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감온도 33도(℃) 이상의 폭염 속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매 2시간 20분 이상씩 의무적으로 쉬어야 한다'는 시행령이 드디어 마련됐다. 동시에 체감온도가 '33℃보다 조금 낮아' 쉬지 못했다는 이야기가 현장에서 들려온다. 이럴 바엔 차라리 온도가 33℃를 넘길 바래야 하는 건지, 찜통 같은 폭염에 잠깐의 휴식만 주어지면 문제가 없는 건지, 폭염 속 노동자에게 정말 필요한 건 무엇일지 등의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그러는 새 폭염은 나날이 기록을 경신하고 또 어디서 노동자가 쓰러지거나 죽었다는 기사를 접한다. 살인적인 폭염을 기록한 2025년 여름, 연속 기고를 통해 폭염 속 노동자들의 생존기를 4회에 걸쳐 전한다. 이를 통해 폭염 속 노동자들을 진정 힘들게 하는 것은 무엇인지, 그래서 대안은 무엇인지를 고민해 보고자 한다. 편집자주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쐬고 있는 온도계. 처음 노조 단체소통방에 쿠팡 대구2센터의 온도계 사진이 올라왔을 때, 사실 별다른 반응은 없었다. 오히려 단체소통방에서 사람들이 관심을 보였던 건 온도계가 에어컨 바람을 쐬고 있었다는 사실 자체보다도 그 후에 일어난 일련의 일들이었다.
이 문제를 처음 발견한 조합원은 노조 지침에 따라 곧바로 노동부 관할지청에 신고했고, 다음날 관할지청에서 근로감독을 나와 문제가 시정됐다. 그런데 며칠 후 해당 조합원이 똑같은 문제가 발생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상황 파악을 위해 자리를 잠시 비우자, 이번엔 관리자가 근무지 이탈이라며 사실관계확인서 작성을 요구했다. 쿠팡 대구2센터는 노동자들로부터 문제제기를 받자, 온도 측정을 제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온도 측정을 제대로 하는지 확인을 못 하게 하는 방식으로 문제에 대응했던 것이다.
황당한 일들이 계속되다 보니 무엇부터 문제 삼아야 하는지 헷갈릴 지경이다. 하지만 문제의 핵심은 명확하다. 왜 쿠팡 물류센터에서는 사람이 아니라 온도계가 에어컨 바람을 쐬게 됐나. 이는 '쿠팡이 또 쿠팡했다'는 단순 해프닝이 아니라, 현재 폭염 시기 사업장 온열질환 예방 대책이 갖는 한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건이다.
지난 7월부터 시행된 개정 산업안전보건법과 산업안전보건에 관한 규칙(산안규칙)의 핵심 내용은 체감온도가 33℃를 넘으면 매 2시간 이내 20분씩 휴게시간 부여를 의무화하는 것이다. 그런데 여름이면 찜통이 되는 물류센터에서는 잠깐의 휴식도 매우 귀중하다 보니 매일 모두가 물류센터 온도가 33℃를 넘는지를 두고 촉각을 곤두세우게 된다. 사측 입장에서도 33℃만 안 넘으면 하루 유급 휴게시간을 1시간 가까이 줄일 수 있으니 33℃라는 숫자에 집착하게 된다.
하지만 당장 물류센터의 온도를 낮추기 어렵기 때문에(실상은 돈이 많이 들기 때문에) 회사는 물류센터가 아니라 온도계 온도를 낮추려는 유혹에 빠지게 된다. 그러다 보니 쿠팡에서는 열기를 내뿜는 작업 장소가 아니라 상대적으로 시원한 곳에 온도계가 설치되는 일이 계속 있는가 하면, 급기야 이번 대구2센터처럼 사람이 아니라 온도계에 에어컨 바람을 내뿜는 일이 발생하게 됐다.

폭염 대책이 아니라 온도 측정이 문제가 되는 이 상황의 일차적인 책임은 분명 쿠팡에 있다. 하지만 관리자들이 특정한 방식으로 행동하는 경향이 있다면, 제도 설계가 잘못된 것은 아닌지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이에 다른 나라의 폭염 시 노동자 건강 보호 관련 제도들을 살펴봤다. 해외의 사례가 주는 주요 시사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폭염 시 휴게시간은 필요하지만, 작업장의 열을 줄이는 것이 우선이다. 폭염 대책 관련 국제 사례를 분석한 ILO의 보고서에 따르면, 폭염 시 노동자의 건강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우선 열에 대한 노출을 없애는 게 우선이며, 그게 어렵다면 냉방장치나 환기시설 설치와 같은 공학적 조치를 통해 작업장의 열을 줄이려고 먼저 노력해야 한다. 휴게시간은 작업장 온도를 낮추기 위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특정 온도 이상으로 작업장 온도를 낮추지 못할 때 보완적으로 이뤄져야 하는 조치이다.
실제로 열 환경 관리에 대한 강제조치를 부과하는 대부분의 나라들은 작업장에 온도 기준 준수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예외적으로 한국 등 몇 개 국가만 그렇지 않다. 특히 실내 작업장의 경우 어느 정도 온·습도 조절이 가능하므로 온·습도를 조절하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 그러나 물류센터는 '건축법상 창고'로 분류돼 냉방장치 설치 의무가 없을 뿐 아니라, 현재 산안규칙상 사업주에게는 작업장 온도를 특정 온도 이하로 낮춰야 할 의무가 없다. 폭염 시 온열질환 예방 조치로 휴게시간이 주로 부각되는 것은 이런 맥락 때문이다.
둘째, 인체 외부의 열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인체 활동에서 발생하는 열도 중요하게 고려해야 한다. 즉, 작업장의 온도 기준, 혹은 온열질환 예방조치를 실시해야 하는 온도 기준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노동자가 어떤 강도의 일을 하고 있는지도 중요하게 고려해야 한다. 예를 들어 독일에서는 작업강도에 따라 작업장의 온도 기준과 대응 조치가 달라진다. ILO가 제시한 기준에 따라도, 물류센터 노동은 작업강도가 '힘듦'으로 5단계 중 4번째이며, '매우 힘듦'에는 광산 채굴, 도로 보수 등이 포함된다. 하지만 한국의 경우 오로지 체감온도를 기준으로 휴게시간 부여 여부가 결정되며, 이에 따라 온도 측정이 관건이 된다.
마지막으로, 폭염이 아니라 '열 스트레스(heat stress)'가 핵심이다. 폭염은 기온이 높다는 걸 강조하는 말이다. 한국에서는 폭염이 강조됨에 따라 관련 조치 역시 자연스럽게 '객관적으로 측정되는 온도'가 중요한 기준이 됐다. 그러나 폭염에 초점을 둘 경우 인체 활동으로 발생하는 열 뿐만 아니라 더위에 더 취약할 수밖에 없는 사회적 집단, 주거 환경 등 개인적, 사회적 특성을 고려하기 어렵다. 따라서 개인이 경험하는 열 스트레스를 노동자 건강 보호의 기준으로 삼을 경우 온열질환 예방 대책이 온도로 환원되지 않고 보다 종합적인 접근이 가능하다. 열 스트레스는 노동자의 온열질환 예방과 관련하여 이미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개념이기도 하다.
쿠팡 물류센터의 온도계가 아니라 노동자가 에어컨 바람을 쐬려면, 쿠팡뿐 아니라 폭염 시 노동자 건강 보호를 위한 접근 방식도 바뀌어야 한다.
※ 참고자료
1) ILO, 2024, “Heat at Work: Implications for safety and health”
2) 신새미‧변상훈‧심상효, 2022, “폭염‧한파 건강장해 예방조치 개선방안 연구”, 산업안전보건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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