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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노동회의소? 고용노동부는 틀렸다!

[윤효원의 '노동과 세계'] "하층 노동자 현 법적 체계에 포함시켜 노동시장 상층과 하층 분단 극복해야"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이 지난 13일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K-노동회의소' 설립을 제안했다. 김 장관의 표현을 빌리면 "노조조차 만들 수 없는" 프리랜서·플랫폼 노동자 869만 명을 위한 이해대변 기구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일하는 사람 권리 기본법'을 먼저 제정하고, 이를 모법 삼아 생계·복지·권익 보호 기능을 수행하는 자조적(自助的) 공제 조직을 세운다는 구상이다.

"노조조차 만들 수 없다"는 말은 틀렸다

그런데 "노조조차 만들 수 없는"이라는 표현부터 사실과 다르다. 특고·플랫폼·프리랜서 노동자가 노조를 새로 만들 필요는 없다. 자신이 속한 산업이나 업종에 이미 존재하는 산별노조에 가입하면 된다. 실제로 전국대리운전노조, 라이더유니온, 웹툰작가노조처럼 그렇게 조직된 사례도 있다.

이들이 가입하지 않는 데는 본인 의지 부족도 있겠지만, 더 근본적인 이유는 따로 있다. 가입하더라도 국가가 행정 지침이나 사법부 판례, 혹은 입법 공백을 통해 조합원 자격 자체를 부정하거나, 설사 자격을 인정하더라도 단체교섭권과 파업권을 부정해왔기 때문이다.

대법원이 지난 5월 HD현대중공업 사건과 이달 CJ대한통운 사건에서 원청의 교섭의무를 잇달아 부정한 게 그 예다. 즉 문제의 본질은 '노조를 만들 수 없다'가 아니라, 이미 가능한 가입과 조직화의 노력을 국가가 조직적으로 무력화해왔다는 데 있다. 장관의 표현은 이 책임을 국가에서 노동자와 노조 쪽으로 슬쩍 돌려놓는 효과를 낸다.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이 7월 8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비상경제본부 회의 겸 경제·산업경쟁력강화 관계장관회의에 참석, 자료를 검토하고 있다. ⓒ연합뉴스

'제3의 길'이라는 낡은 청사진

노동회의소 구상을 이재명 정권의 우연한 정책 하나로 보기는 어렵다. 강훈식 대통령비서실장은 지난 3일 민주당 국회의원 워크숍에서 "기존 진보 문법에 대한 대중적 피로감이 상당하다"며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의 '제3의 길'과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실용주의 노선을 롤모델로 제시했다.

블레어의 '제3의 길'은 노동자 계급 정당이었던 노동당을 '성공을 열망하는 모든 이를 위한 정당'으로 바꾸며, 재분배의 책임을 국가에서 민간협의체·준공공기구로 분산시킨 노선이었다. 신자유주의적 규제 완화와 노동시장 유연화를 끌어안은 결과 양극화를 심화시켰다는 평가가 뒤따랐다.

K-노동회의소는 이 노선이 현 정권의 노동정책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을 띠는지 보여주는 첫 사례에 가깝다. 노동시장 하층 노동자들에게도 보장해야 하는 노동3권이라는 헌법적 권리이자 국가적 의무의 문제를, 국가 부담이 적은 민간협의체와 자조적 공제라는 프레임으로 슬그머니 옮겨 놓은 것이다.

낡은 아이디어

노동회의소라는 구상은 새로운 게 아니다. 2012년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는 이미 오스트리아·독일 사례를 검토한 연구용역 보고서를 제출받았다. 2017년 대선 국면에서는 한국노총이 문재인 후보 캠프에 노동회의소 신설을 공약으로 요구했고 캠프는 이를 검토했다. 이재명 대통령 본인도 경기도지사 시절과 대선 후보 시절 비슷한 구상을 꺼낸 바 있다.

2026년, 노동회의소는 'K'라는 접두어를 붙여 다시 등장했다. 여러 정치적 국면에 걸쳐 반복 소환되고도 한 번도 실행되지 않은 정책이 이번엔 다를 것이라 믿을 근거는 아직 제시되지 않았다.

10여 년 전의 경고문

이 반복은 필자에게도 낯설지 않다. 지난 2017년 3월 <매일노동뉴스>에 '오스트리아 '귤'이 한국에 오면?'이라는 글을 쓴 적이 있다. 오스트리아 노동회의소가 작동하는 건 그 위에 강력한 단일 노총이 버티고 있기 때문이며, 그 단일 노총조차 1934년 내전과 나치 강점, 강제수용소에서 죽어나간 노조 간부들의 희생을 거쳐 1945년에야 좌파 정파들이 정치적 차이를 뛰어넘어 하나로 합친 결과라는 게 그 글의 요지였다.

오스트리아라는 토양에서 자란 제도를 그대로 옮겨 심으면 귤이 탱자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 글에서 이미 "'고용'이라는 미명하에 실업보험 기능을 잃어가는 고용보험에서 노동회의소 운영비용을 대겠다"는 발상과 "노동부 관료들의 퇴직 후 일자리" 창출로 귀결될 위험을 짚었다.

같은 해 11월 <프레시안>에는 '우물에서 숭늉 찾는 '노동회의소''라는 글을 썼다. 법정 강제가입이 결사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는 문제, 상층부가 결국 관료·노조간부·전문직 출신으로 채워질 수밖에 없다는 문제, 교섭권·행동권이 없는 조직은 실효적 대변이 불가능하다는 문제를 지적했다.(☞ 관련 기사 : 우물에서 숭늉 찾는 '노동회의소')

2022년 12월에는 서울시 노동센터 예산이 삭감되는 걸 보며 <매일노동뉴스>에 "노동센터가 '노동회의소'다"라는 글을 썼다. 대변(representation)이 아니라 보호(protection)에 초점을 맞춘 기관은 이미 있으니, 없는 걸 새로 만들기보다 있는 걸 지키고 키우라는 게 요지였다.

노동회의소에 관해 첫 글을 쓴 지 10여 년이 다 돼 간다. 세 편의 글에서 던진 질문 중 어느 하나도 해소되지 않은 채, 같은 구상이 'K'라는 접두어만 달고 돌아왔다.

국가가 만들어 놓은 공백 위에 세운 집

더 근본적인 문제는 이 구상이 정부 스스로가 만들어온 공백 위에 서 있다는 점이다. 특고·플랫폼 노동자의 근로기준법상·노동조합법상 근로자성 인정을 정부는 입법과 판례에 미뤄왔다.

사회보험 확대도 마찬가지다. 노동시장 하층 노동자들의 사회보험 가입을 위한 여러 가지 제약 요건의 폐지는 아직 이뤄지지 않았다. 적극적인 행정조치를 통한 근로자성 인정에 소극적이고, 입법부와 사법부에 책임을 미루어왔던 역사에 대한 반성 없이, 고용노동부는 노동회의소 카드를 다시 꺼내 들었다.

'자조적'이라는 이름의 재정 착시

'자조적 공제'라는 표현도 뜯어볼 필요가 있다. 2012년 노사정위 보고서가 소개한 오스트리아 노동회의소(AK)의 재정은 순수하게 회원 회비로만 운영된다. 그런데 이게 가능한 이유는 단 하나, 법적 의무가입이다. 노동시장에 진입하는 순간 자동으로 가입되고 회비도 급여에서 원천공제된다. 독일 브레멘도 마찬가지다. 강제가입이라는 장치 없이는 자조적 공제가 재정적으로 성립할 수 없다는 뜻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알려진 K-노동회의소 설계에는 의무가입 조항이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그 모법이 될 '일하는 사람 권리 기본법'조차 위반해도 형사처벌 조항이 없어 강제력이 없다는 게 노동계의 비판이다. 강제가입 없는 자조적 공제는 결국 국가 재정으로 메워질 수밖에 없고, '자조적'이라는 이름은 초기 정치적 부담을 줄이기 위한 수사에 가까워진다.

물론 반대로 의무가입을 도입한다고 문제가 풀리는 것도 아니다. 필자가 2017년 글에서 지적했듯, 특정 계층에게 특정 단체 가입을 법률로 강제하는 것은 결사의 자유라는 기본권과 정면으로 부딪힌다. 결국 이 구상은 두 갈래 함정 사이에 끼어 있다 — 의무가입 없이는 재정이 성립하지 않고, 의무가입을 넣으면 기본권 논쟁에 휘말린다.

그 재원이 어디서 나올지도 미리 따져볼 필요가 있다. 국회 심의를 거치는 일반회계 세금으로 충당하려면 매년 예산안 심사라는 정치적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 반면 고용보험기금은 소관 부처의 재량이 상대적으로 크고, 국회의 사전 통제도 일반회계보다 느슨하다. 이미 이 정부는 구직급여 확대와 모성보호급여 인상을 실업급여 계정에서 지급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데, 이 계정은 적자라는 이유로 보수언론의 공격을 받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K-노동회의소 운영비까지 고용노동부의 손쉬운 곳간인 고용보험기금에서 빼내 쓰게 된다면, 이미 적자인 기금의 부담을 더 키우면서도 국회 예산 심의라는 최소한의 견제조차 우회하는 결과가 된다. 노사가 실업을 대비해 낸 보험료가 국가가 떠맡아야 할 근로자성 인정과 사회안전망 확장의 책임을 대신 메우는 데 쓰이는 셈이다.

혁명이 만든 제도를, 혁명 없이 베끼다

무엇보다 짚어야 할 것은 오스트리아·독일이 노동회의소를 법제화한 역사적 맥락이다. 오스트리아 노동회의소법은 1920년, 즉 1917년 러시아 혁명과 1918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붕괴 직후 빈의 혁명적 노동자평의회 운동이 아직 가시지 않은 시점에 통과됐다.

독일 브레멘은 1919년 실제로 평의회공화국이 수립됐다가 유혈 진압된 도시이며, 그 노동자회의소법은 1921년에 제정됐다. 의무가입이라는 강력한 재정적 특권은 기술적 설계의 산물이 아니라, 체제 붕괴 위협 앞에서 국가와 자본이 어쩔 수 없이 내준 계급적 양보였다.

반면 2026년 한국의 K-노동회의소는 그런 아래로부터의 압력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노동계 반발을 우려하며 조심스럽게 던져지는 하향식 정책이다. 원본이 가졌던 노동자 혁명의 역사적 조건은 쏙 빼놓은 채, 이름과 형식만 가져오려는 셈이다.

K-노동회의소 상층부는 누구의 자리가 될까

노사발전재단의 전례도 무시하기 어렵다. 2007년 한국노총·경총·노동부 합의로 노사 자율 기구로 출범했지만, 2012년 기타공공기관으로 지정되며 사실상 노동부 산하기관이 됐다. 역대 사무총장 자리도 노동부 유관기관장 출신과 한국노총 간부 출신이 번갈아 맡아온 회전문 인사 구조였다. 사실 노사발전재단 창립의 취지도 지금의 K-노동회의소 설립 논리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노동회의소가 실제로 만들어진다면, 국가가 설계 단계부터 주도하고 있는 만큼 고용노동부의 말단 조직으로 전락한 노사발전재단의 경로를 밟을 가능성이 크다. 중앙 노동회의소와 그 아래 세워질 지방조직마다 소장·사무국장 자리가 새로 생길 텐데, 이 자리들이 노동부 퇴직 관료나 정권과 가까운 노조간부들의 이차 경력지로 채워질 것이라는 우려는 기우가 아니다.

간판보다 먼저 필요한 것

노동회의소가 정말 필요하다면, 그건 근로자성을 인정하고 사용자 개념을 넓히고 사회보험 사각지대를 메우는 일을 국가가 해놓은 다음이어야 한다. 지금 순서는 거꾸로다. 정부는 30년 가까이 미뤄온 숙제는 그대로 둔 채, 국가의 의지와 책임을 놓을 자리에 노동회의소를 세우려 한다.

그럴듯한 이름의 기구가 하나 생기고 나면, 정작 풀어야 할 숙제, 즉 노동시장 하층 노동자에게 사회보험을 확대적용하고 노동 3권을 전면보장하는 국가의 의무는 "이제 노동회의소가 있으니 됐다"는 핑계 뒤로 다시 밀려날 공산이 크다.

없는 걸 새로 만들기 전에 있는 걸 먼저 살펴야 한다는 것도 8년 전의 글과 달라지지 않은 결론이다. 서울시·경기도 등지의 노동센터처럼 보호 기능에 충실한 조직은 이제 여러 지역으로 확산되고 있다. 이들에 대한 지원은 ’일하는 사람 기본법' 같은 두리뭉실한 법 제정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법령의 개정를 통해서도 가능하다.

2026년 현재 대한민국 노동시장 하층 노동자에게 필요한 건 새로운 간판이 아니라, 이들을 현행 노동법적 보호 체계 안에 포함시켜 노동시장 상층과 하층의 분단을 극복하겠다는 현 정권의 의지와 결단이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이 7월 15일 서울 종로구 동화면세점 인근에서 연 총파업 집회에서 참가자들이 부채와 손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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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효원

택시노련 기획교선 간사,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사무국장, 민주노동당 국제담당, 천영세의원실 보좌관, 국제화학에너지광산노련(ICEM)에서 일했으며, 지금은 IndustriALL 글로벌노조 프로젝트 컨설턴트로 있다. 근로기준법을 일터에 실현하고 노동자가 기업 경영과 정치에 공평하게 참여하는 사회를 만들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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