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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판 괴벨스'의 탄생, 공안검사에서 극우 선봉장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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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판 괴벨스'의 탄생, 공안검사에서 극우 선봉장까지

[기고] 영국에서 읽는 『반헌법행위자열전』: 고영주, 공안검사가 방문진 이사장이 되기까지

2026년 봄, 영국에서 『반헌법행위자열전』을 받아 들었다. 책은 고영주(1949~)에 대해 이렇게 소개한다.

"영화 〈변호인〉 부림사건에서 통합진보당 해산까지, 전천후 용공조작 전문가."

읽다가 한참 멍해졌다. 전천후(全天候). 어떤 날씨에도 쓸 수 있다는 뜻이다. 비가와도 눈이 와도, 독재정권에도 민주정권에도, 군복을 입은 권력 앞에도 넥타이를 맨 권력 앞에도. 40년이 넘도록 한결같이 '빨갱이'를 찾아다닌 사람. 그것이 고영주다.

영국에서 이 인물을 들여다보면 익숙한 냄새가 난다. 이데올로기를 무기로 삼아 반대자를 적으로 규정하고, 언론을 장악해 여론을 조작하려 한 자들의 냄새다. 20세기 역사에서 그런 인물들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부림사건, 그리고 노무현의 전환점

고영주는 1949년 2월 충남 보령에서 태어났다. 경기고를 졸업하고 서울대 화학공학과를 나온 뒤 아버지 사업을 돕다가 군에서 몽테스키외의 『법의 정신』을 읽고 진로를 바꿨다. 1976년 제18회 사법시험에 합격해 검사가 됐다. 1980년 11월 부산지검으로 발령받은 그는 이듬해 부산지검에 공안부가 신설되자 그곳에 배속됐다.

1981년 9월, 전두환(1931~2021) 정권의 부산지검 공안부는 기획수사를 통해 부산양서협동조합을 중심으로 사회과학 독서모임을 하던 학생, 교사, 회사원 19명을 영장도 없이 체포했다. 길게는 49일간 불법 감금한 채 물고문과 이른바 '통닭구이' 고문을 자행했다. 고영주는 최병국(1952~), 장창호와 함께 이 사건 담당검사였다. 그들은 경찰의 고문현장인 부산시경 대공분실을 직접 방문해 정황을 파악했다. 피의자들이 검찰조사에서 경찰조서를 부인하며 고문사실을 호소했지만, 고영주 등은 이를 무시하고 기소를 강행했다.

부림사건 관련자 이상록의 항소이유서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법의 준수를 감독해야 할 검사가 불법고문 수사를 지휘했다. 이 나라에는 법이 있고 인권이 있는 나라인가? 하는 절망적인 자탄을, 검사의 방문은 저희들에게 안겨 주었습니다."

이 사건의 변호를 맡은 젊은 변호사 노무현(1946~2009)은 훗날 "부림사건이 내 삶에서 가장 큰 전환점"이었다고 했다. 고영주가 만들어낸 사건이 노무현을 인권변호사로 바꾼 것이다.

2014년 9월, 대법원 재심에서 부림사건 피고인들에게 무죄가 최종 확정됐다. 고영주와 최병국은 그 순간에도 사과 대신 이렇게 말했다.

"그들은 확신범이었고, 사회주의 혁명이 목표였다."

세계사 속의 동류, '빨갱이 감별사'의 계보

영국에서 이 장면을 보며 떠오르는 인물이 있다. 미국의 조지프 매카시(Joseph McCarthy, 1908~1957) 상원의원이다. 1950년대 초반 미국에서 공산주의자 색출을 빌미로 수천 명의 삶을 파괴한 인물이다. 그는 증거도 없이 "나는 국무부에 공산주의자 205명의 명단을 갖고 있다"고 외쳤다. 그 이름에서 '매카시즘'이라는 말이 생겨났다. 인물을 조사하지 않고 이념 딱지를 붙이는 정치적 마녀사냥을 뜻하는 말이다.

나치 독일의 선전장관 요제프 괴벨스(Joseph Goebbels, 1897~1945)는 미디어를 장악해 반대자들을 적으로 규정하고 대중을 선동하는 기술을 완성했다. 고영주가 '한국판 고벨스(고영주+괴벨스)'라는 별명을 얻은 것은 우연이 아니다. 다만 괴벨스가 라디오와 영화를 장악했다면, 고영주는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 이사장이라는 자리를 이용해 MBC를 장악하려 했다.

매카시는 결국 1954년 상원 청문회에서 "상원의원, 당신은 수치심이라는 것을 모르는가?"라는 변호사 조지프 웰치(Joseph Welch, 1890~1960)의 한마디에 몰락했다. 방청석이 박수로 들썩였다. 그러나 고영주는 아직 몰락하지 않았다. 그것이 한국의 현실이다.

방문진 이사장, 그리고 '공산주의자 문재인'

검찰을 떠난 고영주는 극우단체들 사이를 누비며 '애국보수'의 이론가를 자처했다. 2015년 박근혜(1952~) 정권에 의해 방문진 이사장에 임명됐다. MBC 지분 70%를 소유한 대주주 기관의 수장이 된 것이다.

그는 이 자리에서 거침없었다. 국정감사장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은 유사 공산주의자"이며 "문재인은 공산주의자"라고 공언했다. 전교조와 통합진보당을 공격했다.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비상임위원으로 앉아서는 유족들의 진상규명 요구를 방해했다. 2017년 11월 방문진 이사장직에서 해임됐지만, 법원과 싸우며 버텼다.

"문재인은 공산주의자" 발언으로 기소됐으나 대법원은 최종 무죄 취지로 파기 환송했다. "공적 인물의 정치적 이념에 관한 의견 표명"이라는 이유였다. 이 판결 이후 그는 스스로를 "법원에서도 인정한 공산주의자 감별사"라고 불렀다. 유머 감각만큼은 있는 셈이다. 다만 그 유머의 대상이 된 사람들이 웃지 않고 있을 뿐이다.

영국에서 2026년을 생각한다

영국도 냉전시기 결코 깨끗하지 않았다. 영국 정보기관 MI5는 1940~50년대 공무원, 언론인, 노동운동가 수천 명을 공산주의자로 분류해 사찰하고 직장에서 쫓아냈다. '음화 심사(Negative Vetting)'라는 이름으로 제도화된 이 사찰은 수십 년간 비밀에 붙여져 있다가 뒤늦게 공개됐다. 영국판 블랙리스트였다.

그러나 영국은 이 문제를 비밀로 덮어두는 대신, 수십 년 뒤에라도 문서를 공개하고 의회 청문회를 열고 피해자를 복권시키는 작업을 해왔다. 늦었지만 기록했고, 기록했기에 책임을 물을 수 있었다.

한국에서는 어떠한가. 1981년 부림사건의 담당 검사가 2015년 방문진 이사장이 됐다. 2024년 12월 3일 윤석열(1960~)의 비상계엄 이후에도 고영주는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2025년 2월 이승만바로알기국민연합 상임고문을 맡았고, 대통령 이재명(1964~)이 여수·순천사건 피해자를 위로하는 메시지를 냈을 때 이를 격렬히 비난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2014년 부림사건 재심에서 무죄가 확정된 날, 고영주는 사과하지 않았다. 그가 고문현장을 방문하며 기소를 강행했던 그 사건의 피해자들이 30년 넘게 '공산주의자'라는 낙인을 달고 살아야 했던 동안, 고영주는 훈장을 두 번 받았다(1995년 홍조 근정훈장, 1997년 황조 근정훈장). 그리고 지금도 살아서 성명을 내고 있다.

역사의 법정에는 공소시효가 없다. 매카시는 대중 앞에서 몰락했다. 괴벨스는 전범으로 기록됐다. 고영주는 아직 그 법정에 서지 않았다. 그러나 『반헌법행위자열전』은 이미 그 이름을 기록했다. 이름을 부르는 것이 역사의 정의를 바로잡는 시작이다.

▲고영주 전 방문진 이사장 ⓒ연합뉴스

참고문헌

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위원회, 2026, 『반헌법행위자열전 1-4』, 사회평론아카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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