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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권 운동이 마주한 질문 "활동가 인권 없는 동물권, 성립 못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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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동물권 운동이 마주한 질문 "활동가 인권 없는 동물권, 성립 못 해"

[동물권 운동, 새 길을 찾다] ① '망가진' 동물권 단체와 풀뿌리 운동, 길 찾는 연재를 시작하며

대형 동물보호 단체 내의 비민주성과 불투명성, 노조 탄압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2023년 11월 노조가 설립된 후 노사 분규가 극심해진 '동물권행동 카라'가 대표적이다. 동물권운동을 고민하는 이들이 카라 사례를 중심으로 대형 시민단체의 성장통과 구조적 한계를 짚으며, 새로운 동물권운동을 전망하는 글을 보내왔다. 13편에 걸쳐 연재한다. 편집자

2012년 6월 국회의원 임기 초반에 동물권·동물복지 문제를 국회에서 본격적으로 다루려고 마음먹으면서 한편 걱정했다. '사람도 먹고 살기 힘든데 국회의원이 동물복지 타령이라니' 물정 모르는 한가한 소리로 치부될까 조바심도 났다. 국회 안팎의 호응은 전혀 기대하지 않았고, 동물원 및 수족관의 관리에 관한 법률(이하 동물원법)을 대표 발의하면서도 법 통과는 꿈도 꾸지 않았다.

그때만 해도 한국 사회에서 동물보호단체의 주장은 사회 이슈 중에서도 마이너 이슈로 취급됐다. 따라서 나의 목표는 19대 임기 동안 동물권·동물복지 사안을 정치적 이슈로 자리매김하는 것, 국회에서 동물권을 논하는 것을 자연스러운 일로 만드는 것이었다. 그렇게만 해도 엄청난 성과라고 생각했다.

동물원법은 여러 동물보호단체와 함께 만들었다. 당시 동물원의 설립과 운영에 관한 법적 기준이 전무했다. 동물원 설립자의 편의에 따라(엿장수 마음대로) 소관 법령, 소관 부처가 제각각으로 '도시공원 및 녹지 등에 관한 법률', '자연공원법',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 상 교양시설, 공원, 박물관으로 등록하는 실정이었고, 동물원 내 사육동물의 적정한 사육환경, 복지에 관한 규정은 전무했다. 동물원에 전시된 개체는 동물보호법이나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도 제대로 적용될 수 없다는 것. 말 그대로 "박물관에 있는 박제나 동물원의 살아있는 동물이 똑같은 법적 지위를 가진 셈"이었다.

카라와의 인연은 그때부터다. 공교롭게도 동물원법 발의를 준비하던 시기에 카라는 경기도 고양시에 있는 '쥬쥬동물원'에서 벌어진 상습적인 동물 학대를 언론에 폭로했다. 오랑우탄 '우탄이'가 사망한 것도 2012년 6월이었다. 동물원 측이 만약 탈출하지 못하게 하거나 관람객들에게 더 가까이 보이고 싶은 이유에서 우탄이의 손가락 인대를 강제로 절단했다는 내부 제보가 있었다.

카라는 어린 바다코끼리를 발로 차고 구타하는 영상을 세상에 알렸고, 2013년 10월 우탄이의 죽음을 둘러싼 의혹, 멸종위기종 1급 동물을 이용한 동물쇼 문제, 동물 반입 절차 위반 여부, 바다코끼리 학대 사례 등을 이유로 쥬쥬동물원을 고발했다. 또한 동물원법 제정을 위해 국제적인 서명운동을 전개해 법안 통과에 힘을 실어줬다.

2016년 5월 19일, 19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에서 제정법인 동물원법이 가결됐다. 1909년 창경원이 개장한 이래 100년 이상 법의 사각지대에 있던 동물원·수족관이 드디어 법의 테두리 안에 놓이게 됐다. 동물원 업계와 새누리당의 한결같이 지독한 반대 때문에 원안을 고치고 또 고쳐서 누더기에 만신창이가 된 동물원법이지만, 임기 만료 폐기되지 않고 살아남은 것은 카라와 같은 동물보호단체들의 열렬한 지원 덕분이었다.

그래서 지금 카라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지켜보는 마음이 무겁다. 활동가의 인권을 침해하고, 노동조합을 탄압하고, 구조한 동물을 캔넬(이동장)에 장기간 감금하다니, 카라는 왜 이렇게 변했나?

▲전진경 카라 대표 사퇴 요구 기자회견ⓒ카라노조

하지만 나에게 카라 사태는 강 건너 불이 아니다. 카라의 회복을 위해 싸우는 활동가들이 있다면 나 또한 끝까지 연대할 작정이다. 카라만 이상한 게 아니라 이는 대형 동물보호단체들이 가진 공통된 문제다. 오히려 카라 내부로부터 문제가 제기되고, 활동가들이 노동조합을 설립해 카라를 바로잡으려 한 것은 카라의 힘, 카라의 가능성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나는 카라 노조의 동지라는 게 자랑스럽다.

사실 동물권은 나의 의정활동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진 않는다. 나는 4년간 상임위 변경 없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으로 활동하며 노동 현장에도 촘촘하게 연대했다. 쌍용자동차 부당해고 사태, 이마트 직원 불법 사찰 등 노조파괴 사건, 현대자동차의 불법파견 비정규직 문제, 유성기업, 사측의 복수노조 설립과 지배개입으로 유시영 회장에게 실형이 확정된 유성기업 사태 등 헌법이 보장한 노동권과 노동3권(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을 옹호하기 위해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비호 아래 노조를 탄압하고 노동자를 짓밟는 기업들과 싸웠다. 노동권을 침해하는 경영자를 국정감사장에 세우고, 부당노동행위 실태를 고발하며, 노동3권은 헌법이 보장한 권리임을 거듭 확인시켰다.

노조 설립을 추진하는 노동자나 노조 간부를 대상으로 표적 감사와 부당징계를 하는 사측의 만행을 지겹게 봐왔다. 사측이 노동조합의 정당한 활동을 경영권 침해나 조직 문란으로 매도하고, 단체교섭 요구를 무시하거나 지연시키면서, 언론에는 노조를 '비이성적으로 과도한 요구를 하는 이기적인 집단'으로 프레이밍하는 방식 또한 흔한 수법이다. 지금 카라가 그렇다.

카라 노조 투쟁은 동물권 운동 안에서 이례적인 상황일지 몰라도, 지극히 일반적인 노동문제다. 카라는 노조 설립 사실을 통보받자마자 노조 사무장과 회계감사를 징계했고, 언론을 통해 카라 노조를 매도했고, 카라 노조의 정당한 문제 제기를 조직의 명예 훼손으로 규정했다. 의원 시절 매일 마주했던 부당노동행위의 전형적인 패턴이다.

카라는 영리 기업이 아닌 비영리 단체로서 스스로 '진보적'이고 '선한 의도'를 가진 조직으로 규정하기 때문에 조직 내부의 문제가 외부에 드러나는 것을 두려워하고, 문제 제기 자체를 조직에 대한 배신으로 취급하는 것일지 모른다. 하지만 카라의 대의와 선의는 활동가들의 인권과 노동권을 침해하는 면죄부가 아니다. 카라 사태는 인권을 침해하면서 동물권을 옹호할 수 없다는 진리를 여실히 증명한다.

2016년 국회를 떠난 후, 2017년 시민단체 '정치하는엄마들'의 설립을 제안하고 지금까지 사무국장으로 현장 활동가로 일하고 있다. 돈도 사람도 없는 비영리 공익단체가 거대한 국가권력과 자본 권력을 감시하고 견제할 힘과 명분은 투명성에서 나온다. 정치하는엄마들은 시민들의 자발적인 후원, 즉 신뢰를 자본으로 삼아 존속된다. 신뢰가 무너지는 순간 시민단체는 권력을 견제하는 감시자로서의 도덕적 우위와 명분을 잃는다.

그러기에 단체의 회계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의사결정 과정이 담긴 회의록을 공개하고, 활동가의 인권과 노동권을 존중하고, 활동가 간의 위계를 없애고 수평적인 관계 속에 모두의 발언권을 보장하는 것이다. 이것은 선택사항이 아니라 비영리 공익단체가 존립하는데 최소 조건이라고 생각한다. 즉 카라가 활동가의 인권을 침해하고 노동조합을 탄압하는 한, 구조 동물을 학대하고 캔넬에 방치하고 불법 사육장에 위탁하는 일도 개선되지 않을 것이다. 그런 걸 태생적 한계라고 부른다.

나는 지난 2년여간 이어진 동물권행동 카라 사태를 그저 일개 단체의 문제로 보지 않는다. 이것은 한국의 동물권 운동, 나아가 한국 시민사회 전체가 마주해야 할 질문이다.

카라 노조 투쟁은 2023년 11월 민주노총 전국민주일반노조 산하 카라지회 결성으로 공식화됐다. 이후 노조는 사무장과 회계감사에 대한 징계가 노조 탄압의 일환이라고 주장했고, 사측은 절차상 문제가 없었다고 반박하며 갈등이 표면화됐다. 2024년 5월에는 카라 동물보호센터에서 수년간 구조 동물에 대한 폭언과 폭행이 이어져 왔다는 내부 폭로가 나오면서 파장이 커졌다. 시바견 '수피아'가 슬리퍼로 맞았다는 녹취록이 공개됐고, 사측은 소리를 내기 위한 것이었을 뿐이라고 해명했지만, 이 논란으로 580명 이상의 후원자가 탈퇴하고 월 1천만 원 규모의 후원금이 줄어든 것으로 전해진다.

같은 해 6월에는 노조와 공동대책위가 차명거래와 탈세, 후원금 비리 의혹을 제기하며 고발 기자회견을 열기도 했다. 그리고 2025년 하반기에는 켄넬에 구조동물 40여 마리를 하루 평균 20시간씩 가둬두었다는 의혹과 서울 마포구 소재 '더불어숨센터' 매각을 둘러싼 갈등이 겹치며 노조가 다시 농성에 들어갔다.

이는 개별 사건의 나열이 아니라 하나의 구조가 반복해서 드러난다. 활동가와 노동조합의 문제 제기는 노조 탄압과 조직 문란 프레임으로 되돌아오고, 동물 학대 의혹은 '오해'나 '불가피한 조치'로 축소되며, 조직 운영과 재정의 투명성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단체의 명예를 훼손하는 노조의 외부 여론전'으로 취급된다. 이것은 카라만의 문제가 아니다. 시민의 신뢰와 지지로 급성장한 단체가 조직 내부의 민주주의와 투명성을 등한시할 때 결국 동물보호라는 조직의 존재 이유마저 상실하게 되는 전형적인 패턴이다. 그래서 카라 노조는 승리해야 한다.

카라 노조의 투쟁은 단지 한 단체를 정상화하는 싸움에 머물지 않는다. 이 투쟁은 카라를 포함한 한국의 대형화된 동물보호단체들이 어떻게 성장해 왔고, 그 성장의 과실을 누가 가져갔으며, 그 과정에서 무엇을 놓쳐왔는지를 돌아보는 계기가 돼야 한다. 20여 년 전 소수의 활동가가 사비를 들여 유기견 한 마리를 구조하던 시절의 카라와 연간 48~62억 원의 후원금을 운용하며 60명이 넘은 유급 활동가를 둔 지금의 카라는 근본적으로 완전히 다른 조직이 됐다. 그런데 그 성장을 뒷받침해야 할 민주적인 운영 구조와 활동가의 권리 보장, 동물보호 기준은 조직의 몸집만큼 함께 성장했는가? 카라 노조가 던지는 질문은 결국 이것이다. 카라 노조가 포기하지 않는 한 아직 기회가 있다. 나는 그래서 주저 없이 연대한다.

풀뿌리 시민운동에 대한 경험과 기반 없이 짧은 시간 안에 몸집을 불린 한국의 대형 동물보호단체들은 유사한 패턴의 위기를 반복해서 겪어 왔다. 대규모 동물 구조와 동물 학대 고발이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되면 후원이 급증하고, 늘어난 후원금으로 조직 규모가 커지고, 거대해진 조직을 소수의 창립 멤버와 대표 등 특정 세력이 오래도록 경영하면서 내부 견제 장치와 시스템을 고의로 약화하는 구조다. 이 단계에 들어서면 조직의 성장 자체가 목표가 되기 쉽고, 정작 그 조직이 왜 만들어졌는지, 즉 동물의 삶을 실질적으로 나아지게 한다는 원래의 목적은 부차적인 것으로 밀려나고, 동물의 곁은 지키는 활동가의 권리는 더욱더 밀려나게 된다.

구조된 동물이 좁은 켄넬에 장기간 갇혀 지내거나, 입양이 되지 않은 채 시설에 방치되다 안락사되는 비극이 반복된다면, 우리는 대체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동물을 구조하는지 물어야 한다. 카라 경영진의 책임 있는 답변을 들을 때까지 질문을 멈추지 말아야 하고, 소수의 카라 노조 조합원이 쏘아 올린 질문이 증발하지 않도록 연대해야 한다.

카라 사태를 통해 동물보호단체를 실질적으로 지탱하는 사람들, 즉 활동가들의 노동권과 발언권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됐다. 동물의 편에선 활동가들이 궁지에 몰리고, 경영진의 편에선 활동가들이 주도권을 쥘 때 구조·보호 중인 동물의 삶은 위기에 처한다. 동물의 권리를 이야기하는 단체가 그 안에서 일하는 인간의 권리조차 존중하지 못한다면, 그 운동은 이미 자기모순에 빠진 것이다. 그리고 동물권을 옹호하기 위해서는 활동가의 인권을 지켜야 한다는 것을 카라 사태에서 확인했다. 동물 구조·보호라는 명분이 조직의 비민주적 운영과 활동가 인권 침해, 노조 탄압을 정당화하는 방패가 될 때, 그 단체는 더 이상 동물권 운동의 자격을 온전히 갖췄다고 말하기 어렵다.

▲2019년 동물보호단체 케어 대표 사퇴를 위한 직원연대 기자회견. ⓒ연합뉴스

이 연재는 세 갈래로 진행된다.

첫 번째 갈래는 대형 동물권 단체들이 처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들여다보는 자리다. 조직 연구를 해 온 인류학자가 대형 동물권 단체의 급성장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지, 그 가능성과 한계를 사회과학적으로 짚는다. 이어 동물 구조와 보호소 운영, 해외 입양으로 이어지는 사업 구조 속에서 정작 동물의 삶이 운동으로부터 소외되는 역설을 연구자의 시각에서 분석하고, 카라 내부에서 오랫동안 활동해 온 대의원이 후원금이 실제로 어떻게 쓰이고 그 과정에서 회원의 권리가 어떻게 배제돼 왔는지를 당사자로서 증언한다.

두 번째 갈래는 카라 노조 투쟁의 의의와 투쟁 이후의 과제를 짚는다. 기업화된 동물권 단체가 왜 노동조합을 받아들이지 못하는지, 다른 동물권 단체의 노조 결성 시도와 실패의 경험을 통해 구조적으로 진단하는 글이 실린다. 이어 카라 노조 결성을 이끈 현직 활동가가 왜 노동조합을 만들 수밖에 없었는지를 직접 기록하고, 오랫동안 후원해 온 회원이 후원회원이 과연 단체의 주인이 맞는지, 단체의 민주성을 회복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를 회원의 자리에서 묻는다. 마지막으로 시민단체 운영을 다뤄 온 변호사가 동물권 단체를 포함한 시민단체가 자율성과 투명성을 동시에 확보할 방법을 법률적 관점에서 짚는다.

세 번째 갈래는 대형 동물권 단체를 넘어서는 운동, 즉 공존을 향한 방향을 모색한다. 지역에 기반한 동물권 단체 활동가가 구조하고 감금하는 방식이 아니라 동물과 함께 마을에서 살아가는 것이 가능한지를 현장의 언어로 이야기하고, 학교 현장에서 생명 존중 교육을 실천해 온 교사가 동물의 권리를 가르치고 배우는 일이 공존의 밑거름이 될 수 있는지를 다룬다. 동물권 소송을 이어온 변호사가 함께 살기 위해 필요한 제도와 지금 진행 중인 법적 투쟁을 소개하고, 동물권 영화제를 기획해 온 영화평론가가 예술이 반려동물을 넘어선 생명과의 공존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를 짚는다. 마지막으로 현장의 수의사가 동물복지와 동물권 운동이 함께 갈 수 있는지, 거대한 돈벌이가 되어버린 동물 산업 앞에서 동물권 단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묻는 것으로 연재는 마무리된다.

이처럼 이 연재는 나 한 사람의 성찰에 그치지 않는다. 연구자와 법률가, 교육자와 수의사, 그리고 무엇보다 카라 안팎에서 오랫동안 이 단체를 지켜봐 온 대의원과 활동가, 후원회원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같은 질문에 답한다. 대형 동물보호단체의 성장은 동물권 신장으로 이어졌는가? 동물 구조를 위한 조직 성장인가, 조직 성장을 위한 동물 구조인가? 대형 단체의 재정·운영 투명성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 동물의 권리와 인간의 권리가 함께 존중받는 조직 문화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

이 연재를 첫 번째 글을 쓰면서 한 가지 분명히 하고 싶다. 이것은 카라를 공격하기 위한 글도 아니다. 오히려 나는 카라가 2002년 '아름품'이라는 이름으로 활동을 시작할 때의 초심으로 돌아가기를, 그래서 한국 동물권 운동 역사 속에 카라라는 이름이 자랑스럽게 새겨지기를 바란다.

다만 카라의 회복은 반성 없는 억지 봉합으로는 결코 불가능할 것이다. 카라는 노동조합의 문제 제기를 있는 그대로 마주하고 책임 있게 답변해야 한다. 외부 전문가와 함께 구조 동물에 대한 처우 기준을 재정립하고, 조직 운영의 투명성을 후원회원과 시민들 앞에 증명하는 과정을 거쳐야만 카라는 다시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수많은 후원자와 활동가들이 쌓아온 카라 25년의 역사가 물거품이 되지 않을 것이다.

카라 노조의 투쟁이 지치지 않고 힘을 얻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리고 카라뿐 아니라 한국의 대형 동물보호단체들이 동물 구조에서 모금으로 이어지는 관성적 운동 방식을 넘어, 동물 구조가 감금과 안락사로 귀결되는 비극을 넘어, 스스로 질문하고 재정비하고 동물권 운동의 비전을 제시하는 성숙한 단체로 거듭나기 바라며, 동물을 사랑해서 동물을 위해 활동가가 된 사람들이 자괴감에 눈물 흘리지 않기 바라며, 연재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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