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나무다. 양수발전소는 우리를 밟는 거고 베는 거다. 한수원(한국수력원자력), 물러가라! 양수발전 택도 없다!"
9일 오후 강원 홍천 풍천리,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60여 명의 시민들과 풍천리 주민들이 마을 곳곳에서 "양수발전소를 백지화하라"고 외쳤다. '풍천리를 지키는 나무들' 여덟 번째 시민행동이 열린 날이다.
풍천리는 한수원의 홍천양수발전소 건설 계획으로 수몰 위기에 처했다. 여기엔 주민들 삶터뿐 아니라 이들이 대대손손 의지해 살아온 100년 된 잣나무림도 포함됐다. 주민들에겐 자부심이자 뿌리, 그리고 함께 가족을 먹여 살린 동반자 같은 숲이다.
2019년 반대 투쟁이 시작된 지 8년째이지만, 정부와 한수원은 행정절차를 그대로 강행해 나갔다. 마을 주민 95%가 반대한 서명을 들고 가도, 반대 집회를 690여 번 이어가도 이를 주민 반대로 수용하지 않았다.
벌목은 벌써 시작됐다. 발전소 사전작업으로 보이는 도로 공사가 지난해 초 시작되면서 나무가 대거 잘려 일부 숲은 휑한 모랫바닥만 드러냈다. 이대로 건설이 강행되면, 베어질 나무는 총 11만 1999그루다. 지난 3월부터 '풍천리를 지키는 나무들' 시민행동이 시작된 까닭이다.
"밭도 논도 없는 풍천리에서 뭐 먹고 사냐고? 우리는 잣 먹고 산다. 근데 70%가 침수된단다. 뭐, 양수댐이 좋다고? 댐에서 배 타고 고기잡으라고? 양수댐 보기도 전에 우린 다 죽는다. 150살 되면 보겠지."
풍천리 '투사'로 알려진 주민 박시현(83) 씨가 이날 마을회관 옆마당에서 열린 결의대회에 참석해 소리쳤다. 박 씨는 지난 8년 동안 양수발전소 반대 투쟁에 앞장서 왔지만, 지난해부터 부쩍 건강이 나빠져 매주 열리는 집회도 잘 나오지 못하고 있다.
사회를 본 박성율 목사는 "지금 이 자리가 생태자연도 1등급 지역"이라며 "100년 된 국내 유일의 잣나무 숲이고 산림청 지정 100대 명품 숲이며 국내 잣 생산량의 60%가 나오는 숲인데, 이걸 없애고 양수발전소를 짓겠다는 건 대체 무슨 타당성이냐?"고 외쳤다.
이날 모인 시민들은 부산, 대전, 청주, 음성, 춘천, 서울, 인천 등 전국 각지에서 모였다. 인제군에서 온 최유정 씨는 "기후위기 시대라서 나무를 많이 심어야 한다는데, 11만 그루를 새로 심어도 모자랄 판에 왜 베어 내려 하느냐"며 "심는 게 어렵나, 베는 게 어렵나? 풍천리를 살던 그대로 두라"고 발언했다.
기후위기, 11만 그루 벌목하는 역설
양수발전소는 핵발전소의 짝으로 기능해왔다. 핵발전소는 큰 규모의 출력 제어가 거의 불가능한데, 전력은 수요와 공급이 맞아떨어지지 않으면 블랙 아웃 등의 사고가 난다. 전력이 남을 때 핵발전소의 과다 출력을 흡수해 줄 대안이 필요하고, 양수발전소가 이 역할을 맡아 왔다. 주민들이 "전력 쓰레기장", "에너지 불평등"이라 반발하는 이유다.
홍천군민들도 "남의 일이 아니"라며 풍천리를 찾았다. 지난 12.3 내란 사태 당시 탄핵 집회에서 만나 결성된 홍천군 시민 노래패 '길동무'의 7명은 집회에서 노래 3곡을 연달아 열창했다.
노래를 마친 김미순(53) 씨는 "국가폭력 앞에선 네 마을, 내 마을이 따로 없다"며 "이건 우리 일이다. 이 마을이 무너지면 다음엔 저 마을이 무너지고, 결국 내 마을도 무너져 나에게 닥칠 일이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재명 대통령은 '돈보다 사람'이라 하지 않았느냐? 근데 왜 여기는 외면하느냐"며 "여기도 사람이 살고 있다. 여기 사람도 돈보다 우선이다. 주민들이 죽기 전에 살려라"고 힘줘 말했다.
홍천군민 박순웅 씨는 13년 전 홍천 골프장 반대 투쟁이 한창이던 현장을 방문한 한 브라질 선주민의 말을 대신 전달했다.
"'여러분, 지구 허파가 어디냐?' 하길래 아마존이라 답했다. '그럼 대한민국 허파는 어디냐?' 해서 강원도, '그럼 강원도 허파가 어디냐?' 묻더라. 여기 제주도 크기만 한 홍천이고, 이곳 풍천리가 사실은 강원도 허파다. 허파를 잘 지켜주면 좋겠다."
"살던 대로 살고 싶다"
박 목사는 지금 마을 상황을 "공습 직전"에 비유하며 "절박하다"고 말했다. 지난해 8월 발전소 건설 계획이 고시되며, 한수원은 사업을 시작할 법적 권한을 얻었다. 지금은 기후에너지환경부의 공사계획승인과 홍천군청의 착공승인만을 남겨 뒀다.
그럼에도 주민들은 반대집회와 1인시위를 포기하지 않으며 지금까지 싸웠고, 착공승인은 계속 연기됐다. 박 목사는 "지난 4월 한다던 착공도 막아냈고, 5월에도 착공하지 않겠단 답을 확인했다"고 전했다.
참가자들은 집회를 끝내고 '풍천리를 지키는 나무들' 행동에 나섰다. 20여 분 길을 따라 수몰 지구를 가로질러 행진한 후, 벌목 위기에 처한 잣나무림으로 올랐다. 그리곤 자신이 지킬 나무를 한 그루씩 택해 리본을 매달고 줄기를 안거나 밑동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춘천에서 온 이루나(10) 양도 친구 둘과 둥글게 서서 "공사하지 마세요" "나무야 진짜 미안해" 문구가 적힌 리본을 나무줄기에 매달았다. 풍천리에 왜 왔느냐고 묻자 이 양은 "숲을 못 베게 하려고요"라며 "나무가 없으면 우리도 잘 못 사는데, 왜 계속 베려고 하나요?"라고 물었다.
풍천리 주민들은 오는 15일에도 "살던 대로 살고 싶다"는 피켓을 들고 홍천군청 앞에서 698차 홍천 양수발전소·송전탑 백지화 결의대회를 이어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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