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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별 연금격차'의 또다른 원인…돌봄의 시간은 반영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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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별 연금격차'의 또다른 원인…돌봄의 시간은 반영되지 않는다

[서리풀연구通] 연금제도의 편향된 계산방식 바꿔야

한국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 노인 빈곤율 1위를 기록하고 있다.

노후의 가난은 단지 세대만의 문제가 아니라 그 안에서도 성별 격차가 두드러지는 모습을 보인다. 여성은 돌봄과 가사노동을 전담하며 경력이 단절되고, 비정규직·시간제 일자리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 그 결과 결혼과 출산, 돌봄으로 이어지는 생애 경로가 노후소득 불평등으로 누적되는 구조가 만들어진다.

오늘 소개할 논문은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서독과 네덜란드의 사례를 비교하며 성별 연금격차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분석했다(☞논문 바로가기: 정규직 고용만이 중요한가? 성별 연금격차에 관련성이 있고 젠더 배제적인 생애 과정 경험의 역할을 측정하기). 두 나라는 모두 '남성은 일, 여성은 돌봄'이라는 전통적 성역할이 깊게 자리 잡은 사회이지만, 연금이 설계된 방식과 그 철학은 극명하게 다르다.

서독은 '일한 만큼 받는' 비스마르크식 구조다. 노동시장 참여가 연금 자격을 결정하며, 개인의 직업·소득 수준·근속기간이 은퇴 후 연금액으로 그대로 이어진다. 장기간 안정적으로 일한 노동자에게 유리한 제도이기 때문에 경력이 단절되거나 돌봄으로 노동시장을 떠난 여성은 구조적으로 불리하다.

반면 네덜란드는 '모두에게 최소한을 보장하는' 베버리지식 모델을 따른다. 일정 기간 동안 거주하면 노동시장 참여 여부와 상관없이 기초연금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노동자가 가입하는 사적 직역연금은 고용 이력과 임금 수준에 따라 적립액이 달라져, 노동시장 불평등이 다시 반영된다.

결국 서독은 노동 중심의 제도 구조로 인해 돌봄과 경력 단절이 곧바로 연금 불평등으로 이어지고, 네덜란드는 보편적 기초연금을 제공하지만 사적 영역에서 격차가 발생한다. 두 나라의 비교를 통해, 동일한 돌봄의 경험이라도 제도가 그것을 어떤 원리로 평가하고 보상하느냐에 따라 노후소득 불평등이 전혀 다른 형태로 나타날 수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연금 불평등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기존 연구들은 성별 연금격차를 주로 "여성이 얼마나 오래 일했는가"로 설명해왔다. 하지만 이런 접근은 남성 중심의 '전일제 근속 경력'을 기준으로 한 안정적 노동자 모델에 편향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여성에게 훨씬 흔한 '돌봄 공백', '경력 단절', '재진입'의 반복을 포착하지 못한다.

이번 연구는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생애 경로' 전반의 특성을 통합적으로 분석했다. 연구자는 개인의 일생을 구성하는 노동·가족 경로의 수백 가지 변수를 검토해, 연금 불평등을 설명하는 결정 요인을 찾아냈다.

그 결과, 단순히 "얼마나 오래 일했는가"가 아니라, "언제, 어떤 순서로, 어떤 공백을 거쳤는가"가 연금 불평등을 좌우한다는 점을 밝혀냈다.

예를 들어, 전일제 근속 기간보다 돌봄 노동의 기간과 시기, 그리고 경력 단절이 일어난 순서가 연금격차를 설명하는 데 훨씬 강력한 요인이었다. 서독에서는 "무급 돌봄 노동을 얼마나 오래 했는가"가 연금 수준을 예측하는 두 번째로 중요한 변수였고, 돌봄을 언제 시작했는지(나이) 또한 큰 차이를 만들었다. 네덜란드에서도 돌봄 노동의 지속 기간이 연금 불평등을 결정하는 핵심 요인이었다.

전일제 근속보다 중요한 것들: 공백의 길이와 시점

이 연구가 보여준 핵심은, '연속적 근무'보다 '불연속적 경력'의 양상이 훨씬 중요하다는 것이다. 서독에서는 직업 안정성이 높은 공무원이나 정규직이 높은 연금을 받는 반면, 돌봄 공백이 길거나 반복된 여성은 제도적으로 보상받기 어렵다. 네덜란드는 기초연금이 보편적으로 지급되지만, 노동시장에서 불안정한 경력을 가진 사람일수록 누적된 사적연금이 부족해 격차가 커진다.

즉 두 나라 모두에서 연금격차의 핵심은 "일하지 않은 시간"이 아니라, 그 시간이 왜, 언제, 어떻게 발생했나에 있었다. 돌봄의 시간은 사회적으로 필요한 일이지만, 연금의 계산식에서는 '공백'으로 처리된다.

불일치하는 삶의 궤적

연구는 이어 남성과 여성의 생애 경로를 가능한 한 동일한 조건으로 맞춘 후에도 여전히 연금격차가 존재한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그 이유는 남성에게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 여성만의 경로가 있기 때문이다.

장기간의 무급 돌봄, 반복된 경력 단절, 어린 나이에 시작된 가족 돌봄 책임, 불안정한 노동시장 복귀 등은 여성에게만 주어진 전형적인 궤적이었다. 이러한 경로를 밟은 여성들은 남성과 직접 비교조차 어려웠고, 결과적으로 이들의 낮은 연금이 성별 연금격차의 핵심 원인인 것으로 드러났다.

서독에서는 특히 젊은 나이에 돌봄을 시작한 여성일수록 연금에서의 불이익이 컸고, 네덜란드에서는 돌봄 기간이 길수록 불리했다. 반면 남성에게는 더 긴 교육 연수나 공공 부문 경력 등 여성에게 거의 열리지 않았던 기회가 있었고, 이는 높은 연금으로 이어져 격차를 더욱 벌렸다.

무엇을 바꿔야 할까

연구자는 두 가지 접근을 제시한다. 첫째, 남성과 여성의 무급 돌봄 노동을 균등하게 분담할 수 있도록 사회적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둘째, 연금 제도 안에서 돌봄 노동을 유급 노동과 유사한 수준으로 인정하고 보상하는 구조를 마련하는 것이다.

독일, 네덜란드 등 여러 나라에서는 이미 '연금 크레딧(Credit)' 제도를 통해 이러한 보정을 시도하고 있다. 돌봄 때문에 소득이 없는 기간을 공백으로 두지 않고, 국가가 일정 소득을 납부한 것으로 간주하여 연금 가입 기간과 산정액을 보완하는 장치다. 한국도 2008년부터 출산 크레딧을 도입해 자녀를 낳으면 국민연금 가입 기간을 추가로 인정한다. 하지만 이 제도는 출산에만 한정되어 있으며, 부모 돌봄, 질병, 실직 등 다양한 공백은 여전히 반영되지 않는다.

결국 돌봄의 시간을 제도 안으로 끌어들어야 한다. 그 시간이 무급으로 제도 속 공백으로 남는 한 여성의 삶은 여전히 불일치한 궤적 위에 놓이게 된다. 연금격차는 개인의 선택이 아니라, 제도의 편향된 계산 방식이 만든 부정의한 결과다.

* 서지정보

Rowold, C. (2025). Full-time employment is all that matters? Quantifying the role of relevant and gender-exclusive life-course experiences for gender pension gaps. Social Forces, soaf143.

▲국민연금 여성통계 카드뉴스 일부. ⓒ국민연금공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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