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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 안 할 거래요. 어디를 찍어도 똑같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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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 안 할 거래요. 어디를 찍어도 똑같다고…"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무투표 당선지역 확산, '선거'가 나빠진다

6.3 지방선거 사전투표 2일차, 안동시 강남동에서 투표소로 향하는 시민들에게 인사한다. 태양에 얼굴이 발갛게 익어가지만 저마다 조금씩 다른 녹색 옷을 입은 사람들이 활짝 웃으며 "이번에는 녹색당!"이라고 외친다. 녹색당이 출마한 동네의 선거운동 풍경은 조금 다르다. 왜일까.

녹색당은 한국에서 작은 정당이다. 그래서인지 출마한 동네에 전국 당원들이 모두 모여 후보와 당을 알린다. 그런데 당원들이 직접 선거운동을 한다는 것이 요즘 한국에선 왜 새삼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선거철이 되면 선거운동원을 마주치는 것은 물론 쉽다. 당의 위세에 걸맞게 파랑과 빨강 옷을 입은 사람이 압도적으로 많은데, 이들은 대부분 법정 수당을 받는 '유급' 선거운동원이다.

'공직선거법 제135조 제1항'은 선거사무원에게 수당과 실비를 지급할 수 있도록 규정하며, 같은 조 제2항 제5호는 그 상한을 1일 6만 원으로 정하고 있다. 식비 등의 실비까지 포함하면 약 12만 원 정도 일당을 받는다. 유급 선거운동원은 홍보하는 정당이나 후보의 지지자가 아니어도, 당원이 아니어도 된다. 당연히 투표 당일에 그 후보를 찍지 않아도 된다. 모두 '선거운동'이라는 좀 색다른 노동에 참여할 뿐이다. 이들의 주된 업무는 모자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채, 몸집 만한 피켓을 목에 걸고 정해진 장소를 걸으며 시민들에게 인사하는 것이다.

그런데 녹색당은 다르다. 당원들은 모자도 장갑도 잘 사용하지 않는다. 내 얼굴과 내 목소리로 당과 후보를 알린다. 때때로 지나가던 시민들이 "모자라도 쓰고 해요"라고 격려할 정도다. 녹색당은 한 번 입고 버리게 되는 선거 운동복은 만들지 않기도 한다. 어느 동네든 녹색당이 출마했다 싶으면 가장 눈에 띄는 이유다. 어떤 이들에겐 낯설고 아마추어처럼 느껴질지 모른다. 그런데 얼굴을 마스크로 가리고, 모자 푹 눌러 쓰고 구간 반복하는 선거운동, 사람도 없는 유세차가 유세곡 소음만 뿜으며 동네를 도는 선거운동이 '정상(正常)'으로 통하는 민주주의 국가는 한국 말고 찾기 어렵다.

왜 그럴까

다른 나라들은 선거운동을 어떻게, 누가 할까? 대부분 정당의 당원이나 지지자가 풀뿌리 형식으로 선거운동을 한다. 종종 언급되는 '가가호호 방문 선거운동 전략'이 대표적이다. 방문 선거운동을 위해서 선거운동원은 후보와 정당의 공약과 장점을 정확히 암기하고, 시민으로부터 예상치 못하게 받는 질문도 소화해야 한다. 기계처럼 움직이는 선거운동과는 완전히 다르다. 이들은 생각하고 말한다.

사실 한국에선 그런 선거운동이 법적으로 어렵기도 하다. 공직선거법 제33조는 선거운동 기간을 후보자 등록일 다음 날부터 선거 전날까지, 지방선거 기준 14일로 제한한다. 그 기간 밖에서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를 하면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4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제254조 제2항). 유권자 가가호호 방문을 통한 선거운동도 엄격히 제한된다(제106조 '호별방문 제한'). 한국보다 훨씬 긴 선거운동 기간을 법으로 보장하고, 호별방문을 허용하는 다른 민주주의 국가들과는 출발선 자체가 다른 것이다.

이처럼 한국은 선거법과 정당법이 필요 이상으로 엄격하여 선거운동 기간 선관위로부터 많은 '계도'를 받게 된다. 공직선거법 제93조는 선거일 120일 전부터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문서·도화의 배부와 게시를 포괄적으로 금지하며, 제105조는 선거운동을 위한 행진이나 연도 인사도 5명(후보자 동행 시 10명) 이내로 제한한다. 허락되는 선거운동 기간이 어차피 짧으니 거대 양당의 공천 결과 발표는 본선거가 시작되기 직전까지 이어진다. 이는 선거구 획정과 후보자 기호 배정 등을 줄줄이 지연시키기도 한다. 당내 경선만 과열되며 공천 헌금같은 부패 문제까지 양산한다.

'죽은' 선거 운동의 반복과 지역·정당 정치의 약화. 결국 어떤 결과를 낳았나. 바로 무투표 당선이다.

무투표 당선지역 확산, '선거'가 나빠진다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는 510여 명이 투표 없이 당선을 확정지을 것으로 예상됐다. 기초의원 정당공천제가 도입된 2006년 이후로는 역대 최다다. 2018년 90여 명, 2022년 490여 명에 이은 가장 많은 인원이다. 공직선거법 제190조는 후보자 수가 해당 선거구의 의원 정수를 넘지 않을 경우 투표 없이 당선을 확정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결국 양당 공천만 잘 받으면 '땡'이다. 거대 양당조차 승산이 없는 지역엔 후보를 내지 않는다.

선거운동 한 번 안 한 후보가 오는 3일만 지나면 그 동네의 구의원, 시의원, 심지어 시장도 된다. 이번 선거엔 수도권 대도시 기초자치단체장 최초로 시흥시장이 무투표 당선됐다. 무투표 당선이 더 이상 비수도권 소규모 선거구의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지난 지방선거부터 수도권에서도 무투표 당선자가 급격히 증가하기 시작한 것이 큰 변화라고 할 수 있다. 이런 현상은 결론적으로 정치혐오와 혐오정치를 동시에 심화시키고 유권자와 시민들이 지역정치를 통해 삶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를 좌절하고 냉소하게 만든다.

선거에서 정당과 후보들의 경쟁은 당원과 지지자, 정치인, 지역의 공무원과 주민들까지 정치와 민주주의에 대해 압축적인 시간 동안 보고 느끼게 하는 과정이 된다. 명함 한 장 나누지 않은 사람이 지역의 대표가 되는 일, 무릎 낮춰 지역 청소년들의 눈 한번 쳐다보지 못한 사람이 교육에 대해 논하는 일은 생각보다 끔찍하다. 그런 국가는 사실상 선거조차 필요 없는 일당독재국가뿐이다.

지난 주말 안동시의원에 세 번째 출마한 녹색당 허승규 후보의 선거운동을 보고 돌아왔다. 약 1만 3000여 명의 유권자가 살아가는 동네에 출마한 시의원 후보가 다섯이다. 한 표 한 표가 치열하게 움직이는 선거구라는 뜻이다. 허승규 후보의 당선을 위해 당원과 운동원들이 새벽부터 늦은 저녁시간까지 선거운동에 열심이니 거대 양당과 무소속 후보 쪽에선 "녹색당 때문에 못 살겠다"는 말까지 흘러나온다.

안동 선거운동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와 터미널에서 택시를 탔다. 기사님은 도로 위에 후보도 없이 트로트만 흘러나오는 유세차를 보며 내게 이런 얘기를 꺼낸다. "내 친구가 선거운동원 아르바이트를 하는데, 투표는 안 할 거래요. 어디를 찍어도 똑같다고…." 이게 우리 정치의 현실이다. 결국 한국 민주주의는 경쟁하는 복수의 정당이 존재하느냐는 이론적인 질문부터, 나의 정치적 이해와 신념을 대표할 정당에 표를 줄 수 없는 현실적 문제까지의 숙제만 고스란히 안고 또 한 번의 지방선거를 끝내게 됐다. 다음은 달라질 수 있을까.

▲ 6·3 지방선거 및 국회의원 재·보궐선거 본투표를 하루 앞둔 2일 서울 은평구 불광역 사거리에 선거 현수막들이 걸려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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