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총선 더불어민주당 비례위성정당에 불참한 정의당이 원외로 밀려나며 독자적 진보정치가 위기에 처했다. 그런 중에도 노동당, 녹색당, 정의당은 대선 이후 연대 전선을 유지하며 활로를 모색 중이다. 3당 대표를 만나 이번 지방선거에 임하는 자세와 독자적 진보정치에 대한 고민을 들었다. - 편집자
노동당은 한국사회에서는 유일하게 사회주의를 강령에 쓴 당이다. 한국의 진보정당 중에서도 이념 지향으로는 가장 왼편에 서 있다고 할 만하다. 교조적 틀에 갇히지 않은 21세기형 사회주의의 새로운 모델을 만들고 이를 유권자의 선택지에 올려놓는 것이 노동당의 꿈이다.
6.3 지방선거에 임하며 노동당이 중요하게 생각한 정책 의제도 자본주의나 시장 논리에서 벗어난 삶의 영역을 확장하는 일이다. 이백윤 노동당 공동대표는 이를 "지역사회의 공공적 재편을 통한 정주여건 개선"이라는 한 마디로 표현했다.
읍면동 공공돌봄센터 설립, 공공병원·주택 확대, 노인·아동·장애인 의료비 100만 원 상한제, 무상교통 등을 통해 지역민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분야에서 공공성을 강화해, 돈이 많든 적든 모두가 살만한 지역을 만들자는 구상이다.
지난 8일 <프레시안>과 만난 이 대표는 이런 포부를 밝히며, 노동당 후보들에 대한 관심과 지지를 당부했다. '각자도생'이 아닌 평등, 공공성, 권리를 말하는 것이 이상하게 여겨지지 않는 사회를 만들고 싶다고도 밝혔다. 이 대표와의 인터뷰를 일문일답 형식으로 정리했다.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쿠팡 문제 해결' 외치는 노동당 후보들
프레시안 : 노동당에서는 이번 지방선거에 몇 명이 출마했나?
이백윤 : 현재까지 8개 지역에서 9명의 후보가 준비 중이다. 기초단체장은 울산 동구와 서울 강북에 나간다. 기초의원은 파주, 청주, 전주, 창원, 부산진구에도 후보를 냈고, 인천에서도 쿠팡 노동자가 나간다.
프레시안 : 현실적으로 당력을 집중하려는 지역이나 시민들이 눈여겨 보길 바라는 후보가 있나?
이백윤 : 모든 후보에게 집중해주시면 좋겠다. 진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꼽자면, 울산의 이장우 후보와 쿠팡 노동자인 정성용, 최효 후보다.
이장우 후보는 36년 동안 지역에서 노동운동과 지역운동을 했다. 상대적으로 당 인지도가 떨어짐에도 상당한 지지를 받고 있다. 이 후보의 선전은 '지역에서 독자적 진보정치가 거대양당에 의지하지 않고도 뻗어나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일이 될 거라 생각한다. 당선이 가장 중요한 목표지만, 15%를 넘으면 성과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른 면도 있다. 이장우 후보는 당선을 위해 선심성 공약을 남발하거나 급진적 요구를 뒤로 물리지 않는다. 지역순환경제를 이야기하며 '지역의 비정규직 노동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공약을 내고 있다. 비정규직 문제가 사회구조적 문제란 걸 직시하고 정규직화가 근본 해법이라는 점을 내세우고 있다.
쿠팡 노동자인 정성용, 최효 후보를 주목해주길 바라는 이유는 쿠팡의 노동현실이 단순히 쿠팡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간 다른 기업이 해온 극악한 노동형태를 더 나쁜 쪽으로 한 단계 끌어올려 반복 중인 쿠팡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한국사회가 어떤 구조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냐는 생각이 있다. 두 후보의 출마에는 이런 사회적 질문이 담겨있다.
"지역사회의 공공적 재편을 통한 정주여건 개선"
프레시안 : 이번 지방선거에서 당 차원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정책 의제는 무엇인가?
이백윤 : '지역사회의 공공적 재편을 통한 정주여건 개선'으로 정리할 수 있다.
해방 이후 한국사회에서 대기업, 기득권 위주 정책이 지속돼 왔다. 그러면서 불평등이 강화됐다. 국토 영역으로 보면 수도권 대도시에 사회적 인프라가 집중되고, 소외된 지역의 인프라와 생활여건은 낙후됐다. 지역민의 삶의 조건이 보장되지 못하니 지역 공동화 현상이 나타났다.
이런 상황에서 기존 지역 정치인들이 토건자본의 이해와 맞물린 선심성 개발 공약을 남발했다. 대부분 당선 이후에 실제로 성사되지도 않았다. 지역에 산단이 많은데, 몇십만 평 부지에 공장 몇 개 들어가고 나머지는 텅텅 빈 곳이 부지기수다.
국가와 지역사회가 개발 공약을 남발할 게 아니라 공공성에 기반해 지역민이 존엄하게 살 수 있는 정주여건을 만들어야 한다. 지역민의 권리가 개개인의 능력 편차, 부의 많고 적음에 좌우되면 안 된다.
프레시안 : 공약에는 그런 문제의식을 어떻게 구체화했나?
이백윤 : 의료, 돌봄, 주거, 교통 등 실제 정주여건에 영향을 미치는 부분에서 공공성을 강화하는 것이 핵심이다.
돌봄 문제를 예로 들면, 돈이 많은 사람은 돌봄의 혜택을 누릴 수 있지만 돈이 없으면 못 누린다. 돌봄의 사유화, 민영화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다. 돈이 많든 적든 기본적으로 필요한 돌봄은 국가와 지역사회가 직접 책임져야 한다. 그래서 읍면동 공공돌봄센터 설립, 민간위탁 사회서비스기관의 단계적 공영화 등 공약을 만들었다.
비슷한 문제의식에서 의료 분야에서는 공공병원·보건의료 인력 확충, 주치의제도 도입·확대, 노인·아동·장애인부터 의료비 100만 원 상한제 실시를, 주거 분야에서는 지방자치단체 책임 공공주택 대규모 공급을, 교통 분야에서는 무상교통 도입을 공약으로 냈다.
"성장주의 정책 '거드는 수준'의 개혁, 넘어서야"
프레시안 : 당의 전체적인 진로에 대해서도 묻고 싶다. 독자적 진보정당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유는 무엇이라 진단하나?
이백윤 : 뼈 아픈 질문이다. 양당의 정치 독점 문제도 있지만, 반성과 성찰도 필요하다고 본다.
핵심 원인은 기득권 정당이 정치의 룰을 결정하는 데 있다고 본다. 그 룰을 자기 정치 세력의 이익을 확대하는 방식으로 유지하고 강화하는 것이 소수정당이 제도정치에 진출하는 것을 막는 가장 핵심적 장벽이라 생각한다. 정치제도, 선거제도 개혁으로 풀어야 할 숙제다.
다른 하나는 반성과 성찰이다. 기존의 진보정치가 많은 성취를 이뤘지만, 근본적으로 기존 보수 양당정치와 차별화하는데 실패했다. 중요한 국면에서 타협하거나 변별점을 확보하지 못했다. 기존 정치와 명확하게 구별되는 의제와 모델을 만들어야 하고, 사회구조의 근본적 변화를 말하는데 인색하지 않아야 한다.
프레시안 : 지난 대선과 총선을 거치며, 거대양당 체제가 더 공고해졌다. 민주당의 정체성을 중도보수로 보는 이도 있지만,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 감축에 드라이브를 거는 등 전통적 진보 의제를 일정 부분 수용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독자적 진보정당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이백윤 : 일단 이재명 정부의 개혁은 '거드는 수준'에서 이뤄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근본적인 정책 방향은 부자와 기득권을 우선으로 한 성장주의다. 이에 대한 시민적 불만을 무마하기 위해 일정 부분 개혁 조치를 하고 있다.
예컨대, 이재명 정부가 반도체와 AI를 이야기한다. 몇 가지 문제가 있다. 반도체 산업이 지금 상당한 호황이고 코스피도 7000까지 올랐지만, 세계 반도체 시장 여건으로 보면 과잉투자가 일어난 지 오래됐다. 상당수 국가가 자국의 수요는 충당 가능한 수준의 생산 능력을 확보해 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다시 반도체 산업에 집중 투자를 하는 건 위험하다. 또 자원을 기업에 집중하면, 불평등 해소나 시민의 존엄한 삶을 보장하는 문제는 뒷전으로 밀리기 쉽다.
실제 정부 개혁 정책도 근본적으로 노동자, 시민의 권리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일하는사람기본법이 대표적이다. 근로기준법을 확대 적용하면 될 일을, 가짜 3.3 노동자나 법 밖에 놓인 노동자의 권리를 따로 규정해 구분짓는 식으로 접근한다. 노조법 2, 3조 개정도 하청 노동자의 노조 할 권리를 전면 보장하기보다는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 등으로 교섭권을 일정 부분 제한했다. 기후정책도 후퇴했다.
이재명 정부가 가진 이런 문제를 잘 들춰내는 것이 진보정당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재벌, 대기업, 기득권 중심 성장주의 정책을 '거드는 수준'의 개혁 정책이 아니라, 시민들의 보편적 생활권과 존엄하게 살 권리를 근본적으로 강화하는 구조적이고 근본적인 대책을 만드는 것이 진보정당의 역할이다.
"평등, 공공성, 권리를 말하는 것이 당연한 사회 만들자"
프레시안 : 그런 역할을 잘 해내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의 지지가 필요한데, 노동 중심 정당을 표방하는 노동당의 노동자 지지 기반은 넓어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이 있다.
이백윤 : 맞는 이야기다. 지난 대선에서 권영국 선본에서 함께 활동했다. 전통적으로 진보정당 지지세가 강했던 노동자 밀집지역의 득표율도 전국 평균과 큰 차이가 없었다.
다른 한편 기득권 세력이 노동자를 계속 분할하고 분열시켜 왔다. 정규직과 불안정 노동자를 갈랐고, 정주노동자와 이주노동자를 갈랐다. 여기에 적절하게 대응하는데 노동운동도, 진보정치운동도 실패한 결과가 지금의 현실로 나타났다고 생각한다.
삼성전자 성과급 논쟁이 그런 상황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사회가 노동자를 분열시키면서 노동자들의 의식구조가 변했다. 그 대응에 실패하며 진보정치와 노동자 사이에 장강이 흐르게 됐다. 노동당도 그 영향 하에 있다.
프레시안 : 상황을 바꾸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나?
이백윤 : 정책적이고 구조적인 접근이 필요한 문제다. 노동자를 분열시킨 핵심 수단인 불안정 노동을 없애는 구조적 변화를 촉진하려 노력 중이다. 공공성에 기반한 사회안전망을 확충해 개인의 삶을 사회적으로 함께 책임지는 구조를 만드는 일도 불안정 노동자와 함께 해나가려 한다.
쿠팡 노동자를 후보로 낸 것도 그래서였다. 노동기본조례 등을 통해 불안정 노동 문제 해결을 위한 세부적인 정책을 제시하는 데 더해, 불안정 노동자를 정치적 주체로 세워 불안정 노동이 사회적 과제라는 점을 드러내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프레시안 : 끝으로 유권자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나?
이백윤 : 민주당 정부가 한국사회에 큰 해악을 끼쳤다. 사회가 위기에 봉착했을 때 상대적으로 약한 사람들에게 위기에 대한 책임을 지우는 식으로 대응했다. IMF 경제위기가 대표적이다.
노동권, 인권, 민주주의를 말하던 이들이 그런 정치를 함으로써 '각자도생'이 한국사회의 운영원리가 돼버렸다. 그게 어쩔 수 없는 세상의 순리라고 사람들을 체념하게 만들었다. 평등, 공존, 우애 이런 가치는 순진한 발상이라고 생각하는 사회가 돼버렸다.
이재명 정부 정책도 부동산에서 주식으로 부의 축적수단이 바뀌었을 뿐 각자도생 원리를 강화하는 데서는 비슷하다. 투기하는 사람이 열심히 일하는 사람보다 잘 사는 사회로 가는 게 정부 기조란 점에서 위험하다.
인간으로서,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누릴 수 있는 권리를 말하는 게 능력이 없거나 게으른 사람들의 하소연으로 치부되는 사회가 되고 있는데, 포기하지 않아야 한다. 그런 권리를 말하는 것이 부끄럽지 않고, 이례적이지 않고, 이상한 이야기가 아니어야 한다. 노동당과 함께 그런 사회를 만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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