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양당에 유리한 소선거구제 하에서 독자적 진보정치의 길은 험난하다. 선거 때마다 사표론, 현실론의 압박을 받으며 끊임없이 존재 이유를 증명해야 한다. 그럼에도 정의당, 노동당, 녹색당은 '신호등 연대'를 꾸리고 6.3 지방선거에 뛰어들어 총 63명의 후보를 냈다. 이들에게 선거는 자신들의 구상을 집중적으로 펼쳐 보일 수 있는 드물고 소중한 공간이다.
이번 선거에서도 세 당의 공약에는 민주당, 국민의힘과 결이 다른 대목이 있다. 지역의 부가 수도권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막는 지역순환경제, 아이가 아픈 부담을 한 가정이 떠안지 않게 하는 병원비 100만 원 상한제, 주거권을 중심에 두고 짠 부동산 정책, 공공성이 높은 부문을 중심으로 한 지역 일자리 보장제, 명확한 탈핵 입장과 차별금지·생활동반자 조례 제정 등이다.
정의당, 노동당, 녹색당의 공약집을 통해 세 당이 만들려는 한국사회의 모습을 들여다봤다.
① 수도권 집중 막기 위한 지역순환경제
수도권으로 사람과 부가 집중되며 지방소멸 위기가 심화되는 데 대한 세 당의 공동 처방은 지역순환경제다. 지방에서 생산된 부가 기업 본사가 밀집한 수도권으로 흘러가 지역민의 삶이 피폐해지는 일을 막자는 취지다.
주요 수단은 지역재투자 조례, 지역공공은행 설립, 지역화폐 강화 등이다. 지역재투자 조례는 기업이 특정 지역에서 얻은 수익의 일정 비율을 해당 지역에 재투자하게 하는 내용이다. 지역공공은행은 지역 내 공익 프로젝트, 중소상공인에 대한 저리 대출을 맡는다. 지역화폐는 이렇게 형서된 시민의 소득이 지역 내에서 순환하게 하는 기능을 맡는다.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한 권영국 정의당 대표가 지역과 같이 사는 서울을 말하며, 광역자치단체 상생협의체를 꾸리고 참여해 방안을 고민하겠다고 밝힌 점도 눈이 가는 대목이다.
② 병원비 100만 원 상한제와 촘촘한 돌봄망 구축
의료·돌봄 분야에서는 정의당과 노동당의 병원비 100만 원 상한제가 눈에 띈다. 어떤 치료를 받든 입원비, 수술비, 비급여 항목을 모두 포함해 환자가 부담하는 병원비가 연 100만 원을 넘으면 그 이상은 지방정부가 부담하는 구상이다. 정의당은 이를 만 18세 이하 아동·청소년부터, 노동당은 아동·노인·장애인부터 우선 적용하겠다고 약속했다.
두 당은 촘촘한 공공 돌봄망 구성도 약속했다. 현재 일부 광역지방자치단체에 설치된 사회서비스원을 시·군·구마다 설치해 지역 공공돌봄의 중추로 만들고, 읍면동별로도 공공돌봄센터를 설치해 방문진료·간호 등을 담당케 한다는 구상이다.
③ 주거권을 중심에 둔 부동산 정책
부동산 정책은 세 당 모두 주거권을 중심에 두고 짰다. 현재 2+2년인 세입자의 주택 임대차 계약갱신권을 조례 등을 통해 세입자가 원할 때까지 계약을 갱신할 수 있게 바꾼다는 구상을 '계속거주권'이라는 명칭으로 정의당과 녹색당이 제시했다.
전통적인 주거 안정 대책인 공공임대주택과 대해 정의당과 노동당은 현재 8% 수준인 비율을 20%로 확대하겠다고 약속했다. 녹색당도 연간 최소 5만 호 이상의 기존주택 매입형 공공임대주택 공급을 공약했다.
④ 지역 일자리 보장제와 주4일제 도입
노동 분야에서는 정의당과 노동당이 지역 일자리 보장제와 노동시간 단축 등을 약속했다. 일자리 보장제는 재생에너지 설비 점검, 마을 돌봄 설계, 생명·안전 등 사회적으로 필요한 분야에 지방자치단체가 책임지고 좋은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약속이다.
노동시간 단축에 대해 정의당은 지방정부와 산하기관에 주 4일제, 주 4.5일제, 주 35시간제 등 모델을 도입하고, 지방정부 사업연계 우대 등을 통해 이를 민간으로 확산하겠다고 했다. 노동당은 조례 제정을 통해 지방정부와 산하 위탁기관 등에 주 4일제를 시행하겠다고 했다.
⑤ 탈핵과 재생에너지 확대
에너지 정책은 세 당 모두 원자력-재생에너지 믹스가 아닌 재생에너지 확대에 방점을 뒀다. 정의당은 원전 중심 중앙집중형 에너지 체계는 시한폭탄이라며 정부가 추진 중인 신규 원전 2기 건설과 노후 원전 수명 연장에 반대했다. 노동당도 원전 확대 반대 뜻을 밝혔다.
녹색당이 농어촌을 넘어 도시 태양광 확대를 위한 다양한 방안을 강조한 점도 눈에 띈다. 공영주차장 공공 태양광 조례 제정, 아파트 옥상·베란다 태양광 확대 등이다. 이 중 옥상·베란다 태양광에 대해서는 발전 잠재량을 6.1~14.2기가와트로 추정하며 수백만 가구의 전력을 이를 통해 확보할 수 있다고도 밝혔다.
⑥ 차별금지·생활동반자 조례 제정
소수자 인권도 세 당 모두 공을 들인 분야다. 먼저 성별, 장애, 인종, 성적지향, 학력 등 어떤 이유로도 차별받지 않아야 한다는 원칙을 담은 포괄적 차별금지 조례 제정을 세 당 모두 약속했다. 정의당은 차별금지센터를 시군구별로 설치해 구제·감독 절차를 강화했다고도 했다.
다양한 가족 구성권을 보장하기 위해 생활동반자 조례를 제정하겠다는 것도 세 당 모두의 약속이다. 오랜 시간 누군가와 함께해 왔지만, 결혼을 택하지 않았거나 결혼을 할 수 없어서 겪는 복지·의료·공공임대주택 등 분야의 어려움을 해소하겠다는 취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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