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일'전으로 치러진 아시아축구연맹(AFC) 여자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북한 여자 축구 클럽 내고향축구단이 도쿄 베르디 벨레자에 승리하며 우승을 차지했다. 공동응원단은 선수들에게 축하를 보냈지만, 감독은 한국 기자의 '북측'이라는 용어 사용을 이유로 기자회견을 중단하고 퇴장하기도 해 '적대적' 두 국가로 규정되고 있는 현재 남북관계 현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23일 수원종합운동장에서 AFC가 주최하고 AFC와 대한축구협회, 수원특례시가 주관하는 여자 챔피언스리그(AFC Women's Champions League) 결승전 경기가 열렸다. 지난 20일 폭우 속에서 수원FC위민에 2대 1로 역전승하며 결승에 진출한 내고향축구단은 이날 도쿄 베르디 벨레자에 1대0으로 승리하며 우승을 차지했다.
경기 종료 이후 내고향축구단 선수와 감독 및 코칭 스태플들은 얼싸안으며 기쁨을 만끽했다. 내고향축구단을 응원하기 위해 200여 개의 한국 시민단체로 구성된 '2026 AFC-AWCL 여자축구 공동응원단' 역시 내고향축구단의 승리에 환호와 박수를 보냈다.
선수들은 이후 클럽 깃발이 아닌 북한 국기인 인공기를 펼치고 손을 흔들며 운동장을 한 바퀴 돌았다. 20일 4강전에서는 공동응원단에 아무런 인사도 하지 않았던 선수들이 이번에는 전체 관중들에게 승리 세레모니를 하면서 공동응원단에도 손짓을 보내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선수들이 응원단을 향해 별도의 인사를 하지는 않았다.
이날 경기 후 기자회견에서는 '두 국가'에 대한 북한 측의 강경한 입장이 드러나기도 했다. 리유일 내고향축구단 감독은 한국 기자가 "북측의 여자축구가 과거부터 굉장히 수준이 높다"라고 말하자 기자회견을 중단하고 퇴장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 정식 국가 호칭을 쓰지 않은 데 대한 명백한 거부 의사를 표시한 셈이다.
그는 이날 기자회견 모두 발언에서 "우리 내고향팀이 창립된 지 14년 밖에 안됐는데 오늘 아시아에서 1등 지위에 오르게 된 건 전적으로 경애하는 총비서 동지, 당의 따뜻한 사랑과 보살핌이 있었기에 가능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감사 표시를 하기도 했다.
리 감독은 지난 17일 입국 이후 한국에 온지 거의 일주일이 되어 가는데 이번 경기대회 출전이 어떤 의미가 있고 한국에 오니 어땠냐는 질문에 "아시아축구연맹 조치로 해서 우리가 여기에 와서 경기를 했다"라며 "선수들이 경기에 집중해서 일각을 아껴가면서 오직 축구, 우승, 우리의 발전에만 신경썼고 기타 신경 쓸 이유가 없었다"라고 말해 축구 외에 다른 사항에 대해서는 거리를 두려는 모습을 보였다.
리 감독이 우승 이후에도 남한에 대한 태도가 달라지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축구단 선수들이 남한을 찾은 이후 특별한 갈등을 보이지도 않았다. 지난 20일 내고향축구단과 수원FC위민 간의 4강 경기에서 양팀 선수들은 경기 전 하이파이브를 했고, 경기가 끝나고 일부 선수들은 손 인사를 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 이날 경기장을 찾은 정일영 서강대학교 강대학교 사회정책연구소 연구교수는 "북이 다른 남북교류는 하지 않고 있지만 스포츠에서는 교류가 가능하다는 점을 이번 경기 참가를 통해 보여준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며 오는 9월로 예정된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에서도 공동응원단 등의 형식으로 남북 간 체육 교류가 이어질 가능성을 점쳐보기도 했다.
이날 경기장에는 북과 꽹과리 등 전통 악기를 이용해 열띤 응원을 펼치는 관중들도 있었다. 남북의 체육 경기가 있으면 찾아가서 응원을 하고 있다는 아리랑 응원단의 김태연 씨는 내고향 축구단의 방문이 반갑고 고마웠다고 말했다.
남한에 온지 20년이 넘었다는 평양 출신의 김 씨는 "아리랑 응원단에는 실향민과 새터민(탈북민)이 있다"면서 이들에게 이번 축구단 방문이 적잖은 의미가 있다는 점을 전하기도 했다.
김 씨는 리 감독의 인터뷰 태도도 크게 적대적이지 않았다면서 "경제적으로나 권력이 있는 사람이 더 손을 내밀어야지, 계속 그러고 있으면 굶어 죽어 이러면서(대화를 하면 안된다)"라며 "상대방을 얕잡아보면서 깔고 가면 누가 대화하겠다고 하겠나"라고 말해 남한이 보다 유연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남북이) 서로를 좀 존중했으면 좋겠다"며 지난 20일 열린 4강전에서는 내고향축구단과 수원FC위민 중 "누가 이겨도 상관 없었다. 어차피 한민족 이니까"라고 말했다. 그는 다만 이날은 "일본은 꼭 이겨야 한다"면서 내고향축구단을 응원했다.
이날 경기장에는 약 1200명의 공동응원단이 자리해 열띤 응원을 벌였다. 이들은 "오필승 내고향" 등의 구호를 외치며 응원을 벌였다. 도쿄 베르디 벨레자의 서포터즈들도 경기장을 찾았다.
내고향축구단은 지난해 11월 미얀마에서 열린 조별리그에서 도쿄 베르디 벨레자에 4대0으로 패한 바 있으나 이날은 전반 44분 주장인 김경영 선수의 선제골을 앞세워 승리했고, 김 선수는 대회 최우수선수(MVP)에 올랐다.
김 선수는 "최우수선수로 당선된 것을 긍지로 여긴다"라며 "오늘의 최우수선수는 저 하나의 공로가 아니라 팀 모든 선수 감독 동지들이 뒤에서 진짜 저희를 힘있게 밀어주었기에 이런 성과를 이룩할 수 있었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그는 "우리 팀 선수들은 성인급 경기 경험이 부족하지만 팀적으로 많이 발전했다"며 "이번 경기를 통해 부족한 점을 더 퇴치(보완)하기 위해 노력하고 앞으로 세계 경기에서 꼭 좋은 성과를 거두겠다"고 말했다.
지난 17일 남한에 방문한 내고향축구단은 오는 24일 출국하며 8일 간의 남한 방문 일정을 마무리한다. 북한의 체육 관련 인원이 방문한 것은 지난 2018년 이후 8년 만이었다. 당시 9월 창원 세계사격선수권대회와 10월 아리스포츠컵 국제유소년 축구대회, 12월 ITTF 월드투어 그랜드파이널스대회 단일팀 (탁구) 혼합복식 등의 참가를 위해 북한 인원이 남한에 방문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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