을 차지한 레스터 시티가 그랬다. 3부리그와 2부리그를 전전하던 팀이 EPL에서 우승을 차지하자 미디어들은 이 기적적인 사건을 '레스터 동화'로 불렀다.
승강제는 근대 축구가 생겨난 잉글랜드에서 만들어졌다. 1888년 세계 최초의 프로축구 리그인 풋볼 리그가 잉글랜드에서 창설됐다. 하지만 1년 뒤 라이벌 리그인 풋볼 얼라이언스가 출범했다. 풋볼 얼라이언스 소속 클럽의 규모는 풋볼 리그 클럽에 비해 작은 편이었지만 두 리그 간의 경쟁은 초기 잉글랜드 축구 산업 발전에 걸림돌이었다.
결국 두 리그는 출혈경쟁 대신에 합병을 선택했다. 이 과정에서 1부 리그와 2부 리그가 만들어졌다. 기득권을 쥐고 있던 풋볼 리그 클럽은 1부 리그를 형성했고 풋볼 얼라이언스 클럽은 2부 리그에 포함됐다. 다만 2부 리그에서 좋은 성적을 낸 클럽은 언제든지 1부 리그로 승격하고 반대로 1부 리그에서 성적이 저조한 클럽은 2부 리그에 강등되는 규정이 생겨났다.
잉글랜드 축구를 대표하는 클럽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전신인 뉴튼 히스도 풋볼 얼라이언스 리그에서 출발해 2부 리그에서 좋은 성적을 내 1부 리그로 올라온 경우다.
영국인들은 이와 같은 승강제를 타협과 절충이 만든 위대한 유산으로 생각했다. 대영제국의 모든 것을 벤치마크 하던 시대에 유럽 각국은 앞다퉈 영국 축구의 승강제를 받아들였고 이는 곧 전 세계 축구의 문화가 됐다.
문제는 이 승강제가 유럽 축구 산업의 성장에 장애물로 인식되고 있다는 부분이다. 미국 중심의 글로벌 거대 자본이 유럽 축구에 더 많은 투자를 하게 된다면 재정건전성 확보라는 명분하에 미국식 샐러리캡은 물론 구단 경영의 리스크를 줄이기 위한 완화된 승강제 규정이 논의될 가능성이 큰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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