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6년 03월 21일 19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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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태봉 강원대학교 교수
utb@gwnu.ac.kr
엄태봉 교수는 문화재 반환 문제, 강제동원문제, 교과서 문제 등 한일 간의 역사인식문제를 연구하고 있는 한일 관계 전문가다. 역사인식문제를 대중들에게 널리 알리고 올바른 역사인식을 확산하기 위해 활동하고 있다. 주요 연구로 <한일 문화재 반환 문제는 왜 해결되지 못했는가?>, <교과서 문제는 왜 연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는가?>, <일본 '영토·주권 전시관'의 영토 문제 관련 홍보·전시에 대한 연구> 등이 있다.
한국, 오구라가 가져간 조선 유물 어떻게 반환받으려 했나
[일본은 왜 문화재를 반환하지 않는가?] 제2부 ⑬ 오구라 컬렉션을 반환하라
한국 측, 제5차 한일회담에서 오구라 다케노스케의 반출 유물 첫 언급 한국 측은 제5차 한일회담에서 처음으로 오구라 다케노스케의 반출 유물을 언급한다. 제1회 문화재소위원회(1960년 11월 11일)에서 한국 측은 '문화재 반환의 7항목'을 제출하는데, 오구라 다케노스케의 반출 유물도 포함하고 있었다(칼럼 제1부 ⑥ 참조). 한일 양국은 '문화재 반환의
조선 유물 수집의 거물, '오구라 컬렉션'을 반환받기 위해 한국 정부가 한 일은
[일본은 왜 문화재를 반환하지 않는가?] 제2부 ⑬ 한국 정부, 오구라 컬렉션 반환 요구 준비
지금까지 오구라 다케노스케의 생애와 그가 수집한 유물, 즉 오구라 컬렉션에 대해 살펴보았다. 그는 대구로 건너와 전기회사를 경영하며 '조선의 전기왕'으로 불릴 만큼 큰 성공을 거뒀다. 또한 국보급, 보물급에 해당하는 유물을 포함하여 수많은 유물들을 수집하면서 '유물 수집의 권위자'로도 불렸고, 일부는 일본으로 반출하기도 했다. 일본의 패전으로 귀국해야 했던
일제 당시 강탈해 갔던 조선 문화재, 해방 이후 돌려받을 수 있었을까
[일본은 왜 문화재를 반환하지 않는가?] 제2부 ⑫ 해방 후 오구라 다케노스케는 유물들을 어떻게 처리했을까? (2)
지인에게 맡긴 유물 오구라 다케노스케는 대구 저택에 숨겨놓은 유물들 이외에 다시 조선에 돌아올 경우를 대비해 친분이 있었던 조선인에게 유물의 일부를 맡기고 대구를 떠났다고 한다. 최창섭이라는 사람인데, 은행원 일을 하다가 해방 후에 대구에서 과수원을 하고 있었다. 오구라 다케노스케는 최창섭에게 "10년 후 다시 올테니 잘 보관해 주시게"라는 취지로 말하면
조선 문화재 강탈에 혈안이 됐던 일제 오구라, 해방 후 유물은 어떻게 처리했을까
[일본은 왜 문화재를 반환하지 않는가?] 제2부 ⑪ 대구 저택에 유물 숨겨두고 떠난 오구라 다케노스케
1945년 8월 15일, 일본은 무조건 항복을 선언하며 패전을 맞이한다. 식민지 조선에서 살아가던 일본인들도 귀국해야 했다. 그들에게 귀국 자체도 큰 문제였지만, 그동안 축적해 온 재산들을 남기고 떠나야 할 처지가 되었다. 오구라 다케노스케 또한 '조선의 전기왕'으로서 40여 년 가까이 조선에서 모은 재산은 물론이고 20년 넘게 수집했던 수많은 유물들도 걱
엄태봉 강릉원주대학교 교수
조선 문화재 훔친 일본인은 문제 없고 그 문화재 훔친 절도범만 잡던 시대
[일본은 왜 문화재를 반환하지 않는가?] 제2부 ⑩ 전시회 유물 출품과 대구 저택 유물 도난 사건
각종 전람회에서 유물들을 선보이다 오구라 다케노스케는 대구와 경성, 그리고 도쿄에서 보관하고 있던 유물들을 단순히 보관만 하지 않고, 여러 차례 전람회에서 출품하기도 했다. 먼저 1929년 9월 15일부터 11월 3일까지 대구에서 개최된 '신라예술품전람회'에 여러 유물들을 선보였다. 이 전람회는 '조선박람회 경상북도협찬회'가 주최한 행사로, 대부분의 전
조선 문화재 도굴한 日 오구라, 그 많은 문화재들 다 어디에 숨겼나
[일본은 왜 문화재를 반환하지 않는가?] 제2부 ⑨ 오구라 다케노스케는 유물들을 어떻게 관리했을까?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오구라 다케노스케는 '조선의 전기왕'으로서 축적한 부와 권세를 이용하면서 고령 출토 금관과 곡옥, 창녕 출토 유물, 부산 연산동 출토 유물, 석조 유물 등 수많은 유물들을 손에 넣었다. 그리고 그가 손에 넣은 유물들 중에는 도굴품들도 상당수 있었고, 그 배경에는 권력과의 유착 관계도 있었다. 그렇다면 그는 손에 넣은 수많은 유물들
조선 문화재 도둑질, 거액의 기부금 받으며 눈감은 조선총독부
[일본은 왜 문화재를 반환하지 않는가?] 제2부 ⑧ 오구라 다케노스케, 조선총독부에 거액을 헌금하다
조선총독부 기념박물관 건설비를 기부하다 오구라 다케노스케가 도굴품 불법 매매 행위를 서슴없이 저지를 수 있었던 또 다른 이유를 확인해 보도록 하자. 그는 조선총독부가 추진한 '시정 25주년 기념 종합박물관'(이하, 기념박물관) 건설에 거금을 기부하기도 하고, 자신이 수집한 유물들을 기증하면서 조선총독부와 유착 관계를 유지했다. 조선총독부는 조선을 통치한
일본으로의 문화재 유출, 도굴꾼과 지방 권력 유착도 한몫했다
[일본은 왜 문화재를 반환하지 않는가?] 제2부 ⑦ 오구라 다케노스케, 지방 권력과의 유착 관계로 도굴품을 손에 넣다
고령 경찰서장의 적극적인 협조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오구라 다케노스케는 고분을 파헤쳐 나온 도굴품들을 사들였다. 하지만 당시 도굴품 매매는 불법 행위였다. 조선총독부는 '고적 및 유물 보존 규칙'(1916년), 그리고 이를 보완한 '조선보물명승천연기물보존령'(1933년)을 제정하여 유물을 관리하고자 했다. 특히 후자는 조선 총독의 허가 없이 유물에
일본에 수 억원 상당의 문화재 팔아 넘긴 가야 무덤 도굴꾼들
[일본은 왜 문화재를 반환하지 않는가?] 제2부 ⑥ 가야 고분 도굴품을 사들인 오구라 다케노스케
가야 고분 도굴품 곡옥(曲玉)을 사들인 오구라 오구라 다케노스케가 수집한 유물들 가운데 도굴품으로 추정되는 것들이 상당하다. 그 예로 가야 고분에서 도굴된 곡옥(曲玉)을 들 수가 있는데, 이번 시간에는 이와 관련한 이야깃거리를 풀어보고자 한다. 일제강점기 말기에 고령 일대의 가야 고분을 도굴한 김영조라는 도굴꾼이 있었다. 그는 김준철, 구금도라는 자와
온갖 문화재 다 모았던 조선유물 '덕후' 日 오구라, 국보도 가져갔다
[일본은 왜 문화재를 반환하지 않는가?] 제2부 ⑤ 오구라는 왜 조선의 유물에 관심을 가졌을까?
오구라 다케노스케는 도쿄대학 졸업 후 선망받는 회사에 취직하며 밝은 미래를 보장받는 듯했지만, 아버지의 뇌물 수수 사건으로 인해 교도소 수감자가 되었다가 조선으로 건너와 전기사업에 성공하며 '조선의 전기왕'으로 거듭나는 성공 신화(?)를 써 내려갔다. 그는 전기사업을 중심으로 엄청난 부를 축적하며 식민지 조선에서 큰 성공을 거뒀고, 지역사회에서 영향력 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