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 7년만에 국빈 방문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비핵화를 포함해 북한 핵에 대한 어떠한 언급도 하지 않으면서 사실상 북핵을 인정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북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협상 분위기도 마련되지 않는 가운데 비핵화가 점점 더 불가능한 과제가 돼가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박인규 <프레시안> 상임 고문은 이번 북중 정상회담으로 "북한은 외교적, 경제적 고립에서 벗어났고 중국은 미중 전략경쟁에서 유리한 패를 하나 확보했다는 분석도 있다"라며 "시진핑의 방북으로 북한의 전략적 위상이 대단히 커졌다. 이런 측면이 아주 확실하게 드러난 것 같다"고 총평했다.
박 고문은 "북한 입장에서는 2013년도 이후, 특히 2019년도 이후에 어떻게 보면 약간 소원했던 조중(북중) 관계가 정상화되면서 중국으로부터 큰 경제 지원을 받을 수있게 된 것이 소득이 될 것 같다"고 평가했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중국이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을 고려하고 북한에 국빈 방문한 것 같다는 관측을 내놨다. 미국이 이란과 전쟁 및 간접적으로 얽혀 있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만 끝나면 다시 인도-태평양 전략을 기반으로 중국 견제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다.
정 전 장관은 "이렇게 되면 중국은 한반도가 미국의 대중 압박 견제의 전선에서 이전과는 다른 역할을 하거나 위상이 바뀔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예상했다고 본다"라며 "미국의 대중 압박을 완화시키거나 상쇄시킬 수 있는 레버리지나 카드로 북한이 상당히 유용하다고 생각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북한 역시 중국의 방문에 상당한 공을 들였다. 정 전 장관은 "아주 융숭하게, 국빈 방문 중 최고급으로 대접을 한 것 같은데 김정은이 시진핑한테 지금 뭘 좀 받아 내려고 하는 것 같아 보였다. 말하자면 소위 '요구 물품 리스트'가 엄청나게 있는 것처럼 보였다"라며 "거하게 대접해서 시진핑으로부터 소위 '뽕 뽑으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북한은 이번 회담을 통해 중국으로부터 경제적 지원뿐만 아니라 사실상의 핵 보유국 승인도 얻어낸 것으로 보인다. 정 전 장관은 시 주석이 북핵을 아예 언급하지 않은 것을 두고 "어쩌면 트럼프보다 훨씬 더 무게감이 있는 승인 내지 인정이 됐다. 쉽게 말해서 김정은은 대박이 난 셈"이라고 진단했다.
이렇게 북중 간 밀착이 강화되면서 북한이 미국이나 한국을 더 이상 바라볼 이유가 없어졌다는 관측도 나온다. 제재 문제는 러시아와 중국을 우군으로 끌어들이면서 어느 정도 해결했고 경제 문제도 중국에 의존하면서 남한과 관계를 고려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을 만들었다는 분석이다.
그럼에도 남한이 북한과 관계를 이어가기 위해 정 전 장관은 "북한이 필요로 하고 중국이 그걸 뒷받침을 못하는 아이템은 있을 것이다. 이걸 찾아야 하는데 정부가 나서서 이를 찾기는 어렵다. 정부보다는 민간을 앞세우는 것이 더 나을 수 있다"라며 최근 제주도가 신장 투석기 및 한라봉 묘목을 보낸 것과 같이 북한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를 우선 알아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 전 장관은 "민간 루트를 통해서 계속 물줄기를 올려보내면서 그들의 수요를 충족하고 그를 통해 군사 상황을 안정적으로 끌고 나가는 것이 평화 공존의 출발점"이라며 "민간 차원에서 그들이 절실히 필요로 하는 분야의 물자를 지원해 주면서 군사적으로 분란을 일으키지 않도록 하는 틀을 짜고 이후에 공동 성장을 구상해 볼 수 있다"고 제안했다.
대담은 지난 10일 서울 공덕동에 위치한 (사)한국통일협회 사무실에서 진행됐다. 다음은 대담 주요 내용이다.
박인규 :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이 7년 만에 북한에 국빈 방문했다. 중미, 중러 정상회담 직후에 이뤄진 방문이었는데 공동선언이나 발표가 없긴 하지만 양측에서 나온 보도를 보면 소통을 강화하고 협력을 심화시키며 조중(북중) 간 신시대를 만들어가겠다고 한다.
시 주석의 방북 전에 일부에서는 북한 핵 문제와 관련해 시 주석이 중재 역할을 하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있었다. 또 중국 두만강을 통한 동해 출해권 문제가 논의될 것이라는 전망도 있었는데 공개된 것은 없는 상황이다.
이와 함께 2024년 북한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도움을 주면서 조로(북러) 관계가 좀 강화됨에 따라 조중 관계도 더 중시되는, 즉 중국과 북한이 중러 간 관계를 이용해 위상을 높이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이야기도 있다. 북한은 외교적 경제적 고립에서 벗어났고 중국은 미중 전략경쟁에서 유리한 패를 하나 확보했다는 분석도 있는데, 시 주석이 7년 만에 국빈 방문한 배경은 어디에 있다고 보시는지?
정세현 : 7년 만의 방문을 부각시키는 분석들이 있는데 시간은 특별한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중국 입장에서는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을 고려하고 움직인 것 같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미국이 간접적으로 개입돼 있고 이란 전쟁에는 직접적으로 개입이 돼 있어서 현재 중국을 견제하는 인도 태평양 전략을 통한 대중 압박이 조금 소강상태인 상황이다. 그런데 시진핑 입장에서 볼 때는 이 전쟁들이 모두 해결되면 미국이 다시 '아시아로의 회귀'(Pivot to Asia)를 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지금은 미국이 전쟁에 묶여 있지만 끝나면 다시 인도-태평양 전략을 가지고 또 중국을 압박해 들어올 텐데, 이렇게 되면 한반도가 미국의 대중 압박 견제의 전선에서 이전과는 다른 역할을 하거나 위상이 바뀔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예상했다고 본다. 미국의 대중 압박을 완화시키거나 상쇄시킬 수 있는 레버리지나 카드로 북한이 상당히 유용하다고 생각한 것 같다.
북한이 당장은 러시아로부터 석유도 지원받고 식량, 무기 기술까지도 받고 있지만 중국이 보기엔 이건 오래 못간다고 판단하는 것 같다. 전쟁 끝나면 이것도 같이 끝난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다.
북한이 다음 10차 당 대회인 2030년까지 밀고 나가야 할 '경제발전 5개년 계획'뿐만 아니라 2024년부터 2033년까지 추진중인 '지방발전 20×10 정책'도 있어서 많은 원부자재를 투입해야 하는데, 중국이 볼 때는 지금 북한은 원부자재가 턱없이 부족해서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고 판단한 것 같다. 따라서 지금 어려울 때 북한의 욕구를 충족시켜주면 그 다음에는 북한이 자신의 손아귀에 들어오고 최소한 북한을 중국 편으로 좀 더 가깝게 끌어다 놓게 되면 중국이 미중 갈등 상황에서 좀 더 우위에 설 수 있다고 생각한 것 같다.
인도-태평양 전략에 대해 이재명 정부는 윤석열 정부 때와 다소 협조의 강도가 다른데,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는 한국이 계속 이대로 가게 하기 위해 중국으로서는 북한이라는 카드를 대(對) 한국 외교에서도 쓸 수 있을 것으로 본 측면도 있어 보인다. 이렇게 하려면 북한을 자신의 편으로 만들어 놓아야 하는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북한은 공항 영접부터 시작해서 김일성 광장에 사열대 만들어 놓고 대대적인 군중 집회 형식의 환영회를 하는 등 엄청 준비를 많이 했더라. 아주 융숭하게, 국빈 방문 중 최고급으로 대접을 한 것 같은데 김정은이 시진핑한테 지금 뭘 좀 받아 내려고 하는 것 같아 보였다. 말하자면 소위 '요구 물품 리스트'가 엄청나게 있는 것처럼 보였다. 거하게 대접해서 시진핑으로부터 소위 '뽕 뽑으려는' 것이다.
그런데 수행원을 보니까 시진핑은 그걸 들어줄 준비를 해가지고 왔더라. 경제 분야는 북한의 수요를 충족시켜주기 위해서, 국방 분야는 자기들의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데리고 간 것처럼 보였다. 중국이 북한의 요구를 들어주면 김정은으로서는 안보 분야에서 중국이 필요로 하는 부분을 들어줄 수밖에 없다. 두만강으로 나갈 수 있는 출해권 문제다.
이게 경제 사안이라고 볼 수 있는데 안보 차원에서도 굉장히 중요하다. 일단 북극항로 개발에 있어서 군함의 보호가 있어야 하기 때문에 중요한 측면이 있고,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 일본 총리가 대만 문제를 가지고 중국의 심기를 건드리고 헌법을 개정하는 등의 계획을 세우고 있는데 이에 대응하기 위한 계산도 있어 보인다.
시 주석이 <로동신문>에 게재한 기고문이 북한 방문 당일인 8일에 게재됐는데 여기에 "군국주의부활을 꾀하고 지역의 안전과 안정에 위해를 주는 모든 야욕과 책동을 반대해야 한다"라고 쓰여 있었다. 군국주의의 부활을 추구하는 일본이 대만 문제와 관련해 군대를 파견하는 등의 행동을 할 때 이를 뒤에서 잡아당기려면은 두만강 하구와 동해 쪽에서 군함이 움직여야 한다.
예를 들어 중국 본토에서 출항시켜서 일본 쪽으로 가는 것보다는 동해 쪽으로 나가면 일본을 뒤에서 괴롭힐 수 있다. 그런 군사적인 필요도 이번 방북 배경 중 하나인 것으로 보인다.
한편으로는 미국에서 시진핑이 2027년 10월 열리는 당 대회 때 4연임을 달성하기 위해 대만을 점령할 것이라는 이야기도 나오는데 이건 미국의 국방부 주변의 군산복합체와 연결된 싱크탱크에 있는 사람들이 만드는 시나리오다. 무기 시장을 계속 유지 발전시키기 위해서.
그런데 시진핑이 먼저 대만을 건드리지 않을 경우 중국이 어쩔 수 없이 군사 행동으로 나올 수밖에 없도록 미국이 자극할 수는 있다. 그런 식으로 중국이 개입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 때 주한미군을 포함해서 미국이 대만에 전력을 다하지 못하도록 하려면, 북한이 중국 편에 서서 한반도에서 군사적 분란을 야기해 주는 것이 도움이 된다는 계산을 중국이 했을 수도 있다. 이건 우리가 고민하고 대책을 세워야 할 부분이기도 하다.
북중 정상이 국경 지역의 통상구(通商口)를 전부 전면 재가동하기로 했는데 이는 훈춘이나 도문, 신의주와 단둥 등 접경지역에서의 무역 등 경제활동을 열어주겠다는 뜻이다. 통상 차원에서 완전히 북중 관계를 복원하는 측면도 있지만, 이런 활동을 보장해 주면서 두만강 하구로의 출해권을 받아내는 합의를 했을 수 있다.
지난해 북한에서 중국의 훈춘을 거쳐 러시아 하산으로 넘어가는 자동차 다리 공사를 했는데 이걸 중국이 용인해줬다. 따라서 러시아도 북한도 중국의 두만강 출해권을 보장해 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박인규 : 시진핑의 방북으로 북한의 몸값이랄까 전략적 위상 등이 대단히 커졌다. 이런 측면이 아주 확실하게 드러난 것 같다.
그런데 트럼프가 우크라이나 전쟁도 못 끝냈고 이란 전쟁에서도 발목이 잡혀 있어서 일각에서는 그나마 할만한 북한 핵 문제를 건드릴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다. 중국이 북한과 미국 사이에서 일종의 중간 조정 같은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 또는 관측 등이 있었다.
정세현 : 북한의 비핵화 문제는 중재할 수 있는 단계는 지났다고 본다. 돌아오지 않는 다리를 이미 건너게 됐다. 트럼프는 취임 초에 김정은과 북한에 대해 '뉴클리어 파워'(Nuclear Power) 라며 핵 보유를 인정했고 심지어 더 만들 필요는 없다는 얘기까지 한다는 것은 이제 동결·축소하자는 뜻이다.
그런데 국무부나 국방부 쪽 관리들은 아직도 비핵화 노래를 부르고 있고 한국이나 일본은 여기에 동조해서 북한 비핵화에 대해서 3국이 계속 기존 입장을 견지하겠다고 발표하고 있는데, 중국 입장에서 볼 때는 "쟤들 아직도 헛짓하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미국이 비핵화 요구한다고 북한이 이를 들을 상황은 이미 지났다. 이미 북한이 핵을 50~60개 가지고 있다고 있다고 하는데 이걸 어떻게 없애나.
이번 시진핑의 방북을 계기로 북한도 인도나 파키스탄, 이스라엘처럼 사실상의 핵 보유국으로 중국이 인정을 한 게 됐다. 미중 정상회담에서 트럼프가 북한 비핵화를 이야기했는지, 이야기를 했다고 하면 시진핑이 뭐라고 대응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시진핑이 방북하기 전날인 7일 김여정 부장 담화를 보더라도 북중 회담에서는 비핵화 이야기는 나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는 어쩌면 트럼프보다 훨씬 더 무게감이 있는 승인 내지 인정이 됐다.
박인규 : 조중 회담에서 비핵화를 당면 목표로 내세울 수는 없으나 동결을 전제로 한 북미 관계 정상화 정도까지는 이야기가 됐을 가능성도 있지 않았을까?
정세현 : 지난해 6월 4일 취임 이후 첫 일본 방문을 앞둔 이재명 대통령이 그해 8월 21일 <요미우리 신문>과 인터뷰에서 북핵 문제 해법을 '동결 → 축소 → 비핵화' 3단계로 제시했었다. 이를 미국에서 일리 있다고 받아들이는 전문가들이 있다는 것을 중국이 의식했다면 "사실 그거밖에 방법이 없어" 하는 식으로 중국은 입장을 정했다고 본다.
그동안 중국은 북핵 문제 해결에 있어 '쌍중단'과 '쌍궤병행'을 이야기했다. 쌍중단은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중지와 한미 연합 군사 연습을 중단하는 것이고 쌍궤병행은 비핵화 협상과 정전 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는 협상을 동시에 진행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쌍중단 이야기를 할 수 없게 됐다. 해봤자 소용이 없어진 셈이다. 이제 북한이 핵실험이 아닌, 핵을 생산하는 상황 아닌가.
박인규 : 그럼 중국 입장은 북한을 사실상 핵보유국으로 인정하고 이걸 동결하는 정도까지도 추진할 생각도 없다는 것인가?
정세현 : 중국 입장에서는 북한이 핵을 가지면 중국에 대한 의존도도 떨어지고 통제하기 어려울 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미국의 대북 정책이 오락가락하면서 결국은 트럼프 대통령 1기 집권 때 이미 북한의 여섯번째 핵실험까지 끝나버렸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에 핵실험을 하지 말라고 해봐야 의미가 있겠나 싶은 생각이 들 것이다. 쌍중단은 의미가 없어진 셈이다.
쌍중단, 쌍궤병행도 현실적으로 어려워졌다. 이제 중국으로서는 핵 문제는 얘기를 꺼내지 않은 채 북한이 핵을 가진 것을 사실상 인정해주고 북한을 중국 편으로 끌어들여서 미국과의 세력 다툼에서 중국이 좀 영향력을 키우는 것이 낫지 않냐는 생각을 가질 수 있다.
박인규 : 그렇다면 중국의 동해 출해권 문제에서도 상당 부분의 양해가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정세현 : 가능하다고 본다. 보도를 보면 중국은 지금 북한이 필요로 하는 걸 다 주겠다는 입장이다. 심지어 의료 부문, 보건 부문도 지원하겠다고 하는데 북한이 20×10 정책을 통해 공장만 짓는 것이 아니라 보건소나 병원 봉사소 같은 것도 지으려고 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런데 실제 이게 효과가 있으려면 MRI, CT, 엑스레이 등 장비와 주사기, 청진기 등 자재도 들어가야 하는데 북한은 이런 수요를 감당할 능력 없다.
제주도 오영훈 지사가 지난해부터 북측과 접촉해서 인도적 지원을 한다고 하던데, 여기에 신장 투석기가 포함돼 있다. 이거 아마 북한 측에서 달라고 했기 때문에 줬을 것이다. 북한이 영양 상태나 위생이 좋지 않아서 신장 나쁜 사람 숱하게 나왔을 가능성이 높다. 신장 투석을 해야 할 사람이 적지 않다고 했을 때 이 자재를 보장할 수 있는 곳은 제주도보다는 중국이 될 가능성이 높다.
제주도로부터 받고 보니 북한 내부의 여러 군데서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나왔을 것이다. 신장투석기뿐만 아니라 치료용 또는 검사용 자재 장비 등이 많이 들어갈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이를 중국이 지원해주면 김정은은 이거 받아서 인민들의 일상생활과 건강보호 수준을 높여줬다고 하는 찬사를 받을 것이다. 이걸 중국이 보장해 주겠다고 했을 수 있다.
시 주석이 <로동신문> 기고 글에 옛날 이야기를 잔뜩 써놓더니 가는 날에 중조 우의탑에 헌화를 하고 중앙당 간부 학교를 들렀다. 중조 우의탑은 과거를 잊지 말자는 것, 중앙당 간부 학교를 들렀다는 것은 앞으로 사회주의 혈맹으로서의 동지 관계를 계속 이어나가자는 것이다. 북한과 중국이 이념적으로 한 편이라는 점을 확인하면서 같은 방향으로 갈 것이라는 상징성이 크다고 본다. 쉽게 말해서 김정은은 대박이 난 셈이다.
한미 필요 없어진 북한,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박인규 : 두만강 하류를 통한 출해권이 단순히 경제문제가 아니라 군사적 측면의 투사라는 부분이 중국이 원하는 것이었고, 합의가 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인다.
북한 입장에서는 2013년도 이후, 특히 2019년도 이후에 어떻게 보면 약간 소원했던 조중 관계가 정상화되면서 중국으로부터 큰 경제 지원을 받을 수있게 된 것이 소득이 될 것 같다. 그러면서 전략적 지위도 높아졌는데 그렇다면 북한이 이런 상황에서 굳이 남북 관계를 정상화하고 북미 관계를 개선할 필요가 없어지는 것 아닌가? 그런 상황이라면 남한은 여기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정세현 : 이번 시진핑 방북을 통해 북중 관계가 긴밀해지고 북한이 중국의 품을 떠날 수 없도록 딱 묶어두고, 여기에 북미 정상회담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가시권 내에 들어오지도 않고 하면 북한은 미국과 관계개선에 별로 의지를 보이지 않을 수 있다.
2018년 6월에 있었던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에서 약속했던 새로운 북미관계 수립, 다른 말로 북미 수교인데 이미 트럼프에게 뒤통수 맞은 적 있는 김정은 입장에서는 트럼프를 만나봐야 그 약속이나 합의가 언제 또 뒤집어질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특히 이란 전쟁을 보면서 트럼프에 대한 불신도 커졌을 것이고.
중국이 북미 정상회담 다리를 놓을 필요도 없지만, 이걸 성사시켜서 챙길 수 있는 이득이 없다. 오히려 북미 관계가 개선되고 미국 연락사무소가 평양에 설치되면 중국 입장에서 볼 때는 그야말로 '인중(人中)의 비수(匕首)가 될 수도 있다.
북한이 우리와 거리를 두고 담장을 높이 쌓고 있기 때문에 우리로서는 북미 정상회담이 성사되면 그 연장선상에서 남북 관계도 좀 개선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래서 거기서 바늘 구멍이라도 뚫리지 않겠는가 하는 기대를 한 때 했었는데 이번 일로 그 꿈은 접어야 될 것 같다.
북한 입장에서는 경제 문제가 좀 힘들었는데 이번에 조중 관계가 정상화되면서 풀린다고 보면 미국 또는 남한과 무엇인가를 할 필요성을 별로 느끼지 못할 것 같다.
그동안 북한이 미국과 관계 개선을 하려는 배경에는 제재 해제라는 목적도 있었다. 그게 상당한 인센티브였는데 이번에 국경 지역의 통상구를 전부 전면 재가동하기로 했으면 북미관계 개선도 크게 의미가 없어질 수 있다.
이미 북한이 '러-우 전쟁'에 병력을 파병하여 석유나 식량, 무기, 현금 등이 들어오고 있다면 러시아도 유엔 대북 제재를 위반하고 있는 셈이 된다. 사실상 유엔 안보리 대북 제재가 무너진 상황에서 시진핑의 방북으로 더 크게 제재의 벽이 무너졌다. 그러면 북한 입장에서는 북미 관계 개선을 통해 제재 해제를 기대할 필요도 없어진 셈이다.
동시에 남쪽으로부터의 대북 지원에 대한 수요도 그만큼 줄어든 것이고. 그동안 남북 관계의 역사를 되돌아볼 때 실질적으로 북한이 필요로 하는 경제적 지원이나 비료 등을 지원하면서 남북관계를 끌고 나갔는데 이제 그런 갈증 내지는 수요를 중국이 상당한 정도로 들어주면 우리가 딱히 할 일이 없어지는 것이다.
박인규 : 1995년 쌀 지원에서 시작해서 2016년 개성공단 폐쇄 때까지가 말하자면 남한의 대북 지원이 일정한 레버리지를 발휘하던 시대였는데 그게 끝난 것 같다.
정세현 : 그 시대는 끝났다고 본다. 이재명 정부가 '한반도 평화 공존과 공동 성장'이라는 표현을 썼던데 공동 성장은 북한에 경제 지원을 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걸 중국이 해버리니까 우리의 대북 레버리지가 그만큼 줄어든 셈이다.
그래도 북한이 필요로 하고 중국이 그걸 뒷받침을 못하는 아이템은 있을 것이다. 이걸 찾아야 하는데 정부가 나서서 이를 찾기는 어렵다. 대북지원경험이 있는 민간단체들이 제3국에서 북한측 인사들과 만나 뒤지다시피 하면 길이 보일 수 있다.
지난 4~5월에 제주도가 신장투석기와 부자재를 북한에 보냈는데, 이걸 참작해서 민간단체들이 나서서 북한의 수요를 조사하라고 하고 정부는 그걸 뒷받침해주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이재명 대통령이 남북관계에 바늘구멍이라도 뚫고 싶다고 하는데, 여기에 정부가 나서서 뚫으려고 하지 말고 민간을 앞세우는 게 나을 것 같다. 선민후관(先民後官)으로 가보자는 것이다.
민간 루트를 통해서 계속 물줄기를 올려보내면서 그들의 수요를 충족시켜주고 그를 통해 군사 상황을 안정적으로 관리해 나가는것이 평화 공존의 출발점이다. 평화공존에 돈 안들이고 무슨 일이 되겠는가? 퍼주기? 그런 말 하면 안 된다. 전쟁준비 하는 것보다는 돈이 적게 들 것이다.
박인규 : 상징적일 수는 있지만 국호 문제도 있다. 이제 저쪽에서는 우리를 대한민국이라고 부르고있지 않나? 그래서 우리도 그러면 아예 체제에 북한이 아니라 조선이라고 정식 명칭은 서로 불러주고 적대적이지 않은 두 국가로, 좀 실무적이고 '쿨한' 단계로 넘어가는 게 낫지 않나?
정세현 : 옛 이름 버리고 새 이름 지어서 호적에 올리기까지 했는데 자꾸 옛날 이름 부르면서 같이 놀자고 하면 되겠는가? 정부가 북한의 국호를 조선이라고 부르는 것이 필요하다. 사실 1991년12월 남북 총리급 회담에서 체결된 남북 기본합의서 이후에 6.15 정상회담, 10.4 정상회담, 4.27 정상회담, 9.19 정상회담 전부 다 남북이 각자 자기 정식 국호 써가면서 회담도 하고 합의서와 공동성명도 발표했었다.
다만 그때는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된 특수관계"라는 전제하에 그렇게 해왔는데, 지금은 북한이 통일을 하지 말자면서 남북이 두 국가로 살자고 분명하게 선을 긋고 나오지 않나? 이번 3월에 헌법 개정까지 해버렸기 때문에 특수관계를 복원하자는 얘기는 할 수가 없게 됐다. 또 북한은 정전협정에 근거한 군사분계선을 국경선으로 규정해버렸다.
북한이 이처럼 나가버렸는데 우리 혼자 옛날로 돌아가자고 해봐야 메아리도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상호주의 차원에서 우리도 북한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길게 부르기 싫으면 조선이라고 불러주어야 할 것 같다. 그렇게 해야만 그나마 남북 접촉이나 대화의 바늘구명이라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1990년대 탈냉전 초기 유엔 사무총장이었던 부트로스 부트로스갈리(Butros Butros-Ghali)가 냉전이 끝났다고 하지만 국제정세는 아직 '차가운 평화'(Cold Peace)라고 했었다. '차가운 평화'라는 표현이 좀 그렇기는 하지만, 남북이 일단 '차가운 평화'라도 구축한 다음에 '뜨거운 평화'를 꿈꿔야 할 것 같다. 그러기 위해서는 남북 각각 정식 국호로 교신하고 접촉해야 한다. 그게 아니면 남북 접촉과 대화는 백년하청(百年河淸)격이 될 수 있다.
이재명 정부의 대북 정책의 이름에서도 '한반도'라는 용어를 계속 쓸 것인가의 문제도 있다. 또 남북 평화공존도 한조 평화공존, 아니면 아예 국호 빼고 평화공존과 공동성장 정도로 쓰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또 국제정세의 변화에 따라 미중 관계가 바뀌면 중국의 대북 지원은 또 줄어들 수 있다. 국제 정치에서 영원한 것이 어디 있나? 지금은 필요에 의해서 하는 것이다. 우리도, 한미관계도 그렇지 않나.
물론 2020년 12월 제정된 북한의 반동사상문화배격법 때문에 남북 간 왕래나 교류는 당분간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북한이 중국이나 베트남의 사례처럼 고속 성장을 하면 그 때는 그들도 문화적으로 남한에 별로 떨어질 것이 없다고 생각하고 남한 문화를 받아들일 수도 있다. 경제수준이 올라가면 대중문화도 바뀌게 돼 있다.
그때까지는 기다려야 한다. 이게 시간이 얼마나 오래 걸릴 것이냐는 문제도 있는데, 북한도 빨리빨리 하는 성질이 있어서, 중국이 개혁개방 이후 소강사회 건설까지 43년이 걸렸지만 북한은 10여 년이면 가능하다고 본다.
그러니까 이재명 정부 때 다그치면 안 된다. 지금은 북한 경제 규모가 한국 경제 규모에 비해 60분의 1 정도밖에 안 되지만 격차는 좁혀질 수 있다. 다음 정부 때까지 10여 년 정도 기다리면 달라질 수도 있다.
박인규 : 지난해 9월 김정은이 중국 전승절에 참석했을 때는 딸인 김주애(이름 추정)가 동행하면서 후계자 승인을 받으려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이번에는 보이지 않았다.
정세현 : 시진핑이 부인인 펑리위안과 같이 평양에 오지 않았나. 이건 김주애 말고 리설주 나오라는 메시지를 북한에 보낸 것 같다.
북한이 정말 김주애를 후계자로 자리매김하게 하려면 군인들과 행사를 갖고 계속 장군들이랑 가까워지게 해야 한다. 김정은이 잘못되어 권력 공백 상태 생기면 그때 권력 장악할 수 있는 건 결국 총을 가진 사람들이다. 마오쩌둥(毛澤東)이 오래전에 한 말이 있다. "권은 총구(銃口)에서 나온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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