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는 교사의 일로 대표될 뿐, 교사 이외의 다양한 노동이 가진 가치나 고충은 교권 중심주의에 가려져 관심 밖, 배제된 존재로 방치돼있다. 또한 학교는 학생들에게 노동, 안전, 건강 등 사회적으로 보호해야 할 다양한 가치를 가르치는 공간이지만, 정작 학교 안의 안전과 가치의 실현에는 무심한 게 현실이다.
그 대표적 사례가 노동안전이다. 최근 집단적 폐암산재 발생으로 급식실은 사회적 관심을 받기도 했지만, 그 외 특수교육지도사, 과학실무사, 사서 영역(약 7만6000명)은 여전히 안전과 보호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해당 사각지대 노동은 학생들이 수시로 접하고 있지만, 그에 비해 일반 사람들이 잘 알진 못하는 영역이기도 하다. <프레시안>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와 전국교육공무직본부가 공동 수행한 실태조사 결과와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통해 ‘학교 산재의 사각지대’를 알리는 연재를 진행한다.
나는 충북 청주의 한 초등학교 과학실에서 18년째 일하고 있다. 1983년 과학실무사라는 직종이 생긴 이후 42년간, 우리는 매일 아침 수업 전에 혼자 과학실에 들어간다. 염산, 황산, 질산 등의 화학약품을 희석하고 기자재를 세팅하며, 수업이 끝나면 실험 폐수를 처리하고 유리 기구를 세척한다. 독극물관리대장과 물질안전보건자료를 직접 작성하고, 안전관리점검표와 폐수·폐기물 관리대장도 기록한다. 학교 과학수업의 시작과 끝, 그리고 그 사이의 모든 과정에 과학실무사가 있다.
산업안전보건법 시행규칙 별표 22에서 정하는 특수건강진단 대상 유해인자, 즉 과산화수소, 수산화나트륨, 염산, 황산, 포름알데히드 등을 상시적으로, 반복적으로, 장기간 취급하는 것이 이 직종의 본질이다. 제조업 공장에서 같은 물질을 다루는 노동자라면 당연히 작업환경측정을 받고, 특수건강진단을 받고, 보호구를 지급받는다. 그러나 학교 과학실에서 42년간 같은 물질을 다뤄온 우리는 그 대상이 아니다. 현업업무로 분류되지 않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사고는 일상이고, 산재는 남의 일이다
몇 년 전 나는 6학년 산소와 이산화탄소 발생 실험을 준비하다 ㄱ자 관이 부러져 오른손을 관통하는 사고를 겪었다. 다행히 신경이 손상되지는 않았지만, 병원 치료비는 사비로 부담했다. 현업 업무 종사자가 아니기 때문에 산재 신청할 방법을 알지도 못했다.
이런 사고는 예외가 아니다. 실험 기구를 정리하다 유리에 손이 베이고, 전열기구가 식기 전에 옮기다 화상을 입는 일이 반복된다. 올해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가 전국 과학실무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실태조사에서, 최근 1년간 치료가 필요한 수준의 사고를 경험한 비율이 72.6%에 달했다. 주요 사고 유형은 베임·깔림, 중량물 취급, 화학물질 화상 순이었다. 그러나 사고를 경험한 과학실무사 중 산재를 신청하지 않은 비율은 96.1%에 달했다. 신청 방법을 모르거나, 현업업무 대상이 아니라는 인식 때문이다. 산재 관련 교육과 안전보건교육에서 배제되어 있으니 당연한 결과다.
나 역시 18년 동안 내 몸이 이 화학물질에 어떤 영향을 받고 있는지 제대로 확인받은 적이 없다. 같은 조사에서 과학실무사의 화학물질 취급 위험 인식이 80.2%로 세 직종 중 가장 높게 나타났지만, 특수건강진단을 실시하는 교육청은 경기, 충북, 대전, 부산, 제주 5개에 불과하다. 나머지 지역의 과학실무사들은 자신의 몸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확인받을 권리조차 보장받지 못한다.
위 실태조사에서 과학실무사 중 주관적 건강 상태를 '나쁘다'고 응답한 비율이 43.4%, WHO 웰빙지수 불량 비율이 79.2%로 조사 대상 세 직종 중 가장 높았다. 1년간 자살 사고를 경험한 비율도 9.4%로, 2023년 국민건강영양조사 자살생각률 5.5%를 크게 웃돈다. 이것은 개인의 불운이 아니라 구조의 문제다.
사명감을 가지고 일하던 동료들이 너무 많이 다치고, 때로는 큰 질병을 얻어 그토록 사랑하던 과학실을 떠나는 것을 여러 번 지켜봤다. 그 뒷모습을 볼 때마다 무력감을 느끼면서도, 이것이 왜 개인의 한계로 귀결되어야 하는가 하는 의문이 남는다.
제도의 공백이 만들어낸 구조적 문제
일부 교육청에서는 직종통합 정책을 시행하면서 과학실무사를 행정업무 담당 직종과 하나로 묶었다. 화학약품을 다루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같은 직종으로 묶이면, 작업환경측정이나 특수건강진단을 누구에게 적용해야 하는지 기준이 흐릿해진다. 실태조사에서 과학실무사의 행정 및 기타 업무 비율이 평균 45.3%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행정업무를 처리하다 실험 준비로 돌아오면 안전 인지가 떨어진다는 현장 증언이 이를 뒷받침한다. 통합 업무로 인해 과학실무사가 본래 업무에서 이탈해 자리를 비워야 하는 상황은, 실험 중 학생들의 안전까지 위협하는 문제로 이어진다.
산업재해 통계 역시 마찬가지다. 전국 시도교육청의 산재 예방 계획과 안전보건관리규정은 현업업무 종사자 중심으로 설계되어 있어, 과학실무사의 사고는 통계에 잡히지 않거나 직종 구분 없이 뭉뚱그려진다. 재해가 발생해도 기록되지 않고, 기록되지 않으니 예방 대책도 마련되지 않는 악순환이다.
현업업무 고시 확대가 필요하다
고용노동부 고시 '공공행정 등에서 현업업무에 종사하는 사람의 기준'은 공공기관 노동자에게 산업안전보건법의 핵심 보호 조항이 적용되는 근거다. 그러나 학교 과학실 업무는 이 고시에서 명확히 다루어지지 않는다. 화학약품을 매일 취급하는 것이 현업이 아니라면 무엇이 현업인가.
요구는 거창하지 않다. 작업환경측정을 받고, 특수건강진단을 받고, 적절한 보호구를 지급받고, 산업재해와 안전에 대한 교육을 받는 것. 같은 물질을 다루는 노동자라면 마땅히 받아야 할 것들이다. 현업업무 고시가 학교 과학 담당 교육공무직을 명시적으로 포함할 때, 비로소 이것들이 의무가 되고 제도 안으로 들어온다. 지금처럼 학교라는 이유로, 분류 기준이 모호하다는 이유로 방치된다면, 수십 년째 화학물질에 노출되어 온 노동자들의 건강은 제도 밖에 계속 남는다.
실험실 안전은 한 사람의 책임감이 아니라 제도의 책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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