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9월 10일은 세계 자살 예방의 날이다. 올해 자살 예방의 날에도 사회 각계에서 다양한 논의가 이어진 가운데, 성소수자 인권단체들은 성소수자 자살예방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단체들은 성소수자의 자살사고 비율이 높다는 국내외 연구 결과에도 불구하고, 현행 국가 통계로는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에 따른 자살 위험을 파악하기 어렵다고 지적했으며 자살예방 정책이 자살 위험을 개인의 취약성이 아닌 차별과 혐오, 사회적 고립의 문제로 볼 것을 강조했다. 이러한 현장의 문제의식은 국가가 자살 예방의 대상으로 누구를 호명하고 있으며, 기존의 방식에서 소외되는 이들은 누구인지, 그리고 자살 예방의 목적이 무엇이어야 하는지를 질문한다. 이 질문은 자살 이후의 고통과 자살에 노출된 경험에서 이어지는 위기를 다루는 방식에 대해서도 이어진다.
레베카 샌포드(Rebecca L. Sanford) 연구팀은 자살 예방의 일환으로서 자살 노출에 개입하는 사후 개입에 주목하면서, 이러한 질문에 대한 기존의 답을 다시 살펴본다(☞ 논문 바로가기: 친밀함의 의미 다시 읽기, 자살 노출에서의 영향 개념 재고, 그리고 사별을 넘어서는 확장). 그동안의 자살 사후개입 연구는 주로 애착 이론에 기대어 혈연관계나 심리적으로 매우 가까웠던 유족을 중심에 두고 진행되어 왔다. 대표적 이론 틀인 '자살 노출 연속체(Suicide Exposure Continuum)' 모델 역시 고인과의 친밀도에 따라 충격의 크기가 결정된다고 보아, 가장 파괴적 영향을 받는 대상을 친밀한 애착 관계를 지닌 이들로 상정했다. 그러나 샌포드 연구팀은 이 가정에 들어맞지 않은 사람들에게 주목한다. 고인과 가깝지 않았는데도 삶이 흔들릴 만큼 큰 영향을 받은 이들이다.
연구팀은 2016년 호주자살예방협회(SPA) 등을 통해 수집된 자살 노출 설문 응답자 3010명 중, 사망자와 친밀하지 않았음에도 높은 수준의 파괴적 충격을 보고한 104명을 추려냈다. 이들 중 73%는 사망 전 6개월 동안 고인과 드물게만 연락했지만, 절반 가까이가 높은 수준의 심리적 고통을 보고했다. 연구팀은 이 가운데 개방형 문항에 경험을 서술한 50명의 응답을 귀납적 주제 분석으로 살폈다.
연구팀은 먼저 '친밀하지 않다'는 응답이 무엇을 뜻하는지 살폈다. 친구의 친구처럼 다른 사람을 거쳐 이어진 관계, 치료자와 내담자처럼 한쪽만 상대를 깊이 아는 관계가 여기 포함되었으며, 경찰·소방관·철도 기관사처럼 일 때문에 죽음을 마주한 관계도 있었다. 한때 가까웠으나 갈등 끝에 멀어진 관계, 부모였지만 애착을 쌓기 전에 떠난 관계도 모두 '친밀하지 않음'으로 기록되었다. 연구팀은 친밀감이 관계의 유형과 그에 대한 사회적 기대, 그리고 실제 감정이 겹쳐 만들어진다고 분석한다.
자살 노출로 인해 영향을 받는 경로도 여러 갈래였다. 고인과 가깝지 않았다는 이유로 사회적으로 슬픔을 표현할 자격을 인정받지 못하거나, 조직과 사회의 침묵과 낙인 속에서 고통을 혼자 감당해야할 때 트라우마는 깊어졌다. 또한 응답자들은 주변이나 직무 환경에서 자살을 반복적으로 접하면서 충격이 누적되거나, 자살이 일상처럼 느껴지며 점차 무감각해지는 경험도 보고했다. 한편으로는 고인과 직접 친하지 않더라도 고인과 가까웠던 주변 사람들의 절망을 곁에서 지켜보는 고통, 비극이 다른 이에게 번질지 모른다는 불안처럼 다른 사람을 통해 전해지는 영향도 있었다. 죽음은 삶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기도 했지만, 자살 전의 징후를 알아채지 못했다는 죄책감으로 오래 남기도 했으며, 고인의 상황에 자신을 동일시하거나 이미 자살사고를 겪고 있던 이들에게 타인의 죽음은 자신의 위기를 다시 불러일으켰다.
이를 바탕으로 연구진은 자살 노출의 영향을 애착 상실로 인한 사별로만 설명해 온 틀을 넓힐 것을 제안한다. 자살 노출이 남기는 고통은 세상이 안전하고 예측 가능하며 공정하다는 믿음, 그리고 자신의 안녕에 대한 믿음이 무너지는 경험으로도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아가 연구진은 슬퍼할 권리를 공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박탈된 슬픔'을 가시화하고, 기존의 제도적 지원에서 드러나지 않은 노출자들을 찾아 지원하는 사후개입 체계가 필요하다고 제언한다.
이 연구가 도출한 결론은 최근 한국 사회에서 제기된 성소수자 자살 예방 및 사후 대책 마련의 논의에도 유의미한 시사점을 더해준다. 친밀감이 관계의 유형에 대한 사회적 기대와 얽혀 있다는 분석은 한 가지 질문으로 이어진다. 동성 파트너나 선택한 가족처럼 제도가 가족으로 인정하지 않는 관계의 상실은 어떻게 다뤄지고 있는가. 소수자 집단의 경우, 사회적 낙인과 비가시화로 인해 소중한 관계를 잃고도 합당한 애도를 수행하지 못하는 '박탈된 슬픔'의 위험에 구조적으로 노출되기 쉽다. 또한 개인적 친분이 없더라도 차별과 배제라는 동일한 취약성을 공유하는 이의 죽음은 강한 정서적 동일시를 일으키며, 안전한 삶에 대한 신념 체계를 흔드는 충격으로 이어질 수 있다. 샌포드 연구팀이 규명한 낙인, 침묵, 대리적 슬픔, 누적된 자살 노출의 경로는 성소수자에게 작동하는 자살 영향력을 해석하는 유용한 틀을 제공하며, 이러한 특성을 공유하는 성소수자 집단을 위한 자살 예방 및 사후 개입 방식이 기존과 다른 방식으로 고안되어야 할 필요를 증명한다.
*서지사항
Rebecca L. Sanford, Laura M. Frey, Neetika Thind, Brock Butcher, Myfanwy Maple (2026). Unpacking the Meaning of Closeness, Reconsidering the Concept of Impact in Suicide Exposure, and Expanding Beyond Bereavement. OMEGA—Journal of Death and Dying, 92(3), 1124–1152.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같은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109 또는 SNS상담 마들랜(www.129.go.kr/etc/madlan)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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