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양의 처음과 나중
입양이란 법적으로 새로운 친자 관계를 형성하여 영구적인 가족으로 살아가는 과정이다. 입양인은 두 뿌리를 가진 정체성을 형성해 가며, 입양의 세 당사자—입양인, 양부모, 생부모—는 삶 전반에 걸쳐 심리적·사회적 적응과 통합이 이루어지는 평생의 여정을 지나게 된다.
입양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한 아이가 입양이 필요하게 된 시점부터 그 아이가 성인이 된 이후까지를 함께 따라가 보면 된다. 우리는 입양의 성공 여부를 입양인의 삶 전체를 보고 비로소 논할 수 있다. 아이의 사회적 신분과 정체성이 완전히 바뀌는 것인 만큼, 입양의 중심에는 입양인이 위치해야 한다. 국가가 가계나 부모를 위한 입양이 아닌, '아동중심입양'을 주창하고 있는 오늘날 진정 아동 중심의 입양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본다.
우리나라의 아동을 위한 입양은 한국전쟁으로 생겨난 전쟁고아를 해외로 보내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이후 70,80년대 산업화 과정에서 국내·외를 불문하고 사회적 낙인을 피해 미혼모에게서 태어난 아기들이 대거 입양으로 보내졌다. 88서울올림픽을 계기로 '고아 수출국'이라는 국제적 오명을 의식하게 된 정부는 국내 입양 활성화 정책을 적극 추진하게 되었고 동시에 해외로 보내어졌던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 귀환하여 자신들이 겪은 인권 침해 문제를 제기하기 시작했다. '출생 기록 부재', '동의 안된 입양', '서류 조작' 등의 문제들이 사회 수면 위로 드러났고, 이는 2012년 입양특례법 전면 개정으로 이어졌다.
개정 입양법은 입양 숙려제, 출생신고와 법원 허가제, 친양자 입양제도를 도입하므로 국가는 아동 입양의 전면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이어 2025년 10월 공적 입양 체계가 완비되어 아동 권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국제적 수준의 입양법과 제도가 갖추어 시행하기에 이르렀다.
'출산 비스무리한' 입양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입양 문화는 오랫동안 입양한 아이를 출산 자녀로 입적시키고, 아이가 성인이 될 때까지 입양 사실을 알리지 않는 것이 관행이었다. 입양 부모들은 입양한 아이를 낳은 아이처럼 키우고 또 입양에 대한 낙인과 차별로부터 아이를 보호해야 한다는 사회적으로 용인된 명분을 갖고 '출산 비스무리한' 입양 부모 역할을 했다.
2000년부터 공개입양운동이 시작되면서 입양 가족들의 일상은 매스컴을 통해 노출되고 국가의 해외 입양 중단 의지에 따른 국내 입양 활성화 정책에 합세하게 된다. 입양홍보회가 결성되고 연구자들은 비밀 입양의 폐단을 지적하며 공개입양의 유익성을 증명해 주었다. 입양된 아이는 출산 자녀를 대체하는 열등한 존재가 아니라, 아이 그 자체로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존재라고 부모들은 노래를 불렀다.
공개입양 27년째가 되는 오늘, 양부모가 입양 사실을 알릴지 말지를 선택할 권리는 더 이상 없다. '입양 말하기'는 양부모의 당연한 역할 과업이 되었다. 국가는 아동의 출생과 입양 정보를 보호, 관리하는 책임자로 입양인이 자신에 관한 정보를 원할 때 언제든 답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는 중이다. 아동을 위한 법적·제도적 기반은 분명 크게 발전하였다. 그런데 '아동 중심의 입양'은 진정 실현되고 있는가?
입양아동에 대한 편견
새 법이 시행되면서 입양 절차의 시간이 길어지고 대기 아동들의 연령이 높아진다는 우려의 소리가 들린다. 새로운 제도가 안착하는 데 시간은 필요하고 입양 절차의 늑장 진행은 점차 개선되지 않을까 했다. 그런데 들리는 우려 속에 정말 오랫동안 한결같이 들어왔던 '연장아'란 용어와 조금은 생뚱맞게 느껴지는 '애착의 골든타임'이란 말이 '입양다움'을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국가는 국내 입양 건수 올리기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었고 입양을 입양답게 교육하거나 입양 부모 준비 교육이랄게 존재하지 않았던 공개입양 초기에, 입양을 향해 가슴이 뜨거워진 사람들이 출산한 아이와 똑같이 키우면 된다는 생각으로 덜컥 입양하는 사례가 적지 않았다. 입양이 가슴으로 낳은 사랑으로 홍보하는 분위기에서, 일부 부모들은 입양을 한 후 특히 초기에 입양의 기쁨은 커녕 아이와 어떻게 해야할 지를 몰라 혼란스럽고 고통스러워했다. 그 원인을 찾으면서 생겨난 개념이 '연장아(年長兒) 입양'이다. 즉 어린 아기 입양이 아니라 어느 정도 나이가 든 아이를 입양하는 유형을 말한다.
'연장아 입양'은 영어의 'older child adoption'과 유사한 개념으로 서구에서는 입양배치 당시 큰아이들은 발달적 특징과 입양 전 학대나 방임의 경험으로 인해 교육, 치료 등 특별한 지원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주(州)에 따라 5세 혹은 7세 이상 아동을 특수욕구(Special needs)아동으로 규정하여 특별히 지원하는 체계를 갖추고 있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의 연장아는 걸음마를 겨우 시작하는 한 살을 기준으로 삼아 부모들은 '키우기가 어려운 아이'로 두려워하고, 입양기관에서는 '배치가 어려운 아이'의 목록에 올려지는, 입양아동에 대한 부정 편견이 짙게 배어있는 용어이다. 이 용어는 인터넷과 입양 커뮤니티 안에서 활발히 나돌았고 한 때는 연장아는 입양하지 말라고 권장하는 분위기가 자자했었다. 연구자들도 12개월을 기준으로 연장아로 정의하여 입양에 대한 부적응을 강조하였고, 한 입양 논문에서는 '연장(年長)아' 대신 '연장(延長)입양 가정'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마치 입양은 당연히 돌 전 아기 때 이루어져야 했는데 지연된 것처럼 인식하게 만들었다. '입양다운' 방향으로 안내해야 하는 전문가들조차 입양을 어린 아기의 전유물로 여기는 것 같아 씁쓸했다.
입양법은 만 18세까지의 아동을 입양 대상으로 규정한다. 숙려 기간을 제외하면 생후 1주일 이후부터 법정 성인이 되기까지의 모든 아이는 입양 대상이 될 수 있다. 출생 가정으로 돌아갈 수 없는 아동에게 안전하고 영구적인 가정을 찾아주는 아동 중심 입양 제도라면 입양이 필요한 모든 연령의 아이에게 열려있어야 한다. 입양은 그림의 떡이 되어 법정 나이에 이르러 퇴소하는 청년들은 이미 한 살이 넘어서부터 입양 보호 제도의 혜택에서부터 제외되었다.
우리나라는 여전히 어린 아기 중심의 입양 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산업화 과정에서 미혼모를 아기 공급자로 만들었다는 역사적 과오는, 입양아동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편견에 대한 성찰과 같은 맥락에서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이제는 이러한 고질적 구조에서 탈피하려는 노력이 있어야겠다.
애착 발달의 골든타임
입양된 아이의 애착 발달 과정은 출산 부모와 관계가 지속되고 있는 아이의 것과는 다르다. 이 차이를 수용하는 것은, 부모가 입양이 출산과 다름을 수용하는 것만큼이나 입양인의 성장 발달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아동의 애착 발달은 출생과 함께 시작된다. 처음에는 돌봄을 주는 양육자를 분별하지 않고 반응하다가 6개월 무렵부터 특정 대상에게 선택적으로 애착 행동이 나타나고 낯선 사람에게는 불안 반응을 보인다. 18개월경에는 애착 대상과의 근접성이 견고해지고, 36개월에 이르면 애착 대상에 대한 내적 표상이 정교해져서 자기 자신과 세상에 대한 기본적인 가치관과 신뢰감이 형성된다. 이 것으로 이후 심리 발달 전반을 지탱하는 토대가 이루어진다.
첫 애착 발달이 이루어지는 이 시기에 입양되는 아이들은 모두 분리를 경험한다. 출생 부모로부터 분리되고 이후 여러 번 임시 양육자와 분리를 겪기도 한다. 애착 대상과의 분리는 진행 중인 애착 발달을 중단시키거나 얼어붙게 만든다. 심한 경우, 사람이 아닌 사물에 집착하고 애착 행동을 하지 않는 아이도 있다. 3개월 뿐이 안 된 어린 아기라도 익숙했던 냄새, 소리, 반응의 상실로 새 부모에게 안기지 않으려고 하거나 구토나 설사를 하면서 애착 대상이 사라진 슬픔을 표현할 수 있다. 따라서 아이가 입양된 후 새 부모에게 즉각적인 애착 행동을 보이지 않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오히려 낯선 어른에게 곧 바로 들러붙는 행동을 보인다면, 이는 극심한 불안이나 심각한 정서적 어려움의 신호로 이해해야 한다. 많은 입양 부모들이 아이의 불안한 초기 반응에 자신이 부모로 즉각 받아들여졌다고 기뻐하기도 한다.
입양된 아이의 애착 발달의 골든타임은 입양 직후이다. 입양을 마침내 이루어낸 부모의 기쁨과 달리 입양된 아이는 입양 전 역경의 경험이 심했을수록 입양된 초기에는 아이의 불안과 긴장은 높은 상태에 놓여진다. 새 어른을 시험하고 문제로 보이는 행동을 할 수 있다. 이 또한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이때 입양 부모는 새로운 애착 대상으로 일시 중단되었거나 혹은 손상된 애착 체계 재건을 위해 안전한 애착 대상이 되어주어야 한다. 민감한 반응성, 예측 가능한 일관성 그리고 아이 혼자 감당하기 어려운 강한 감정을 담아주는 태도가 안정 애착의 결정적인 요인이라고 익히 들어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입양된 아이의 새 부모와의 재애착은 입양 부모의 안정적인 정서와 반응적이고 민감한 태도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입양 초기에 안정적인 '재애착 형성'을 이룬 아이는 이후 '입양 말하기', '입양 정체성 통합'을 건강하게 수행할 수 있는 심리적 토대를 마련하는 것이다.
최근 상담실에서 만난 예비 입양 부모는 서너 살 아이를 입양하고 싶어서 입양 신청했다가 예비 입양 부모 교육 강사가 돌이 넘은 아이는 애착이 어렵다는 걸 강조하는 바람에 입양한 아이가 자신들을 부모로 여기지 않을 것 같은 두려움에 마음을 바꿨다고 한다. 현행 체계로는 국가아동권리보장원이 예비 입양 부모 교육의 유일한 창구가 되므로 이곳에서 어떤 교육을 받느냐에 따라 예비 입양 부모들의 결정이 오갈 수 있다. 애착 발달에 관한 학문적 근거가 희박한 12개월을 절대 기준으로 삼아, 빠른 입양 = 안정 애착이란 등식으로 '출산 비스무리한' 입양 부모가 되는 것을 조장하고 있는 건 아닌지 점검이 필요하다.
애착 체계는 고정적인 것이 아니라 양육자와 새로운 관계를 통해 재조직화 될 수 있다. 이것이 4살, 6살 또는 그 이상이 되어 입양되어도 입양 부모와 안정적인 애착을 형성하고 살아갈 수 있는 이유이다. 3살까지의 영아 입양이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현실을 고려하여 연장아입양의 나이 기준은 3세 이상으로 재설정하여 특수욕구아 가정을 위한 별도의 지원체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결연되는 아이의 연령과 무관하게 분리 경험을 전제로 한 입양된 아이들의 애착 발달을 실질적으로 도울 수 있는 '입양다운' 예비입양부모교육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새 법과 제도로 아동 중심 입양의 겉은 잘 갖추어진 듯한데 속내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입양인들은 입양의 화신이다. 아동 중심의 입양이 어떠해야하는 지는 입양인이 더 정확하게 말해줄 수 있으니 지금은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일 때다.
"아동 중심의 입양이 어떠해야하는 지는 입양인이 더 정확하게 말해줄 수 있으니 지금은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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