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꽃이다. "아침 볕의 첫걸음"(만해)에 반짝 사라져 버릴 운명인데도. 사랑은 그러한가. 작가는 우리가 볼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는 것을 표현해야만 하는 존재이기에, 조정래 선생에게 사랑은 찰나는 곧 영원이라는 걸까.
"오빠, 우리의 사랑은 밤 추위에 피어났다가 햇살이 비치면 금세 사라지고 마는 서리꽃처럼 짧았습니다. 그러나 짧은 만큼 진하고 뜨거웠습니다." 그래서 <서리꽃>이 피었습니다.
선생은 "슬픈 사랑 이야기를 쓰려고 했다. 그 슬픔이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그 근원을 소설의 주제로 삼아서." 꽃이 녹아내리기 전에 향기를 즐겨야한다.
옛글이 생각났다. 당나라 서예가 안진경(顔眞卿)의 작품 <쌍학명(雙鶴銘)>. 스님이 학 두 마리를 얻어다 귀하게 키웠다. 한 마리가 병들어 죽었다. 다른 한 마리는 죽은 학 주위를 맴돌며 슬피 울다가 먹이를 끊고는 뒤따라 갔다. 스님은 학의 무덤 앞에 비석을 세우고 명문을 지어달라고 했다. 마지막 문장이다.
"세상의 의롭지 못한 사람들이 이 새 앞에서 부끄러워해야 하리라(世之不義愧斯禽)." 선생은 이기심과 물신의 시대에 이타성과 헌신이라는 사랑의 '의로움'을 일깨우고 싶었던 것 같다.
'못다 준 사랑'이나 '못다 한 사랑'만이 오래 기억되는 법이다. 화상처럼 가슴에 남는 법이다. 더미가 남는 불완전연소처럼 말이다. 세상과 역사와 이 땅의 인간에 대한 사랑을 노래해 온 선생에게 무슨 사랑의 미련이 남아있었던 걸까. 읽는 내내 <사랑굿> 시인 김초혜 선생에 대한 사랑이구나 했다. 굴곡의 1900년대를 살아온 한 사내의 못다 한 사랑 노래였다. 그럼에도 두 분의 사랑은 '두 마리의 학이 장흥 가지산 하늘을 날아 점으로 변하고 그 점마저 까마득하게 사라져가도(우화등선羽化登仙)' 서로의 가슴에 남는다. "남은/사람들의/가슴에/있다."(김초혜, <내생>) 그리하여 둘의 사랑이 보편성으로 승화되고 마침내는 영원성을 획득할 수 있게 된다.
주인공 윤소이가 그러하듯 선생은 어린 시절 화가를 꿈꿨다. 종이보다는 캔버스가, 연필보다는 물감이 비쌌을 것이다. 윤소이와 이재이의 여정이 그러하듯 인생은 고통 속에서 진리를 찾아가는 '선재동자'의 길. 선생의 작가행이 그러했을 것이다. 하지만, 빈센트 반 고흐가 그러했듯 삶은 가지 못한 길의 연속이고 결코 이루지 못할 꿈의 총체다. 마지막 장편소설이라는 선생의 말에 지배당해서일까. 곳곳의 문장들이 상당히 자전적이다. 특히 이 문장. "모든 예술 창작은 피를 짜내는 고통이다." 역설적이게도 한평생 작가로서의 삶에 대한 자긍이자 절대사랑이다. 사랑은 이렇게도 변주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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