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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현 "李 대통령 개인기로 핵잠 성과…윤석열이 지금도 대통령이었으면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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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현 "李 대통령 개인기로 핵잠 성과…윤석열이 지금도 대통령이었으면 못했다"

[정세현-박인규의 정세토크 시즌 2] "대통령은 9.19 복원 경축사에 넣었는데 참모들은 반대…참모들이 '방해'하나"

에이펙(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를 계기로 열린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 한국은 미국으로부터 핵추진잠수함 건조를 승인받았다. 이재명 대통령이 핵추진잠수함을 정상회담에서 제안했고 다음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를 승인하면서 군에서는 30년 숙원을 이뤘다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박인규 <프레시안> 고문과 대담에서 에이펙 기간 중에 가장 중요한 순간으로 이 장면을 꼽았다.

그는 "시진핑 중국 주석을 만나기로 돼 있는데도 이 대통령이 북한과 중국 때문에라도 핵추진잠수함이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을 보며, 한중관계가 우려되기도 했지만 저렇게 트럼프 대통령을 흔들어서 핵잠 기술을 주겠다고 말하게 하는 건 참모가 '말씀자료'를 써서 줄 수 있는 부분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순발력은 이재명 대통령의 개인기"라고 평가했다.

정 전 장관은 "이재명 대통령이 성남시장과 경기도지사를 거치면서 소위 일선 행정의 달인으로 각인돼 있어서 국제정치적 식견이나 외교술은 약하다고 봤는데, 이번에 보니까 어디서 배웠는지 모를 정도로 실력을 발휘했다"며 "소년공으로 일하면서 터득한 생존의 기술, 살아남기 위한 투쟁 과정에서 이런 순발력이 생겼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핵추진잠수함 건조 승인과 관련 "이번 에이펙 회의가 그동안 자주외교를 위한 역량의 양적 축적이 질적 전환을 가져온 계기가 됐는데, 자주국방의 물질적 토대를 마련하는 방향으로 운영해야 한다"며 미국으로부터 전시작전통제권 환수도 함께 진행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정 전 장관은 이번 에이펙에서의 또 하나의 포인트로 미중 정상회담을 짚었다. 그는 "시기적으로 굉장히 깊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2005년 부산에서 열렸던 에이펙 정상회의 때만 하더라도 미국이 중국을 의식할 필요가 없을 정도였다. 그런데 2010년이 되면서 중국의 GDP(국내총생산)가 미국의 40%까지 치고 올라오면서 세계 2위가 됐다"며 20년 동안 미중 간 상황이 변화됐다는 점을 지적했다.

박 고문은 "당초 트럼프 대통령이 고율의 관세를 통해 중국을 무릎꿇리려고 했지만 실패했고 중국의 대두 수입 재개 및 희토류 공급으로 관세 전쟁을 봉합했다"며 "이는 미국이 당초 목표를 포기했다는 점에서 미국의 패배라고 볼 수 있다"고 평가했다.

정 전 장관 역시 "미국이 중국에 무릎을 꿇은 거라고 볼 수 있다. 무역 전쟁을 1년 휴전한 건데, 내년이라고 중국이 희토류를 미국에 양보하겠나?"라며 "앞으로 대략 10년 정도 지나면 미국이 중국을 저지할 수 없는 상황이 될 것으로 본다"고 전망했다.

한편 정 전 장관은 지난 9월 이재명 정부의 관료들을 자주파와 동맹파로 나누면서 대통령 주변에 동맹파가 너무 많다고 발언한 데 대해 "복수의 관계자들로부터 들어 보니 9.19군사분야합의 복원에 반대하는 참모들도 있었는데 이재명 대통령이 경축사에 넣었다고 한다. 대통령은 9.19군가분야합의 이행을 국가장책으로 공표했는대, 참모들이 머뭇거리고 있는 셈"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이러면 참모들이 트럼프라는 '피스메이커'를 돕는 '페이스메이커'가 되겠다는 이재명 대통령의 보조자(assistant)가 되기는커녕, '페이스 디스럽터'(disruptor, 방해자)역할을 하고 있는 것 아닌가 싶어서 한마디 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대담은 5일 서울 공덕동에 위치한 (사)한국통일협회 사무실에서 진행됐다. 다음은 대담 주요 내용이다.

▲ 정세현(왼쪽) 전 통일부 장관과 박인규 <프레시안> 상임고문. ⓒ프레시안(이재호)

박인규 : 지난 9월에 더불어민주당에서 개최한 외교안보통일자문회의 세미나에 참석하셔서 대통령 주변에 동맹파가 너무 많다고 말씀하셔서 화제가 됐다.

정세현 : 지난 광복절 경축사에 9.19 군사분야합의의 선제적·단계적 복원이라는 구절이 있었는데 이게 8.15 광복절로부터 한달이 넘도록 이행되지 않고 있는 이유가 대통령 주변에 동맹파가 너무 많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했다.

복수의 관계자들로부터 들어 보니 9.19군사분야합의 복원에 반대하는 참모들도 있었는데 이재명 대통령이 경축사에 넣었다고 한다. 대통령의 공식연설은 바로 국가정책이다. 대통령은 9.19군가분야합의 이행을 국가장책으로 공표했는대, 참모들이 머뭇거리고 있는 셈이다.

이러면 참모들이 트럼프라는 '피스메이커'를 돕는 '페이스메이커'가 되겠다는 이재명 대통령의 보조자(assistant)가 되기는커녕, '페이스 디스럽터'(disruptor, 방해자)역할을 하고 있는 것 아닌가 싶어서 한마디 했던 것이다.

박인규 : 일부에서는 동맹파와 자주파로 나누는 것 자체가 자주파는 '동맹 생각 안하고 북한만 추종하는 세력'으로 프레임을 씌우려 하는 것으로 평가하기도 한다.

정세현 : 내가 규정하는 동맹파는 한미관계를 더 중시하는 세력들이고 자주파는 남북관계를 더 중시하는 세력이다. 그렇다고 이들이 한미관계만, 남북관계만 보고 있다는 뜻은 아니다. 자주파는 전체가 100이라면 남북관계를 70-80 정도로 중시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이고, 동맹파는 70-80 정도를 한미관계에 주력하고 있다는 뜻이다. 즉 비율의 문제지 대미 종속, 대북 추종 이런 의미가 아니다.

자주파는 미국 이야기 들을 필요 없다는 것이 아니다. 한미관계를 중시하지만 남북관계를 우선적으로 생각하자는 것이다. 동맹파도 남북관계를 완전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한미관계를 더 중시하면서 남북관계를 풀어가자는 것이다. 그런데 이를 복잡하게 말할 수 없으니 자주파-동맹파로 이야기한 것이다.

20년 전에 있었던 논쟁을 다시 끄집어 내는 이유가 뭐냐고 이야기들을 하는데, 남북관계가 평화적 관계로 안정되고 미국의 간섭이 줄어들 때까지는 언제든지 자주파 동맹파로 나뉠 수밖에 없다. 앞으로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박인규 : 지난달 말에 열렸던 에이펙(APEC)에서 경주 선언이 채택됐다. '자유무역'이라는 말은 못 넣었지만 무역 확대를 강조했다. 에이펙 계기로 가진 한미 정상회담에서는 이재명 대통령이 핵추진잠수함 추진을 언급하기도 했다. 에이펙에서 한국의 외교적 성과는 무엇이며 앞으로 주목해야 할 부분은 어디에 있다고 보시는지?

정세현 : 한미 정상회담도 중요하고 한중 정상회담도 의미가 있지만 미중 정상회담이 한국에서 열렸다는 것이 시기적으로 굉장히 깊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2005년 부산에서 열렸던 에이펙 정상회의 때만 하더라도 미국이 중국을 의식할 필요가 없을 정도였다. 그런데 2010년이 되면서 중국의 GDP(국내총생산)가 미국의 40%까지 치고 올라오면서 세계 2위가 됐다.

이후 2012년 11월 시진핑(習近平)이 중국공산당 총서기에 오른 뒤 2013년 3월 중국의 국가주석직도 겸직을 하게 됐다. 그러더니 2013년 6월 미국으로 가서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을 만났다. 그 자리에서 시진핑은 미국과 중국이 '신형 대국관계'를 구축하자고 했다. 이는 과거 미국과 소련의 경우 '제로섬' 게임의 대국관계였지만 미중은 '윈-윈'하는 대국관계를 구축하자는 의미였다.

그런데 중국을 소위 '대국'으로 인정해 달라는 것과 함께 "지금은 내가 완전히 무릎 꿇은 것은 아니지만 잠시 네 밑에 들어갈 수 있어. 하지만 언젠가는 내가 너를 이길 수 있어. 그때까지는 내가 너 앞에서 먼저 인사할 수 있어. 그러나 우리를 대국 취급해줘"라는 의미가 숨어있었다.

미국 입장에서 더 놀랐던 것은 시진핑이 "태평양은 중국과 미국이 나눠 써도 충분할만큼 넓다"고 이야기했던 지점이다. 이건 미국에 하와이를 기준으로 서쪽은 신경쓰지 말고 동쪽으로 나가라는 의미다. 그 이야기를 들은 미국이 중동과 아프가니스탄 등에 보냈던 미군을 철수하고 '아시아로의 회귀'(피벗투아시아·Pivot to Asia) 정책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도널드 트럼프(왼쪽)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달 30일 부산 공군 제5공중기동비행단 내 나래마루에서 미중 정상회담을 마친 뒤 회담장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이후 2017년 트럼프 첫 번째 집권기에 아베 신조(安倍晋三) 당시 일본 총리가 '인도-태평양 개념'을 내놨는데, 이걸 트럼프 대통령이 받아서 '인도-태평양전략'이라고 부르며 중국을 에워싸고 있는 국가들을 미국 편으로 끌어들여서 중국을 압박해 들어가는 정책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역시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했고 중국 경제는 계속 성장했고 따라서 군사력도 커졌다.

중국은 덩샤오핑(鄧小平)이 생존해 있던 1987년, 개혁개방이 시작된지 8-9년 만인 1987년 '두 개의 백년론'을 내놨다. 중국공산당 창당 100주년이 되는 2021년에는 '소강(小康)사회' 건설을,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100주년인 2049년에는 '대동(大同)사회' 건설을 목표로 하겠다고 밝혔다.

실제 2021년 중국은 1인당 소득 1만 달러를 달성했다. 중국은 빈부격차는 있지만 국민들이 그런대로 먹고 살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다면서 '소강사회'를 건설하게 됐다고 선언했다. 이제 남은 것은 대동사회 건설인 셈이다.

'대동사회'란 중국의 휘하에서 천하가 태평해지는 상황을 의미한다. 말하자면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를 대체할 팍스 시니카(Pax Sinica: 중국중심의 국제질서)를 2049년까지 건설하겠다는 것이 덩샤오핑이 제시한 두 개의 백년론인데, 시진핑은 팍스 시니카 달성을 '중국몽(中國夢)'이라고 규정하고 그 목표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이같은 과정으로 보면 이번 미중정상회담은 미국이 중국에 무릎을 꿇은 거라고 볼 수 있다. 무역 전쟁을 1년 휴전한 건데, 내년이라고 중국이 희토류를 미국에 양보하겠나? 앞으로 대략 10년 정도 지나면 미국이 중국을 저지할 수 없는 상황이 될 것으로 본다.

이런 상황을 트럼프가 예상하거나 인지하지 못하는 것 같다. '지피지기'(知彼知己, 상대에 대한 파악을 먼저 한 뒤 자신의 능력을 분석함)할 수 있는 지혜가 없는 셈이다. 중국이 국제적인 경쟁력 있는 물건을 만들어 내는 세계의 공장이라는 점을 전제하고 대중 정책을 추진해야 하는데 그런 것 없이 밀어붙이면 된다는 식이다.

박인규 : 당초 트럼프 대통령이 고율의 관세를 통해 중국을 무릎꿇리려고 했지만 실패했고 중국의 대두 수입 재개 및 희토류 공급으로 관세 전쟁을 봉합했다. 이는 미국이 당초 목표를 포기했다는 점에서 미국의 패배라고 볼 수 있다.

정세현 : 이번 APEC을 계기로 한국이 미중 정상 간 만나는 자리를 만들어 준 셈인데, 이 틈새를 파고 들어가서 한중관계를 복원하는 것이 필요하다. 미국과는 핵추진잠수함 문제를 미국 대통령으로부터 승낙 받았고, 시진핑과 관계를 잘 관리해서 적어도 윤석열 정부 이전으로 한중관계를 복원할 수 있는 토대를 닦았다. 그런 점에서 이번 에이펙 회의는 한국 외교의 지평을 넓히는 출발점이 된 것으로 본다.

이재명 대통령이 성남시장과 경기도지사를 거치면서 소위 일선 행정의 달인으로 각인돼 있어서 국제정치적 식견이나 외교술은 약하다고 봤는데, 이번에 보니까 어디서 배웠는지 모를 정도로 실력을 발휘했다. 소년공으로 일하면서 터득한 생존의 기술, 살아남기 위한 투쟁 과정에서 이런 순발력이 생겼다고 본다.

일부 행운도 좀 있었던 것 같다. 지난해 12월 3일 윤석열 당시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한 것이 결과적으로 한국에는 잘 됐다. 지금 윤석열이 대통령 자리에 아직도 있었다면 이렇게 못했을 것이다. 즉석에서 시진핑과 농담하면서 시진핑으로 하여금 한중관계에 협조적으로 나올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 가능했겠나.

박인규 : 이번 에이펙을 계기로 각종 정상회담과 회의가 열렸는데 가장 중요한 순간으로 꼽을 만한 일이 있었다면?

정세현 : 이재명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핵추진잠수함 이야기를 꺼낸 장면이다. 시진핑 주석을 만나기로 돼 있는데도 북한과 중국 때문에라도 핵추진잠수함이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을 보며, 한중관계가 우려되기도 했지만 저렇게 트럼프 대통령을 흔들어서 핵잠 기술을 주겠다고 말하게 하는 건 참모가 '말씀자료'를 써서 줄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그런 순발력은 이재명 대통령의 개인기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달 29일 경북 경주 힐튼호텔 그랜드볼룸에서 열린 이 대통령 주최 정상 특별만찬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축사를 듣고 있다. ⓒ연합뉴스

박인규 : 지난 8월 25일(현지시간) 한미 정상회담에서는 트럼프에게 당신이 '피스메이커'를 해라, 내가 '페이스메이커'를 하겠다고 했는데 이번에는 공개적으로 핵추진잠수함 이야기를 꺼냈다. 의도가 있어서 이야기한 것으로 보이는데?

정세현 : 트럼프의 과시욕 성정을 건드려서 받아낸 것으로 볼 수 있는데, 역사적으로 평가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개인기에 기초한 것이긴 하지만 한미 외교사에서 그 대목이 높이 평가돼야 할 것이라고 본다.

또 이 대통령이 미국과 관세협상에서 절대로 시한에 쫓기지 말라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나. 협상 전략에 입각해보면 협상할 때는 '원칙의 굴래'나 '시한의 굴레'를 쓰면 안되는데, 이 대통령은 협상대표단에게 시한을 의식하지 말고 경제적 합리성과 국익만을 생각하고 버티라고 했다. 결국 미국이 우리의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도록 만든 것이다. 매우 현명한 선택이었다.

박인규 : 한미 양측은 핵추진잠수함 도입과 한국의 방위비를 높인다는 계획도 가지고 있다.

정세현 : 방위비 올리는 것은 미국 요구를 들어주는 것 같지만 한국의 군사대국화로 연결되는 길이기도 하다. 대북 저지로만 사용된다면 낭비지만, 무기 산업 발전의 토대를 갖추고 전시작전통제권(이하 전작권)을 찾아오기 위한 물질적 기반을 마련하려면 방위비 증액이 필요하다.

박인규 : 자주 국방의 초석을 놓기 위한 국방비 증액이라는 뜻인가?

정세현 : 그렇다. 이번 에이펙 회의가 그동안 자주외교를 위한 역량의 양적 축적이 질적 전환을 가져온 계기가 됐는데, 자주국방의 물질적 토대를 마련하는 방향으로 운영해야 한다. 그러면서 전작권 환수를 시작해야 한다.

원래 노무현 정부 때 한미가 2012년 4월 17일 전작권 환수를 하기로 합의를 해서 발표까지 했얶더. 그런데 이명박 정부가 이걸 2015년 연말로 미뤘고 이후 박근혜 정부에서는 환수 기준을 시한이 아닌 북한의 비핵화라는 조건으로 바꾸면서 전작권 환수 문제가 표류를 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건 동아시아 정세의 변화도 영향을 미친 부분이 있다. 2010년대부터 중국이 부상하면서 미국 입장에서는 한국에 전작권을 돌려주는 것이 아시아에서의 군사적인 패권을 유지하는데 불리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오기 시작했다. 중국에 대한 압박을 높여야 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박인규 : 전작권을 환수하게 되면 유엔사령부는 없어져야 하는 것 아닌가?

정세현 : 지금 유엔 사무처나 사무총장은 유엔사와 상관이 없다. 유엔 깃발만 사용하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유엔의 깃발을 계속 쓸 것인지의 문제가 나올 것이다. 법리적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는 법무부든 대통령 안보실에서든 국제법 전문가의 자문을 받아 해결하고 넘어가야 한다. 현 상황이면 전작권 환수 이야기 못한다. 환수했다는 것을 확실하게 인식시키려면 유엔사 깃발 내려야 한다.

박인규 : 김대중-노무현-문재인 정부 등 민주 정부들은 안보에 취약하다는 여론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국방비를 늘려온 측면이 있다. 이재명 정부도 이같은 흐름에서 국방비를 늘렸는데 이렇게 된 거 핵추진잠수함 문제를 확 질러버리면서 국내 정치에서 우위를 차지해 보자는 생각이 있지 않았나 싶은데, 이럴 경우 남북관계에는 좋지 않은 영향이 있을 것 같다.

정세현 : 북한한테는 아마 굉장히 민감하게 꽂혔을 것이다. 실제로 북한을 공격해 들어오는 '행동'이 일어난 건 아니지만 그럴 수 있는 가능성이 더 높아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핵추진잠수함을 만들어서 지금은 재래식 무기를 싣고 다닌다고 그러지만 얼마든지 SLBM(잠수함 발사 탄도 미사일)로 될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북한 입장에서는 남한에 제해권을 사실상 뺏길 수 있는 가능성이 커진 셈이다.

남한이 자금도 많고 잠수함 건조 능력도 좋기 때문에 군비 경쟁에 돌입하면 북한이 따라오기 어렵다는 측면도 있다. 물론 1~2년 내에 핵추진잠수함 건조가 가능하지는 않겠지만, 한국 사람들의 '빨리빨리' 정신 때문에 10년 이상 걸릴 사업의 시간이 단축될 가능성도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해부터 시작한 '지방발전 20X10정책'을 통해 2033년까지는 의식주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소위 북한판 '소강사회'를 만드려고 하는데, 이게 생각처럼 잘 진행되지 않는 상황이다.

이런 와중에 남한이 핵추진잠수함을 만들면 북한 입장에서는 자기들 바다에 들어와서 무슨 장난을 치고 갈지 모르는 상황이 되기 때문에 이를 감시·경계 견제하기 위해 국방 분야에 더 많은 투자를 해야 한다. 북한은 처음에는 강하게 반발하다가 투자 비용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감당하기 어려워지면 외교적 해결책을 찾으려 할 수도 있다. 지금이야 남한을 '적대적 두 국가'로 규정하고 있지만.

박인규 : 남북관계에는 악화 요인인데, 이걸 좋게 포장해서 보면 '힘을 통한 평화 추구' 이기도 한 것 같다.

정세현 : 미소 군비 경쟁에서 소련은 군비 경쟁을 계속하다 보면 인민 경제가 망하게 될 것이라 보고 결국 미국에 손을 들게 됐다. 북한도 비슷해질 가능성이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핵추진잠수함 도입하는 과정에서 미국의 요구에 순종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질적으로 국방력을 늘릴 수 있는 방위 투자를 높이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되면 북한이 감당을 못하게 된다. 지금은 말로 비판할 수 있지만 더 이상 말 가지고 안 되고 군사적으로 대비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오기 전에 군비 통제 또는 감축으로 가자고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런 상황이 5년 안에 온다고 본다.

12월 중순에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를 열어서 내년 초 9차 당 대회를 계획해야 하는데, 다음 당 대회가 열릴 2031년까지 5년 동안 인민들에게 경제 발전 목표를 분명히 제시해야 한다. 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역시 언제까지 이렇게 갈 수는 없는 상황이다. 이 전쟁 끝나면 북한이 어디에 손을 벌리겠나.

박인규 : 결국 북한에게도 북미 관계 정상화가 필요해 보인다.

정세현 : 트럼프가 북한이 핵을 많이 가지고 있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동결하라는 말을 풀어서 한 것이라고 본다. 즉 북한에 비핵화를 요구하지 않을 것이니 동결이나 비확산 정도에서 끝내자는 것과 함께 NPT(핵확산방지조약) 체제로 돌아오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의도가 들어있다고 본다.

근데 그것만 가지고는 김정은 위원장이 못나간다고 하면서, 트럼프를 좀 초조하게 만들어서 다른 협상 카드를 내놓게 하기 위해 최선희 외무상을 러시아로 보냈다고 본다. 원래 벨라루스에서 열리는 회의를 앞두고 최선희를 러시아로 보냈는데 가도 그만 안가도 그만인 러시아 방문이었던 것 같다. 김정은의 방러는 아직 결정된 바가 없다는 얘기가 오히려 러시아 쪽에서 나왔다. 그러니까 이런 중요한 논의를 하러 간 것은 아니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참석한 가운데 노동당 창건 80주년 경축행사가 지난 10월 9일 평양 능라도 5월1일경기장에서 진행되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0일 보도했다.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최선희가 10월 26일 러시아로 떠났다고 하니 트럼프는 27일 말레이시아에서 일본으로 오면서 북한이 회담에 나오면 제재 문제를 논의할 수 있다는 식으로 이야기하기도 했다. 그런데 김정은 입장에서는 이것보다는 2018년 6월 12일 첫 북미정상회담 당시 싱가포르에서 했던 약속을 받고 싶을 것이다.

물론 북한도 계속 버티기는 어려운 측면도 있다. '지방발전 20X10정책' 성공시켜야 하는데 이거 하려면 필요한 자금이나 원부자재가 외부로부터 들어와야 한다. 그러려면 미국이든 남한이든 관계 개선을 해야 하는데, 미국은 사실 직접 지원해주고 이러지는 않는다. 러시아는 전쟁 끝나면 모른척 할 거고 중국은 북한을 키워놓으면 대들었던 경험만 있기 때문에 '불가근불가원'의 자세를 유지하고 있다. 결국 남한과 해야 하는 건데, 북한이 '적대적 두 국가' 입장을 수정해야 할 것이다.

박인규 : 북미 간 물밑대화 가능성은 없나?

정세현 : 주유엔 북한 차석대사 자리가 비워져 있다고 한다. 그러니까 미국에서 말을 걸어도 대꾸할 창구가 없었다는 얘기다.

다만 케빈 킴 미 대사대리가 얼마 전에 부임했는데 그는 트럼프 1기 정부 때 스티븐 비건 당시 미 국무부 대북특별대표 밑에서 일하면서 2018~2019년 북미 스톡홀름 실무협상에 참여하기도 했다. 이런 배경을 보면 뉴욕에서 워싱턴을 왔다 갔다 하면서 북한외교관들과 대화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래서 북한이 트럼프 방한 전 혹시 모를 회동에 대비해 판문점 청소하고 손님 맞이할 준비를 한 것일 수도 있어 보인다. 이렇게 보면 북한은 미국이 주려고 하는 반대급부가 마음에 들지 않았을 수도 있다.

2018년 6월 12일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 때 합의했지만, 이후 당시 국무장관 폼페이로 등 네오곤의 반대 때문에 입구에도 다가가지 못했던 '새로운 북미관계 수립'을 원하는데 이걸 해주겠다는 사인을 안 보내니까 김정은으로서는 이번 트럼프와의 만남이 의미가 없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

박인규 : 워낙 세계적 혼란기라서 앞으로 많은 외교적 도전이 있을 텐데, 지금은 불통이지만 남북관계를 어떻게 안정적으로 관리할 것인가가 중요할 것 같다.

정세현 : 우리가 '페이스메이커' 역할을 하려면 우선 내년 북미정상회담이 순탄하게 준비될 수 있도록 한국이 아이디어를 내고 로드맵까지 만들어서 미국을 설득해야 한다. 이번에 트럼프가 에이펙을 전후해서 내놓은 1) 핵보유국 지위 인정 2) 대북제재문제 논의 등 반대급부가 북한에 매력적이지 않다는 점을 알려야 한다. 2018년 싱가포르 합의로 돌아가서 종전선언 하고 '새로운 북미관계 수립' 협상을 해야 한다고 미국을 부추기고 설득해야 한다.

이와 함께 북한의 체면 상하지 않게 인도적 지원이라든지 이런 것을 하라고 남한에서도 좀 이야기가 나와야 한다. 북미정상회담으로 아스팔트가 깔리면 남북 민간 차원에서의 버스가 달리고 그 뒤에 관용차가 따라가는 방식으로 가야 한다. 말하자면 선북미 후남북(先北美 後南北), 선민후관(先民後官)으로 방향을 잡아야 한다.

박인규 : 트럼프는 내년 중간선거에서 이겨야 하는데 우크라이나-러시아, 이스라엘-하마스 간 전쟁 문제는 어려워졌고 북핵 문제가 그래도 상대적으로 풀기 쉽지 않나.

정세현 : 트럼프가 노벨평화상 받고 싶으면 김정은과의 회담에서 실질적인 성과가 나와야 하는데, 내년 노벨평화상 수상자 발표 마감일인 10월 10일 이전에 북미수교를 위한 연락사무소 설치 정도가 되면 트럼프의 노벨평화상 수상 가능성도 있다고 본다. 그렇게 해서 상 받으면 중간선거에도 상당한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러려면 트럼프 1기 때 폼페이오 국무장관 같은 네오콘이나 아베신조(安部晉三) 같이 북미관계 개선 반대하는 일본의 극우세력들이 파놓는 함정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

트럼프 2기 정부에 국무장관이 된 루비오는 극단적인 반북반중(反北反中) 인사라는데, 1기 때 폼페이오가 그랬던 것처럼 루비오도 트럼프와 김정은 정상회담 후 합의이행을 의도적으로 지연시키거나 북한의 반발을 유도하는 꼼수를 쓰지 못하도록 단속을 해야 할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제2의 아베신조'-'여자 이베신조'라는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 총리를 비롯한 극우성향 일본 정부의 북미관계 개선 방해 동향도 견제하도록 한미 간에 긴밀한 협력을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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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호

외교부·통일부를 출입하면서 남북관계 및 국제적 사안들을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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