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나아지게 하려면 비판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사람들을 행동에 나서게 하는 힘을 가진 것은 그보다는 매력적인 대안이다. 비판의 가치를 폄하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그 힘은 때로 '그래서 어떻게 하자는 건데?'라는 질문 앞에 멈춘다.
<불량 판결문>을 쓴 최정규 변호사(법무법인 원곡)가 5년 만에 <명품 판결문은 어디에서 오는가>를 출간한 일이 그래서 반가웠다. 저자는 책에 명품 판결문의 조건과 사례를 담았다. 그리고 그런 판결문이 기본인 법원을 만들기 위해 해야 할 일을 제안했다.
두 권의 책을 통해 그가 '판결문'을 강조한 이유는 법원이 결국 판결문을 통해 권력을 행사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판결 한 줄에는 한 사람의 삶은 물론 "행정의 태도"와 "국가의 말"까지 바꾸는 힘이 있다. "명품 판결문"은 "공동체의 방향을 바로잡는 시작점"이다.
그렇다면, 잘 쓴 판결문이란 무엇일까. 책의 백미인 3부에서 그 답이 사례로 제시된다.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판결문 속 문장이나 논리만은 아니다. '내 편'을 들어준 판결문이 꼭 좋은 것도 아니다.
저자는 그보다 재판 과정에서 자신의 마음을 움직인 판사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영문도 모른 채 보이스피싱에 가담하게 된 피의자를 변호할 때, 저자는 "제가 내려가겠습니다"라며 법대에서 내려와 눈높이를 맞추고 피고인과 증인에게 질문하는 판사를 만났다.
장기구금된 발달장애인의 지역 복귀를 위한 소송의 항소심에서는 판사가 "장애인 차별 사건"을 다루는 것은 처음이기에 "저의 무지와 무경험을 탓하셔도 좋다"며 원고 대리인들에게 "최대한 저를 설득해 주시라"고 부탁했다.
필기체로 쓰인 한문 기록을 다뤄야 했던 과거사 재심 재판에서 다른 판사는 "신속한 재판을 위해 저희 재판부를 도와달라"고 말했다. 이상하게도 그 말은 저자의 마음에 오래 남았다. 너무나도 느린 재판 진행에 고령인 과거사 사건 피해자가 숨진 뒤에야 판결이 나오는 경우를 봐왔기 때문이었다.
세월호 생존자의 국가배상 청구 소송 판결에서 "여러분의 잘못이 아닙니다"라며 위로를 건넨 판사, 강압수사를 당해 간첩으로 몰린 피해자의 마음을 헤아려 조사 과정뿐 아니라 법정에서 한 그의 자백도 무효라고 판단한 판사도 있었다.
사례를 든 뒤 저자는 "좋은 판결문은 법정에서 먼저 태어난다"고 주장한다. 독립을 명분 삼아 권위나 관행 뒤에 숨지 않고, 당사자의 말을 들으려 노력하는 판사들이 좋은 판결문을 쓴다. 그 태도를 약자에게도 공평하게 유지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
그럴 때 판결문에는 사건 관계인 모두를 설득할 수 있는 충분한 설명이 담길 수 있다. 동시에 지연된 정의로 고통받는 시간이 길어지거나, 지연된 배상으로 생계의 어려움이 길어지지 않도록 신속하게 재판을 진행하려는 노력도 필요하다.
저자는 판사들이 법원이라는 제도 속에서 일한다는 점을 놓치지 않는다. 시민이 좋은 판결문을 받는 일이 운 좋은 일이 되지 않으려면 법원이 변해야 한다며 이를 위한 제도적 개혁안을 제시한다.
일부를 옮기면 판사의 공적 직무 수행에 대한 감시 시스템, 재판 지연을 막기 위한 배상제도 도입 및 설명 의무 부여, 판결문의 부족한 설명에 대한 보완을 요청할 수 있는 '불량 판결문 A/S 제도', 판사의 전횡 방지와 보호를 동시에 꾀하기 위한 녹음·속기 의무화 등이다.
좋은 판결문에 대한 저자의 통찰은 법원의 권력 행사 역시 민주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현대사회에서 법원이 갈등에 대한 사실상 종국적 권력을 행사한다는 점에 비춰보면 더 그렇다.
비판에서 그치지 않고 좋은 판결문이 무엇이며, 그런 판결문이 일상이 되는 법원을 어떻게 만들지까지 묻는 책이다. 그렇게 한 이유는 "누구보다 법원을 애정하는 마음"에서였다. 책에 담긴 법원에 대한 생각과 대안이 더 많은 시민에게 가닿기를 바란다. 맺음말에 저자가 쓴 글도 함께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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