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를 "사기극"으로 칭한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아래 제30차 유엔(UN)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30)에 미국이 불참한 가운데 중국의 존재감이 부각되고 있다. 세계 최대 온실가스 배출국임에도 재생에너지 설비 가격 하락을 이끌어 신흥국이 기후 의제에 동참할 실질적 발판을 만들고 있다는 평가를 받으면서다. 의장국인 브라질의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대통령은 기후변화 부정론에 "패배"를 안겨야 한다며 사실상 트럼프 대통령을 겨냥했다.
룰라 대통령은 10일(이하 현지시각) 브라질 벨렝에서 열린 COP30 개막식 연설에서 "허위정보의 시대에 반계몽주의자들은 과학적 증거뿐 아니라 다자주의의 진전도 거부한다. 그들은 알고리즘을 조작하고 증오를 심고 공포를 퍼뜨린다. 그들은 기관, 과학, 대학을 공격한다"며 "(기후변화) 부정론에 또 다른 패배를 안겨줄 때가 됐다"고 밝혔다. 그는 "COP30은 진실의 COP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직접 언급되진 않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을 겨냥한 것으로 풀이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9월 유엔 총회 연설에서 기후변화가 "사기극"이라고 주장했다. 연설에서 언급된 '다자주의' 또한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우선'에 맞서 중국 등이 자주 언급하는 기치 중 하나다. 트럼프 대통령은 하버드대를 비롯해 미 명문대들에도 날을 세우는 중이다.
룰라 대통령은 연설에서 "기후변화는 더 이상 미래의 위협이 아니다. 이는 현재의 비극"이라며 즉각적 행동을 촉구했다.
미국은 전세계 배출량 2위 국가임에도 COP30에 공식 대표단을 보내지 않았는데, 트럼프 정부 아래선 차라리 불참이 낫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트럼프 정부가 기후변화에 대해 무관심을 넘어 공격적인 태도를 취하는 탓에 주요 의제 진전에 방해가 된다는 것이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전직 미 국무부 당국자가 기후변화 방지 조치에 대해 트럼프 1기 정부는 "무관심"한 수준이었지만 "지금은 반대다. 그들 자신이 참여하고 싶지 않아할 뿐 아니라 다른 나라들도 참여하지 않길 원한다"고 평가했다. 이어 "미국이 불참하는 것과 미국이 참여해 상황을 망치는 방해꾼이 되는 것 중 선택하라면 대부분의 나라는 미국 불참을 선호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영국 싱크탱크 왕립국제문제연구소(채텀하우스) 환경·사회센터 연구원 안나 아버그도 미 CNBC 방송에 "트럼프 행정부가 파리협정에서 미국을 두 번째로 탈퇴시키고 미국과 해외에서 반기후 의제를 매우 강력히 밀어 붙이고 있는 것이 정말 안타깝다"며 "이런 측면에서 솔직히 그들이 COP에 고위 당국자를 전혀 보내지 않은 것은 다행이다. 트럼프가 기후변화에 대해 말하는 방식을 보면 그들이 어떤 기여를 할 수 있을지 모르겠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미국이 기후변화 의제 관련 국제사회에서 외면 받고 있는 가운데 중국이 조용히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는 평가다. 핀란드 에너지·청정대기연구소(CREA)의 라우리 밀리비르타 수석분석가가 11일 영국에 기반을 둔 과학·기후정책 웹사이트 카본브리프에 공개한 분석에 따르면 중국의 올 3분기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전년 동기 대비 변화가 없었고 지난해 3월 이래 18달간 정체 및 감소 추세가 유지됐다. 부동산 시장 위축으로 인한 건설 부문 생산 감소 등 경제적 요인도 있었지만 태양광, 풍력 등 대체 에너지의 강력한 성장 또한 이를 뒷받침했다는 평가다.
분석을 보면 중국의 주요 배출원인 전력 부문의 경우 3분기 전기 수요가 급증했음에도 배출량엔 변화가 없었다. 3분기 태양광 및 풍력 발전량이 전년 동기 대비 각 46%, 11% 증가하면서다. 중국은 올해 첫 9개월 동안 태양광 발전 용량 240기가와트(GW) 및 풍력 발전 용량 61GW를 추가했다.
중국이 값싼 설비 수출로 신흥국의 재생에너지 성장에 기여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뉴욕타임스>(NYT)는 브라질, 인도, 베트남 등에서 풍력 및 태양광 발전이 빠르게 확산되고 에티오피아나 네팔 같은 저소득 국가에서 전기차가 늘고 있으며 산유국인 나이지리아가 태양광 패널 공장 건설 계획을 발표하는 등 신흥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재생에너지 변화의 중심에 중국이 있다고 설명했다. 중국이 태양광 패널, 풍력 터빈, 배터리 관련 자국 시장이 포화 상태에 이르자 신흥국에 이를 적극 수출하고 있다는 것이다. 신문은 중국이 베트남의 태양광 패널 공장과 브라질의 전기차 공장에 대한 투자도 진행 중이라고 덧붙였다.
이는 선진국이 한창 산업화 중인 신흥국에 배출량을 줄이도록 압박하고 신흥국은 경제 발전의 권리가 있다고 주장하며 맞섰던 기존 구도에 대한 변화 가능성을 제시한다. <뉴욕타임스>는 신흥국들이 화석 연료 수입을 줄여 외환 보유고에 대한 압박을 줄이고 에너지 안보를 달성하기 위해 재생에너지에 대한 수요를 갖고 있던 가운데 중국의 저렴한 관련 기술이 이를 가능하게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미 환경연구기관 세계자원연구소의 아니 다스굽타 소장은 현 상황이 경제 발전과 온실가스 감축이 함께 갈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고 짚었다.
기후변화 싱크탱크 E3G의 케이시 브라운 기후외교·지정학 부국장은 "10년 전엔 정치적 의지는 있었지만 시장은 없었다"며 재생에너지 시장이 형성된 현재를 "변곡점"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이처럼 변화하는 지형에서 정치적 리더십이 어디서 시작되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중국은 국제 무대에서 재생에너지 전환을 적극 옹호하고 있기도 하다. COP30에 참석한 딩쉐샹 중국 국무원 부총리는 지난 6일 연설에서 "녹색 저탄소 전환은 시대적 흐름"이라며 "우린 환경 보호, 경제 발전, 일자리 창출, 빈곤 근절 등의 목표 사이에서 균형을 맞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엔 총회에서 기후변화 정책을 "녹색 사기"로 칭한 트럼프 대통령과 대비된다.
<가디언>에 따르면 브라질 외교관이자 COP30 의장인 앙드레 코헤아 두 라고는 10일 벨렝에서 취재진에 "중국은 중국만이 아닌 모두를 위한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다"며 "태양광 패널이 저렴해져 (화석 연료에 비해) 매우 경쟁력을 갖게 됐고 이제 그게 어디에나 있다. 기후변화를 생각한다면 이는 좋은 일"이라며 중국을 추켜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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