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부터 1996년 사이 발매된 <마라톤> 삼부작의 신작이 2026년 3월, 30년 만에 발매되었다. 시리즈 첫 작품 <마라톤> (1994)은 FPS 장르의 선구자라 할 수 있다. <마라톤>은 마우스로 화면을 자유로이 돌릴 수 있는 '자유 시점 카메라'를 기용한 가장 초기의 게임 중 하나였다. 그리고 같은 해 발매된 <시스템 쇼크> (1994)와 함께, 게임 세계 공간 내 흩어져 있는 터미널과 상호작용하여 배경 및 이야기를 파악할 수 있는 '환경 스토리텔링'을 개척한 작품이다. 다만 그럼에도 <마라톤>은 매킨토시로만 발매되어 그 여파는 한정되었었다. 속편 <마라톤 2: 듀랜달> (1995)과 <마라톤 인피니티> (1996)를 거쳐 <마라톤> (2026)은 다시 원래의 제목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이번엔 PC, 플레이스테이션, 엑스박스의 다양한 플랫폼에서 출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새롭지만 낯선 미학과 익스트랙션 슈터라는 장르를 기용한 '하드코어' 게임으로 발매되어 접근성의 제한을 반복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과연 이번 <마라톤>은 30년 전 만큼의 혁신을 보여주는 데는 성공했을까?
<마라톤>이 걸어온 가시밭길
<마라톤> (1994)은 로컬 멀티플레이를 지원하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퍼즐과 전투 등을 뚫고 나와 레벨을 클리어하는 싱글플레이어 어드벤처 게임이었다. <마라톤> (2026)은 과감히 싱글플레이어 요소를 덜어내고 익스트랙션 슈터라는 멀티플레이어 장르로 전환했다. 깊은 세계관과 스토리에 반했던 원작 시리즈의 팬들은 <마라톤>의 설계 방향에 당연히 불신을 표했고, 이는 2023년에 처음 제작을 발표한 이후 지금까지 장장 4년에 걸쳐 다사다난했던 개발 과정의 첫걸음일 뿐이었다. 개발사인 번지 (Bungie)의 평판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마라톤>을 한참 개발 중이었던 2023년과 2024년 사이 줄 이은 정리해고 소식을 전하는 와중 정작 CEO인 피트 파슨스 (Pete Parsons)는 25대에 달하는 클래식 카를 수집하는 데 240만 달러를 소비한 사실이 알려졌다. 심지어 2025년 5월 시각 예술가 안티리얼 (Antireal)의 디자인을 도용한 사실이 밝혀져 게임의 출시가 늦춰지기까지 했다. 다행히 파슨스는 2025년 8월 사임했고, 안티리얼은 출시된 게임의 개발자 명단에 ‘시각 디자인 자문’ 직함으로 정식으로 실렸다.
<마라톤>이 치러온 이 홍역들 중 디자인에 관한 부분은 특히나 치명적이었다. 너무나 인공적임에도 강한 중력과 질감이 느껴지는 독특한 시각적 미학이 바로 이번 작품에서 가장 차별화되는 혁신의 중심이었기 때문이다. 지금 기준으론 다소 촌스러워 보일 수도 있는 1994년도 SF 디자인을 재해석해, 2026년 신작은 다채로운 원색의 사용을 죽이는 대신 오히려 더 극단적으로 강조했다. 게임계뿐 아니라 대부분의 예술 분야에서 '현대적' 미감으로 흔히 받아들여지는 게 채도를 낮춘 미니멀리즘임을 고려하면 이는 주류에서 벗어난 모험적인 결정이었다. 번지의 예술 감독 조셉 크로스 (Joseph Cross)는 <마라톤>의 디자인 언어를 "그래픽 리얼리즘"이라 칭했다. 이는 그래픽이 사실적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사회주의 리얼리즘', '자본주의 리얼리즘'에서처럼, 그래픽 디자인이 곧 하나의 현실을 규정하는 이데올로기가 된 게임 내 세계를 표현하기 위한 용어다. 즉, 기업의 브랜드 이미지나 아이콘 등이 그저 세계 내 구성물에 그치는 게 아니라 세계 자체가 그러한 그래픽 디자인에 의해 설계되고 지배받는 상황을 게임에 구현하고자 한 것이다. 크로스가 영향을 받았다고 밝힌 디자이너스 리퍼블릭 (The Designers Republic)은 소위 '벡터하트 (Vectorheart)'로 불리는 시각 디자인 장르를 개척했다. 벡터하트는 픽셀 기반의 래스터 그래픽과 달리 울퉁불퉁함이 전혀 없는 벡터 그래픽의 매끄러운 선과 면을 특징으로 하는 디자인을 말한다. 번지가 도용한 안티리얼의 작품 세계도 해당 계보의 한 축이라 볼 수 있다.
디자인의 도용 문제는 안티리얼 본인이 해결되었다고 입장을 밝혔지만, 그와 별개로 이 도전적 디자인 철학 자체가 여전히 양극화된 반응의 중심이 되고 있다. 익숙지 않은 시각적 언어는 신선한 매력이기도 하지만 진입 장벽이기도 하다. 특히나 이 시각적 실험은, 어렵기로 유명한 익스트랙션 슈터라는 장르와 합쳐져 모든 면에서 난이도를 높인다. 다시 말해 단순히 게임을 플레이하는 데 상당한 실력이 필요할 뿐 아니라 게임을 이해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는 얘기다. 이로 인해 긍정적 반응이든 부정적 반응이든, 공통적으로 <마라톤>에 대한 평가는 '어렵다'이다. "타협 없는" 도전이 흥미진진한 긴장감을 불러일으키거나 혹은 "마조히즘적으로 재밌는" 동시에 너무 낯설고 알기 힘들어 플레이어층을 "소외시킬" 수 있다는 비평지의 평가가 이어졌다. 그리고 <마라톤>에 대한 반응은 그래픽 리얼리즘 자체에 대한 반응이다. 초거대기업과 AI들에 의해 지배되는 자본주의 디스토피아가 배경인 <마라톤>의 세계 속에선 그 어떤 것도 인간의 편의를 기준으로 설계되지도 생산되지도 않는다. 모든 것은 기계의 효율을 위해 만들어진다. <마라톤>의 경험은 그래픽 디자인 포스터 속 세계로 인간이 던져졌을 때 어떻게 상호작용하게 될지에 대한 상상이다. 이 게임은 플레이어에게 불친절할 뿐 아니라 불친절한 세계를 그리고 있다.
그래픽 리얼리즘이라는 적대적이고 비인간적인 세계
<마라톤> 속 배경이 되는 외계 식민지 행성 "타우 세티 IV"의 비인간성을 대표하는 요소로는 고위험 저임금 작업 동기 부여용 "구독형" 뇌신경 자극 주입물, "음용 치즈버거", 안에 사람이 있든 말든 전부 소각해 버리는 오염 제거 프로토콜 등 다양하지만, 그중에서도 단연 플레이어가 가장 오랜 시간 직접 손에 쥐게 되는 건 바로 무기이다. <마라톤>의 무기 설계는 인체공학을 전혀 고려하지 않아 곡선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이 전부 딱딱 떨어지게 각이 져 있는 모듈들로 이루어져 있다. 조준경은 투명하지 않아 육안으론 이용 자체를 할 수 없고 표면에 그려진 QR 코드를 인식할 수 있는 기계 눈으로만 접근할 수 있다. 도구도 시설도 인간의 안전을 넘어 이용 자체를 상정하고 만들어지지 않은 외계 식민지 전체가 경고 표지판으로 도배 되어 있는 것도 우연이 아니다. 애초에 인간에게 너무나 적대적인 이 세계에 순수 유기체 몸을 지닌 채 입장할 수가 없어 플레이어는 의체를 이용해야만 한다. 크로스가 게임에 영향을 줬다고 밝힌 또 하나의 작품 <공각기동대>에서처럼, 플레이어는 자기 몸을 가진 인간이 아니라 인공 의체 속 정신이다. 즉, 게임 내에 현실의 우리와 같은 인간 존재는 단 한 명도 등장하지 않는다. 식민지의 개척자들은 이미 84년 전에 전부 사망했다. 이는 언뜻 살아 있는 인간 없이 AI만이 내게 말을 거는 <시스템 쇼크>와 <포탈> 시리즈를 떠올리게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문제는, 저 두 작품에선 최소한 주인공 본인은 인간이지만, <마라톤>에선 나, 플레이어마저도 인간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러너'라고 불리는 플레이어는 "생체 사이버네틱 의체에 접속 중인 분리된 의식"이다. 작중 '사이버애크미'라는 기업의 '오니'라는 AI에 의해 보관되고 관리되지만, 이 의식이 어디에서 왔는지, 지금 어디에 있는지, 본체는 어딨는지, 본체가 있긴 한 건지, 어째서 용병 일에 투입되어야 하는지, 그 어떤 것도 전혀 알 수가 없다. 플레이어는 이처럼 자기 존재의 정체조차 알지 못하는 의식의 눈으로 세계를 보게 된다. 러너라는 의식 자체는 인간으로 가정되긴 하지만 그 진상은 알 수 없다. 러너가 물리적 세계와 상호작용하기 위해 경유해야 하는 의체의 전체적인 형상은 인간과 언뜻 유사하지만 그 파란 피가 흘러나오는 순간 바로 순수 유기체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의뢰를 맡기는 AI들이 세계와 상황을, 그리고 AI 서로를 서술하는 방식은 상충해 믿을 수 있는 정보가 없다. 식민지 행성에 투입되는 방식 자체도 러너에게 적대적이다. 의체가 파괴되어도 분리된 의식인 러너는 서버로 돌아와 영구적 죽음을 피할 수 있지만 "총체적인 시스템 붕괴 또는 그 직전 상태가 반복되는 러너들에게서 정신적 및 감정적 손상이 장기적으로 축적되는 사례가 확인되었"다고 게임은 설명한다.
<마라톤>은 게임 속 가상 세계의 설정과 실제 게임플레이가 서로를 설명한다. 라운드 시간을 초과해 맵에 체류할 수 없는 이유는 대기 상태가 불안정해 의체를 이루는 합성 실크가 열화되는 것으로 설명된다 (물론 이는 AI의 설명이고 러너 의식의 '소유권'을 가진 AI가 러너가 도주하지 못하도록 연결을 끊어버리는 걸 수도 있다). 맵의 한계를 넘어가면 신호가 끊기는 것처럼 화면에 하얀 노이즈가 끼기 시작한다. (이것도 마찬가지로 송신 범위의 문제인지 AI가 설정한 통제 구역에 의한 것인지 알 수 없다). 게임 화면상의 HUD는 실제 의체에 탑재된 프로그램이고 해킹이나 신호 교란기 등에 의해 방해될 수 있다. 러너가 사망했을 시 다른 러너의 플레이를 관전하는 화면은 기존의 전통적인 1인칭도 3인칭도 아닌 그 중간의 바디캠을 보는 듯이 어깨에 시점이 위치한다. 마치 다른 의식 옆에 걸터앉은 듯이 말이다.
게임 내 AI들은 플레이어에게 러너라는 분리된 의식의 특징을 이용해 죽음을 무한히 반복해 용병 일을 수행하라고 안내해 준다. 이는 익스트랙션 슈터라는 장르 특징과 맞물린다. 익스트랙션 슈터는 기본적으로 폐허에 들어가 주인을 잃은 전리품을 챙겨나오는 게 주요 목표인 게임을 일컫는다. 자원은 한정되어 있으니 다른 플레이어들과 물건을 두고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한다. 전리품을 챙기러 라운드에 입장하기 전에 이 싸움에 대비해 어떤 장비를 가지고 들어갈지 미리 선택할 수 있다. 다만 문제는 죽으면 해당 장비를 전부 잃어버린다는 것이다. 즉 익스트랙션 슈터에선 투자 비용을 잃을 위험 부담을 감수해야 하며, 죽고 나면 잃어버린 비용을 회수하기 위해 또 현장에 투입되어야 한다. 마치 <다크 소울> 시리즈에서 죽어, 잃어버린 화폐 '소울'을 되찾기 위해 되살아나 같은 길을 가서 죽고 다시 살아나고 또 죽고를 반복하는 '콥스런 (corpse run)'을 연상시킨다. 그렇게 '런'을 뛰고 또 뛰는 과정에서 각 런의 기억들은 서로 혼탁하게 섞이고 시간은 하나의 런 시간으로 압축된다. 의체의 죽음이 반복되면 러너의 의식과 기억이 산화되는 것은, 이 게임을 경험하는 플레이어의 의식에 대한 설명과 일치한다. 특히 의체의 경우 AI는 수상할 정도로 활동 정지가 곧 죽음을 의미하지 않음을 강조하는데, 사실 여부를 불문하고 하나의 고유한 목숨으로 여겨지지 않는 의체의 파란 피는 귀족의 피 보단 마치 일회용품처럼 쓰고 버려지는 투구게의 피를 연상시킨다.
안개와 비에 시계가 제한된 타우 세티 VI에서 다른 플레이어는 조우 후 수 초도 되지 않는 시간 내에 나를 죽일 수 있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번개, 독초, 진드기, 지뢰, 정체를 알 수 없는 이상 현상 등 사방이 적대적 환경 요소로 점철돼 있다. 익스트랙션 슈터의 원조격인 <이스케이프 프롬 타르코프> (2025)의 어두운 분위기와 달리 오히려 밝은 원색으로 도배된 세계에서 이처럼 만연한 적대성은 전혀 색다른 방식으로 대비된다. 따라서 자연스레 뒤에서 부스럭 소리만 나도 신경이 곤두서게 된다. 이 편집증 상태는 게임을 종료하고서도 지속되어 윗집 발소리에도 몸이 긴장한다. 그리고 한 의체를 오래 쓰다 다른 의체로 변경했을 시 달라진 조작에 다시 익숙해지는 데 시간이 걸린다. 그만큼 강한 몰입이 플레이어의 인지 체계에 영향을 주는 이러한 역학은, 마치 러너의 의식이 의체를 사용하다 보면 그 의체에 맞게 변하는 양상과도 같다.
AI 소개 영상이나 프로필 배경 등의 이미지도 그래픽 리얼리즘의 세계관과 통일된다. 단순히 원색의 기하학적 벡터를 사용했기 때문만이 아니라 화면이나 프레임 내의 구도가 세계를 설명한다. 영상과 이미지 모두 전체를 조망하는 구도가 아니라 어떤 아주 특정하고 제한된 시야만을 제공한다. 대부분 너무 가까이 클로즈업되어 부분만 볼 수 있거나 기울어져 있어 프레임 바깥에 무엇이 어디까지 있는지 상상하기조차 힘들며 극도로 빠른 컷 전환은 마치 잠재의식에 호소하려는 듯하다. 이는 한 명의 인간이 전부 파악하기조차 힘든 수준으로 확장된 미래의 거대기업과 그 AI에 대한 훌륭한 인상을 제공하며, 또 그들이 우리에게 오직 보여주고 싶은 것만 보여줌에도 우리는 그 편린 이상의 것을 알 수 없는 상황의 그림이기도 하다.
하드코어 멀티플레이어 게임은 가능한가?
<마라톤>은 미학도 세계도 전적으로 인간 플레이어에게 적대적이다 보니, 같은 세대의 또 다른 익스트랙션 슈터 <아크 레이더스> (2025)에 비해 플레이어들 사이 협동 따윈 상상도 불가능하다. 게임의 첫 무대인 '경계' 맵에 입장하자마자 AI 오니는 플레이어에게, 다른 러너는 예측 불가능하니 믿을 수 없다고 단언한다. "머뭇거림은, 거의 항상, 폭력적 실패로 이어"진다는 오니의 서술은 "망설임은 곧 패배"라 했던 <세키로> (2019)의 최종 보스 '아시나 잇신'의 대사를 떠올리게 한다.
타우 세티 IV에선 털끝만 보여도 먼저 쏘지 않으면 생존이 불가능하다. <마라톤>에선 초탄 발사부터 몸통에 전탄을 맞춘다 가정했을 때 적을 죽이기까지 걸리는 시간인 타임 투 킬 (TTK)이 가장 기본적인 무기인 '오버런 돌격소총'의 경우 1.083초 걸린다. <아크 레이더스>의 튜토리얼 무기인 '래틀러'는 1.7초의 TTK를 가진다. <마라톤>에선 뒤에서 부스럭 소리만 나도 눈 깜짝할 사이 죽을 수 있으니, 다른 플레이어를 만났을 시 동맹이 뇌리에 스칠 여유조차 없는 것이다. 기껏해야 가장 평화로운 전략은 쥐처럼 숨는다 해서 붙여진 이름인 '랫팅 (ratting)' 뿐이다. <마라톤>에서 그나마 임시 동맹이 가능한 의체는 '룩'이다. 룩은 장비 구성과 분대 구성이 불가능한 상태로 라운드 중간에 혼자 입장해야 하는데, 기본적으로 플레이어들은 3인분대로 구성되어 게임에 입장하기 때문에 룩들은 같은 룩끼리 서로의 취약함을 보완하기 위해 간혹 임시 동맹을 맺곤 한다. 하지만 다른 룩과 싸울 생각이 없었더라도 우선 그림자만 일렁여도 쏘고 보는 게임이다 보니 이조차 쉬운 일이 아니다.
다시 말해 <마라톤>은 단순히 익스트랙션 슈터라서 어려운 게 아니라, 익스트랙션 슈터 중에서도 어려운 게임이다. 거기다 단순 플레이 난이도를 넘어 그래픽 리얼리즘과 같이 낯선 미학을 도입해 진입 장벽을 더욱 높인 선택은, <이스케이프 프롬 타르코프>와 같이 원래 하드코어한 것으로 유명한 다른 게임에서도 감수하지 않은 모험이다. <이스케이프 프롬 타르코프>는 <스토커: 초르노빌의 그림자> (2007)의 미학을 계승해 동유럽 폐허와 군수품 및 생존 요소들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데 집중했다. 이는 단순 사실주의를 넘어 고유한 분위기를 형성하긴 하지만 새로운 건 아니었다. <마라톤>은 하드코어 중에서도 하드코어하다. 현재 <마라톤>에 대한 비판 중 두드러지는 것 중 하나는 "읽기 힘들다"이다(게임스레이더+ GamesRader+).
스토리텔링에 터미널을 이용했던 <마라톤> (1994)를 계승해 <마라톤> (2026)은 사건과 배경에 대한 정보를 전부 수집품 설명란인 "코덱스"에 넣었다. 따라서 이야기를 따라가려는 플레이어는 방대한 텍스트와 마주하게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는 다르게 말하면 이 게임의 세계관이 재해석에도 불구하고 원작에 충실한 동시에 또 깊다는 얘기다. 장비 구성 화면에 세부 능력치가 빽빽하게 나열되어 있는 것도 입문자를 아연실색하게 만들 수 있다. 물론 <마라톤>의 대표적 장점으로 언급되는 그 훌륭한 사격감과 조작감을 가능케 하는 것이 바로 이렇게 상세하고 섬세한 조정 체계인 것이지만 말이다. 즉 <마라톤>은 그 밀도 높은 깊이 때문에 어렵다. 자발적으로 어려움을 즐길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는 플레이어들을 위한 진정한 하드코어 게임인 것이다.
문제는 <마라톤>이 싱글플레이어 게임이 아니라 멀티플레이어 게임이라는 지점이다. 싱글플레이어 게임은 당장 향유층이 많진 않아도 컬트적 인기를 얻거나 아니면 뒤늦게나마 불세출의 명작으로 재발굴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멀티플레이어 게임은 동시 접속자 수를 충분히 유지하지 않으면 운영 자체가 불가능하고 결국 서버를 종료하게 되는 수밖에 없다. <마라톤>은 현재 동일 장르 히트작인 <아크 레이더스>와 자주 비교되는데, 3월 26일 기준으로 <마라톤>은 120만 부 팔렸으며, <아크 레이더스>는 그 열 배인 1200만 부가 팔렸다. 개발 비용이 2~3억 달러가량 소요된 게임의 수익으로 5천만 달러는 턱없이 부족하다.
물론 "모두를 위한 게임이 아니라고 해서 나쁜 게임이 아니라는 것"은 당연할뿐더러 분명하다. 또 '성공한' 멀티플레이어 게임 <헬다이버즈 2> (2024)의 개발사 애로우헤드 스튜디오 (Arrowhead Studios)의 모토인 "모두를 위한 게임은 누구를 위한 게임도 아니다"를 기억할 필요도 있다.
다만 우리는 하드코어 멀티플레이어 게임이라는 실험이 어떻게 하면 꼭 실패가 기정사실인 걸로 귀결되지 않을 수 있는지 게임 바깥에서 방안을 구상해 봐야 할지도 모른다. 온라인 게임의 라이브 서비스를 단순히 플레이어의 요구와 편의에 맞추고 '떠먹여 주는' 서비스가 아니라, 새로운 도전과 모험을 소개해 주는 사회자로서 바라보는 인식의 변화가 필요한 건 아닐까? 특히 어려움과 불친절함, 적대는 <마라톤> (2026)이 현실을 날카롭게 비판하고자 비추는 거울의 바로 그 번뜩임이다. 그렇다면 "말 그대로 아름답고 어마어마한 긴장감을 제공하는" 이 정교한 게임의 혁신을 만끽하기 위해, 미학과 디자인을 '쉽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플레이어가 눈앞에 주어진 새로운 세계를 읽고자 노력하고픈 마음, 의지, 도전정신을 준비해야 하는 걸 수도 있다. '게이머'라는 정체성을, 소비자 정체성을 넘어, 낯설고 새롭고 어렵거나 색다른 것과 만나고 그것을 이해하고자 하며 위험을 감수하는 '열린 마음'의 모험가로서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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