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태안화력 故 김충현 노동자 사망 이후 출범한 '발전산업 고용·안전 협의체'는 법원 판결과 고용노동부 근로감독 결과를 바탕으로 한전KPS 직접고용이라는 사회적 합의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합의 이후 공정성 시비는 '위험의 외주화' 해결을 가리며 논의를 왜곡하고 있습니다. 이를 △발전산업 노동 현실 △언론 프레임의 문제점 △법·제도적 쟁점의 관점에서 짚어, 현재 논쟁을 '공정 논란'이 아닌 '생명·안전과 구조 문제'로 재구성하고자 세 편의 글을 기고합니다. - 공공운수노조
며칠 전 아르테미스 2호라는 우주선이 달을 향해 출발했다. 사람을 태우고 달을 향해 떠나는 발사체는 54년만이라고 하니, 아직 반세기의 삶을 살지 못한 필자로서는 생애 처음 목격하는 인류의 달 탐사인 셈이다. 이번 우주선에 탑승한 4명의 승무원은 인류 역사상 지구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진 지점을 다녀올 예정이라고 하나, 아직까지 우리에게 친숙한 이름들은 1960~1970년대 냉전 시대의 치열한 우주 탐사 프로젝트들이다. 필자는 소설이나 영화를 통해서 당시의 모습을 접할 수 있었는데, 그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히든 피겨스>라는 영화다. 광활한 우주 공간이 아니라 공정과 평등이라는 우리네 삶의 가치를 돌이켜 볼 수 있었기 때문이리라.
<히든 피겨스>는 동명의 소설을 각색, 연출한 영화다. 영화의 주인공은 3명으로 모두 흑인 여성이다. 이들은 미국 항공우주국(NASA)에서 일하고 있는데, 당시 미국은 소련과의 체제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소련보다 먼저 인간을 우주로 보내겠다"는 목표를 향해 매진하고 있었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일은 복잡한 궤도 계산을 통해 우주선 발사와 귀환 경로를 산출하는 것이었고, 컴퓨터 기술이 충분하지 않았던 관계로 이러한 계산은 모두 인간의 손을 거쳐야만 했다. 영화 속 인물 캐서린은 천부적인 수학 능력으로 탁월한 실력을 발휘하나, 인종과 여성이라는 이중의 장벽에 가로막혀 동료들로부터 무시와 차별을 받게 된다. 도로시는 유색인종이라는 이유로 정규직이 되지 못하고 언제든 해고될 수 있는 불안정한 임시직으로 일해야 했으며, 메리는 피부색으로 인해서 원하는 학교에 입학할 수 없는 처지였다.
그런데 잠깐, 이 영화의 배경은 1962년으로 미국은 이미 100여년 전에 남북전쟁으로 노예제를 타파하지 않았던가? 어째서 인간을 우주로 보내겠다는 첨단의 시대에 영화 속 주인공들은 전근대적인 인종차별에 고통받고 있었을까? 더구나 이들의 직장은 미국 정부가 운영하는 공공기관이었는데 말이다.
당시 미국에는 공공장소에서 합법적으로 인종 간 분리를 할 수 있는 소위 '짐 크로우 법'들이 널리 퍼져 있었다. 이들 법률은 "분리되어 있지만 평등하다(separate but equal)"는 명분을 내세웠는데, 말하자면 '백인 학교와 흑인 학교가 모두 설립되어 있으면, 비록 피부 색으로 분리는 되어 있으나, 흑인을 위한 학교를 다닐 수 있으니 차별은 아니'라는 논리였던 것이다. 이러한 법률은 백인을 위한 학교가 훨씬 좋은 시설과 환경을 갖추었다는 현실을 도외시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차별과 폭압을 조장하게 되었고, 이러한 법률을 옹호한 미국 연방대법원 판결은 지금까지도 미국 사법 역사의 최대 오점으로 남아 있다.
다시 우리의 현실로 돌아와보자. 2017년 5월 12일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후 첫 외부 일정으로 인천공항을 찾았다. 당시 대통령은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시대를 열겠다"는 포부를 밝혔고, 이는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정책'으로 구체화되었다. 하지만 이후에 우리가 목도한 현실은 냉랭했다. 다단계 하청과 같은 계약 형태를 이유로 정규직 전환에서 배제된 노동자, 열악한 근무 환경과 처우가 전혀 개선되지 않은 노동자, 지난한 과정을 거쳐서 겨우 얻어낸 결과물이 사실상 하청업체의 통합·재편에 불과한 자회사로의 전환에 그쳤던 노동자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자료를 찾아보니 2021년 기준으로 자신이 일하던 공공기관에 직접 고용 방식으로 전환된 비정규직 노동자는 13.8% 남짓에 불과했다.
'자회사로의 정규직 전환'에 대한 과오(過誤)는 별론으로, 이 글에서는 직접 고용으로 전환된 13.8%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자. 이들은 13.8%의 낮을 확률을 뚫고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서 '공정'한 대우를 받게 되었을까? 또는 자신이 소속된 공공기관의 '평등'한 구성원으로 인정받았을까? 안타깝게도 모두 그렇지는 못했던 것 같다. 한 가지 사례를 소개한다.
한국철도공사는 2019년에 고속철도 차량의 정비 업무를 수행하는 협력업체 소속 노동자를 직접 고용하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이들을 직접 고용하기에 앞서 공사는 인사규정을 개정하고, 기존에 존재했던 1급부터 6급까지의 직급 체계에 하위 직급을 신설해 정규직 전환자를 신설된 하위 직급으로 채용하기로 결정했다. 이들은 공사의 정규직과 실질적으로 동일·유사한 업무를 수행했지만, 협력업체에서 전환됐다는 이유만으로 경력 인정과 호봉 산정에서 차별을 받았다. 다행히도 이들은 협력업체 시절 수행했던 업무 관련 자료를 차곡차곡 갈무리 해두었다가 최근 법원으로부터 호봉 정정 등을 인정받을 수 있었지만(이 사건은 공사가 항소하여 현재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이 판결이 최종 확정되기까지는 앞으로도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필자를 포함해 이 글을 읽는 대다수의 독자는 자신의 노동을 제공하고, 그에 상응하는 임금을 받아 생활하고 있을 것이다. 자신이 한 일에 걸맞는 처우를 바라는 것은 지극히 상식적인 요구이고, 여기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 같다. 그런데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이라는 국면에 이르러서는 유독 노동자가 수행한 업무의 객관적인 내용이 아니라 다른 요소들이 중요하다고들 말한다. "저 사람은 어려운 시험을 치고 들어온게 아니잖아요", "저 사람은 원래 낮은 임금을 받는 회사에 들어갔던 거잖아요"라는 말들 말이다. 이러한 차별적 인식에 '공정'이니 '평등'과 같은 그럴듯한 포장지를 덧씌운 것이 정규직 전환 이후의 처우 차별 문제, 별도 직급 신설 문제의 본질이다.
우리 헌법은 제11조 제1항에서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고 선언하고 있다. 입법자들은 이러한 선언만으로 마음이 놓이지 않았던지 근로기준법 제6조에서 "사회적 신분을 이유로 근로조건에 대한 차별적 처우를 하지 못한다"고 재차 밝히고 있다.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은 국제노동기구(ILO)와 세계의 대부분 국가가 채택하고 있는 노동법의 보편적인 원칙이기도 하다. 거창한 법률 이론이 아니더라도 "일한 만큼 대우받는다"는 명제는 우리네가 모두 수긍할 수 있는 상식 차원의 이야기가 아니겠는가.
2025년 6월 2일 한전KPS의 업무를 수행하던 하청노동자 김충현은 2인 1조 원칙 미준수 등으로 인하여 유명을 달리했다. 고 김충현과 그의 동료들은 한전KPS의 일상적인 관리·감독 하에 업무를 수행했으므로, 한전KPS의 소속이었어야 했다. 고 김충현과 그의 동료들은 한전KPS의 정규직 노동자들과 동일·유사한 업무를 수행했으므로 이들과 동일한 근로조건을 적용받아야 마땅하다. 이러한 결론은 법원의 판결로도, 정부와 민간이 함께 참여한 사회적 합의로도 거듭 확인되고 있는 당연한 내용이다. 이처럼 상식적인 결론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배경에는 '차별'과 '혐오'가 있을 뿐, '공정'과 '평등'은 찾아볼 수 없다.
<히든 피겨스>에 등장하는 우주비행사 존은 "캐서린이 확인한 좌표 계산이라면 믿을 수 있다"고 신뢰를 보낸다. 미국 연방대법원은 공립학교에서의 인종 분리가 위헌이라고 선언하면서 "'분리하되 평등'이라는 원칙은 더 이상 존재할 여지가 없다. 분리된 교육은 본질적으로 불평등하다"고 선언했다. 필자는 이번 주에도 지방 재판을 위해 고속열차를 이용하는데, 해당 차량은 협력업체에서 전환된 철도공사 노동자들이 꼼꼼히 정비를 한 덕에 안전하게 운행을 하고 있다. 고 김충현 협의체의 합의 내용이 '공정'과 '평등'에 따라 실현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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