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만강의 동쪽 끝단 중국 지린성 훈춘시 팡촨촌(防川村). 북·중·러 세 나라 국경이 만나는 이곳의 전망대에 오르면 동해가 보인다. 눈으로 보이는 거리가 불과 15km다. 그런데 그 바다로 나가는 배는 없다. 훈춘에서 15km만 가면 동해인데, 중국은 대신 1,000km를 돌아 다롄항을 통해 서해로 나간다.
이 어처구니없는 우회는 138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860년 베이징조약으로 청나라가 연해주를 러시아에 양도하면서 동해로 나가는 길이 막힌 것이다.
2026년 6월 8~9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7년 만에 평양을 찾았다. 외교적 의전과 사회주의 연대의 수사 뒤에, 이번 방문의 가장 깊은 층위에 자리 잡은 의제는 바로 이 15km였다. 중국이 138년간 풀지 못한 숙제, 두만강 출해권의 현실화다.
종이 위의 권리, 물리적 장벽
중국의 두만강 출해권은 '종이 위의 권리'로만 존재해왔다. 1991년 중소 국경협정 제9조는 오성홍기를 단 중국 선박이 두만강 제33계점 이하에서 동해로 항행할 수 있음을 명문화했다. 1992년에는 실제 시험 항행까지 이루어졌다. 그러나 이후 아무 진전이 없었다.
막힌 이유는 세 가지였다. 중·러·북 3국 간의 관계와 지정학적 이해가 끊임없이 엇갈렸고, 세 나라의 경제 발전 수준과 협력 의지가 달랐으며, 무엇보다 도강(渡江)의 물리적 조건이 최악이었다. 1938년 장고봉 사건 이후 일본이 고의로 강바닥에 말뚝을 박아 항로를 막은 이래, 수십 년간 방치된 두만강 하류는 토사와 연안 섬으로 뒤엉켜 대형 선박이 통항할 수 없는 상태가 됐다.
가장 결정적인 물리적 장벽은 교량이다. 1959년에 건설된 러·북 우의교(철도교)의 상판 높이는 7~11m에 불과해 대형 화물선은 원천적으로 통항 불가능하다. 더 큰 문제는 2024년 계약해 2025년 착공한 신(新) 러·북 공로교다. 2026년 6월 개통을 앞두고 있는 이 다리 역시 상판 높이가 약 8m 수준이며, 교각이 촘촘하게 설계되어 있다. 구(舊)·신(新) 두 교량이 두만강 하구를 동시에 가로막는 '양교쇄강(兩橋鎖江)'의 구도가 완성된 것이다.
변수가 달라졌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바꾼 힘의 방정식
그렇다면 왜 지금인가? 가장 큰 변수는 러시아다. 2026년 5월 중·러 정상회담 공동성명은 두만강 출해 문제를 기존의 '건설적 대화(建设性对话)'에서 '1991년 협정 제9조 정신에 따라 북한과 함께 계속 3자 협상 작업을 잘 해나간다'는 표현으로 격상했다.
이 한 줄의 변화가 갖는 무게는 상당하다. 30년간 움직이지 않던 러시아가 마침내 테이블에 앉겠다고 한 것이다.
배경은 명확하다. 서방의 강력한 제재로 경제가 옥죄인 러시아는 극동 개발을 생존의 활로로 삼아야 했고, 그 열쇠는 중국의 자본과 물동량이다. 중국에 대한 경제적 의존도가 사상 최고치를 기록한 러시아로서는 두만강 문제에서 더 이상 버틸 명분이 없어진 것이다.
북한의 셈법도 달라졌다. 러시아와의 밀착으로 자원 대 원조의 구도를 만들었지만, 그것만으로는 경제적 발전과 도약에 한계가 있다. 중국은 이미 2000년대 후반 북한으로부터 나진항과 청진항 부두의 30~50년 장기 사용권을 확보한 상태다. 훈춘·투먼에서 나선을 잇는 육상 교역도 이미 활성화되어 있다.
두만강 출해권 문제를 협상 테이블에 올림으로써 북한은 중국과 러시아 사이에서 자신의 전략적 몸값을 극대화하는 레버리지를 쥔다.
시진핑이 평양에서 꺼낸 패
이번 정상회담에서 시 주석은 두만강 출해권을 직접 명시하는 대신, 더 영리한 방식으로 접근했다. 양국 관계 발전을 위한 네 가지 의견을 제시하면서 "변경 통상구의 전면 재개통, 민항 항공편과 국제 여객열차 운행 재개"를 명시적으로 언급했다. 이것은 코로나 이후 교류 정상화의 언어로 포장되었지만, 실질적으로는 북한 경제를 중국 중심의 물류·경제권에 깊숙이 편입하는 구조화 작업의 첫 단추다.
대만 연합보는 이번 방북과 관련해 중국이 교량 높이를 높이고 준설 작업을 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두만강 하구 개조 방안을 이미 제시했다고 전했다. 중국이 설계·설비·시공 인력을 대고 북·러는 상징적 수준으로만 출자하는 방안이다. 물리적 장벽인 교량과 하상(河床) 문제를 중국 자본으로 해결하고, 그 대가로 항행 규칙과 물류망의 주도권을 쥐겠다는 구상이다.
단기적으로는 대형 화물선 직항이 아닌 우회로의 고도화가 현실적인 경로다. 훈춘에서 육로·철도로 나선까지 이동한 뒤 동해로 출항하는 Rail&Sea(鐵海聯運, 철도-해운 연계 복합 물류) 방식이다. 나진항은 이미 잘 발달해 있고 투먼·나진 간 도로에도 컨테이너 트럭이 많이 오간다. 중국 입장에서 두만강 하류보다는 이 루트가 비용 면에서 효율적이다.
그럼에도 장기적인 목표는 두만강 하구의 직접 통항이다. 구체적 경로는 3단계로 그려진다. 1단계는 하상 준설과 중소형 바지선 통항 규정 제정, 2단계는 나진항 연계 복합 물류의 제도화, 3단계는 우의교 개축 또는 신(新) 공로교의 상판 리프팅 시스템 도입을 통한 대형 선박 직항 실현이다. 이것이 현실화되면 동북 3성의 물류 비용은 30% 이상 절감되고, 훈춘의 대외무역 총액은 25% 증가할 것으로 추산된다.
일본의 초긴장, 미국의 복잡한 셈법
두만강 출해권 논의가 수면 위로 떠오르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한 나라는 일본이다. 닛케이·산케이 등 주요 일본 언론은 이번 북중 정상회담의 핵심 의제로 두만강 하류 개발을 통한 중국 선박의 동해 진출을 일제히 지목했다.
특히 산케이신문은 중국이 동해 진출에 성공하면 홋카이도와 사할린 사이의 소야해협을 거쳐 북극해로 이어지는 부동 해로를 확보하게 된다고 경고했다.
실제로 중국 해군 북부전구 소속 함선 5척이 2026년 3월 말부터 동해상에서 일본 측의 감시 체제를 정밀 조사하는 정황이 포착됐다. 일본이 중국의 '군사적 실력 행사가 이미 시작됐다'고 우려하는 근거다.
실제로 두만강 하구 개발은 단순 물류망 확충을 넘어 군사 전략적으로도 중대한 의미를 지닌다. 두만강 출해권이 현실화되면 한미일이 공조한 동해 포위망에 북중러가 끼어드는 격이 된다.
지금까지 중국이 태평양으로 나가려면 대만·필리핀을 잇는 제1도련선을 돌파해야 했다. 두만강을 통해 동해에 직접 접근한다는 것은 이 도련선 전략의 근본을 우회하는 북방 출구를 확보하는 것이다. 중국이 동해를 자유로이 출입하게 되면, 이를 관할하는 새로운 해군 전력의 필요성이 생긴다. 논의되는 북극함대 구상은 이런 상황을 전제로 한 것이다.
미국의 입장은 더 복잡하다. 트럼프 행정부는 북미 대화 재개 의지를 갖고 있으며, 중국을 통한 간접 소통 채널을 완전히 닫지 않고 있다. 그러나 중·북·러 3자 물류·안보 협력의 제도화는 미국의 대북 제재 체계를 구조적으로 잠식한다. 두만강이 열리는 순간, 제재의 구멍이 물리적 통로로 전환되는 것이다.
한국의 자리: 이재명 정부의 '대두만강 이니셔티브(GTI)'는 통할까?
흥미로운 것은 한국의 대응이다. 중·러·북 3자가 협력 기조를 굳혀가는 동안, 정동영 통일부장관은 6월 4일 몽골 울란바타르에서 열린 제11차 울란바타르 동북아 안보대화에서 ‘한반도 평화공존과 동북아 공동번영의 길’을 주제로 한 특별연설에서 정전체제를 종식하고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의 방법을 제시하였다.
핵심은 1단계에서 미·중·남북 4자 회담을 먼저 열고 몽골과 러시아, 일본을 2단계로 참여시키는 유연한 구도였다. 여기에 서울-베이징 횡단 고속철도와 '대두만강 이니셔티브(GTI)'를 함께 내놓았다.
이 구상의 특징은 중국의 두만강 출해구 확보와 이해가 맞닿아 있다는 것이다. 남북을 잇는 물류 통로가 중국 동북지역의 물류 수요와 결합하고, 그리고 두만강 하구를 통해 동해로 나아가 북극항로와 연결된다면 한국도 이 구도에서 유의미한 역할을 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적 한계도 명확하다. 북한이 한국의 방안을 선뜻 받아들일 가능성은 낮고, 중국이 한국의 이니셔티브에 의존해 판을 짤 이유도 없다. 결국 이 구상이 현실화되려면 북미 관계의 변화라는 전제 조건이 먼저 충족되어야 한다.
물리적 통로는 닫혀 있다, 그러나 판을 짜는 쪽은 중국이다
요약하면 현재 두만강 하구의 상황은 '통이불창(通而不暢)', 즉 통하기는 하나 원활하지 않은 상태다. 두 개의 낮은 교량이 대형 선박의 직항을 가로막고, 하상의 토사가 쌓여 수심이 얕으며, 북한의 인프라 건설 속도는 중국의 전략적 시간표를 따라가지 못한다. 신압록강대교의 세관 시설이 10년 넘게 완공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 그 상징이다.
그러나 중국이 이번 평양 방문을 통해 얻은 것의 본질은 바로 '의사봉'이다. 협상 테이블의 주재권이다. 두만강을 개조하든, 나진항 복합 물류를 먼저 가동하든, 장기적으로 교량을 개축하든 그 규칙을 누가 만드느냐가 핵심이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여섯 나라에 동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삼각주, 북태평양과 북극해로 이어지는 해상 전략 통로. 이 공간의 게임 규칙이 이번 평양 회담을 기점으로 3자 협상의 제도적 틀 안으로 들어왔다는 것이 결정적이다.
138년을 기다려온 15km. 중국의 관점에서 이 거리는 단순한 물류 경로가 아니다. 동북아 해양 질서에서 중국의 존재를 새로 쓰는 전략 지도다. 그 지도가 다시 그려지는 동안, 한국은 지금 어느 자리에서 어느 방향을 보고 있는가?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한다면, 미래의 동해는 우리의 목소리가 빠진 채로 설계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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