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니터 화면 지도에는 비행기가 오만만 위를 날고 있었다. 기체는 호르무즈 해협을 향해 다가갔다. 창밖은 어둠이 감싸고 있었고 밑으로 바다가 보였다. 기내 오른쪽 K석 창가 자리에 앉은 덕분에 바다가 육지와 만나는 해안선을 살펴볼 수 있었다. 어둠 속에 잠긴 검은 땅덩이는 이란 땅이었다. 흐린 날 밤하늘 별처럼 아주 드물게 반짝이는 빛이 땅에서 올라왔다. 누군가 켜놓은 전등 불빛일 것이었다. 미국과 이란은 휴전 중이지만 최근 사태의 여파인지 기내 좌석은 곳곳이 비어 있었다. 비행기가 고도를 낮추기 시작했고 화려한 도시의 밤 풍경이 내려다보였다. 활주로에 접근 순간 "웰컴 투 두바이"라는 전등 빛 사인이 크게 보였다.
24시간 화려함을 잃지 않는다는 두바이 공항은 조용했다. 두바이 공항은 경유 특화 공항이다. 전 세계의 3분의 2 지역을 8시간 안에 연결할 수 있다는 점을 내세워 항공노선을 집약시켰다. 미 이란 전쟁은 두바이 공항의 특성을 제거해 버렸다. 한국을 비롯해 유럽 주요 국가의 항공사들은 두바이 운항을 중단했다. 환승구역 면세점을 가득 채웠을 이용객은 대폭 줄어 있었다. 사람들은 여행에 대한 기대 대신 태풍의 눈 속 적막을 어색해하는 듯했다. 서둘러 연결 항공편을 타고 떠나고 싶다는 마음이 얼굴들에 묻어났다.
한국 선박 피격 사건과 이란의 아부다비 공습 뉴스가 있긴 했지만, 다행히 취소되는 항공편은 보이지 않았다. 3시간여의 공항 대기 끝에 공습에 대비한 대피 권유 문자를 수신한 채 탑승교를 따라 걸었다. 1시간에 가까운 기내 대기가 이어졌지만, 승객들은 별다른 동요 없이 기다렸고 마침내 비행기는 이륙했다. 아침 안개 속에 브르즈할리파가 내려다보였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물을 발 아래 깔고 선회하던 비행기는 이내 고도를 더 높여 구름층을 뚫고 순항고도에 올라 오랫동안 사막 위를 날았다.
8시간을 더 가야 하는 여정이었기에 기내에서 제공되는 영화목록을 살피다가 <뉘른베르크>를 발견했다. 현지 도착 다음 날 방문할 도시였기에 주저 없이 플레이 화살표를 터치했다. 2025년 개봉된 이 영화는 독일 공군 루프트바페 총사령관 헤르만 괴링의 1945년부터 1946년까지의 전범재판 과정을 다루고 있다. 배우 러셀 크로가 신념을 잃지 않는 독일군 고위 장성 괴링 역을 맡았다. 뉘른베르크 법정을 재현한 장면을 보면서 내란 법정을 떠 올렸다. 국가를 위한 행위였다는 내란 법정의 당당한 피고인들 모습이 뉘른베르크 전범재판 풍경과 겹쳐 보였다.
20시간이 넘는 긴 여정 끝에 독일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도착했다. 일주일간 주어진 미션은 3가지였다. 한인 청년 이주노동자의 삶을 관찰하고 독일 철도를 시승하며 전쟁과 관계 깊은 도시 몇 곳을 찾아보는 것이었다. 이 글은 이 중에서 독일 철도 시스템과 방문한 도시에 관한 이야기이다.
공항 접근성 측면에서 프랑크푸르트는 유럽 최고의 도시다. 공항에서 열차를 이용하면 시내 중앙역까지 15분이면 도착한다. 도착 터미널에 따라 광역 철도인 S반 열차를 타거나 고속열차도 이용할 수 있다. 한국에서 출발하는 직항이나 경유 편의 적지 않은 항공편들은 최근 새로 연 공항 3 터미널에 도착하게 된다. 시내로 가는 열차를 타려면 각 터미널을 연결하는 모노레일을 타고 1 터미널로 가야 한다. 주황색 열차 그림과 그 옆의 Regional Trains(광역 열차)가 쓰인 표지판을 찾아 따라가면 된다.
1터미널 열차 타는 곳에 가까워지면 독일 철도 공사가 운영하는 예약센터가 보인다. 센터 입구에는 표 발매기도 있어 발매기가 익숙한 사람은 표를 사기 위해 줄을 서지 않고 승차권을 구할 수 있다.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도착하는 사람은 어떤 표를 사야 할까? 돈이 넘쳐나는 여행자가 아니라면 여러 경우의 수를 대비해 복잡한 방정식을 풀어야 한다. 공항에 도착한 시간도 살펴봐야 하고 프랑크푸르트에서의 체류 기간도 따져 봐야 한다. 또 일행이 있다면 할인율이 높은 그룹권을 살 수도 있다. 프랑크푸르트를 잠시 거쳐 가는 것이라서 중앙역에서 다른 도시로 간다면 6.9유로짜리 1회권을 구하면 된다.
그러나 시내에서 1회 이상 전철이나 지하철, 트램, 버스 등을 이용해야 한다면 1일권을, 2명 이상일 경우 그룹권을 사용하면 교통비를 절약할 수 있다. 공항까지 이용할 수 있는 1일권은 13.5유로로, 구매한 시간부터 다음 날 새벽 5시경까지 시내 모든 교통수단을 무제한 이용할 수 있다. 프랑크푸르트권 교통조합인 RMV 앱을 설치했다면 앱으로도 승차권을 구매할 수 있다. 나는 공항 왕복이 가능하고 프랑크푸르트와 가까운 도시인 마인츠나 에쉬본 같은 곳까지 이동이 가능한 33.2유로짜리 1주일권을 샀다. 7일간 셀 수없이 많은 횟수를 이용해서 기간권의 이점을 마음껏 누렸다.
한국인들의 해외여행이 일상화된 지금은 독일 교통수단 이용 방법이 알려져 개찰구가 없는 역이 크게 낯설지는 않다. 한국은 코레일이 운영하는 장거리 철도를 이용할 때를 제외하고는 시내에서 열차를 이용할 때 개찰기에 교통카드를 인식시킨 후 들어가고 나와야 한다. 하지만 독일에서는 이 같은 일종의 장벽 같은 게 존재하지 않는다. 표를 구매한 사람들은 표를 소지한 채 열차를 이용하면 된다. 이런 환경으로 인해 표를 사지 않고도 얼마든지 열차를 탈 수 있다. 다만 수시로 벌어지는 검표 과정에서 검표원에게 적발될 경우 60유로, 현재 환율로 10만 원 정도를 무임승차 벌금으로 내야 한다. 검표는 수시로 이루어진다. 보통 2인 1조의 검표원들이 객차 안 승객들의 표를 일일이 검사한다. 프랑크푸르트 중앙역 S반 승강장에서는 여러 명의 검표 요원들이 서 있다가 각기 맡은 열차로 향하는 모습도 볼 수 있다.
대중교통에서 한국과 독일의 공통점은 무임승차에 대한 사회적 논란이다. 다만 그 성격은 차이가 있다. 한국의 무임승차 논란이 65세 이상 노인에게 주어지는 경로우대 혜택에 따른 손실 비용에 대한 것이라면, 독일은 대중교통 시스템의 오랜 역사 속에서 형성된 무표 승차에 대한 것이다. 2023년 독일 통계청은 열차와 버스 승객의 3.5% 정도가 무임승차를 한다고 발표했다. 무임승차에 따른 독일의 한 해 손실 비용은 3억 유로, 한화 4500억 원에 달한다. 독일에서 무임승차는 형사처벌 대상이다.
독일 형법 제265a조는 대가 미지불 편취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1항에 따르면 "대가(요금)를 지급하지 않을 의도로 공공 목적의 통신망 이용, 교통수단에 의한 운송, 또는 행사나 시설의 입장료를 편취한 자는 1년 이하의 징역형 또는 벌금형에 처한다"고 돼 있다. 히틀러 시대인 1935년 등장한 265a 항은 주로 위조 동전을 활용한 공중전화의 무단 이용을 막기 위해서 만들어졌지만, 공중전화가 사라진 오늘날에는 무임승차에 대한 처벌 조항으로 남았다.
운송회사는 반복적으로 무임승차를 하는 사람들의 데이터를 경찰로 넘긴다. 경찰은 운송회사로부터 전달받은 무임승차자에 대해 고발 사실을 알리고 의견 진술 기회를 주지만 진술 여부와 무관하게 검찰로 보낸다. 보통 초범일 경우 기소 되지 않고 반복적으로 고발된 사람에 대해서는 벌금을 추징한다. 전체 기소 대상자의 4분의 1 정도는 바로 징역형에 처하고 벌금형을 받은 사람의 상당수도 벌금 대신 징역형을 선택한다.
독일 사회에서는 265a조에 대한 문제 제기가 계속되고 있다. 265a조를 없애자는 사람들은 무임승차를 형사처벌 대상으로 간주하는 게 타당하냐는 의문을 제기한다. 연방정부 법무장관인 슈테파니 후비히 역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무임승차 합법화를 지지할 충분한 이유가 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기독민주·기독사회연합은 반대 의사를 밝혔다. 사회민주당 출신 법무장관의 의견을 두고 좌우가 대립하는 양상이다. 후비히 법무장관이 무임승차 합법화를 지지하는 이유는 무임승차 범죄화에 따른 사회적 비용 때문이다. 경찰 행정 시스템과 법원, 교도소가 부담해야 하는 비용이 너무 크다는 실용적 입장에서 접근한 결과이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교통수요가 줄었던 2020년에도 일반 형사법상 유죄 판결의 6%가 무임승차에 대한 것이었다. 경찰, 검찰청, 법원, 교도소가 무임 승차라는 대량 범죄를 다루는데 소중한 자원이 투입되는 만큼 다른 강력 범죄 예방이나 수사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또한 교도소 과밀화 문제, 중범죄자 재활도 부족한 상태임을 강조한다.
시민사회에서도 무임승차에 대한 형사처벌 조항 폐지 목소리를 내고 있다. 반복 무임승차자들의 대부분이 사회경제적 약자라는 현실부터 접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단속 과정에서도 단속반이 유색인종 등 소수민족에 대해 차별적 대우를 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2021년 12월 당시 33세의 작가이자 언론인인 아르네 셈스롯(Arne Semsrott)의 주도로 만들어진 단체 프라이하이츠폰츠(Freiheitsfonds·Freedom Fund)는 무임승차로 교도소에 수감 중인 죄수들의 석방을 위해 기금을 모으고 있다. 프라이하이츠폰츠는 2019년에 교통 요금 미납으로 독일 전체 수감자의 약 10%에 해당하는 약 7000명이 구금형을 선고받았다고 추산했다. 2021년 12월 16일 자 <Die Tageszeitung> 기사에 소개된 아르네 셈스롯의 인터뷰에 따르면, 교통 요금 미납으로 투옥된 사람들의 87%는 실업자이고 15%는 노숙인이다. 투옥된 사람의 15%는 심각한 자살 충동도 겪었다고 한다. 2021년 프라이하이츠폰츠는 기부금으로 83명의 수감자를 교도소에서 탈출시켰다.
독일 형법에서 가장 가혹한 형벌인 징역이 가장 경미한 범죄에 대해 남발된다는 비판과 무임승차자에 대해 처벌하지 않으면 결국 운영사가 손실을 보고 이는 운임 인상으로 연결돼 요금을 내는 사람들이 피해를 본다는 주장이 부딪히고 있다. 지금 독일 사회는 무임승차에 대한 형사처벌 대신 행정적 제재를 가하는 쪽으로 방향을 바꾸는 중이다.
한국의 무임승차 논란은 65세 이상 노인에게 주어지는 경로우대 혜택에 따른 손실 비용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에 대한 것이다. 지방정부는 지자체가 운영하는 도시철도 적자의 상당 부분이 경로우대에 따른 무임승차 손실분이고 이에 대한 중앙정부의 지원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고령화에 따른 노인 인구 증가는 지하철의 수익 구조를 더 악화시킬 것이라는 점도 지자체의 걱정거리다. 이에 따라 노인 연령을 상향해야 한다는 주장도 계속 나오고 있다. 그러나 한국 대중교통이 운임 수입에 상당 부분 의존하고 있는 구조가 타당한지에 대한 평가와 OECD 국가 대비 심각한 노인빈곤율, 시민 이동권, 대도시와 지역과의 형평성 등의 논의도 필요하다.
철도망의 특성은 그 존재 자체가 사회에 기여한다는 점이다. 온실가스 절감, 교통혼잡비용, 유류 비용 등 철도 운영으로 얻는 사회적 이득을 비용으로 환산해 그 일부라도 도시철도 재정에 편입시킨다면 도시철도 운영기관의 재정 부담을 상당 부분 줄일 수 있다. 문제는 이 같은 체제를 사회적 합의를 걸쳐서 만들어 낼 수 있는가이다. 이제까지 철도에 대해 들어가는 비용은 정부 보조금 또는 적자 메꾸기, 도로에 들어가는 비용은 투자라는 왜곡된 통념이 자리 잡고 있었다. 철도 적자가 경영부실의 결과가 아니라 철도의 사회적 역할 수행 과정에서 발생한 것이기에 적자에 대한 시각 전환과 사회적 지원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SK하이닉스·삼성전자가 달성한 영업이익으로 내년에 거의 100조 원에 달하는 법인세를 정부가 더 걷을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국가재정운용계획에 제시된 올해 재정지출의 10%가 넘는 막대한 액수다. 이 같은 초과 세수를 어디에 쓸지 정하는 것도 매우 중요한 일이다. 미이란 전쟁에 따른 어려움을 겪고 있는 서민들과 자영업자들을 위한 지원에 쓸 수도 있고 취업난에 고통받는 청년세대를 위해서도 사용할 수 있다. 소비 진작을 통한 경제 활성화를 위해 국민에게 분배할 수도 있다.
그러나 최소한 일정 금액만큼은 공공교통에 투자하는 것이 필요하다. 공공교통 인프라와 교통환경개선에 투자하는 것은 시민들의 이동권을 확대함은 물론 이동 비용을 낮추게 된다. 공공교통이 활성화될수록 탄소배출이 줄어들고 많은 사회적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공공투자를 통해 지속 가능한 사회로의 전환을 위한 선순환 모델을 만들 수 있다.
눈에 띄는 성과가 발생했을 때 그 몫은 누구의 것인가라는 문제는 개발이익환수 문제에서도 삼성전자 노사의 성과급 줄다리기에서도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한 아이가 제대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온 마을 사람들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다. 빛나는 성과의 배경에는 그 성과를 만들어 낸 직접적 당사자뿐만 아니라. 그 같은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거나 희생했던 수많은 사람의 땀과 피가 녹아있다. 공화국의 진정한 의미는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해 작동한 숨은 노력을 배제하지 않는 것이다. 무엇 하나 연결되지 않은 것이 없는 현대사회에서 과실을 독점하는 것만큼 공화국을 피폐하게 만드는 것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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