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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을 요리한 '공안의 요리사', '한동훈 후원회장' 정형근의 화려한 연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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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을 요리한 '공안의 요리사', '한동훈 후원회장' 정형근의 화려한 연대기

[기고] 영국에서 한국을 보다, 영국의 과거사청산이 한국에 묻는 것

영국에서 『반헌법행위자열전』을 읽다

지난달, 나는 영국에서 『반헌법행위자열전』 4권을 받았다. 책을 읽다 문득 한국과 영국을 생각해 보았다. 런던의 거리에는 영국 정보기관 MI5 본부 건물이 템스 강변에 유리와 콘크리트로 당당히 서 있다. 영국도 냉전시절 국가안보라는 이름 아래 수많은 시민의 인권을 유린했던 나라다. 그러나 지금 그들은 그 과거를 '국가기밀'로 묻어두지 않는다. 의회청문회, 법원판결, 언론보도, 독립조사위원회를 통해 끊임없이 들추고, 기록하고, 사죄한다. 그리고 나는 책 속에서 정형근(鄭亨根, 1945~ )이라는 이름과 마주쳤다.

'공안의 황태자', 한국과 영국이 공유한 냉전의 괴물

정형근은 1945년 경북 의성에서 태어나 서울법대를 졸업하고 검찰에 입문했다. 그러나 그의 진정한 무대는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 현 국가정보원)였다. 대공수사국장, 조사차장을 거치며 그는 '빨갱이 잡는 귀신'으로 이름을 떨쳤다.

여기서 나는 영국의 사례 하나를 떠올린다. 영국 MI5는 1970~80년대 북아일랜드 분쟁 당시 무고한 가톨릭계 민간인들을 IRA 협력자로 지목해 고문하고 투옥시켰다. 훗날 영국정부는 이를 공식인정하고 피해자들에게 배상했다. '안보'라는 이름 아래 자행된 국가폭력의 구조는 서울과 런던이 놀랍도록 닮아 있었다. 차이는 딱 하나다. 영국은 그것을 '역사'로 기록하고 책임을 물었고, 한국은 정형근을 국회의원으로 만들어주었다.

헌법을 장식으로 만든 기술, 조작의 해부

정형근이 관여한 대표적 사건들은 헌법 제12조(신체의 자유, 고문금지)가 어떻게 '공문(空文)'이 되는지를 보여주는 교과서다.

강기훈 유서대필 조작사건 당시 안기부 대공수사국장이었던 그는 강기훈 등 수많은 사람들의 인생을 송두리째 파괴하고도 그 어떤 책임도 지지 않았다. 민족민주혁명당(민혁당) 사건을 비롯한 굵직한 공안사건마다 그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그는 고문을 직접 행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그러나 고문으로 얻어낸 허위자백을 법적언어로 포장하여 '간첩'을 생산하는 데 탁월한 전문성을 발휘했다. 이것이 더 무서운 이유가 있다. 주먹을 휘두르는 자는 언젠가 잡힌다. 그러나 그 주먹을 법률문서로 번역하는 자는 오랫동안 잡히지 않는다.

영국의 역사학자 티모시 가튼 애시(Timothy Garton Ash)는 동유럽 공산정권의 비밀경찰 기록을 연구하며 이렇게 지적했다. "체제의 진짜 악은 고문자가 아니라, 그 고문을 서류로 정당화한 법률가들"이었다고. 정형근은 바로 그 자리에 있었다.

국회의원 정형근, 민주주의가 그를 구원한 아이러니

문민정부 이후 그는 정계로 투신해 제15·16·17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폭로의 명수'로 불리며 정보기관에서 축적한 정보력을 정치적 무기로 활용했다.

영국에서 이 장면을 바라보면 기묘한 데자뷔가 느껴진다. 영국에서도 냉전 시기 MI6 요원 출신들이 의회에 진출해 '안보전문가'로 활동했다. 그러나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그들은 의회 정보보안위원회(ISC)의 감시를 받았고, 과거 관여 사건에 대한 공개청문회에 출석해야 했다. 정형근은 그런 검증의 문을 한 번도 통과하지 않았다.

더 큰 역설은 이것이다. 그가 탄압했던 민주주의자들이 피로 쟁취한 헌법이, 지금 그의 노년과 인권을 지켜주고 있다. 그가 짓밟았던 바로 그 헌법 제10조(인간의 존엄과 가치)가 정형근에게도 적용된다. 이것이 민주주의의 위대함인가, 아니면 정의의 불완전함인가. 영국에서 나는 그 질문 앞에 오래 서 있었다.

『반헌법행위자열전』이 묻는 것, 기록은 왜 무기가 되는가

『반헌법행위자열전』은 정형근 개인을 넘어 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이승만·박정희·전두환으로 이어지는 권력구조 속에서 정형근 같은 실무자들이 어떻게 헌법파괴에 '전문성'과 '합법성'을 부여했는가. 그는 단순한 부역자가 아니었다. 헌법파괴의 설계자이자 번역자였다.

영국에는 '칠콧 조사(The Chilcot Inquiry)'가 있었다. 이라크전쟁 결정과정의 책임을 묻기 위해 7년에 걸쳐 진행된 독립조사였다. 260만 단어 분량의 보고서는 전직 총리 토니 블레어를 정면으로 비판했다. 완전한 사법적 처벌은 없었지만, 기록은 남았다. 역사의 법정에는 공소시효가 없기 때문이다.

『반헌법행위자열전』은 한국판 '칠콧조사'다. 정부와 사법부가 놓친 자리를, 학자와 시민들이 만든 역사가 메운 것이다.

2026년의 질문, 정형근은 과거인가, 현재인가

2024년 12월 3일 윤석열의 비상계엄 선포는 우리에게 냉혹한 사실 하나를 확인시켜주었다. '반헌법'의 유령은 아직 우리사회를 떠나지 않았다. 군화 발이 국회를 향하던 그 밤, 나는 영국에서 생중계를 보며 정형근 시대의 공안통치 문법이 다른 옷을 입고 귀환했음을 직감했다.

정형근은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곁에 살아 있는 '반면교사'다. 그의 이름을 기억하는 것은 과거를 탓하기 위함이 아니다. 지금 어딘가에서 또 다른 정형근이 '법의 언어'로 헌법을 번역하고 있지는 않은지를 경계하기 위함이다.

역사의 법정에는 공소시효가 없다. 그리고 그 법정의 방청객은 바로 우리들이다.

▲정형근 전 의원. 부산 북구에 출마한 한동훈 전 국힘 대표가 '공안 검사' 출신인 정 전 의원을 후원회장으로 위촉하면서 그의 과거가 다시 주목 받고 있다. ⓒMBC 보도 화면 갈무리

참고문헌

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위원회, 2026, 『반헌법행위자열전 1: 총론·대통령』, 사회평론아카데미.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위원회, 2026, 『반헌법행위자열전 2: 법원』, 사회평론아카데미.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위원회, 2026, 『반헌법행위자열전 3: 검찰 1』, 사회평론아카데미.

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위원회, 2026, 『반헌법행위자열전 4: 검찰 2』, 사회평론아카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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