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년간, 이스라엘군은 가자지구 아이들을 표적 살해했다.'
지난 3월 공개된 다큐멘터리 <포화 속의 아이들(Kids Under Fire)>에 나온 미국 주재 의사 20명의 증언이다. 2023년 10월 7일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를 침공한 이후 가자지구에서 의료 지원 활동을 했던 이들이다.
이스라엘의 지난 2년 집단학살 이래 가자지구에서 사망한 아동·청소년은 총 사망자의 약 30%에 달한다. 지난달 7일 기준 6만 7173명 중 2만 179명이다. 지난 10일 이스라엘과 하마스가 휴전 합의 1단계를 발효했지만, 공격은 지금까지 계속돼 최근까지 최소 1685명이 더 죽었다.
의사들은 모두 이스라엘군이 가자지구 아동을 의도적으로 겨냥해 학살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 명이 아니라, 매일 여러 명이 머리, 가슴, 복부 등에 총상을 입고 실려 오는 건 누군가 의도적으로 쏘는 것"이라거나 "나 혼자라면 무시할 수 있겠지만, 40명이 같은 말을 하는 건 명백한 증거"라고 말했다.
<알자지라>가 제작한 <포화 속의 아이들>은 지난 9월 5·18기념재단이 시상하는 2025 힌츠페터국제보도상 중 유영길상을 수상했다. 유영길상은 1980년 5·18 민주화운동을 최초 영상으로 취재해 보도한 고 유영길 영상기자(미국 <CBS>)를 기리기 위해 올해 처음 제정됐다.
4일 저녁, 서울 영등포구 서울여성플라자 건물에서 팔레스타인과 연대하는 한국 시민사회 긴급행동과 한국 영상 기자협회가 공동 주최한 <포화 속의 아이들> 상영회가 열렸다. 상영 후엔 다큐멘터리를 촬영한 아슈라프 마샤라위 팔레스타인 기자, 아멜 게타피 프리랜서 기자가 참석해 가자지구의 참상을 증언했다.
가자지구 의사들 "아동 표적 살해 명백… 미국인임이 부끄럽다"
제작진은 외신의 가자지구 취재가 전면 차단된 상황에서, 가자지구를 방문했던 미국인 의사 20명을 만나 증언을 취재했다. 또 현지 팔레스타인 취재진과 협업해 현장 피해자들의 상황도 담았다.
25분 분량의 영상엔 이스라엘군의 총격으로 죽거나 다친 아동의 모습이 빼곡히 담겼다. 피난 중에 죽고, 귤나무에 열린 귤을 따다 죽고, 총에 맞은 동생을 구하다 죽고, 아빠를 보고 반가워 달려가는 길에 죽은 아이들의 사연이 연이어 나왔다.
카메라는 네 살 소녀 미라 알다리니의 이야기를 가장 오래 비춘다. 미라는 피난 텐트 바깥에서 놀다가 머리에 총상을 입었다. 이스라엘 쿼드콥터(드론)의 총격이었다. 살릴 수 없는 환자라고 분류됐으나 한 의사의 노력으로 기적처럼 생존했다. 미라의 가족은 이후에도 두 번 더 폭격당했다. 두 번째엔 미라의 이모들이 죽거나 다리를 잃었고, 세 번째엔 미라의 엄마가 다리를 잃었다.
미라를 치료한 의사는 "나도 공범에 해당할 것"이라며 "우리(미국인)가 낸 세금이 이스라엘군에 지원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내 나라에서 만든 총알, 폭탄, 총, 탄약이 가자지구에 공급되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 힘들다"며 "대체 어떤 세상에서 아이의 머리를 쏘는 게 허용이 되느냐"고 물었다.
또 다른 의사는 "이스라엘군은 아이들을 죽이고, 불구로 만들고, 정신적으로 공격하는 등 이렇게 팔레스타인의 미래를 파괴한다"고 분노했다.
30분 전 대화한 동료가 폭격으로 사망
다큐멘터리는 팔레스타인 언론인들의 용기와 헌신으로 제작될 수 있었다. 가자지구의 언론인 아슈라프 기자는 "언론인도 이스라엘군의 표적이 되기에 굉장히 위험한 상황에서, 그리고 기아에 시달리면서 촬영했다"며 "교통수단을 이용하지 못하는 진입 금지 구역도 위험을 감수하고 직접 걸어 들어갔다. 전쟁범죄를 취재하고 세계에 알리는 것이 언론의 의무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아슈라프 기자는 팔레스타인 기자들의 현재 상황을 전하며 여러 번 눈물을 흘렸다. 그는 "나는 매일 밤 5~10분 동안 집 밖에 서 있다가 집에 들어갔다"고 말했다. 자신은 언제든 미사일에 맞아 죽을 수 있기에, 그냥 집에 들어갔을 때 폭격을 당하면 아이들이 같이 죽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아슈라프 기자는 "기아 때문에 정말 힘들다"며 "아이들이 배고파서 우는 소리를 들으면 너무 괴롭고, 36시간 동안 밥을 못 먹고 물과 소금만 먹으면서 일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직접 겪거나 목격한 고통은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다"며 "이런 얘기들은 너무 많다"고 말했다.
그는 "많은 언론인이 형제와 가족을 잃었다"며 "우리 팀의 카메라 감독 중 한 명은 다섯 살 딸을 잃었고, 또 다른 동료는 손에 총을 맞아 뼈가 부러져 10개월 동안 일을 못 했다"고 말했다. 또 "한 팀은 4명이 살해됐다. 그중 3명은 사망 30분 전까지 나와 계속 연락했다"며 "24시간 같이 일하는 동료인데 영상을 올리는 중에 갑자기 연락이 끊기더니, 알고 보니 살해된 것이었다. 굉장히 힘들었다"고 덧붙였다.
지난 8월 말 UN에 따르면, 이스라엘의 학살로 가자지구에서 사망한 언론인은 최소 247명이다.
아슈라프 기자는 "현재 가자지구에 취재를 할 수 있는 언론인이 많이 남지 않았다"며 "보도되지 않는 전쟁 범죄 사건이 정말 매우 많다. 우리가 (보도로) 볼 수 있는 사건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이스라엘·미국 앞에서 멈추는 법
알제리계 미국 국적의 아멜 기자는 "가자지구의 집단학살을 말하려면 미국의 자금 지원 역할을 다루지 않을 수 없다. 이스라엘의 가장 큰 자금 지원자"라며 "미국 시민은 1인당 평균 200달러의 세금을 이스라엘 군사 원조로 내고 있다. 자연히 미국시민도 가자지구 집단학살에 연루됐다"고 지적했다.
다큐멘터리는 미국의 레히 법(Leahy Law)을 다룬다. 인권 침해에 연루된 외국 군대나 경찰에겐 미국 정부의 원조를 금지하는 법이다. 이 법은 나이지리아, 콜롬비아 등 다른 나라에 적용된 적 있어도 이스라엘엔 단 한 번도 적용된 적이 없다. 영화는 바로 이 점을 다루며, 전 미국 국무부 관료를 인터뷰해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는 양심 고백을 끌어낸다.
아멜 기자는 "이스라엘은 미국으로부터 '추적 불가능한' 지원, 쉽게 말하면 엑셀시트에 배정된 예산 규모가 적히지 않는 지원을 받는다"며 "문제 발생 시 심사하는 절차도 이스라엘만 별도의 방법이 마련돼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지금 문제는 관련 법이 없어서가 아니라, 법은 있는데 이를 적용할 정치적 의지가 없다는 점"이라며 "미국 의회는 친이스라엘계의 로비와 방위산업 눈치를 본다. 수십억 달러에 달하는 산업이다"라고 지적했다.
아슈라프 기자도 "아이들과 민간인 살해는 어떤 공동체에서나 범죄"라며 "무슨 복잡한 법을 집행할 필요가 없다. 당장 지금 있는 법으로 이스라엘의 전쟁 범죄 책임을 물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래서 "이는 정치적 의지의 문제이고, 인류가 어떻게 대응할지 시험대에 놓인 문제"라고 덧붙였다.
아멜 기자는 "그래도 희망적인 건 지난 10여 년 팔레스타인 문제를 취재하면서 그동안 미국인들은 모두 친이스라엘이라 여겼지만, 이번엔 변화를 느꼈다"며 "기관 내에서 변화를 주도하는 사람들을 확인했고, 이리 많은 미국인이 미국의 집단학살 지원에 분노하는 것도 처음"이라고 밝혔다. 이에 "조심스럽게 낙관적 전망을 한다"며 "여론이 계속 이런 방향으로 변한다면, 레히 법 등이 적용될 수 있지 않을까"라고 내다봤다.
아슈라프 기자는 "우린 사람이기에 다 연결돼 있다. 만약 한국의 계엄령을 성공적으로 막지 못했다면, 한국 민주주의뿐 아니라 세계 민주주의도 큰 타격을 입었을 것"이라며 "팔레스타인 문제도 인류의 문제이고 국제 사회 안정성의 문제다. 언론인들이 각자의 플랫폼에서 정의를 위한 압박을 가하고 저널리즘 가치를 수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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