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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시위로 물만난 르펜…"대선 앞 고속도로 뚫린 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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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시위로 물만난 르펜…"대선 앞 고속도로 뚫린 셈"

혼란 속 반이민 선동·질서 지킴이 자처… 19일까지 약탈 계속되며 파리 일부 야간 통금

지난 주말 프랑스 전역에서 열린 대규모 시위를 틈타 약탈 등 극심한 혼란이 빚어지며 내년 대선을 앞두고 극우 마린 르펜에 '정치적 고속도로'가 깔렸다는 분석이 나온다.

르펜은 혼란 와중에 자신을 질서를 회복할 수 있는 유일한 대선 주자로 강조하고 있다. 그는 18일(현지시간)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내 놓은 영상연설에서 "우리나라는 폭력과 무력함 사이 인질로 잡힌 상태"라며 에마뉘엘 마크롱 현 행정부의 무력함을 비판하고 자신이 질서를 회복할 수 있다고 주장하며 "6달 뒤 프랑스 국민은 권위와 안보 회복을 위한 다른 길을 선택할 수 있다"고 밝혔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프랑스 국기 앞 웅장한 책상 앞에 앉아 행한 르펜의 연설 장면이 "대통령의 대국민 연설" 같았다고 묘사했다. 프랑스 여론조사회사 입소스 베베아(Bva) 여론조사원 아델라이드 줄피카르파시치는 르펜이 "이미 엘리제궁(프랑스 대통령궁) 집무실에 있는 듯 보인다"며 르펜이 지속적으로 법과 질서를 강조해 온 탓에 이 국면에서 자신을 안정을 보장할 사람으로 내세울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르펜이 "국민들이 더 이상 국가가 자신을 보호하고 필요를 충족시키지 못한다고 믿지 않고 있는 가운데 이와 대조적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덧붙였다.

위기분석회사 유라시아그룹 유럽 책임자 무즈타바 라흐만은 "주말 발생한 사회적 불안은 '기득권층이 혼란을 초래했으니 뭔가 다른 걸 시도할 때'라는 르펜의 선거 운동 논리에 확실히 힘을 싣는다"고 분석했다.

마크롱 진영 출신인 장바티스트 모로 전 의원은 <로이터> 통신에 "르펜은 이제 선거 운동을 위해 돈을 쓸 필요가 없다"며 "르펜 앞에 단순히 길이 뚫린 정도가 아니라 6차선 고속도로가 펼쳐졌다"고 말했다. 르펜은 이미 여론조사에서 대선 후보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다.

대서양 건너편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프랑스 시위를 근거 없이 이민자 탓으로 돌린 가운데, 르펜의 반이민 선동에도 힘이 실리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19일 소셜미디어를 통해 "한때 위대했던" 프랑스가 "이민자, 지하디스트(이슬람 성전주의자), 공산주의자" 등을 받아들여 "파괴자들에게 나라를 내줬다"고 주장했다.

지난 주말 프랑스 전역에서 정부 추산 55만 명, 주최 쪽 추산 80만 명이 모인 대규모 시위는 지난달 고등학생들의 교육환경 개선 요구 시위로 촉발됐고, 이후 노동자, 학부모 등 여러 계층이 참여해 물가 안정, 임금 상승, 환경 문제 등 다양한 분야에서 정부에 항의를 전달하는 창구로 확장했다.

그러나 시위를 틈타 3000곳 넘는 상점이 약탈과 파괴를 겪으며, 범죄와 사회 불안을 무차별적으로 이민자와 연동시키는 극우 주장이 이목을 끌고 있는 상황이다. 줄피카르파시치는 <월스트리트저널>에 "약탈 사태로 인해 그 중 일부가 이민자인 특정 계층, 특정 지역 젊은이들이 주목 받고 있다"며 "이는 국민연합 주장 핵심과 일맥상통한다"고 분석했다.

호주 멜버른대 명예교수 피터 맥피는 카타르 알자지라 방송에 이번 시위가 대선 앞 르펜의 국민연합에 건네진 "크리스마스 선물"이라고 묘사했다. 그는 "르펜이 (시위에 등장한) 팔레스타인과 알제리 국기를 빌미로 상점과 건물에 대한 폭력적 공격을 아프리카계 이민자와 연결시키는 건 쉽다"며 "세계 여러 지역의 사람들이 경제, 사회 문제에 대해 단순하고 종종 인종차별적인 해법에 끌리는 중"이라고 우려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르펜이 현재 시위대 불만의 기반이 된 프랑스 재정 위기에 일조했다고 지적했다. 시위대는 교육재정 및 공공서비스 확충 등을 요구하고 있지만 프랑스 정부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5.4%에 달하는 재정적자 비율을 낮추기 위한 긴축 재정을 추진 중이다. 신문은 르펜과 국민연합이 지출 삭감을 추진했던 마크롱 정권 두 총리 해임에 찬성표를 던졌다고 짚었다. 르펜이 선거 공약으로 내세운 은퇴 연령을 60세로 내리는 안이 시행될 경우 프랑스 재정은 또 한 번 큰 타격을 입게 될 전망이다.

마크롱 대통령의 민심을 읽지 못하는 듯한 안이한 행보도 도마에 오르고 있다. 극심한 국내 혼란에도 마크롱 대통령은 예정된 중동 순방에 나서 19일 쿠웨이트에 도착했다. 이란 전쟁 와중에 원유 등 연료 확보가 가장 큰 의제인 것으로 보인다.

마크롱 대통령은 18일 연설에서 "분노와 수치심"을 느낀다며 폭력 사태를 비판했다. 그는 "정당한 요구"를 하는 시위대와 "파괴, 약탈자"들은 구분돼야 한다면서도 시위대 요구에 대한 구체적 응답은 하지 않았다.

프랑스 정부는 시위 규모를 제대로 예상하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영국 일간 <가디언>을 보면 19일 로랑 누네즈 프랑스 내무장관은 시위에 20만 명이 모일 것으로 예상했지만 실제로 50만 명 이상이 모여 대비가 부족했다고 인정했다. 6만 명가량 배치된 경찰 및 보안인력으론 조직적 폭동을 막기 역부족이었다는 것이다. 누네즈 장관은 "책임을 느낀다"며 사의를 표명했지만 마크롱 대통령은 거부했다. 이번 주말에도 시위가 예정돼 있는 상황이다.

17일 시위를 계기로 시작된 상점 약탈 행위는 19일 새벽까지도 계속됐다. 약탈자들의 신상은 다양했다. <가디언>을 보면 19일 제랄드 다르마냉 프랑스 법무장관은 절도 등 전과가 있는 34살 남성, 파손된 상점 탈의실에 숨어 있다 체포된 마약 판매 전과가 있는 19살 남성, 도난 스쿠터 열쇠 소지 혐의를 받은 술에 취한 23살 남성, 상점에서 옷을 훔친 혐의를 받는 46살 남성 등이 체포됐다고 밝혔다.

일부 지역엔 19일 밤부터 제한적 통행금지 조치가 취해졌다. <AP> 통신을 보면 19일 세바스티앙 르코르뉘 프랑스 총리는 "매우 제한적인" 통행금지 조치를 촉구했다. 이에 따라 파리 경찰은 폭동과 약탈이 발생했던 레퓌블리크 광장, 레알 쇼핑지구에 19일 밤 11시부터 20일 오전 6시까지 출입을 금지했다. 북부 릴에선 지방 당국이 18살 미만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19일부터 이틀간 오후 8시~오전 6시 통행금지를 실시했다. 남부 니스에서도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오후 9시 이후 통금 조치가 시행됐다.

프랑스 일간 <르몽드>는 사설을 통해 이번 시위를 틈타 발생한 폭력 행위는 "어떻게 해도 정당화할 수 없다"며 "이런 반란에 가까운 행위는 현재 사회 운동의 정당성을 훼손하고 대선을 불과 6달 앞둔 시점에서 정치 세력들, 특히 스스로를 '질서의 정당'으로 내세우려는 극우 국민연합의 주장을 강화한다"고 우려했다.

신문은 "그러나 17일 시위를 약탈과 파괴 행위로만 축소해선 안 된다"며 "대다수 시위 참여자가 평화 시위를 벌이며 정당한 요구를 표명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마크롱 정부가 지난 10년간 사회 운동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고 노동조합을 배제해 국민 분노 수렴의 필수적 매개체들을 박탈해 왔다고 지적했다. 이어 정부가 시위대 요구에 대한 "구체적 정치적 해결책"을 내놓고 "장기간 단절된 사회적 대화를 재개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주말 이탈리아에서도 곳곳에서 물가 상승에 항의하는 시위가 열린 가운데 상점 약탈, 쓰레기통 방화 등 폭력 행위가 발생했다. <가디언>을 보면 19일 이탈리아 정부는 상점 약탈이 발생한 "밀라노 방어"를 위해 군 병력 500명을 파견하겠다고 밝혔다.

스페인 마드리드에서도 주거비 상승 항의 시위가 몇 주째 벌어지고 있고 포르투갈 리스본에서도 유사한 문제로 시민들이 시위에 나서는 등 유럽 여러 나라들에서 불만이 표출되는 중이다. <AP> 통신을 보면 스페인 데우스토대 사회학 교수 마리아 실베스트레는 "젊은 유럽인들이 강한 불확실성과 통제력 상실"을 경험하고 있다며 "특정 상황이 복합적으로 결합할 때 갑자기 불만이 폭발해 사람들이 거리로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14일(현지시간) 벨기에 브뤼셀에서 프랑스 극우 지도자 마린 르펜이 기자회견을 열었다.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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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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