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불평등에 맞서는 진보의 세속화…민주주의의 위기와 노회찬의 민주주의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불평등에 맞서는 진보의 세속화…민주주의의 위기와 노회찬의 민주주의

[노회찬 8주기 토론회] 2026년 시점에서 본 노회찬의 말과 정치

"제 모토가 자유인, 문화인, 평화인입니다."

'휴머니스트'란 칭호를 가장 좋아하던 자유인 노회찬

'누구나 악기 하나쯤 다를수 있는 나라'를 꿈꾸던 문화인 노회찬

'전쟁은 선택지가 아니다'라고 강조하던 평화인 노회찬

노회찬은 생전에 "우리나라가 자유국가, 평화국가, 문화국가가 되는 것. 전쟁 걱정 없이, 그리고 땀 흘린 만큼 보람을 느낄 수 있는 국가가 되는 게 제 꿈이죠."라고 했습니다. 노회찬재단은 노회찬 8주기를 맞아 그의 뜻을 이어가기 위해, 그리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함께 고민하고 논의하는 토론회를 마련했습니다. 3일 오후 국회의원회관에서 진행된 '자유인' 세션의 발표문을 게재합니다. (편집자)

서론

오늘날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해있다는 감각은 낯설지 않다. 가깝게 지난 2024년 한국의 대통령이었던 윤석열은 친위쿠데타를 일으켰고, '반공'과 '부정선거론'은 계속해서 살아남아 한국 사회에 출몰하고 있다. 미국에서 의사당 난입을 선동했던 트럼프는 다시 당선되어 백악관에 돌아왔고, 이민자 강경 탄압을 시도하고 멋대로 무리한 전쟁을 일으켰으며 여전히 '부정선거론'을 주장하고 있다. 미국을 민주주의의 양상이나 제도에 있어 모델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하던 이들은 빠르게 사라지고 있고, 유럽 곳곳에서는 반이민을 내세운 극우 정당이 여론조사에서 1위를 하거나 권력을 쥐는 일들도 벌어지고 있다. 동남아시아를 비롯한 글로벌 사우스를 포함해 세계 전반에서 '독재화의 물결'(Lührmann & Lindberg 2019)이라고 불릴 만한 현상들이 나타나고 있다.

어둡게 스케치했지만, 실은 민주주의의 위기라는 것은 그 자체로 정의하기 까다롭다는 점과 함께 모종의 정치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 민주주의의 의미란 단일하지 않고 상호 경합적이며, 따라서 민주주의의 위기란 그 발화자가 무엇을 민주주의로 간주하고 있으며 따라서 무엇이 위협받고 있는지를 둘러싼 언어적 투쟁이기도 하다. 누군가에겐 민주주의의 위기가 다른 누군가에겐 민주주의의 일상적 작동에 다름 아닐 수도 있는 것이다. 따라서 민주주의의 위기를 발화한다는 것은, 일종의 위기화의 언어를 수행하는 것과 같다(강승 2023).

그런데 이 특징이야말로 노회찬의 말과 글을 통해 민주주의의 위기에 관련된 토론을 진행하는 데 있어 특유한 장점이 될 수 있다. 노회찬은 진보정당이라는 그간 한국 사회에 존재하지 않거나 제대로 드러나지 않던 정치 세력을 새롭게 기입시키고, 또 집권을 향해 설득해 나가던 대표적 주자였다. 노회찬은 위와 같은 필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당원들과 대중들을 향해 민주주의를 기존과 다르게 형상화할 필요가 있었으며 또 날카롭게 위기화할 필요가 있었다.

따라서 노회찬의 글과 말은 (한국) 민주주의를 우리가 어떻게 현상할 수 있을지에 대한 생생한 가능성의 언어이다. 그의 정치적 언어들은 그가 한국 민주주의 그리고 민주주의 일반을 어떻게 그려냈으며, 또한 다시 그려내고 싶었는지와 긴밀히 연결된다. 예컨대 1987년의 제6공화국의 한계를 넘어선 '제7공화국', 노동 없는 정치적 민주주의를 넘어선 '사회경제적 민주주의'는 그가 기존의 민주주의를 문제화하고 위기화하며 또 대안을 제시한 하나의 방법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말과 글은 한국 민주주의의 중대한 맹점들에 대한 진단과 처방에 깊이 연결된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그간 근본적인 개혁이 이루어지지 못했다면 그러한 문제가 여전히 해소되지 않거나 복합적인 위기에 더해 심화되었을 수 있다고 또한 추론할 수 있다. 우리가 민주주의, 또는 한국 민주주의가 겪고 있는 위기라고 진단하는 대상들이 한편으로 그가 문제화했던 현실들의 유산이거나 또는 심화일 수 있는 것이다.

이 글에서는 오늘날 한국 민주주의를 포함한 민주주의의 위기를 구성하는 여러 상황들을 살펴보고, 거꾸로 노회찬의 민주주의가 그러한 상황들을 진단하고 대처해나가는데 어떤 영감을 줄 수 있는지 재구성해본다. 그가 지적했던 것 중 어떤 것은 개선되었을 수 있고, 또 어떤 것은 다른 각도에서 접근해 볼 필요가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한국 정치에 쉬지 않고 휘몰아친 극적인 사건들 이후에도, 어떤 문제는 온존할 뿐만 아니라 더욱 심화되며 위기의 조건을 재생산해내고 있을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마주한 민주주의 위기의 양상은 어떻게 제시해 볼 수 있을까? 오늘날 주요하게 제기될 수 있는 위기화의 언어들은 다음과 같다. 첫째, 우파의 극우화이다. 인종주의나 반이민 그리고 부정선거론 등을 위시한 우파의 전술과 담론은 세계적으로 공유되고 있는데, 한국 사회 또한 예외는 아니다. 둘째, 점증하는 불평등이다. 세계화와 이에 따른 산업의 고도화는, 특히 많은 산업 선진국에서 불평등의 증대나 사회적 박탈을 가져오고 있다. 셋째, 진보의 위기이다. 기존의 진보 정당을 비롯한 진보 세력은 이러한 현상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며 지지세나 기반을 잃어가고 있다. 이 세 현상은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면서 때로는 깊숙하게 연관된다. 아래에서는 이러한 위기의 각각의 상황을 개괄하고, 노회찬의 말과 글이 각각의 위기를 대처해나가는데 제시해 줄 수 있는 지점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1) 정치 '판갈기': 우파의 극우화에 대항해

윤석열의 12.3 친위쿠데타는 한국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고 군대를 동원해 정치활동을 금지하며 국회를 폐쇄하려고 할 수 있다는 발상과 시도뿐 아니라, 이후에 벌어진 국민의힘의 탄핵 반대 입장과 대대적인 탄핵 반대 및 계엄령 옹호 시위는 그간 공고화되었다고 여겨졌던 한국 민주주의에 균열을 내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윤석열과 그 지지자들에 의해 부정선거론과 반공-혐중 담론을 비롯한 음모론들이 부상했으며 서부지방법원에서는 실제 폭동이 발생했고, 이는 극우적 담론과 행태들이 수면 위로 거대하게 떠오른 모양이 되었다. 다행히도 시민들과 야당 그리고 일부 여당의 즉각적이고 강렬하며, 대규모의 끈질긴 저항은 계엄령을 신속하게 해제하고 대통령의 탄핵을 이끌어냈으며 이는 역설적으로 한국 민주주의의 회복력에 대한 증거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무엇이 윤석열과 친위쿠데타를 탄생시켰는지, 그리고 이 글이 작성된 2026년 6월에도 올림픽공원에서 부정선거 음모론이 창궐하는지를 고려해 본다면 한국 사회가 극우화된 우파를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는 여전히 중대한 과제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극우의 부상은 비단 한국적인 현상이라기보다는 지구적인 음모론적 대안 우파의 부상과 궤를 같이한다. 미국의 부정선거론 세력과 한국의 부정선거론 세력과의 교류는 여러 번 지적된 바 있다. 그런데 보다 근본적인 지적 중 하나는 극우의 부상과 심화가 기존 한국의 정치 지형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신진욱은 한국 민주주의를 권위주의화와 재민주화의 '진자 운동'에 비유한 바 있다(신진욱 2018). 이와 같은 진자 운동이 벌어지는 까닭 중 하나로 그는 한국이 군부 권위주의 시기를 겪으며 남게 된 '포스트-권위주의적' 유산들과, 세계화 등에 따른 불평등 심화의 '포스트-민주주의적' 문제들을 동시에 겪고 있는 것을 든다. 이것은 오늘날의 한국 사회에도 유사하다고 볼 수 있는데, 극우파가 군사 쿠데타 시도에 대한 정당화뿐 아니라 반공주의를 다시 동원하는 데서 전자의 문제를, 사회 전반적으로 집값 상승과 불평등이 대두되는 것에서 후자의 문제를 계속해서 마주한다고 볼 수 있다. 신진욱은 비정규직 증가와 함께 노무현 정부가 소득과 자산 지니계수의 악화를 가져왔던 측면을 강조하며, 불평등이 정부의 정치적 정당성을 침식시킨다는 점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보낸다.

문제는 한국의 국민의힘 계열 정당이 극우에 상당히 취약할 뿐만 아니라, 탄핵 국면을 거치며 실제로 극우화된 정당의 면모들을 보여줬다는 점에 있다(신진욱 외 2025, 63). 국민의힘은 계엄당시 반대했던 한동훈을 축출했을 뿐 아니라, '탄핵 찬성 보수'와 '탄핵 반대 보수'가 한 정당 안에 공존하고 있으면서도 당대표는 '부정선거론'에 동조하는 등 우려스러운 모습들을 계속해서 나타내고 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러한 사태가 근래 정당들이 극단적인 후보를 걸러내는 게이트키핑 능력이 상실되는 상황(레비츠키 외 2018)에 비추어볼 때, 윤석열 후보의 탄생과도 구조적으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으며 향후 있을 대통령 선거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테면 양당 체제에서는 다른 제3의 대안이 있기 어렵기 때문에, 정치적 실수나 불만이 차기 대통령 선거에 이르러서는 쉽게 반대 정당 후보에 대한 지지로 나타나게 된다. 따라서 민주당 계열 후보가 집권하고 있다고 해도, 만약 앞서 언급된 사회경제적 문제 등에 따른 불만이 심화될 경우 극우화의 조짐을 보이는 정당의 인기 있는 후보를 마주하는 시나리오 또한 그려볼 수 있다. '반공'의 유산과 '혐중'의 부상이 공명하는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이러한 시나리오는 결코 비현실적인 것이 아닐 것이다. 이런 경우 윤석열의 사례 및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사례와 같이 집권 보수 정당이 극우에 포획되는 사태 또한 다시 상상해 볼 수 있다.

관련해 노회찬의 2010년 언급은 다시 되짚어볼 가치가 있다.

"시지프스와 같은 노력을 국민들에게 언제까지 반복하라고 강요할 것인가 하는 겁니다. 힘들게 바위 올려놓고 또 굴러 떨어지고.

같은 상황을 반복하지 않으려면 판을 바꿔야 되는 것이죠. 그렇지 않으면 당장 다음 선거에서 한나라당을 물리치더라도 다음에는 더 빈번히 한나라당이 복귀할 근거를 만들어주게 된다는 겁니다."(노회찬 외 2010, 131-132)

노회찬의 '불판'을 갈자는 제언, 그리고 선거제도 개편을 둘러싼 제안들은 이러한 맥락에서 다시 이해될 수 있다. 한국의 현 선거 제도의 뼈대를 이루는 국회의원 선거에 있어서 단순다수 소선거구제와 결선 투표 없는 대통령제의 결합은 이와 같은 취약성을 더욱 강화하는 조건으로 기능할 수 있다. 비례대표 정원이 적거나 위성정당 등으로 인해 유명무실화된 단순다수 소선구거제는 유권자에게 사표 방지를 위해 두 개의 거대정당으로의 표 쏠림을 강요하게 된다. 이때 극우가 한 정당에서 상당한 정도의 지지를 받고 있고 심지어 핵심적 당원층을 차지하고 있다면, 국회의원 후보나 대통령 후보에 있어 해당 정당의 후보가 이들을 동원하지 않고 승리하기란 어려운 상황이 된다. 그리고 극우적 성향을 가진 후보나 집단이 상대 진영에 대한 정치적 불만에 힘입어 집권에 성공한 경우, 차기 선거 전까지는 매우 특수한 상황이 도래하지 않는 이상 상당히 값비싸고 오래 걸리는 거리의 견제 이외에는 민주적 통제의 방법이 거의 없게 된다. 정리하자면,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극우적 입장은 언제든 대두될 가능성이 높을뿐더러 이에 포획된 정당과 후보가 집권에 성공할 가능성도 낮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노회찬은 무엇보다 이 문제가 정당과 정치인들이 불평등과 사회경제적 민주주의를 어떻게 대할 것인가의 문제와도 관련되어 있다고 본다. "소선거구 다수대표제하에서 두 당이 영남과 호남의 패권을 바탕으로 국회 의석의 95%가량을 과점하고 있는 양당 중심체제"(노회찬 외 2014, 22)를 그가 앞장 서서 비판한 이유 중 하나는 이러한 체제가 지역주의에 기반한 투표가 아닌 다른 사회경제적 정체성에 기반한 투표, 예컨대 "계급투표 성향의 유권자 지지를 사표로 만들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었다(진보정당추진위 1999, 11). 다시 말해 그에게 비례대표제인가 단순다수대표제인가의 문제는 시민들이 지역의 대표자를 뽑을 것인가, 사회경제적 대표자를 선택할 것인가와도 관련되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선택의 성격은 무릇 선출된 정치인들의 방향성 – 그들이 지역을 대표할 것인가, 사회경제적 의제를 대표할 것인가 – 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그는 간주한다. 사회경제적 의제를 대표하며 불평등을 방지하고 개선하는 개혁을 실현할 수 있는 정치인들의 당선과 추진력, 그것이 진정으로 '판'을 가는 것이고, 선거제도의 개편과 더불어 어쩌면 더욱 근본적으로 극우의 집권을 막는 일이라고 우리는 노회찬을 따라 추론해 볼 수 있다.

다만 보다 비례적인 선거제도로의 개편이 극우를 전면화하는 독립적인 정당의 부상을 가속화 할 수 있다는 반론도 제기될 수 있다. 일례로 정당명부제 비례대표제를 실시하는 대표적인 국가 중 하나인 독일의 경우 2025년 총선에서, '독일을 위한 대안당(AfD)'이 지역 유권자 투표에서는 42석을 얻었지만, 정당투표로 인한 비례 의석으로 인해 110석을 얻어 총 152석으로 기민당에 이어 원내 2당이 되었다. 이후 구성된 내각에서 기민당은 사민당과 대연정을 이루며 극우 집권을 방지하고 있고, 이와 같은 사례들은 선거제도가 개편된 이후에도 극우 정당의 부상에 대한 지속적인 고민과 노력이 필요함을 보여준다. 이에 더해 상당한 지지를 확보한 스웨덴(비례대표제)의 '민주당'과 집권에 성공한 이탈리아(다소 높은 비례대표 비율과 소선거구제와의 결합)의 '이탈리아의 형제들'의 사례는 극우 정당이 부상 이후에도 연정을 비롯한 기존 정치 세력과의 동학 속에서 대적으로 '온건화'될 수 있다는 것도 함께 보여준다(Berman 2022). 반면 임기의 보장이라는 경직성을 가지면서 탄핵이라는 까다로운 절차를 거치지 않으면 권력을 잃지 않는 대통령제의 경우, 당선 후에는 이와 같은 기제가 작동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점 역시 신중하게 고려해 볼 가치가 있다.

(2) 사민주의: 점증하는 불평등에 대항해

노회찬은 민주화 이후의 한국 민주주의를 87년 6월 항쟁과 7-9월의 노동자 대투쟁의 분리로 바라본다(노회찬 외 2010, 405-406). 앞선 투쟁을 이끈 이들은 제도권 정치로 흡수되었으며 직선제 개헌을 이뤄내고 권위주의적 정치 제도를 개혁했으며 결과적으로 권력을 쥐게 된 세력이 되었지만, 이들이 다른 한편으로는 신자유주의를 수용한 세력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정치적 민주주의와 사회경제적 민주주의가 분리되어, 전자는 실현되었지만 후자는 성공하지 못했다는 것이 그의 인식이다.

점증하는 불평등과 이에 대한 불만은 지구적 민주주의 위기의 배경이자 때로는 핵심을 구성하는 요소이기도 하다. 우파 포퓰리즘의 반이민 및 외국인 배척은 산업의 역외화와 고용 상실, 지역 낙후 등으로 인한 박탈감을 그 배경으로 꼽을 수 있다. 이는 오늘날 선진국의 부를 책임 지는 고생산성 산업들로의 산업적 전환과 투자들이 자동화와 아웃소싱 등에 따라 충분한 수의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내지 않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Rodrik 2023). 예컨대 소수의 다국적 기업과 관련 투자자 및 임직원에게는 막대한 부가 집중되지만, 그 밖의 상당한 수를 차지하는 일자리의 몫에는 변화가 없거나 오히려 줄어드는 상황이 그것이다. 선진국들은 이와 같은 이중구조(dualism) 문제에 노출되어 있는데, 우리는 이를 포퓰리즘의 중대한 배경에 대한 전반적 설명으로 간주할 수 있다. 이에 대한 노회찬의 언급도 흥미로운데 수출 대기업의 고용 창출 효과가 상대적으로 컸던 과거 박정희 대통령 시기에는 1% 성장에 30만 개 일자리가 생겼지만, 지금은 4% 성장에도 32만 개에 불과하다면서 양질의 다른 일자리를 창출할 필요성을 역설한 바 있다(노회찬 외 2014, 236).

앞서 노회찬의 생전 시기 비정규직화와 불평등 증가가 심각한 문제로 떠올랐음에도, 오늘날에도 불평등 문제가 뚜렷한 개선을 이루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한국의 경우 소득 상위 10%가 차지하는 비중이 외환위기 전후로 크게 늘어난 반면 하위 50%가 차지하는 비중은 크게 줄었고 이러한 양상은 계속해서 악화되고 있다(World Inequlity Database). 최근의 일례로 2026년 1분기와 과거 윤석열 정부 시기 2024년 1분기의 가계동향조사의 소득 및 지출을 비교해 보면, 소득 불평등이 개선 보다는 악화의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을 수 있다는 점을 확인해 볼 수 있다. 2024년 1분기의 경우 1~3분위 소득이 상대적으로 큰 폭으로 증가하고 5분위의 소득은 다소 감소하며 불평등이 다소 개선되는 양상이었던 반면, 2026년 1분기의 경우 5분위 소득만 큰 폭으로 증가하고 특히 1~2분위의 경우 물가 상승 등으로 인해 지출이 큰 폭으로 늘어 가계의 적자폭이 심화된 모습이었다(통계청 2024; 국가데이터처 2026). 뿐만 아니라 집값 상승 및 주가 상승으로 인한 자산 격차 역시 상당히 심화되어 왔을 것임을 합리적으로 추론해 볼 수 있다.

하지만 불평등과 분배의 문제가 사회적으로 또 국회를 비롯한 정치적인 공간들에서 충분히 다뤄지고 있다고 보기는 쉽지 않다. 그것이 노회찬이 말한 한국 사회의 '사회경제적 민주주의'의 부재이자, 그가 '사민주의'를 대안으로 내세웠던 까닭이었다.

그리고 이는 예컨대 단순히 개별 노동조합들을 지지하는 것과 달리 그 조직과 정치적 대표 양상을 변화시키고 사회 전반적인 평등을 이끌어내는 것이었다. 그는 노동문제에 있어 '산별노조가 형식적으로만 존재하는' 상황, "직장을 넘어선 계급적 단결이 없"는 상황(노회찬 외 2014, 88-89)을 지적하며 다음과 같이 비판을 가한다.

"한국 진보의 가장 큰 문제는 노동문제에 있다. 진보세력이 정치적으로 세력화되는 데 가장 큰 대중적 기반은 노동자 계층인데, 우리는 노동운동을 대중화하는 데 실패했다. 민주노조운동의 초기 노선이었던 전투적 조합주의가 결과적으로 전투력 있는 조합만 살아남게 만들면서 대기업 노조 중심으로 흘러갔던 탓이다. 다른 나라의 경우 사회복지는 기본적으로 노동조합의 요구로 이루어졌다. (...) 반면 우리나라의 투쟁할 힘이 있는 노동조합원들은 복지가 일반 국민보다 높은 수준으로 해결된 사람들이다. (...) 우리 사회 전반이 도달해야 할 복지 수준보다 더 높게 누리고 있으니까 임금이나 더 올려달라는 요구만 한다. 이런 식으로 가면 노동조합원이 아닌 사람은 이들의 운동에 주목할 하등의 이유가 없어진다."(노회찬 외 2014, 206)

이러한 문제의식은 앞서 언급한 노동시장 이중구조 문제와 더불어, 최근 반도체 성과급 논쟁에 있어 단기적으로 제대로 된 사회적 토론과 결과를 이끌어내지 못한 현상과도 겹쳐볼 수 있다. 세계화된 자본주의에서 지구적으로 이익을 벌어들이는 '슈퍼스타' 기업의 이익 배분 문제는 까다로운 문제를 제기하는데, 역설적으로 슈퍼스타 기업들에서의 개별 성과급 협상이 '성공적'일수록 소득 및 자산 불평등이 심화될 것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노회찬이 제7공화국을 제안하며 그가 노동자의 이익균점권을 강조한 부분을 참조해 볼 수 있다. 그는 제7공화국 개헌을 통해 노동자의 이익균점권을 실질화하겠다고 역설하면서도 동시에 기업별로 이익의 격차가 난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특정 기업에 있는 특정 노동자에게만 돌아가지 않도록 초기업적으로 합리적으로 균점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연설한다(노회찬아카이브 2007).

이와 관련되어 개헌의 정치가 갖는 중요성에 대해서도 이야기해 볼 수 있다. 한국 사회에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과 윤석열 대통령 탄핵을 거치며 그간 여러 번 개헌 논의가 이어졌지만, 대통령 연임 여부와 같은 쟁점에만 주로 매몰되어왔다. 반면 우리 삶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근본적 권리와 국가적 환경을 어떻게 다시 설계하고 토론할 것인가라는 주제는 거의 논의되지 못했다. 반면 노회찬은 2007년 제7공화국을 주장하며 교육, 의료, 주택의 공공화를 내세우기도 했으며, 2018년 박근혜 탄핵 이후 정의당의 전면 개헌안을 제시하려고 노력했다. 비록 사회적으로 활발한 토론을 발생시키는 데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우리는 그와 같은 개헌의 정치가 사회경제적 논의를 촉발시킬 수 있는 힘에 대해 충분히 기대해 볼 수 있다. 특히 낙태죄를 폐지하거나(아이슬란드) 동성혼에 법적인 지위를 부여(아일랜드)하는 헌법 개정에 대해 시민의회를 활용한 사례는 개헌의 정치가 실질적인 사회경제적 평등의 보장을 향해 효과적인 길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뿐만 아니라 이와 같은 광범위한 시민의 참여를 전제로 한 헌법 개정 논의는 민주주의에 있어 우리가 수동적 시민으로 머무르거나 상대 당파 정치인들에 대한 증오에서 멈추지 않고, 직접 공동체적 사안을 심의하고 토론하며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다른 종류의 시민상을 그릴 수 있다는 의미 또한 가진다.

추가적으로 노회찬에게 사민주의란 정치적 제도나 경제적 제도뿐 아니라 일종의 문화이자 역사적 축적이기도 했다. 그는 북유럽이 영국과 달리 "정치제도뿐 아니라 그 사회의 문화도 사민주의적이다"라는 것을 느꼈다며, 그 까닭을 북유럽 사민주의 정당의 오랜 집권 기간에서 찾는다(노회찬 외 2014, 391-392). 다시 말해 그에게 사민주의란 우리가 시민이자 노동자로서 서로 보다 평등하게 살아가는 방식이자, 우리가 만들어 갈 수 있는 추구할 만한 공통의 경험이었던 것이다.

(3) 진보의 세속화: 진보의 위기에 대해

민주주의 위기의 또 다른 측면은 '진보의 위기'라고 부를 만한 현상이다. 이것은 외적으로는 기성 중도좌파 정당의 쇠락이나(이를 테면 유럽의 많은 국가들의 경우), 진보 정당의 세력 약화(한국의 경우)로 대표적으로 표현되는데, 보다 심층적으로는 사회운동에 있어서 우파 운동의 동원력 강화 및 진보적 관점과 대안의 주도권 상실과도 연결 지을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은 노동조합 조직률의 미비나 쇠퇴 및 세계화로 인한 불평등 증대와 궤를 같이 하는 측면이 있다.

그런데 노회찬 역시 진보 정당을 추진해 나감에 있어 많은 개인적인 정치적 실패뿐 아니라 세력 감소를 경험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는 진보 정당의 창당과 집권을 꿈꾸었지만, 그가 살아있던 시기에도 진보 정당은 꾸준한 상승세보다는 여러 차례 위기를 경험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그는 진보가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스스로 변해야 하는 지점에 대해서 상당히 많은 말과 글을 남겼다.

무엇보다 그는 진보 세력이 '정치'를 받아들이고 '세속화'될 것을 강조했다. 그리고 그에게 대중성은 정치 그리고 진보와도 뗄 수 없는 것이었다. 그는 이념이나 관습보다는 '실사구시'라고 표현한 현실주의나 실용주의라고 불릴 만한 발상들을 보여주었는데, 이것은 진보가 보다 많은 사람들을 설득하며 권력을 잡을 대안을 내놓아야 하며, 그럼으로써 세상을 바꾸어야 한다는 현실적 책임의 발로이기도 했다.

구체적으로 그는 진보가 무엇보다 "정치를 재인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정치를 "그 자체"가 아니라 "자기 운동의 관성과 관념을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보는 그간의 관점을 비판하며, 정치란 "현실의 국민과 소통하고, 그들에게 이해를 구하고, 지지를 얻고, 참여를 도모하는 것"이라고 말한다(노회찬 외 2014, 179). 그러면서 그는 그가 노원병에 출마했을 때 한 당원 부부가 '그가 당선되지 않기를 바라는데, 그 까닭은 그가 현실 정치로 세속화될까봐 계속 투사로 남아주길 바랬다'는 취지의 말을 언급하며, 그러나 그는 "진보정치가 더 세속화되어야 한다고 본다"라고 단언한다.

이러한 '세속적'이고 현실적인 측면은 그가 "탈 운동권 진보"(182)라는 말을 이야기하는 곳에서도 더욱 강하게 드러나고, 또 리더십에 관한 그의 입장에서도 흥미롭게 이어진다. 그는 진보정당이 인물론을 경계하는 것이 비현실적이라고 보았는데, 그러한 현상이 나타난 이유 중 하나로 과거 독재 체제에서 지하 활동을 했을 때 정파 리더들이 수면 아래 있었던 습성 때문으로 보았다. 그러면서 "일상 활동을 열심히 하면" 이와 같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의 피상성 또한 비판하며 "스웨덴 사민당이 각 지역에서 일상 활동을 열심히 해 지금처럼 커진 것도 아니"라고 강조했다. "안에서는 리더지만 국민들이 볼 때는 리더가 아닌" 상황 속에서는 당이 커질 수 없다는 것이었다(194-200).

그가 이처럼 리더십을 중시하는 까닭은 정당, 특히 진보 정당이 대중적 지지를 받아야 한다는 그의 생각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그에게 진보의 장점과 대중성은 오히려 가장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기도 하다. 노회찬이 무엇을 각기 진보의 장점과 약점으로 간주하는가에 관한 다음과 같은 언급이 그러한 생각을 잘 보여준다.

"헌신성, 대중적 친화력, 대중을 신뢰하는 것, 대중을 중심에 놓는 것, 약자들을 위한 정의감 등 진보의 장점을 최대화하고 키워나가야 한다. 그간 진보는 관성이나 낡은 질서에 갇혀 있으면 할 수 없는 여러 가지 정책을 만들고, 추진하고, 설득시키고, 힘을 만드는 데 두각을 나타내왔다. 그런 능력을 최대한 강화시켜야 한다. 이와 동시에 이상주의적이고, 비대중적이고, 자기 고집으로 분열하기 쉬운 진보의 약점을 인정하고 그것을 최소화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공공연하게 벌여야 한다. 이상과 현실은 늘 갈등을 빚게 마련이기 때문에 진보의 이상주의적 취향은 현실에서 방해물이 될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대중적 확산이 힘들어지는 약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노회찬 외 2014, 208. 강조는 필자.)

흥미로운 것은 그가 '대중성'에 관한 언급을 진보의 장점과 약점으로 동시에 언급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대중에 관한 성격은 진보의 장점이 될 수도 있지만, 동시에 단점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이 부분을 조금 더 자세히 이해해 보면 다음과 같다. 노회찬은 다음과 같은 상황에서 진보가 그 힘을 가질 수 있다고 보았다. 소수의 특권층이 아닌 대중을 대변하며, 그 와중에 기존의 상상력과 한계에 갇히지 않으려고 하고, 대중의 힘을 믿고 설득을 멈추지 않으며, 대중에 끝없이 다가가려 하는 특징을 극대화했을 때. 반면 다음과 같을 때 진보를 힘을 잃을 것이다. 바로 그러한 이상주의적 측면들이 고집이 되고 비대중적이 될 때, 설득을 포기하고 확산에 힘을 들이지 않을 때. 만약 오늘날 진보가 대중과의 상호 신뢰, 즉 대중에 대한 지지와 믿음을 모두 상실한 것처럼 보인다면, 우리는 그 양상이 어떠하며 그 까닭이 무엇인지에 대해 진지하게 토론해 볼 수 있어야 할지 모른다.

그는 "아주 자연스럽고 설득력 있게, 공감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정치"라며, "민주화라는 게 대단한 가치를 실현하는 게 아니"며 "다수의 사람들이 원하는 방향대로 가는 게 민주주의라고 한다면, 다수의 사람들이 원하는 것, 그들에게 이익이 되는 걸 만들어주는 것이 민주화"라고도 언급한다(274). 이것은 그가 가진 대중을 설득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당위에 대한 굳은 고백이라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그의 관점에 따르면, 정치란 다양한 모습을 한 많은 대중들을 상대로, 또 그러한 대중들과 함께 할 수밖에 없는 운명인 것이다. 말하자면 그가 소망하는 정치란 소금으로 머무르기보다는, 비록 그 길이 굴곡질지라도 아래로 폭넓게 흘러 바다가 되는 것이었다.

이처럼 그의 말과 글에서 대중이나 현실이라는 말은 매우 반복해서 등장한다. "흔히 좌파하면 이상 이러는데, 실제 성공한 좌파들을 보면 그지없이 대중적이고 현실적이었다"는 지적(노회찬 외 2010, 135)부터 시작해서, 진보가 "그동안의 관념성을 버리고 적극적으로 정치의 영역을 활용하는 현실주의적 접근"을 해야 한다는 주문에(180), 진보의 기본 원리란 "실사구시"이며 그것이 곧 "생명"이라는 말까지(184).

그는 흔히 보수가 성장을 진보가 분배만을 강조한다는 관념에도 도전하며, 진보가 성장전략을 이야기해야 한다고도 주장한다(노회찬 외 2014, 232-233). 그는 독일에서 정부가 '환경사업'을 지원해서 일자리를 만든 예시를 들며, "중소기업들을 지원하거나 정부가 직접 일자리를 만들어야"함을 역설한다. 성장 과정에서 "국가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며, "오히려 우리[진보]가 더 잘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질문도 던진다.

노회찬의 이러한 말과 글은 진보의 위기에 관한 손쉬운 해답을 제공해 주는 것은 아니지만, 진보가 대중적인 힘과 지지를 되찾기 위해 무엇을 점검해 볼 수 있는지에 대한 충분한 자극이 될 수도 있다.

결론을 대신해

오늘날 민주주의의 어두운 모습들 속에 적잖은 이들에게 진보보다는 퇴보가, 낙관보다는 비관이 우세한 관점으로 보이기도 한다. 2014년 진행되었던 인터뷰에서 노회찬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이 마지막으로 던져졌다. "앞으로 진보의 미래를 낙관하나?" 그는 답한다. "낙관한다." 그 까닭에 대해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며 끝을 맺는다.

"두 가지에서다. 하나는 이 사회가 점점 더 진보를 필요로 하는 사회로 갈 것이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진보가 추구하는 가치의 우월성뿐만이 아니라 계속 스스로를 감시하고 파괴하고 부정하면서 스스로를 혁신하는 진보의 속성 때문이다. 진보는 때로 길을 잃어 방황하고 우를 범하거나 실책을 범하기도 하지만, 그것을 바로잡으려는 고유의 특성을 내재하고 있다. 때문에 진보의 미래를 낙관한다."(노회찬 외 2014, 289)

시간은 끝나지 않기 때문에, 그의 낙관이 실현되었는지 그렇지 않은지에 대해 우리의 판단은 언제나 이를 수밖에 없다. 다만 우리는 그가 제시하는 낙관의 이유를, 거꾸로 낙관의 조건으로 파악해 볼 수도 있다. 진보의 미래를 언제 낙관할 수 있는가? 진보의 미래를 꿈꾸는 이들이 이 사회의 절박한 필요가 무엇인지 파악하려고 노력하며 그 필요에 부응하고자 할 때, 그리고 스스로를 파괴적으로 혁신하며 그 길을 바로 잡고자 할 때.

노회찬의 사상과 삶의 궤적이란 진보란 어떠어떠해야 한다는 기존의 관습에 갇혀 있기보다는, 주어진 상황을 인식하고 그 목표를 위해 변화하며 앞으로 나아간다는 혁신의 연속이었다고 바라볼 수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한국 민주주의를 다르게 인식하려고 했으며, 다른 민주주의로 나아가고 했던 그의 진단과 대안에서 계속해서 영감을 얻을 수 있는 것일지 모른다.

마지막으로 2008년 노원에 출마한 노회찬의 말은 민주주의의 의미가 어떤 것일 수 있는지에 대한 또 하나의 은유를 보여준다. "이번 선거는 게임이 아닙니다. 누가 이기느냐의 게임이 아니라, 우리 유권자가, 즉 내가 어떻게 되느냐의 문제라고 봅니다. 누구를 당선자로 만들 것인가가 아니라 내가 어떻게 나아질 것인가, 내 삶이 어떻게 달라질 것인가의 문제입니다."(노회찬 2019, 67-68) 민주주의란 우리 자신이 무엇이 될 것인가, 우리 자신의 삶이 어떻게 달라질 것인가의 문제라는 것, 그 이야기에 대한 충분한 장소를 마련하는 것이 어쩌면 오늘날 민주주의의 위기를 헤쳐나가는 하나의 출발점이 될 수도 있다.

▲생전의 노회찬 전 의원. ⓒ노회찬재단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