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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들도 언어가 있다?" 촘스키와 아리스토텔레스가 이 책을 싫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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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들도 언어가 있다?" 촘스키와 아리스토텔레스가 이 책을 싫어합니다

[프레시안 books] 스즈키 도시타카 <나에게는 새의 말이 들린다>

'인간은 언어를 사용하는 유일한 동물이다.' 상식과도 같은 말이다. 곤충에서 포유류에 이르는 다양한 동물도 울음소리나 몸짓으로 소통을 하지만, 이는 체계적 의미의 전달이 아니라 기쁨·공포 등 감정을 주로 전달할 뿐이라는 것이 중등 교과서에도 실린 통설이다. 새들도 언어와 감정을 가지며 소통과 사랑을 나눈다는 상상은 시인 곽재구의 동화 <아기참새 찌꾸(1992. 국민서관. 절판)>에나 나오는 상상 속 이야기였다.

그러나 일본의 동물행동학자 스즈키 도시타카(鈴木俊貴)의 근간 <나에게는 새의 말이 들린다(2026. 오팬하우스 펴냄)>는,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상식이 된 '인간만이 언어를 사용한다'는 명제를 유쾌하게 뒤집는다. 스즈키 도시타카는 대범하게도 "박새에게는 언어가 있다"고 선언한다. "(박새는) 하늘에 매가 나타나면 '삐삐삐' 울고, 뱀을 발견하면 '츠르르르르' 하고 운다. 동료를 부를 때는 '치지지지' 울고, 경계하라고 재촉할 때는 '삐-쯔삐' 하고 운다"고 관찰과 실험을 토대로 그는 밝힌다.

박새 연구자인 저자는 처음에는 새의 울음소리가 다른 새들의 행동에 미치는 영향에 주목했다. 일본의 대표 휴양지 중 하나인 가루이자와의 산 속에서, 그는 먹이를 발견한 박새가 '치지지지' 하는 울음소리를 내자 (같은 상황에서 북방쇠박새는 '지- 지-'하고 운다고 한다) 다른 새들이 모여들었다는 사실을 관찰해냈다.

먹이를 독점하지 않고 공유하는 것은 언뜻 보면 이타적 행동이지만 이는 한 개체가 먹이를 먹는 사이 다른 개체들이 자연스럽게 천적을 경계해 주기에 오히려 안정적인 먹이 섭취를 보장해준다고 한다는 '동물행동학'적 분석은 '왜 박새는 먹이를 보면 울음소리를 내서 동료를 불러모을까'에 대한 답을 제공한다.

그러나 저자의 관심은 '왜'에 그치지 않고 '어떻게'로 나아갔다. 먹이를 발견하고 동료를 부르는 소리는 언제나 '치지지지'로 같은가? 다른 소리를 내면 동료들이 모이지 않는가? 만약 이 소리가 동료를 불러모으는 소리라면, 먹이 없이 소리만 들려줘도 새들이 모일까? 이 3개의 질문에 대한 답은 모두 '그렇다'였다. 저자는 이에 대해 "이것이 내가 처음으로 특정한 새의 언어다"라고 대담하게 적었다.

저자는 또 박새 등 작은 조류들의 천적들인 큰부리까마귀의 박제와 아크릴 통에 담긴 구렁이를 박새 가족의 보금자리인 구멍 속 둥지가 있는 나무 앞에 놓고 새들의 행동을 울음소리-반응 위주로 관찰했다. 까마귀를 본 부모 새는 "삐-쯔삐"라는 울음소리를 냈고, 새끼들은 새집 속에서 최대한 웅크렸다. 반면 구렁이를 본 부모는 "츠르르르" 소리를 냈고, 새끼들은 서투르게나마 날개를 펴고 일제히 날아올랐다.

천적에 대한 반응이라는 점에서는 동일했지만, 울음소리와 반응은 각각 달랐다. 저자는 이에 대해, 까마귀는 부리를 새집의 입구로 꽂아넣어 새끼를 노리기 때문에 새집 안의 새끼들로서는 몸을 웅크리는 게 최선의 구명책인 반면, 구렁이는 나무 줄기를 타고 올라가 새집인 나무 구멍 안으로 직접 침입하기 때문에 새집에서 탈출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여기서도 '왜'가 아닌 '어떻게'가 주목됐다. 저자는 "동물의 울음소리가 그저 감정의 표현인지, 인간의 말처럼 특정한 의미를 전달하는지를 구별하는 방법을 고안"하려 노력했다며 "(만약 새의 울음소리가) 구체적 의미를 전달한다고밖에 할 수 없는 증거를 제시한다면 동물에게도 언어가 있음을 증명할 수 있다"고 논증했다.

"그리고 이를 해낸 사람은 전 세계에서 나밖에 없다! 나는 '동물은 말하지 않는다'라는 2천 년 이상에 걸친 역사상 최대의 오해를 풀고, 우물 안의 개구리가 된 인류를 구하기 위해 일어섰다."

흡사 자신의 연구 대상인 박새처럼 다소 촐싹맞게도 들리는 자신감의 표현과는 달리, 저자는 엄밀하고 꼼꼼한 실험을 통해 '츠르르르'라는 울음소리는 '천적에 대한 공포심'이라는 '감정의 표현'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뱀'이라는 명사, 즉 언어적 표현이라는 점을 입증해냈다.

내가 주목한 것은 '츠르르르르'로 들리는 소리였다. 나는 이 소리는 단순한 공포심의 표현이 아니라 '뱀'이라는 특정 의미를 전한다고 짐작했다. 관찰 결과, 박새는 뱀을 봤을 때만 '츠르르르르'라는 울음소리를 냈기 때문이다. 큰부리까마귀나 담비, 때까치 같은 다른 천적일 경우 절대 이 소리를 사용하지 않는다. 천적과 맞닥뜨렸을 때 내는 경계심이나 공포심의 표현이라고 생각하기는 어려웠다. 이 관찰 결과를 확실히 검증하기 위해 2010년 6월에 인공 새집에서 번식 중인 스물네 쌍의 박새한테 다양한 천적 모델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큰부리까마귀나 담비를 봤을 때는 '삐-쯔삐'나 '삐-쯔삐·치지지지' 하고 우는 반면 구렁이에 대해서만 ‘츠르르르르’로 바뀌었다. (중략)

뱀은 보여주지 않고 스피커로 '츠르르르르' 울음소리만 들려주자 부모 새는 놀라운 행동을 보였다. '츠르르르르' 소리를 듣자 새집 주변에서 가만히 땅을 내려다보는 게 아닌가. 열네 쌍, 스물여덟 마리의 박새를 대상으로 실험했는데 모두 땅을 쳐다봤다. 스피커는 새집과 같은 높이에 설치했기 때문에 스피커 쪽을 본 건 아니다. 실험 중에 흥미로운 행동을 하는 박새도 발견했다. 네 쌍의 박새는 땅을 확인한 다음, 새집 입구를 맴돌며 조심스럽게 안을 들여다보았다. 경계심이나 공포심 등의 정보가 전달되는 것만으로 이런 행동은 하지 않을 것이다. '츠르르르르' 소리를 들은 박새는 '근처에 뱀이 숨어 있다'고 믿고 땅과 새집 내부를 살피고 있는 게 틀림없다.

저자는 이같은 실험관찰 결과에서 우연을 배제하고 재현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여러 교차실험도 설계했다. '츠르르르르' 소리를 들려주고 끈에 매단 나뭇가지를 나무 줄기 위에서 수직으로 움직이게 하자 박새들은 천적에 대한 경계행동을 보인 반면, 다른 울음소리(삐-쯔삐 등)를 들려주고 같은 나뭇가지 움직임을 보여주거나 또는 같은 울음소리를 들려주되 나뭇가지 움직임이 수직운동이 아닌 수평이거나 원운동인 경우에는 그런 행동을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박새들에게는 '뱀'을 뜻하는 구체적인 울음소리가 있다'는 명제에 이어서는 "박새는 문장을 만들어 대화한다"는 더욱 도전적인 명제가 검증 대상이었다. 저자의 관찰에 따르면, 박새 울음소리 중 '삐-쯔삐'는 '위험', '치지지지'는 '모여라'라는 뜻이다. 그런데 위협적인 포식자 때까치가 나타나자 박새는 이 두 소리를 결합한 '삐-쯔삐·치지지지'라는 울음소리를 냈고, 그러자 여러 마리의 새들이 모여들어 때까치를 둘러싸고 위협해 쫓아냈다. (이 발견에도 2중 3중의 교차실험이 수행됐다.)

이와 비슷한 방법으로 저자는 "새의 언어에도 문법이 존재한다"는 명제도 검증했다. 앞의 사례에서 '삐-쯔삐·치지지지'의 순서를 뒤집어 '치지지지·삐-쯔삐'라는 울음소리를 조합해 들려주자 박새들은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때때로 이족보행을 하는 일부 유인원뿐 아니라, 박새 등 조류도 날개를 이용한 제스처로 개체 간 소통을 한다는 사실도 검증해냈다.

이같은 저자의 주장은 논문으로 정리·투고돼 <PNAS(미 국립과학원 회보)>에 게재됐고, <사이언스>, <네이처> 등 유수의 과학 저널에 실렸다. 특히 박새의 단어 조합 가능성을 제기한 논문은 <네이처>의 '이 주의 논문'으로 선정됐다. 저자는 일본의 지성을 상징한다는 도쿄대에 '동물언어학 연구실'을 2023년 열게 됐다.

저자는 이제 오히려 '인간만이 언어를 사용한다'는 믿음을 인간의 종적 편견에 불과한 것으로 간주하고, 이를 깨기 위해 저술·방송·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자신의 발견을 전파하고 있다고 한다. 심지어 책에는 부록으로 QR코드를 추가해, 책에 등장한 박새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게 해두기까지 했다.

다음은 저자의 자신감, 비판, 한탄을 망라한 것으로 보이는 책의 한 대목이다. 다소 길지만 이 책의 핵심 주제를 집약하고 있는 만큼 이를 그대로 인용한다.

박새가 매를 발견하고 '삐삐삐' 하고 울면 주변에 있는 북방쇠박새나 곤줄박이는 일제히 덤불 속으로 도망치고, 먹이를 발견해서 '치지지지' 하고 울면 잇따라 모여든다. 거꾸로 박새도 북방쇠박새나 곤줄박이의 언어를 이해한다. 숲속에 사는 작은 새들은 주변에 서식하는 수많은 새 언어의 의미를 학습하고, 천적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거나 먹이를 발견하기 위해 언어를 이용한다.

가끔 거짓말을 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박새는 자기보다 덩치가 큰 곤줄박이나 동고비가 먹이가 있는 곳을 독점하고 있으면 '삐삐삐' 하며 매가 근접했을 때 내는 경보음을 내기도 한다. 사실은 하늘에 매 따위는 없는데 그렇게 우는 것이다. 그러면 덩치 큰 새는 감쪽같이 속아 넘어가 덤불로 도망친다. 그 틈에 박새는 먹이를 차지할 수 있다. 그 소리엔 나도 곧잘 속는다. 속고 속이는 관계도 다른 종의 언어를 알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종의 벽을 초월한 대화가 새들 사이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다람쥐도 작은 새들의 말을 이해할 수 있다. 박새가 '삐삐삐' 하고 울면 다람쥐는 허둥대며 덤불 속으로 뛰어든다. 다람쥐보다 새가 시력이 좋고 매의 습격을 빨리 알아채는 경우가 많다. 다람쥐들은 이런 사실을 알기 때문에 박새류 무리 근처에 머문다.

수십만 년 전, 우리의 조상이 아직 아프리카에서 살던 때는 인간도 새의 언어를 이해했음이 틀림없다. 적어도 갓난아이를 맹금류나 육식동물에게서 지키기 위해 새의 언어가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인간은 자신들의 '언어'로 자연과 인간을 분리해 갔다. '동물한테는 언어가 없다', '인간이 가장 고도의 동물이다', '인간은 자연을 지배하는 특별한 존재다' 따위의 말을 늘어놓았고, 그렇게 믿어왔다.

그리고 결국 동물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뿐인가. 자연과의 관계도 공생에서 이용으로 변하고 말았다. 오늘날 해결되지 않고 있는 갖가지 환경 문제도 이런 우물 안의 개구리가 된 인간들의 폭주 탓이 크다고 생각한다. 이대로는 그리 멀지 않은 미래에 인류도 지구도 멸망할 것이다.

저자가 도전적으로 제시한, '동물에게도 언어가 있다'는 명제는 왜 논쟁적인가. 주지하다시피 데카르트 이후 근대철학은 진리 그 자체를 탐구의 대상으로 삼은 고대 그리스 철학과는 달리 진리를 인식하고 탐구하는 주체로서의 '인간'에 주목했고, 현대에는 그 인식과 탐구를 가능하게 하는 '세계의 그림', 즉 '언어'의 존재가 중요하게 조명됐다.

▲ⓒ오팬하우스

때문에 언어는 단순한 의사소통 수단을 넘어 인간이 성취해낸 모든 지적 자산의 토대이자 사유의 그릇으로 여겨져 왔고, 인간만이 가진 고유한 특성인 것으로 상정됐다. 침팬지에게 수어를 가르치려 한 '님 침스키 프로젝트'의 실패는 유명하다. 인간만이 언어를 사용한다고 주장하는 대표적 언어학자 놈 촘스키의 이름을 침팬지에게 붙여주며 그에게 도전장을 낸 이 프로젝트는 역으로 촘스키의 원 주장에 권위를 더했다.

최재천 이화여대 교수는 이 책의 한국어판 추천사에서 자신이 2009년 촘스키를 만나 대화하며 방한 초청의 승낙을 얻었지만, 자신의 연구분야에 대해 '까치의 언어를 연구하고 있다'고 소개하자 그의 표정이 점점 굳더니 '언어를 사용하는 것은 인간뿐'이라는 단언과 함께 방한마저 철회됐다는 에피소드를 전하기도 했다.

연작 영화 <혹성탈출(원제 : planet of the apes)>의 1편에서 가장 인상깊은 장면은 주인공, 아니 주'원(猿)'공인 시저가 인간의 언어로 '노(No)'라고 울부짖는 장면이었을 것이다. 이 장면이 관객에게나 영화 속 등장인물들에게나 한결같이 충격을 준 이유는 '세상에 원숭이(정확히는 침팬지)가 말을 하다니!'라는 데 있었다.

만약 인간 이외의 존재가 언어를 가진다면, '언어는 사유의 그릇'이라는 철학적 전제에 따르면 인간 이외의 존재도 '사유'를 할 수 있다는 뜻이 되고 데카르트의 '코기토'에서 출발한 근대적 휴머니즘 기반 철학과 윤리학은 도전에 직면할 수 있는 셈이다.

이는 여전히 논쟁적인 최근의 '동물권' 논의를 연상시키는 면이 있다. 단순한 생명존중 윤리 차원, 즉 생명권과 고통받지 않을 권리 등을 넘어 동물에게 '행복추구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주장은 아직 철학적·윤리적 토론의 대상으로 남아있다.

단지 동물도 생명이기에 불필요한 고통을 겪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관점과, 동물도 언어와 감정을 가지고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존재이며 내적 존엄성을 가진다는 관점은 일견 비슷하게 보일 수는 있지만 본질적으로는 다른 것이다.

'동물의 행복추구권 보장'이라는 테제를 근대적 인권 개념의 종차별주의적 한계를 극복해낸 탈근대 생태주의 철학의 개가로 평가해야 할지, 다른 존재와 오롯이 구별되는(또는 돼야 할) 인간의 고유한 존엄성을 몰각한 위험한 급진론으로 봐야 할지는 '평등·평화·생태'가 사훈(社訓)인 회사에 다니는 처지에서도 일도양단하기 어렵다.

가루이자와의 상쾌한 산속 공기와 청량한 산새 울음소리가 귀에 들리는 듯한 에세이집으로 위장한 이 책이 던지는 물음이 마냥 가볍고 유쾌하지만은 않은 이유다.

사족. '좋아하면 닮는다'는 말은 연인·부부·가족 사이에만 해당되는 게 아닌 모양이다. 저자는 박사학위를 받은 후 "주변으로부터 '왠지 새처럼 생긴 것 같지 않아?'라든가 '박새하고 닮은 것 같지 않아?'와 같은 말을 듣"게 됐다고 한다. 자신에 대한 '셀프 디스'는 그렇다 치고, "거대 박쥐를 연구하는 선배의 생태도 박쥐의 생태 그 자체였다"거나, 교토대 총장을 지낸 선배 학자가 "고릴라 판박이"인 고릴라 연구자라는 농담은 저자가 일본 학계 종사자라는 점을 상기하면 좀 조마조마하게 보이기도 한다.

ⓒpixabay
곽재훈

프레시안 정치팀 기자입니다. 국제·외교안보분야를 거쳤습니다. 민주주의, 페미니즘, 평화만들기가 관심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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