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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할 권리? 아니다, 게으를 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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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할 권리? 아니다, 게으를 권리!

[서평] 폴 라파르그의 <게으를 권리>

마르크스의 사위 폴 라파르그가 150년 전 우리 시대를 예언했다.

최근 출판계에서 뜻밖의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칼 마르크스의 둘째 사위이자 프랑스 사회주의 운동의 대표적 이론가였던 폴 라파르그의 고전 《게으를 권리》가 르몽드코리아에서 양장본 포켓북으로 출간된 뒤 꾸준히 독자들의 선택을 받고 있다.

마르크스주의 고전이 다시 읽히는 일 자체는 드문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번 경우는 조금 다르다. 독자들이 주목하는 것은 마르크스가 아니라 폴 라파르그라는 인물이다. 그것도 《자본론》의 해설자가 아니라 “게으름을 권리로 선언한 사람”으로서 말이다.

150년 전 한 사회주의자가 던진 도발적인 질문은 오늘날 오히려 더 급진적으로 들린다.

“왜 우리는 그렇게까지 일해야 하는가?”

마르크스의 사위가 아니라, 가장 위험한 제자

폴 라파르그는 흔히 ‘마르크스의 사위’로 소개된다. 실제로 그는 칼 마르크스의 둘째 딸 라우라와 결혼했고, 평생 마르크스와 정치적·사상적 동지로 활동했다.

하지만 《게으를 권리》를 읽고 나면 금세 알게 된다. 라파르그는 단순한 계승자가 아니었다. 그는 마르크스주의 내부에서도 가장 독창적이고 가장 도발적인 인물이었다. 1842년 쿠바에서 태어난 그는 프랑스·스페인·아프리카 혈통을 가진 크리올 출신이었다. 유럽 제국주의의 중심과 식민지 주변부를 동시에 경험한 드문 혁명가였으며, 파리 코뮌과 제1인터내셔널, 프랑스 사회주의 운동의 격동을 온몸으로 통과한 인물이기도 했다.

책의 서문은 바로 이러한 라파르그의 독특한 위치를 강조한다. 그는 마르크스를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봤지만, 마르크스주의를 교리처럼 반복하기보다 현실 속에서 새롭게 해석하려 했던 사상가였다. 그 결과 탄생한 것이 《게으를 권리》였다.

사회주의자가 노동을 공격하다

1880년 라파르그가 이 글을 발표했을 때 사회주의 운동의 구호는 ‘노동할 권리’였다. 실업과 빈곤이 만연했던 시대였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라파르그는 그 구호 자체를 문제 삼았다. 그는 노동자들이 자본주의에 착취당하는 것보다 더 위험한 일이 있다고 보았다. 그것은 노동자들이 스스로 노동을 숭배하게 된 것이었다.

그는 노동을 신성시하는 태도를 “파멸적인 교리”라고 부른다. 당시 사회주의자들에게조차 충격적인 주장이었다. 노동은 해방의 수단이 아니라는 것이다. 노동은 인간의 목적이 아니라 수단일 뿐이며, 인간은 일하기 위해 태어난 존재가 아니라 즐기고 사랑하고 사유하기 위해 태어난 존재라고 그는 주장했다.

오늘날 읽어도 이 대목은 놀랍다. 라파르그는 사실상 “생산성 중심 사회” 전체를 공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게으름을 말한 것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은 제목만 보고 이 책을 게으름 찬양으로 오해한다.

그러나 실제로 라파르그가 말하는 것은 나태함이 아니다.

그가 비판하는 것은 과잉노동이다. 그는 하루 12시간, 14시간, 심지어 16시간씩 노동하는 공장 노동자들의 현실을 생생하게 묘사한다. 어린아이들이 공장으로 끌려가고 여성들이 혹사당하며, 인간의 육체와 정신이 기계의 부속품으로 변하는 과정을 고발한다.

라파르그가 원하는 것은 단순하다. 인간이 노동의 노예가 아니라 노동의 주인이 되는 사회다. 그래서 그는 “하루 세 시간 노동”이라는 유명한 구상을 제시한다. 나머지 시간은 여가와 놀이, 사랑과 예술, 사유를 위해 사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오늘날 주 4일제나 기본소득 논의가 제기될 때마다 라파르그가 다시 언급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누구보다 먼저 ‘번아웃 사회’를 본 사람

《게으를 권리》가 지금 다시 읽히는 이유는 라파르그가 놀라울 정도로 현대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노동이 단순히 육체를 피로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욕망 자체를 왜곡한다고 보았다.

더 많이 일해야 한다. 더 생산적이어야 한다. 더 효율적이어야 한다. 이런 사고방식은 오늘날 자기계발 산업과 성과주의 문화의 핵심 논리이기도 하다.

라파르그는 이미 19세기에 이런 인간형의 탄생을 목격했다. 그는 노동자가 더 열심히 일할수록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가난해지고 더 불행해진다고 주장한다. 과잉생산과 실업, 경제위기가 반복되는 이유 역시 노동 그 자체를 숭배하는 사회에 있다고 진단한다. 그래서 《게으를 권리》는 경제학 책이라기보다 문명 비판서에 가깝다.

AI 시대가 소환한 라파르그

라파르그는 증기기관과 기계가 인간을 노동에서 해방할 가능성을 보았다.

문제는 기술이 아니라 사회였다. 기계가 생산성을 높이면 노동시간은 줄어들어야 한다.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오히려 노동강도가 높아지고 실업이 증가한다는 것이 그의 분석이었다. 오늘날 인공지능을 둘러싼 논쟁은 정확히 같은 질문을 반복한다.

AI는 인간을 자유롭게 할 것인가. 아니면 더 많은 경쟁과 불안을 낳을 것인가.

이 지점에서 라파르그는 갑자기 동시대인이 된다. 그가 비판한 것은 특정 산업이 아니라 ‘끊임없이 일해야만 가치 있는 인간이라는 믿음’ 자체였기 때문이다.

가장 불온한 마르크스주의자

《게으를 권리》를 읽고 나면 라파르그는 더 이상 마르크스의 사위가 아니다. 오히려 그는 마르크스주의 역사에서 가장 불온한 인물 가운데 한 사람으로 보인다. 그는 자본주의를 비판했을 뿐 아니라 노동운동의 상식까지 공격했다. 노동을 찬양하는 부르주아도 비판했고, 노동을 숭배하는 노동자도 비판했다. 그가 궁극적으로 옹호한 것은 생산이 아니라 인간이었다.

그래서 《게으를 권리》는 사회주의 고전이라기보다 인간 해방에 관한 선언문으로 읽힌다. 그리고 아마 그것이 이 작은 책이 150년이 지난 오늘 다시 독자들을 만나고 있는 이유일 것이다.

우리는 여전히 노동에 대해 이야기한다. 라파르그는 그 한가운데서 묻는다.

“노동을 줄이는 것이야말로 진보가 아닌가?”

그 질문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게으를 권리>, 폴 라파르그 지음, 르몽드코리아ⓒ르몽드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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