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부가 과거 윤석열 정부의 노조탄압과 기본권 침해로 피해를 본 비정규직 노동자와 시민 120여 명 앞으로 3380만 원 상당의 '소송비용 청구서'를 발송했다. 평화적 집회를 강제로 해산한 정부와 경찰을 상대로 제기한 국가 손해배상 소송에서 참가자들이 최종 패소하자 소송비 회수에 나선 것이다.
해산 사태 때 더불어민주당은 정부를 비판했고, 이재명 대통령이 당시 당 대표였다. 노동자들은 "윤석열 정부의 비정상을 바로 잡겠다 한 정부가 맞느냐"고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10일 현재 법무부는 비정규직 노동자 및 해고자 100여 명을 포함한 123명에게, 이들이 건 국가손배소에 대한 소송비용 3378만 9508원을 상환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123명 모두 2023년 5~7월 세 차례 열린 '비정규직 이제그만 공동투쟁' 등의 집회에 참가했다가 경찰에 강제 해산당한 이들이다.
법무부는 이들이 청구한 국가손배소 패소가 지난해 확정되자, 그해 말부터 소송비용 납부를 강제하는 법적 절차를 밟았다.
4년째 평화롭던 비정규직 문화제, '대통령 말 한마디'에 아비규환
문제의 집회는 윤석열 정부의 노조 탄압과 집회 통제 기조가 극에 달했던 때 열렸다. 2023년 5월 2일 고 양회동 씨가 윤석열 전 대통령의 건설노조 강압수사 등 '건폭몰이'에 항의하며 분신한 직후였다. 같은 달 경찰이 포스코의 부당노동행위를 규탄하며 광양제철소에서 고공농성 중이던 노조 간부의 머리를 곤봉으로 수차례 가격해, 해당 간부가 병원으로 이송된 일도 있었다.
같은 달 16일 건설노조가 윤석열 정권 퇴진을 걸고 서울 광화문에서 1박 2일 집회를 여는 등 투쟁 수위를 올리자, 정부는 즉각 "불법집회 금지"로 강경 대응방침을 밝혔다. 이어 18일 윤희근 당시 경찰청장은 체포를 해서라도 집회 주최 측을 검거하겠다고 했고, 21일 당정은 야간 집회를 금지하는 위헌적 법 개정을 추진했다.
이틀 뒤인 23일 윤 전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경찰에 집회 강경 대응을 주문했다. 하루 뒤 충남 당진에선 현대제철 비정규직 노동자의 피켓 시위가 '미신고 불법집회'라며, 경찰이 이들의 목을 조르고 수갑을 채워 연행해 갔다.
그러다 소송으로 이어진 세 번의 집회 중 첫 집회가 추진됐다. 5월 25일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대법원 앞에서 연 1박 2일 문화제로, 집회를 준비하던 중 강제해산돼 결국 열리지 못했다. 경찰은 이를 '미신고 불법집회'로 규정하고, 강제진압과 연행에 나섰다. 이들의 요구는 "비정규직 임금 대폭 인상, 불법파견 사용자 처벌, 정규직 전환"이었다. 대법원 앞 비정규직 문화제는 4년째 해온 연례행사였고, 강제해산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같은해 6월 9일 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주축이 돼 대법원 앞에서 다시 집회를 연 이유다. 소송의 근거가 된 두 번째 집회다. 집회가 시작된 지 두어 시간 후, 경찰은 진압을 시작했고 현장은 아비규환이 됐다. 70여 명의 비정규직 노동자를 700여 명의 기동대가 둘러쌌다. 참가자들은 사지가 붙들려 끌려 나갔고, "하지 마!" "만지지 마!" "차라리 우리를 죽여라!" 등 울음 섞인 고함이 울려 퍼졌다.
손목이 꺾이거나, 바닥에 끌리며 피 흘리는 부상자가 속출했다. 진압에 저항하던 비정규직 노동자 2명은 과호흡 등 증상으로 순간 의식을 잃어 병원으로 후송됐다. 다음 날 "경찰 700명이 이들을 개처럼 끌고 갔다"는 기사가 나왔다.
이들은 7월 8일 "꺾이지 않는 마음!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위해"라는 이름으로 세 번째 1박 2일 집회를 열었다. 이번엔 서울 중구 청계광장 쪽으로 장소를 옮겼다. 이들은 "비정규직 임금 대폭 인상, 진짜 사장 책임지게 노조법 2·3조 개정, 일하다 죽지 않게 중대재해처벌법 개정, 공공요금 국가책임 강화, 사람장사 파견법 폐지, 노동자 민중의 삶을 파탄으로 내모는 윤석열 정권 퇴진" 등 구호를 외쳤다.
참가자들이 문화제를 마치고 야외 취침을 준비하던 자정, 세 번째 강제 진압이 시작됐다. 주변 통행을 불편하게 하고 야간 집회 소음기준치(60데시벨)를 위반한 불법 집회라는 이유였다. 참가자들은 사지가 붙들린 채 바닥에 질질 끌려 나갔다. 옆구리가 밟히거나 경찰 무릎에 눈을 가격당하는 등 부상이 속출했다. 결국 철도 비정규직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어 병원으로 후송됐다. 인권침해 감시활동을 하던 변호사와 인권활동가 12명도 강제로 끌려 나왔다.
TF까지 꾸려 정부 비판한 민주당…경찰 내부 반발까지
강제해산된 참가자 대부분이 비정규직 노동자와 해고자였다. 한국GM, 현대·기아차, 현대중공업, 아사히글라스(AGC화인테크노한국) 등의 제조업 사내하청 노동자부터 톨게이트 요금수납원, 국민건강보험공단 상담원 등 자회사 비정규직, 그리고 영화 촬영감독, 현대자동차 카마스터, 보험설계사, 학습지 교사 등 특수고용 노동자다.
이들이 대법원 앞에서 집회를 연 이유는 법원의 재판 지연 때문이었다. 상당수가 회사의 부당노동행위나 불법파견 문제로 길게는 7~8년째 소송 중이었다. 아사히글라스 해고자들은 회사의 부당노동행위 사건이 2018년 대법원에 상고됐으나 5년 넘게 판결이 나오지 않았다. GM 부평공장 비정규직은 8년 넘게 근로자지위 확인 소송 중이었다. 현대제철 당진공장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2019년 시작된 1심 재판마저 4년째 끝나지 않은 터였다.
당시 더불어민주당은 '윤석열 정부 노동탄압·과잉수사TF'까지 만들어 정부와 대립했다. 강제 해산 사건이 한창 벌어질 땐 '윤석열 정권 반인권적 폭력진압 규탄 기자간담회'까지 열었다. 이때 서영교 의원은 "평화 집회일 때는 폭력적으로 진압해선 안 된다는 게 집시법"이라며 "경찰은 집시법을 위반했고, 윤석열 정권은 헌법에 보장된 집회·시위를 탄압하고 있기 때문에 헌법을 위반했다.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당시 당 대표가 이 대통령이었다.
경찰 내부에서도 정부의 '무리수' 대응에 대한 비판이 있었다. 그해 5월 <경향신문>, <한겨레>에는 "왜 논란을 사서 만드냐", "예전처럼 폭력적인 집회는 없다. 위법이라고 해봐야 도로 행진하다가 노선 이탈하거나 소음 기준을 초과하는 정도", "(강제해산 등으로) 체포에 나서면 충돌이 많이 일어나게 되고 위험해진다"와 같은 경찰 발언이 실려있다.
'기본권 우선' 판례 외면한 법원
결국 집회 참가자들은 강제해산 직후 국가와 경찰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헌법이 보장하는 집회·시위 자유권을 경찰이 위법하게 침해했다는 요지다. 그러나 각 1심 법원은 소송 대상 집회는 '불법'이라 주장한 경찰의 손을 들어줬고, 지난해 판결이 확정됐다.
재판부는 '타인의 기본권이나 공공의 안녕질서에 직접적 위협을 가할 것이 명백한 집회'라야 강제해산 대상이 될 수 있다거나, '단순히 대규모 인원이 참석하거나, 교통 불편이나 소음이 발생할 수 있다는 이유로 집회를 금지할 수 없다'는 기존 대법원 판례는 무시했다.
지난 2월엔 법원 판결과 배치되는 헌법재판소 결정도 나왔다. '미신고 집회를 개최했다고 주최자를 처벌하는 건 위헌'이라는 판단이다. 헌재는 "타인의 기본권이나 공공의 안녕질서를 침해할 위험성이 매우 적고 실제로 평화롭게 진행·종료된 집회까지 예외 없이 처벌하는 것은 집회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한다"고 확인했다.
집회 인권침해감시단이었던 명숙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활동가는 지난 9일 통화에서 "집회·시위의 자유라는 헌법적 권리가, 어떤 무기를 든 것도 아닌 평화적인 집회가 고작 대통령 말 한마디와 그에 따른 경찰청 지침 변화로 순식간에 무너졌던 사건이었다"며 "판사가 제 자의로 헌법과 대법원 판례, UN 인권 기준 권고 등을 다 무시하면서 이를 용인해 준 건 정말 큰 문제"라고 비판했다.
패소 확정 후, 법무부는 각 소송 당사자에게 △1022만 3208원(1차 집회) △1127만 9500원(2차) △1228만 6800원(3차)의 소송비용을 청구했다.
정부 및 경찰은 1·2차 사건은 법무법인 지평을, 3차 사건은 개인 변호사를 대리인으로 선임했다. 2차 사건을 보면, 서울경찰청은 법무법인 지평에만 1심 착수금 770만 원과 성공보수 770만 원, 2심 착수금 660만 원과 성공보수 660만 원 등 총 2860만원을 지급했다.
김용균 유족에게도 청구서 "적반하장 정부"
고 김용균 씨 어머니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도 두 번이나 경찰에 사지가 붙들려 끌려 나간 피해자다. 똑같이 소송비용이 청구됐다. 김 이사장은 "적반하장 정부다. 피해자들, 특히 비정규직들이 그리 목소리 낼 수밖에 없는 걸 다 알면서 다시 목을 조르느냐"며 "법원은 정당한 집회를 불법으로, 경찰의 불법을 정당함으로 간주했는데, 약자를 생각한다는 정부가 똑같이 한다. 말과 행동이 다르다"고 비판했다.
차헌호 아사히글라스지회 대외협력부장은 "노조할 권리와 집회할 자유를 짓밟힌 노동자들이 억울해서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걸, 윤석열 정권의 비정상을 정상화한다며 들어선 새 정부가 그대로 이어받아 소송비용을 청구했다"며 "윤석열 정부의 탄압을 이어받는 셈이다. 이게 노동존중 정부의 모습인가"라고 물었다.
그는 "특히 참가자 태반이 월 150~200만 원도 제대로 못 버는 특수고용 노동자고, 비정규직, 해고자도 많은데, 열악한 노동자를 상대로 굳이 이 돈을 청구해야 겠느냐"며 "결국 정부를 상대로 목소리를 내지 말라는 경고이자 압박이자, 경제적 부담을 지우며 침묵을 강요하는 것이다. 이 문제를 끝까지 제기하고 싸울 예정"이라고 밝혔다.
법무부·경찰 "국가소송법 따랐다… '공익소송 예외' 법규 미비"
경찰과 법무부는 국가소송법의 의무 규정 절차를 따랐다는 입장이다. 현행법상 소송비용 청구는 법무부 장관의 위임을 받은 관할 고등검찰청 등이 수행한다. 경찰청 송무계장은 9일 통화에서 "(국가소송법 시행령 제12조에) 관할 고등검찰청 등은 소송 수행청이 소송 비용을 회수하게끔 지휘해야 한다는 '의무 규정'이 있다"며 "실무적으로 운신의 폭이 좁고, 소관 경찰청들은 서울고검 지휘에 따라 비용 청구 절차를 밟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내부 훈령으로 소송비용 면제 예외 사유가 규정돼 있으나, 이 사건은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며 "예외 사유는 변호사를 선임하지 않아 소송비용이 매우 적거나, 상대방이 착오로 소송을 제기했거나, 경제적 자력이 없는 경우 등"이라고 밝혔다. 경제적 자력이 없는 기준은 "개인 회생이나 파산에 이를 정도의 수준"이라고 덧붙였다.
법무부 국가소송과는 국민 기본권 침해와 관련한 공익 소송이라는 지적에 9일 서면으로 "국회에서 공익소송의 소송비용 부담을 완화하기 위한 입법이 논의되는 것으로 알고 있으나, 현 단계에서는 공익소송의 개념 및 범위, 소송비용 부담 완화 방안 등이 법제화돼 있지 않다"며 "특정 사건이 공익적 성격을 가진다는 사정만으로 민사소송법상 패소자 부담 원칙이 곧바로 배제되는 것은 아니"라고 밝혔다. 특수고용·비정규직 노동자의 상황을 고려했느냐는 질문엔 따로 답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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