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 지방선거의 승패는 인물과 바람보다 구도에 의해 결판날 가능성이 높다. 국민의힘의 지역적 기반인 대구에서조차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우세를 점치는 전망이 이를 단적으로 말해준다. 결과는 단정하기 어려워도 대구에서 이런 전망이 힘을 얻는 것 자체가 이번 선거의 판세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더불어민주당이 발의한 '조작 기소 특검법'이 권력의 오만으로 비치고 변수가 될 수 있으나, 접전 지역을 제외하면 전체 판세를 뒤집지 못할 것이다. 행정권력과 의회권력을 가진 정치세력이 지방권력까지 손에 쥐면 제1야당의 견제 기능 자체가 의미를 찾기 어려운 구조가 된다.
이럴 때 주권자는 선거라는 집단지성으로 균형을 맞추곤 했다. 특히 총선의 경우 선거 결과에 대한 예측이 보기 좋게 빗나간 예가 많고 그때마다 선거라는 민주주의의 정치 과정에 감탄하곤 했다.
과연 이번에도 그럴까. 그러려면 기본적으로 정권 견제론의 프레임이 우세해야 한다. 그러나 정권 견제론이 작동하기 어려운 구조라는 사실은 여론조사가 말해주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과 여당의 지지율이 일관되게 야당보다 높다.
제1야당인 국민의힘이 선거 상황에 들어서도 내란 프레임에 스스로를 가두는 외양을 보여주고 형식적인 '절윤' 선언에 그친 게 가장 큰 이유다. 막상 선거 때가 되면 작동하는 진영논리도 의미가 없다. 한국정치를 단순화시켜 말할 때 흔히 51대49의 진영논리가 작동한다고 하지만 '윤 어게인'과 '부정선거론'을 전가의 보도로 내세우는 극우는 결국 한 줌도 안 되는 세력이다.
절대로 보편성과 합리성을 뛰어넘을 수 없다. 불법계엄 1년, 윤석열 내란 우두머리 1심이나 파면 1년이 되는 날 국민의힘은 '윤석열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정당'이라는 논평 외에 아무 반성이나 역사적 성찰을 내놓지 않았다.
이러한 정당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구렁이 담 넘어 가듯 선거라는 국면에 숟가락을 얹는 것 자체가 기이한 광경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윤 어게인'이라는 비판을 받기에 충분한 인사들의 공천은 더욱 선거의 운동장을 기울게 한다.
그래도 선거는 치러야 한다. 정권 심판론 대 야당 심판론, 내란 심판론의 프레임이 결정적으로 작동될 것이다. 부동산 정책이나 중동 전쟁에 따른 고물가·고환율·고유가 등의 위기 상황에 정권이 잘 대처하느냐의 여부는 아예 선거의 쟁점으로 부상하지도 않는다.
설령 정권 내부의 과실이 아니더라도 경제 상황이 어려우면 야당이 그만큼 프리미엄을 안고 선거를 치를 수 있다. 하지만 유권자의 인식에 장착되어 있는 국민의힘에 대한 내란 이미지는 선거 쟁점 여부와 무관하게 선거 전반을 관통할 것이다. 구도 자체가 완전히 기울어졌다는 얘기다.
야당 대표의 미국행이 이를 방증했다. 무슨 의도와 목적을 가지고 미국으로 날아갔는지 명분도 이유도 없다. 미국의 의회를 배경으로 찍은 사진을 올리는 야당 대표의 모습에서 이미 선거를 포기한 정당의 암울함이 느껴진다. 국민의힘 후보들이 흰 점퍼를 입고 중앙당과 거리를 둔다고 해도 그들은 어차피 국민의힘 후보들이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선거에 대패하고서도 극우 성향의 강성 당원들의 지지를 동력삼아 당 대표를 다시 하겠다는 심산인 것 같다. 그게 가능할까. 정치의 최소한의 비르투(virute)조차 망각한 게 아닌가 하는 연민마저 든다. 활력도, 다이내믹스도, 명분도 없는 야당의 대표가 이렇게 존재한 예가 기억에 없다. 선거 때 출국하는 정당 대표는 헌정사 최초일 것 같다.
2016년 이후 정당의 승패를 보면 더불어민주당이 7번 이기고, 국민의힘이 2021년 재보선과 2022년 대통령 선거, 2022년의 지방선거 등에서 3번 이겼다. 향후 세 번의 선거가 있다. 당장 이번 지방선거, 2028년의 총선거, 2030년의 대선이다.
정치는 예상치 못할 무수한 변수에 노출되어 있다. 당장 한 치 앞도 모르는 게 정치다. 그래서 정치는 생물이라고 한다. 그러나 반전이 있으려면 그만큼 이를 가능케 하는 기저의 가치와 지향을 품을 수 있는 에너지가 존재해야 한다.
자신을 지지하는 강성 당원들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역사적 보편성을 담지하지 않는다면 한낱 신기루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쇄신과 혁신, 통찰과 반성이 정치인의 덕목일 때 마키아벨리가 말하는 '권력의 기예(technique of power)'도, 현실주의 정치도 빛을 발할 수 있다.
권력 정치와 현실 정치는 정치의 도덕성을 멀리해도 좋다는 의미가 아니다. 헌법과 법률을 위반한 행위에 대해 정치인이 시대와 합리가 요구하는 가치를 외면한다면 권력 정치를 논할 자격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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