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아사자가 급증하며 이스라엘의 식량 제한으로 인한 가자지구의 굶주림이 한계에 이르렀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이스라엘이 가자지구를 봉쇄해 인위적 집단 기아를 만들고 있다고 비판했지만, 이스라엘은 가자지구에 기아가 없다는 주장을 고수하고 있어 가자 주민들이 굶주림으로 떼죽음 당할 수 있다는 공포가 커진다. 최근 기아 상황이 심각해지며 휴전 쟁점도 식량 지원 방식으로 옮겨 왔다는 보도가 나온다.
23일(이하 현지시간) 영국 일간 <가디언>을 보면 21개월간 지속된 가자지구 전쟁 아사자 중 거의 40%가 최근 3일 동안 발생했다. 가자지구 보건부에 따르면 2023년 10월7일 전쟁 발발 뒤 23일까지 가자지구에서 팔레스타인인 총 111명이 굶어 죽었는데, 이날 최소 10명이 굶어 죽고 전날 15명이 아사하는 등 3일간 발생한 아사자가 43명이나 된다.
팔레스타인 보건 당국은 전날까지 발생한 아사자 101명 중 80명이 어린이이며 대부분이 최근 몇 주 새 굶어 죽었다고 밝혔다.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식량 봉쇄 및 제한적 공급이 장기간 이어진 끝에 영양 공급 미비로 인한 사망자 증가 속도가 가팔라진 것이다.
<가디언>에 따르면 가자지구 북부 가자시티에 전쟁 기간 내내 머물렀던 주민 파이자 압둘 라흐만은 현 상황이 가자 북부에 가장 강한 식량 봉쇄가 가해졌을 때보다도 심각하다고 호소했다. 라흐만의 7개월된 손자는 심각한 영양실조로 입원 중이다. 손자 모하메드 알리와는 건강하게 태어났지만 어머니가 영양실조 탓에 모유를 생산할 수 없었고 지금까지 분유조차 두 통 밖에 구할 수 없었다고 한다. 라흐만은 "전에도 굶주림을 겪었지만 지금 같진 않았다"며 "지금이 우리가 견뎠던 것 중 가장 힘든 국면"이라고 토로했다.
가자지구 의료진은 면역력 저하 등 2년 이상 지속된 식량 부족의 누적된 결과가 나타나고 있다고 우려했다. <가디언>을 보면 가자지구 소아과 의사인 무사브 파르와나는 "아이들이 거의 2년간 기아에 고통 받아 왔다. 단순히 배부름의 문제가 아니라 몸에 필요한 영양소가 전혀 없다"고 설명했다. 영양 부족이 면역력 저하로 이어져 주민들이 다른 질병에도 취약해졌지만 이스라엘의 차단으로 의약품도 구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파르와나는 이번 주 중환자실에서 세 명이 사망했는데 그 중 한 명은 기본적 의약품인 칼륨 주사만 놓았어도 살 수 있었을 여자아이였다고 덧붙였다.
WHO "봉쇄 탓 인위적 집단 기아 발생"…구호 활동가·언론인도 굶주려
가자지구에서 활동하는 구호 단체, 언론인조차 굶주림을 피하지 못하고 있다. 24일 AP· AFP·로이터 통신 및 영국 BBC 방송은 공동성명을 내 "가자지구 내 우리 취재진과 그 가족들이 점점 음식 섭취를 할 수 없게 되는 데 대한 극심한 우려"를 표명했다. 이어 언론인들도 가자지구에서 "굶주림 위협을 받는 이들 중 하나"라며 가자지구에 언론인들이 드나들 수 있도록 허용하고 주민들에 충분한 식량 공급을 보장할 것을 촉구했다.
세이브더칠드런·국제앰네스티·국경없는의사회 등 109곳 구호단체도 23일 공동성명을 내 "가자지구 전역에서 집단 기아가 확산하고 있다"며 "물자가 완전히 고갈된 지금, 인도주의 단체들은 동료와 파트너들이 눈앞에서 쇠약해지는 것을 목도하고 있다"고 밝혔다. 성명은 "활동가들 또한 총에 맞을 위험을 무릅쓰고 배급을 받으려 줄을 서고 있다"고 덧붙였다. 성명은 "모든 육로 검문소를 개방하고, 원칙에 입각한 유엔 주도 매커니즘 아래 식량·깨끗한 물·의료용품·피난처 용품· 연료의 완전한 흐름을 복구"할 것을 촉구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가자지구의 "집단 기아"는 "봉쇄"로 인해 "인위적"으로 발생했다고 비판했다. 미 CNN 방송은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WHO 사무총장이 23일 언론 브리핑에서 "전쟁 지역인 가자지구에 갇힌 210만 명의 사람들은 총알과 폭탄 외에도 또 다른 살인자, 기아에 직면해 있다"며 "집단 기아는 인구의 상당 부분이 굶주리는 걸 의미한다. 그리고 가자 인구의 상당 부분이 굶주리고 있다. 이걸 집단 기아가 아니면 뭐라고 불러야할지 모르겠다"고 밝혔다. 이어 "이는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매우 명백하다"며 집단 기아 발생이 "봉쇄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스라엘 "가자지구에 기아 없다" 주장 고수…휴전 쟁점도 식량 지원으로 이동
국제기구와 구호단체들의 거듭된 비판에도 이스라엘은 가자지구에 굶주림이 없다는 주장을 고수했다. 23일 영국 방송 스카이뉴스를 보면 데이빗 멘서 이스라엘 정부 대변인은 "가자지구엔 기아가 없다"며 식량 부족은 "하마스가 조작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스라엘이 지난 5월 말 두 달 이상 지속된 가자지구 식량 완전 봉쇄를 끝낸 뒤 지금까지 가자지구로 4400대의 구호 트럭이 들어가는 것을 허용했다고 강조했다. 이는 일평균 70대 정도로 가자지구에 전쟁 전 들어갔던 일일 500~600대의 구호 트럭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규모다.
소량의 식량이 가자지구에 반입돼도 주민들은 이를 수령하기 위해 목숨을 걸어야 한다. 유엔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는 미국과 이스라엘이 지원하는 유엔을 우회한 가자지구 식량 배급 단체인 가자인도주의재단(GHF)이 가자지구에서 식량 배급을 시작한 5월27일부터 이달 21일까지 배급을 받으려던 팔레스타인인 1054명이 숨졌다고 밝혔다. 이 중 766명이 가자인도재단 배급소 인근에서 숨졌고 288명은 유엔 및 구호단체의 구호품 운송을 기다리다 숨졌다. 이스라엘군이 배급소 인근에서 주민들에 총격을 가하고 있다는 증언이 계속 나오는 상황이다.
기아 문제가 심각해지며 휴전 협상의 쟁점도 식량 지원으로 옮겨왔다고 22일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전했다. 이전에 알려진 쟁점은 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의 철군 범위였다. 신문은 아랍 중재자들에 따르면 휴전이 발효되면 인도적 지원 분배를 누가 담당할 것이냐를 놓고 협상이 교착 상태에 빠졌다고 보도했다. 하마스는 유엔과 팔레스타인 적신월사(이슬람권 적십자사)가 가자지구 구호를 담당해야 하고 가자인도재단은 구호에서 빠져야 한다고 주장 중이라고 한다.
중재자들은 반면 이스라엘은 유엔이 구호 물자를 통제하는 것에 반대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스라엘은 유엔을 통한 구호 물자가 하마스에 전용된다고 주장해 왔다. 이스라엘은 가자지구 구호를 주도했던 유엔 팔레스타인난민기구(UNRWA)가 하마스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이스라엘 공격에 가담했다는 혐의도 제기한 바 있다. UNRWA는 해당 혐의에 대한 조사를 벌여 지난해 직원 9명을 해고하기도 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