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뚜안은요. 정말 가족에게 각별했어요. 항상 가족이었어요. 한 달 290만 원 벌면, 15만 원 남기고 보냈어요. 절약하고 살았어요. 통장까지 같이 본 사이라 알죠. 심성 착하고, 주변 사람 잘 챙기는 애였어요. 그래서 가슴이 무너져요."
지난 14일 고 응우옌 반 뚜안(Nguyễn Văn Tuấn) 씨의 빈소에서 만난 그의 친구 레 반 호아(가명·34) 씨가 말했다. 호아 씨는 뚜안 씨보다 11살 더 많은 형이지만, 고향 바로 옆집에 살았던 둘은 허물없는 친구처럼 지냈다.
뚜안 씨의 고향은 베트남 응에안성 떤끼현(Nghệ An, Tân Kỳ)이다. 산과 숲, 논, 사탕수수밭이 많은 후덥지근한 농촌 마을이다. 둘은 지난 2월 설날 연휴에도 고향을 함께 다녀왔다.
그렇게 가족을 만나고 돌아온 지 10일이 되던 때, 뚜안 씨는 산재 사망했다. 호아 씨는 "베트남에서 한국 올 때의 모습이 기억난다. 뚜안 가족들이 마지막 인사 나눌 때 많이 울었다"며 "나도 공항에서 서로 농담하고 장난쳤던 게 눈에 선하다"고 말하며 연신 눈물을 흘렸다.
20살, 한국 땅 밟은 뚜안
뚜안 씨는 2003년 4월 16일생이다. 고교 졸업 후 20살이 된 2023년 8월 한국에 왔다. 원래는 한국으로 유학을 가려고 했는데, 사정이 여의치 않아 고용허가제 비자로 들어와 일을 시작했다.
먼저 부산의 한 신발공장에서 일을 했는데 공장에 일이 많지 않아 2024년 5월 경기 이천의 한 자갈·석재 가공 공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석재를 옮기는 대형 컨테이너벨트가 쉼 없이 돌아가는 공장이었고, 뚜안 씨는 컨베이어벨트 가동 관리 업무를 맡았다.
뚜안 씨는 축구를 좋아하던 보통의 쾌활한 청년이었다. 호아 씨는 "고향에서도 동네 친구들이랑 곧잘 축구를 하곤 했다"며 "일 잘하고 돈 많이 벌어서 가족 안 힘들게 하고, 그렇게 결혼도 하고 살고 싶어 했다"고 말했다.
호아 씨는 뚜안 씨가 "빚도 갚고 있었다"고 했다. 그가 알기론, 뚜안 씨는 한국에 입국하기 위해 9천~1만 달러(약 1400만 원)를 비용으로 냈다. 한국어 교습비, 각종 서류 처리 비용, 보증금 등 고용허가제 비자 발급 절차에 드는 비용이다.
뚜안 씨는 5남 1녀 중 첫째였다. 호아 씨는 "둘째는 이제 막 고등학교를 졸업했고 일본 유학을 준비해서 돈이 필요했다"며 "뚜안은 이 빚도 도와주고 있던 걸로 안다"고 말했다.
뚜안 씨는 가족의 생계를 책임진 실질적 가장이었다. 건설노동자였던 아버지는 과거 4층 높이의 건물에서 낙하 사고를 당해 거동이 불편했고, 어머니도 몸이 건강하지 않아 혼자 노동으로 가정을 책임질 수 없었다. 막내는 초등학교 저학년이었다. 그는 한국에서 일하며 가족 7명과 할머니의 생계를 도왔다.
다정하고 따뜻했던 친구
그의 고향 친구 쩐 티 마이(가명·23) 씨도 "뚜안은 가족을 정말 잘 챙겼다"며 "휴대전화를 보면 가족사진이 정말 많고, 일 안 하는 시간엔 가족들이랑 자주 통화하면서 지냈다"고 말했다.
마이 씨는 그가 "무슨 일이 생기면 다 도와주려고 하고, 사람들에게 친절하고, 힘든 일 있으면 귀 기울여 이야기를 들어주는 친구였다"고 말했다. 매일같이 '야, 뭐해?'라면서 서로 문자를 주고 받았다. 마지막으로 받은 문자는 3월 8일 국제여성의날을 축하해주는 뚜안 씨의 인사였다.
마이 씨는 지난 10일, 원래 답장이 와야 할 시간에 문자 확인도 하지 않은 게 이상했다. 그날 오후, 베트남에 있는 그의 가족으로부터 사망 소식을 들었다. 마이 씨는 "아직 하나도 믿기지 않고, 뭘 해야 할지도 잘 모르겠다"며 황망해했다.
빈소는 경기도의료원 이천병원 장례식장 국화 7호실이다. 뚜안 씨의 친척과 친구들, 유족 대리인들이 빈소를 지키고 있다. 뚜안 씨의 사망 소식은 베트남 현지 언론과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널리 알려졌다. 한국에 사는 적지 않은 베트남 이주민들이 뚜안 씨와 모르는 사이임에도 그의 빈소를 방문해 추모했다.
통곡 끊이지 않는 고향 마을
호안 씨는 뚜안 씨의 어머니가 "주저앉고, 또 주저앉고, 일어서지 못하는 상태"라고 말하며, 이날 고향에서 열린 그의 추모식 영상을 보여줬다. 그의 가족과 이웃들이 모여 영상 통화로 연결된 뚜안 씨의 빈소 풍경을 텔레비전으로 보는 가운데, 어머니는 바닥에 주저앉은 채로 끝없이 통곡했다. 호안 씨는 "사망 소식을 들은 후부터 지금까지, 어머니는 여러 번 쓰러졌다"고도 전했다.
뚜안 씨의 세례명은 요셉이다. 그의 사망 후, 지역 성당에선 그의 사망을 기리는 추모식이 열렸다. 호안 씨는 "마을 사람들 거의 모두가 참석했고, 모두가 비통함에 잠겨있다"고 전했다. 한국에 사는 그의 친구들과 친척은 뚜안의 시신을 송환하는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모금을 하고 있다.
유족은 사고 직후, 한국의 베트남 교민들을 지원하는 이주민센터 '동행'을 통해 이주인권단체에 도움을 요청했다. 유족은 이주노동법률지원센터 소금꽃나무의 장혜진 노무사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소속 이환춘 변호사 등에게 사건 대응을 일임했다. 거동이 불편한 유족은 한국에 직접 들어오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사측 변호사 "당신들, 진짜 대리인이냐?"
14일 빈소에서 만난 유족 대리인 이용덕 소금꽃나무 활동가는 "사측이 변호사를 처음 대동한 지난 13일을 기점으로 태도가 바뀌었다"고 밝혔다. 대리인단은 그동안 공장의 대표이사, 공장장 등과 면담하며 꾸준히 소통했는데, 그럴 때마다 '사과하고 책임지겠다'는 태도를 여러 차례 나타냈다고 한다.
그런데 13일 협의 자리에서 사측을 대리하는 대륙아주 로펌 변호사는 대리인들에게 "(당신들이) 진짜 대리인이 맞는지 확인해야 한다"는 말과 함께 "베트남 대사관 공증을 받아오라"고 요구했다. 통상 대리인들이 작성하는 선임서 등의 자료를 보여줬음에도 같은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유사한 사건을 여러 번 대응해본 이용덕 활동가는 "가해자 대리인이 이런 요구를 하는 건 듣도 보도 못했다. (피해자 측을) 모욕하고 조롱하는 것"이라며 "대리인과는 대화하지 않겠다는 걸 이런 태도로 대신 보여준 거라 본다. 사측에 '이런 식이면 이 로펌하고 대화할 수 없다'는 의사를 전달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중대재해처벌법 사측 대리를 해본 로펌이 그냥 돈을 중심으로 사안을 빨리 끝내려는 의도로도 보인다"고 추측했다.
이 활동가는 지난 13일 대화 자리에서 "대리인단은 유족에 진심 어린 사과와 철저한 진상규명에 협조, 종합적인 재발 방지 대책, 정주(한국) 노동자와 차별없는 유족 배·보상을 사측에 요구했다"고 밝혔다. 사측은 안을 준비해 오지 않았다.
뚜안 씨는 지난 10일 새벽 2시 30분경 공장 컨베이어벨트 설비를 점검하러 내려간 지 몇 분 새에 컨베이어벨트에 끼여 사망했다. 사고 설비엔 방호덮개, 적외선 센서, 비상스위치 등 안전장치가 없던 것으로 파악됐다. 2인 1조 작업 원칙도 지켜지지 않았다. 현재 경기남부경찰청 중대재해산업팀이 사업주의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등의 혐의를 수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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