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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만행 직면한 독일과 외면한 일본, 극우의 인종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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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만행 직면한 독일과 외면한 일본, 극우의 인종주의

[달리는 기차에서 본 세상] 독일기행 ⑦ 만행을 기록한 드레스덴 군사박물관, '외국인 혐오' 한·일에 던지는 질문

소비에트연방 병사 추모비가 있는 공원을 지나 군사역사박물관에 들어갔다. 일반적으로 군사박물관이나 전쟁기념관은 자국의 자랑스러운 전과를 과시한다. 어떤 전쟁기념관은 전쟁을 찬양하는 분위기를 담고 있기도 하다. 자국의 정의롭고 용감한 군대가 불의한 적에 맞서 싸웠다고 선전한다. 전범을 유치한 야스쿠니 신사의 전쟁 박물관 입구에는 자살 공격에 나선 가미카제 특공 용사의 동상이 서 있다. 1층 전시관에는 가미카제 작전에 사용됐던 전투기 제로센이 일장기를 날개에 선명하게 새긴 채 전시돼 있다.

하지만 드레스덴 군사역사박물관은 전쟁을 담담히 관조한다. 폭격으로 파괴된 드레스덴과 시신이 나뒹구는 거리가 담긴 사진이 전시돼 있다. 파괴된 드레스덴 사진은 독일의 피해자성을 부각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한발 더 나아가 히틀러 시대에 자행했던 자국의 만행을 솔직히 드러내고 있다. 1970년 12월 7일 서독의 총리 빌리 브란트가 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를 방문해 유대인 위령탑 아래에서 무릎을 꿇고 사죄하는 사진도 전시돼 있다.

전시관에서 나의 눈길을 끈 것은 주인 잃은 신발들이었다. 폴란드 아우슈비츠를 방문했을 때 거대한 더미를 이루어 쌓여있던 신발과 여행용 가방을 보고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신발들을 전시해 놓은 곳의 안내문 제목은 쇼아(SHOAH) 였다. 쇼아는 유대인 대학살 홀로코스트를 나타내는 히브리어다.

쇼아에 대한 설명은 다음과 같다.

국가사회주의 이데올로기는 '유대인'을 독일 민족의 최대 적으로 규정했습니다. 1939년부터 히틀러는 그들의 '절멸'을 공공연히 언급했습니다. 이미 권리를 박탈당하고 이주 압박을 받던 유대인 시민들은 자의적인 살해 작전의 표적이 됐으며, 이러한 작전은 점차 조직적인 양상을 띠게 됐습니다.

바르바로사 작전이 개시된 후, SS(친위대)소속 특수 살해 부대는 폴란드에서와 마찬가지로 소련 영토 내의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학살을 자행했습니다. 초기에는 주로 남성을 총살했으나, 1941년 가을부터는 여성과 어린이들까지 살해하기 시작했습니다. 독일 국방군(Wehrmacht)도 이 과정에 협조했습니다.

진격이 계속됨에 따라 도시의 특정 구역이 '유대인 구역'으로 지정됐습니다. 유대인 시민들은 강제로 그곳으로 이주당해 노동에 동원됐습니다. 그들은 그곳에서 비참한 환경 속에 살며 SS, 경찰, 그리고 현지 협력자 등 점령군 세력의 자의적인 횡포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유대인을 완전히 절멸시키기로 결정한 후, 1942년 1월 반제 회의에서 이를 위한 절차가 논의됐습니다. SS는 '라인하르트 작전'이라는 암호명 아래 폴란드에 가스실과 소각로를 갖춘 절멸 수용소를 설치했고, 그곳에서 수백만 명의 유대인이 살해되고 소각됐습니다. 아우슈비츠와 마이다네크 등지에 대규모 절멸 수용소가 있었습니다.

노동이 가능한 사람들은 초기에 군수 산업에 강제로 투입됐습니다(이른바 '노동을 통한 절멸'). 1942년 말까지 '아인자츠그루펜(Einsatzgruppen, 특수임무부대)'은 전선 후방 지역에서 100만에서 200만 명에 이르는 유대인 주민을 살해했습니다. 전쟁이 끝날 무렵, 총 600만 명에 달하는 유럽 유대인이 이 집단학살의 희생양이 됐습니다.

안내문은 파시즘 체제 독일군이 저질렀던 만행을 설명하고 있다. 박물관의 존재는 자국이 저질렀던 비극적인 역사를 잊지 않게 하고 있다. 전쟁 후에 태어난 세대에게도 증오 위에 서 있는 민족주의나 자국 우선주의가 어떤 끔찍한 결과를 가져오는지 보여주고 있다.

▲홀로코스트 끝에 남겨진 주인 잃은 신발들. 드레스덴 군사역사 박물관 ⓒ박흥수

일본이 떠올랐다. 난징을 비롯한 동아시아 곳곳에서 벌어진 민간인 학살을 부정하고 피해자들이 수십 년에 걸쳐 증언해 온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사실 왜곡과 역사적 책임을 부정하는 이웃 국가. 아직도 도쿄의 이케부쿠로나 신주쿠역 앞 같은 곳에서는 온갖 혐오 구호를 담은 판과 대형 스피커를 설치한 승합차 앞에서 “조센징은 일본을 떠나라”라고 목에 핏대를 세우고 떠드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극우파들의 혐오 행위는 한국에까지 전염돼 대림동과 명동 거리에서 중국인들을 표적으로 삼아 자행되고 있다.

독일에서 유대인이나 폴란드 놈들은 독일을 떠나라고 외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극우파의 활개는 전쟁 책임을 부정하고 변변한 사죄조차 외면하는 일본 정부의 행태가, 일본 사회의 비양심이 숙성한 사회적 환경 탓이다.

군사역사박물관 4층에는 1945년 연합군의 공습 당시 파괴된 예술작품과 벽돌들이 전시돼 있다. 밖으로는 야외 테라스가 이어져 드레스덴 시내가 발아래 펼쳐진다. 높지 않은 대부분의 건물 사이에서 불규칙적으로 튀어나온 것들이 성이나 성당 같은 역사가 깊은 건축물들이다. 그런데 이런 건물들은 멀리서 봐도 알아볼 정도로 검게 그을려 있다. 드레스덴 공습으로 불에 탄 곳이 그대로 남아 있거나 파괴된 건물들을 복원할 때 폭격으로 무너지고 불탄 석재들을 재활용했기 때문이다.

▲드레스덴 군사역사 박물관 테라스에서 본 시가지. 높게 솟아오른 건물들은 교회나 성으로 폭격으로 그을린 석재들로 인해 모두 검게 보인다. ⓒ박흥수

트램을 타고 구시가지를 향했다. 엘베강 위에 놓인 다리를 건너는 트램 안에서 본 드레스덴은 아름다웠다. 파란 하늘과 듬성듬성 떠 있는 하얀 구름, 흐르는 강을 따라 형성된 시가지와 건축물을 보며 드레스덴을 왜 엘베강의 피렌체로 부르는지 알 수 있었다. 관광명소인 구 시가지 오페라 하우스 앞에는 넓은 광장이 펼쳐져 있다. 광장에 서면 가톨릭 궁전 교회와 드레스덴 성이 보인다. 교회와 성은 곳곳에 얼룩처럼 검은 벽돌들로 채워졌다. 그 아래로 달리는 노란색의 산뜻한 현대식 트램이 검은 건물들과 선명한 대조를 이루고 있었다.

드레스덴역에서 프랑크푸르트로 향하는 고속열차를 탔다. 저녁 식사를 위해 식당칸을 찾았다. 카레밥과 소시지, 감자튀김은 맥주 안주로 훌륭했다. 한국철도 정규열차에서 식당칸은 사라진 지 오래다. 고속열차를 타면 어디든 세 시간 내외로 도착하는 환경에서 식당칸을 유지하는 것은 비효율적인 일이 돼버렸다. 무엇보다 수요가 넘쳐 승객이 앉을 자리도 모자라는 판에 식당칸 운영은 사치가 됐다. 열차 여행의 낭만 하나를 더 추가하기 위해서라도 북으로 달려 대륙으로 이어지는 철길이 열렸으면 하는 꿈을 잠시 꿨다.

열차는 한없이 펼쳐진 노란 유채꽃밭을 창밖에 선사하기도 하고 소박한 시골 역의 정취를 물씬 풍기는, 작지만 예쁜 마을을 소개하면서 달렸다. 들판을 휘감은 석양 속으로 열차가 질주했다. 곧 어둠이 몰려왔고 창을 보면 바깥 풍경 대신 객실 안의 내 모습이 들어왔다. 6인실, 출입문이 있는 독립된 방으로 이루어진 객실을 통으로 점유한 채 커트 보니것의 <제5도살장>을 다시 펼쳤다.

"하느님, 저에게 제가 바꿀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차분한 마음과 제가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꿀 수 있는 용기와 언제나 그 차이를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소서."(<제5도살장> 중)

▲드레스덴 카톨릭 궁전 교회와 드레스덴 성 앞을 달리는 트램. 건축물은 드레스덴 폭격으로 그을린 석재로 복원되어 곳곳에 검은 색을 띠고 있다. ⓒ박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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