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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혜진의 아름다운 우리가락] 소리로 그린 풍경, 전통 성악의 매력에 빠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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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혜진의 아름다운 우리가락] 소리로 그린 풍경, 전통 성악의 매력에 빠지다

판소리·민요·정가로 다시 만나는 우리 소리의 아름다움

악기와 장단을 통해 우리 음악의 구조를 살펴봤던 지난 컬럼들에 이어 이번에는 가장 인간적인 악기 ‘목소리’에 주목할 차례다. 목소리는 사람의 감정과 역사를 고스란히 담아내는 살아 있는 악기이자 세월의 흐름을 그대로 전달하는 매개체다. 특히 전통 성악의 세 얼굴 판소리, 민요, 정가는 각각의 독특한 특징과 매력을 통해 우리 민족의 삶과 정서를 입체적으로 드러낸다. 이번에는 악기와 리듬을 넘어서 이제 소리로 그려낸 풍경 속으로 함께 걸어가 보자.

판소리 : 목소리 하나로 펼쳐내는 장대한 드라마

판소리는 ‘판’이라는 무대 위에서 한 명의 소리꾼(창자;唱者)이 고수(북을 치는 사람)의 북 장단에 맞추어 서사적 이야기를 전달하는 전통 예술이다.

판소리의 매력은 단지 듣는 것에 그치지 않고 ‘보는 음악’이라는 점에 있다. 한 명의 소리꾼이 북 장단 반주 속에서 긴 시간 동안 관객의 집중을 이끌며 대사(아니리), 노래(소리), 몸짓(발림)으로 구성된 극적인 서사를 완성한다. 그래서 판소리를 ‘한국판 1인 오페라’라고 부르기도 한다.

조선 중기, 민중의 삶과 애환 속에서 탄생한 판소리는 차츰 상류층의 문화를 점차 흡수하며 예술적으로 고도화되었다.

초기에는 서민들의 삶과 애환을 주제로 시작했으나 시간이 흐르며 해학과 풍자, 비판 정신이 강한 이야기로 확장되었다.

현재는 '춘향가', '심청가', '흥보가', '수궁가', '적벽가' 등 다섯 바탕의 이야기가 대표적으로 불리운다.

이 다섯 바탕은 각각 사랑, 효심, 우애, 충성, 전략적 지혜 등 인간이 가진 다양한 감정에 대한 주제를 담고 있으며 오늘날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오늘날 판소리는 다양한 실험과 재해석을 통해 그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창극이나 퓨전 판소리 공연, 영화 '서편제', '귀향' 등 대중매체와의 협업을 통해 그 대중성을 넓혀가고 있다.

판소리는 여전히 전통적인 방식을 유지하면서도 현대적 감수성과 결합해 새로운 예술로 진화 중이며 젊은 소리꾼들이 전통 판소리를 현대적으로 재구성하며 대중과 소통하는 기회를 넓혀가고 있다.

민요 : 삶의 결을 따라 흐르는 우리 소리

민요는 민중의 삶 속에서 자연스럽게 부르며 탄생한 전통 노래로 그 지역의 언어와 정서를 그대로 담고 있다.

민요의 특성은 지역에 따라 창법, 음정, 리듬에서 큰 차이를 보이는 것이다. 각 지역의 기후, 언어, 풍습 등이 그대로 노래에 반영되어 민족의 정서를 잘 나타낸다.

민요는 크게 토속민요(土俗民謠)와 통속민요(通俗民謠)로 나뉜다. 토속민요는 특정 지역의 생활과 노동 환경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한 민요로 강한 지역성과 독특한 정서를 지닌다.

반면, 통속민요는 대중적으로 널리 불리며 지역적 경계를 넘어 공통된 감정을 전달하는 노래다. 오늘날 우리가 흔히 아는 '아리랑' 이나 '도라지타령' 은 대표적인 통속민요에 속한다.

▲ 경기민요 합창의 한 장면. ⓒ국가유산청

토속민요는 지역성을 뚜렷이 나타내는 음악으로, 경기민요, 남도민요, 서도민요 등으로 나누어진다. 지역마다 창법과 표현방식, 감정 표현이 달라 같은 곡도 지역에 따라 매우 다른 색깔을 지닌다.

경기민요는 주로 서울과 경기 일대를 중심으로 발전했다. 맑고 경쾌한 음색, 우아한 가락이 특징으로, 부드럽고 세련된 느낌을 준다. 대표곡으로는 '아리랑', '도라지타령', '늴리리야' 등이 있다.

남도민요는 호남 지역 특유의 구성지고 깊은 감성을 드러낸다. 목청을 강하게 눌러내는 굵은 음색과 독특한 시김새(음의 장식)가 매력적이다. 대표적으로 '육자배기', '흥타령', '농부가' 등이 있다. 서도민요는 북한 평안도와 황해도를 중심으로 발전했다. 강한 비음과 애절한 목소리가 특징이며 대표곡으로는 '수심가', '배따라기', '긴난봉가' 등이 있다.

현대 민요는 크로스오버와 퓨전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고 있다. 최근 송소희, 이희문 같은 젊은 민요 소리꾼들은 전통을 기반으로 하면서도 팝, 재즈와 같은 현대 음악 장르와 결합하여 새롭게 탄생한 퓨전 민요를 통해 민요의 매력을 알리고 있다.

정가 : 절제의 미학을 지닌 품격의 선율

정가(正歌)는 조선 시대 궁중과 사대부 계층을 중심으로 발전한 전통 성악으로 느림과 절제, 여백의 아름다움을 특징으로 한다.

정가는 말 그대로 ‘바른 노래’라는 의미로 절제된 감정 표현과 섬세한 음악적 형식을 지닌다. 역동적이거나 화려한 기교보다는 담백하고 우아한 분위기와 깊이 있는 내면의 정서를 중시한다.

정가는 크게 가곡(歌曲), 가사(歌詞), 시조(時調)의 세 가지 형태로 나누어지는데 각각 독특한 형식과 매력을 갖고 있다.

가곡은 시조시를 기악 반주에 맞춰 부르는 음악으로, 남성과 여성이 부르는 곡이 따로 존재한다. 남성이 부르는 남창 가곡은 중후하고 안정적인 멋을 여성이 부르는 여창 가곡은 우아하고 섬세한 아름다움을 담는다. '우락' 이나 '편수대엽' 같은 곡은 가곡의 대표적 예로, 긴 호흡과 절제된 창법을 통해 듣는 사람에게 고요한 여운을 남긴다.

가사는 가곡보다 자유로운 형태로 긴 시적인 가사에 맞추어 문학적 감성과 철학적 메시지를 담아 노래한다. 주로 선비나 문인들이 삶의 이상이나 자연 속에서 느끼는 사색과 초탈의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애용했다. '춘면곡'이나 '백구사'와 같은 곡들은 인생의 허무와 아름다움을 서정적인 가사와 절제된 음악으로 풀어내어 깊은 감동을 준다.

시조는 짧고 간결한 시조를 노래한 것으로 정가 중에서도 가장 간결하면서도 깊은 울림을 지니고 있다. 긴 음악적 호흡이나 화려한 장식보다는 간결한 음 구성과 여백의 미를 강조하여 듣는 이에게 깊은 사색의 시간을 제공한다. '청산리 벽계수야', '동창이 밝았느냐' 와 같은 시조창은 한국적 정서의 단아함과 간결함을 보여주는 대표적 예이다.

최근에는 정가를 현대 감각으로 해석하는 다양한 시도들이 이어지고 있다. 정가극, 창작 정가 등은 그 대표적인 사례다.

정가의 고유한 미학을 유지하면서도 새로운 청중과 소통하려는 노력은 전통음악의 전승을 넘어 창조로 이어지는 흐름을 만들어내고 있다. 절제와 여백이 중심인 정가는 그 깊은 울림으로 오늘날에도 삶의 균형과 사색을 전하는 고유한 예술로 남아 있다.

▲ 무대에서 선보인 태평가의 공연 모습. ⓒ국립국악원

한국 전통 성악의 미래와 과제

한국의 전통 성악은 단순한 음악 형식을 넘어 우리 민족의 삶과 정서를 목소리로 풀어낸 예술이다.

판소리의 극적인 서사, 민요의 소박한 일상성, 정가의 사유적 울림은 각기 다른 미학을 품고 있으면서도 모두 ‘사람의 소리’라는 가장 원초적인 악기를 통해 전해진다.

이 전통 성악이 더욱 많은 이들에게 닿기 위해서는 다양한 장르와의 협업, 현대적 감각을 반영한 재해석이 필요하다.

판소리의 서사와 극적 매력을 활용한 뮤지컬이나 연극, 민요를 기반으로 한 현대적 음악 창작, 정가의 문학성과 철학적 가치를 활용한 교육과 콘텐츠 개발 등 새로운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

동시에 관련 기관과 지역 단체들이 연주자 양성뿐 아니라 일반 시민과의 접점을 늘리는 노력이 병행되어야 한다. 이를 통해 지역과 세대의 경계를 넘어 대중화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전통 성악은 과거의 유산이 아니라 지금도 계속 흐르고 있는 현재의 예술이다.

이 컬럼이 우리 소리의 가치를 재발견하고 더욱 친숙하게 다가가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며 일상 속에서 마주하게 될 그 한 소절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 울림이 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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